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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영혼을 깨우는 여행의 기술
롤프 포츠 지음, 강주헌 옮김 / 넥서스BOOKS / 2008년 3월
절판


피코아이어가 지적했듯이 "떠난다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계속 움직이는 것이다. 뭔가가 마음에 맞지 않기 때문에 방향을 바꾼 것이 아니다. 당신이 일상적인 틀에 안주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떠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떠나는 것은 불만의 토로가 아니라 긍정적인 선택이다. 인생의 여정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방행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직장이든 습관이든 버리고 떠나는다는 것은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쪽으로 계속 움직이기 위한 방향 전환이다."-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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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여행] 여행을 떠나기전에 준비할것들. 여행의 기술 - 롤프 포츠(Vagabonding- Rolf Potts)
    from 월풍도원(月風道院) - Delight on the Simple Life. 2010-07-30 13:41 
    이미지출처 : www.nightmemory.com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은 한번쯤 읽어봤을 이 책. 사실 이 책에는 많은 추천 사이트라던가, 추천 서적들이 등장하지만. 그 목록을 여기에 적는것은 별 의미가 없을듯하여, 이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 을 간단히 적으려고 한다. 우선 단순한 마음가짐으로, 여행에 필요한것들을 준비하고, 여행을 떠나면 안전하게 문화와 자연등을 보고 듣고 느끼며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느껴보라는거다. 도중에 경비가 떨어지거나..
 
 
 
여행자의 영혼을 깨우는 여행의 기술
롤프 포츠 지음, 강주헌 옮김 / 넥서스BOOKS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베거본딩 [vagabonding] 

 

여행에는 언제나 수 많은 의미와 상징이 내포되어있다. 

자유로움, 여유, 느슨한 삶, 일탈, 꿈, 미래, 쉼, 자아, 발견, 놀라움, 신과 삶... 

그 의미의 수는 무한대이며, 또 지금 이순간도 세상의 일부를 찾는 여행자들에 의해, 부지런히 늘어나고 있을 것이다. 

이 여행자는 자신의 여행을 삶이라 지정하고 거기에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정의했다. 심사숙고끝에 단어를 골라내고, 느끼는 그의 애착과 자부심은 그것이 곧 삶의 한 방식임을 느끼게 한다. 

 

베거본딩:  

질서있는 세상을 떠나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시간을 연장해가며 여행하는 행위 

창의성 모험 깨달음 단순함 발견 자립 현실 독립독행 영적인 성장 등에 초점을 맞춰 개 인적으로 의미있게 여행하는 방법 

여행의 자유를 만끽하게 해주는 계획적인 삶의 한 방식 

"자유인이라 선언하라"로 시작하는 첫 챕터에 들어서면서 부터, 이 못말리는 과격한 여행옹호론자는 거침없이없이 자신의 여행법을 소개한다. 

여행에서 발견하는 가장 놀라운 것은 바로 자기 자신과의 조우이다. 나를 둘러싼 환경에서 벗어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고서야 내가 나를 발견하는 기쁨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한발 더 나아가, 그 여행을 지속하며 더 나아가 삶을 누리고, 배우고, 즐기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는 그를 지지하는 수 많은 명사들이 추천을 날리고 있고, 그에 따를 적절한 정보 또한 소개하고 있다.  

여행은 도피처나, 자유를 가장한 방종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이 내가 선택한 삶이라면, 나는 필연적으로 그 안에서 성장하고 배우고, 더 나아져야만 한다. 삶을 주체적으로 건강하고 즐겁게 살아가기 위해, 때때로 여유도 필요하고, 쉼도 필요하다. 돈이 행복의 척도가 되고, 명예나 권력를 갈망하는 삶에서 조금 떨어진다고 나는 낙오자가 될까, 조금 더 행복한 사람이 될것인가. 부족한 예산, 언어, 성별, 준비. 나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내가 갖지 못한 것일까, 나를 옭아매는 것일까.  

