피리 부는 사나이 - 권교정 단편시리즈 1
권교정 지음 / 시공사(만화)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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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함께 자란 동화. 온갖 상징과 은유로 점철된 그 세계를 그대로 받아들이다 나이가 먹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면서 행간에 숨은 뜻을 찾아보게 됩니다. 권교정씨의 단편 '피리부는 사나이'는 바로 그런 다시바라보기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에는 전체 다섯 개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피리부는 사나이'는 권교정의 시각과 상상력으로 재해석되어지고 각색된 이야기입니다. 촛점은 왜 피리부는 사나이는 아이들을 데리고 갔을까에 맞춰져 있습니다. 사랑에 대한 믿음과 그 이면에 숨겨진 사실에 대한 추론들이 치밀하게가 아닌 따스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두번째 이야기 '마법사의 화장실' 역시 재미난 상상력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저는 두번째 단편을 읽으면서, 중세의 마법사란 현대의 과학자와 같은 의미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언제나 마법사에 대해 환상적이고 초월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저로선 아주 색다른 접근이였다고나 할까요. 인간의 인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을 행하는 과학자를 마법사로 생각하는 것... 아주 재밌는 해석이였습니다.

세번째 이야기, '기부르의 입맞춤'과 다섯번째인 '순찬이야기'는 아주 짧은 이미지적 옛날이야기라 볼 수 있습니다. 솔직히 내용 자체가 매우 축약되어 그림과 함께 간략하게 나와있었기 때문에 많은 것을 느끼기엔 아쉬움이 있었고... 책 전체의 구성면에서 써억 맘에 드는 단편은 아니였습니다.

네번째 '메르헨, 백설공주의 계모에 관한'은 이야기의 촛점이 백설공주가 아닌 계모에게로 맞춰져있습니다. 아마 작가 권교정은 언제나 인간행동과 사건의 이면에 숨겨진 그 이유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피리부는 사나이와 마찬가지로... 그 동화의 인물과 전체 얼개를 차용했을 뿐 완전히 작가가 원하는 한편의 아름다운 동화를 창조했다는 것이 가장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나서 그 뒷이야기를 상상하거나 그 속에 숨겨진 또 다른 버젼이 이야기를 상상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참으로 즐겁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만의 피리부는 사나이나 백설공주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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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개 - 가브리엘 뱅상의 그림 이야기
가브리엘 벵상 지음 / 열린책들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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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읽는 책이 아닙니다. 가슴을 열고 그대로 온전히 만나는 책입니다. 서로 한 마디 말이 없어도 눈빛으로 몸짓으로 서로 이해하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처럼 온 몸으로 만나는 책입니다. 그 치열한 달리기, 두려운 공포와 체념, 서글픈 고개짓, 외롭고 기나긴 그림자, 쓸쓸한 뒷모습...에서 단순한 그림이 아닌 마음 속에서 간절히 떠돌이 개의 행복을 빌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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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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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듯 하면서도 동시에 진부하다. 자유로운 듯 하면서도 동시에 현학적이다. 빠른 듯 하면서도 동시에 느리다. 적인 듯 하면서도 적이 아니다. 아멜리 노통은 소설 속의 상황 그대로 소설을 쓴 것일까? 그녀의 스타일에서 적의 냄새가 난다. 서로 치고받는 듯 톡톡 주고 받는 대화의 스타일 속에서도 화장 냄새가 짙게 배어 나온다. 적의 정체는 밝혀졌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정체는 무엇일까? 소설을 감싸고 있는 현학적인 대사, 우스꽝스러운 상황, 치고받는 이야기.. 이 짙은 화장을 전부 지우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노통이 의도한 화장법에 휘말려 극찬을 하거나 악평을 하거나 자신의 창조품에 쏠리는 수많은 웃기는 말짓거리들을 비웃기 위함일까? 그녀가 만들어낸 이 아기만이 진실한 존재이며 이를 둘러싼 다른 짓거리들이 기괴한 화장법인 것일까? 이 소설의 화장안한 맨 얼굴은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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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고의 숲
로버트 홀드스톡 지음, 김상훈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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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해서 자주 가는 까페 앞에 아주 커다란 밤나무 숲이 있다. 까페와 숲 사이에는 아주 작은 도랑이 있고 길고 예민한 잎으로 감싸고 있는 밤나무 숲은 손에 닿을 듯 하면서도 멀리 있는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밤나무 아래 빽빽히 들이차 있는 강인한 초록의 덤불 숲과 여리지만 고개를 꼿꼿이 들고 있는 풀들. 고요하고 차분하고 정적인 심상. 주된 생명의 주체가 식물이기 때문일까. 살이있음을 끊임없이 보여주고 확인하는 동물과 달리 그저 그곳에 존재하는 나무의 느낌. 하지만, 존재감만은 어느 생물보다 확고해 그저 보고만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다. 마치 땅 속 깊이 굳건히 박고 있는 뿌리와도 같이.

미사고의 숲은 친숙하게 늘 옆에 있는 현실의 숲과 심상에 의해 더욱 존재감을 확고히 하는 신화의 숲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황홀하게 깨워준다. 현실에 머물러 아버지와 형을 통해 미사고의 숲을 의식한 후 잠깐 엿보던 스티븐이 귀네스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통나무 집을 일종의 경계지역으로써 이용하며 환상과 현실의 세계 양쪽에 자신을 걸친다. 이 때만해도 스티븐은 귀네스를 자신의 현실로 데리고 올 생각을 할 뿐 자신이 그 경계를 넘어 환상의 세계로 갈 생각은 하지 않는다. 결국 이들의 운명에 의해 미사고의 숲으로 들어간 스티븐은 자신이 만들어 낸, 혹은 자신의 형이나 아버지가 만들어 낸 세계 속에서 그들이 또 다른 환상(전설)임을 깨닫는다.

전개가 어찌나 치밀하고 과학적인지 마치 스티븐이 미사고의 숲을 이상하리만큼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된 것처럼 읽는 이로 하여금 미사고의 숲에, 스티븐의 세계에 그대로 빠져들게 한다. 가히 저자가 Sci-Fi라 주장할 만한(저자는 이 소설이 환상소설이 아닌 Sci-Fi라고 했다고 한다) 탄탄한 구성과 전개력을 가졌다. 과학자들이 단계 단계 실험을 통해 인식을 확장하고 새로운 모험에 뛰어들어 커다란 발견을 하는 것처럼.

한가지 안타까운 점이라면 영국 토착민 이나 켈트족의 신화에 대해 워낙 무지하다보니 저자가 다루고 있는 의미있는 많은 것들을 놓쳤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영국의 수많은 신화와 신화의 인물들, 문화인류학, 융의 집단 무의식에 이르기까지 아우르는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이들을 융해해 미사고의 숲에 녹아내리는 능력은 그저 어안이 벙벙해지게 만든다.

사실 서평을 쓰고는 있지만 이 책을 단순한 감상으로 적어서 나열하기에는 너무 힘들다. 직접 읽고 작가가 보여준 신화적 심상에 함께 빠져드는 것. 이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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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I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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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본질적으로 같은 부류의 인간을 찾게되어있다. 자신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혹은 합리화를 위해서. 그래서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전혀 의미도 없는 인종이라던가, 성별, 나이, 더 나아가 국적, 성적 지향성등에 의해 나름대로의 구분을 짓는다. 그리고 그 구분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대해 논의하고 토론하며 서로의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구분짓기가 가장 끔찍한 방법으로 어떤식으로 행해질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흔히 다루어지는 유대인, 집시, 수많은 폴란드인들을 말살로 몰고 가게했던 홀로코스트의 비극, 그리고 그 커다란 역사 속에 묻힌 한 작은 인간의 생존기, 그리고 그 영향하에서 아직도 고통받고 있는 자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스피겔만은 쥐, 고양이, 돼지, 개 등 다양한 동물의 모습으로 다양한 인종을 표현하며 상징적인 구분짓기를 구체화시킨다. 그리고 구체화된 인종들을 통해 책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비극적인 역사적 사실에 대해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한다. 동물을 통해 감상에 빠질 수 있는 비극을 담담히 묘사함으로써 오히려 그 비극을 더욱 잔인하고 끔찍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그 비극이 단지 역사적인 한 무더기의 유대인에 대한 비극으로써만이 아닌 한 인간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그것이 어떻게 대를 이어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해 너무나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책을 만들기 위한 아버지와의 만남과 대화,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그대로 솔직하게 까발림으로써 사실의 리얼리티를 더욱 살아나게 한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어떤 영화나 소설보다 생생하게 우리에게 와닿는 이유는 이 이야기가 스피겔만 자신의 현실을 그대로 담고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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