갈등하는 당신, 그의 유쾌한 베가본딩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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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에 서는 용기
로렌 커닝햄 지음, 문효미 옮김 / 예수전도단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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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현대사회에서 모든 사람들이 같은 것을 향해 달려간다.

부와 명예, 이런것들은 언제나 삶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처럼 신앙의 반대편에 버티고 서있다. 두가지는 양립되는 절대가치가 아니다. 신앙은 그것들이 도구일 뿐이며 언제나 올바른 가치를 바로 보기를 원하지만, 똑같은 세상을 살면서 이것들에게서 자유로워 지는 것은 마치 벼랑 끝에 서는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그는 책에서 본인이 사역을 하면서 경험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놀라운 체험을 바탕으로 벼랑끝에 서는 신앙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리고 사역자뿐아니라 모든 신앙인들에게 해당된다고 한다.

벼랑끝에 서는 용기는 죽는길로 가는 용기가 아니다. 신앙인으로써 걱정하지 않을 권리, 축복받을 권리를 되찾는 길이다.

특별히 재정문제와, 물질에 포커스를 맞추어져있다. 우리는 벼랑 끝에 서는 용기가 없어 얼마나 많은 비전을 포기하는지...

사역을 하고 싶은 청년이 하고 싶은 일에는 물질적인 안정이 보장이 되지 않고, 눈앞의 기회는 원하는 일은 아니지만 물질적인 안정이 보장된다는 고민을 하는 것을 종종 본다. 나는 뚜렷한 미래 없이 단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현재를 놓는다는것이 너무 힘들때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물질에 관한 걱정과, 재정문제로 신앙과 세상을 사이에 두고 고민하는 신앙인들이 읽어본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신앙인들은 언제나 노력해야 한다. 이 책을 통해 돈과 물질에 관해 신앙인으로써 다시 한번 그 가치과 위치를 바르게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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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투를 빈다 - 딴지총수 김어준의 정면돌파 인생매뉴얼
김어준 지음, 현태준 그림 / 푸른숲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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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평범한 청년들,

똑같은 입시교육을 받으며 모범생이라는 잣대에 이리저리 재이다가, 청년이 되고 제도권에 반항도 좀 해보고 신소리도 좀 해보다가, 나이 좀 더 먹고나면 제 몫을 하려고 또 슬슬 닦여진 길을 찾아 헤메인다.. 결국 다들 잘 살아보려고 아둥바둥이다. 성격도 다르고 잘하는 것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른 대한민국의 청년들 하지만 그들이 계속해서 물어대는 질문은 별반 차이가 없다.

[나 잘 살고 있는건가요? 이거...맞는건가요?]

남에게 책 안잡히고 어깨 세우는 법만 배웠지, 그 일렬로 늘어선 줄 밖에서 어떻게 행복해지는지 배우지 못한 우리는 언제나 밑 안닦고 화장실 나온 모냥 물어제낀다. 

[이대로 이렇게 가도 괜찮은가요?]  

살라는 대로 열심히 살았는데, 결국 질문은 한가지에 봉착하고, 우리는 착실하게 공교육을 받은 덕에 살라는 대로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 이런 질문을 해도 괜찮은가요? 전 왜 이런거죠?까지 업그레이드 된 안드로이드 신세.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등장한 발칙한 삼류신문 딴지일보, 똥꼬깊쑤키 를 클릭하면 속속 드러나던 사회의 이면과 삼류문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것을 까발리던 그 말투 그 정신 그대로

총수 김어준이 충고를 던져준다.

세상사 결국 다 행복하자는 수작 아니더냐

김어준 특유의 딴지일보체, 막말체, 속 시원한 직설화법. 그 자체로도 충분이 재미거리가 있지만, 그 속에 내심 찔리는 고언을 담고있다. 대한민국의 청년들. 살라는 대로 살고, 하라는대로 하면 눈앞에 현실과 어려움을 피할수있을것 같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매일 이런 질문을 하고 있다면 똥침한번 맞고 정신 차려보는것도 나쁘지 않다.

그의 정면돌파 인생 매뉴얼. 한번 읽고 시크하게 중얼거려 본다.

다들, 건투를 빈다, 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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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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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 모든 자식들의 원죄에 대한 이야기.
엄마에게 기대며 동시에 밀어낸 우리 자신의 이야기.
아직 늦지 않은 이들에겐 큰 깨달음이 되고, 이미 늦어버린 이들에겐 슬픈 위로가 되는,
이 아픈 이야기. - 이적 (대중음악가, <지문사냥꾼> 저자)
 
   

신간을 읽어본것이 얼마만인지...

얄궂게도 마침 엄마는 시골에 내려갔고, 나는 빈집에 앉아, 엄마가 즐겨보는 그 연속극을 보지도 않은채 틀어두었다. 물을 마실때나 집에 들어올때 항상 못마땅하게 토를 달거나, 타박을 주며 차라리 보지 말라던 그 연속극 소리를 위안삼아 틀어두고는, 한구석에서 얼마전 시작했던 책을 읽다가 앞섶이 다 젖도록 결국 울어버렸다. 

나는 다 큰, 잘난척하는 딸이면서 눈물에 눈앞이 부옇게 되어 글줄이 더이상 읽혀지지 않는데도, 시선을 행간에 고정시킨채로 서럽게 울었다. 마치 엄마가 옆에있는듯 그 연속극 소리가 나를 위로하면서도 한없이 서럽게 만들었다. 세상에 엄마가 필요하지 않은 자식이 어디에 있을까.

이 소설은 그렇게 엄마를 잃어버린 때부터 시작한다.  

자식이 무섭게 자라고 자리를 잡고 또 늙어가는 동안,그 뒤안길에서 엄마는 점점 자식들에게 잊혀지고,... 엄마는 자식들에게나, 늘 집밖으로 내돌던 아버지에게나 언제나 그자리를 지키고있는 존재였는데, 그 자리에 있어 잊혀지는 존재였는데, 그런 엄마가 사라져버렸다. 엄마가 길을 잃었고, 자식들이 엄마를 잃어버렸다.

잊은 것의 댓가는 잃어버리는 것이 되었고,

자식들은 엄마의 부재로 인한 혼란스러움과 후회, 자책을 통해 엄마를 다시 기억해낸다. 자신들을 키워낸 켜켜한 세월을 지켜온 엄마가 생각이 날수록 잃어버린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후회가 너무도 큰 것은.. 정말로 가혹하게도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 엄마가 필요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너의 그 후회는 곧 나의 후회가 된다.

"엄마를 잃어버린지 일주일째다" 로 시작하는 큰 딸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라고 하지 않는다. '너의 엄마는 몇해 전부터 내 생일은 따로 챙기지 마라, 했다.' 라고 한다. '오빠가 너를 지명했다'라고 한다. 그 다음장인 큰 오빠의 이야기도 그렇다. 이 [너] 라는 지칭은 더욱 냉정하게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리고 그 자식들의 회상과 슬픔과도 한발짝 떨어진것 처럼 보이지만... 담담하게 너의 이야기를 하는 그 어조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자식들과 내가 같은 입장에서 듣는것 처럼 생각하게 한다. 나도 너의 엄마의 자식이기 때문일까.

자식들의 잊혀진 유년에는 따뜻하고 억척스러운 엄마가 있었다. 그 엄마가 그 애들을 그렇게 키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을까. 나는 엄마를 얼마나 알고있었을까... 소같은 눈을 지닌 엄마는 평생을 부지런했고, 잊혀진채로도 끊임없이 자식을 돌보고, 새끼들을 먹였다. 엄마를 찾으며 기억을 되살릴때마다. 생각하지 않았던 일들이 재구성될때마다 그 뼈아픈 의미들이 자식들에게 오래된 편지처럼 전달된다. 자식들은 엄마가 필요해서 사랑했던걸까. 왜 엄마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았을까. 왜 엄마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을까. 딸은 제 소설을 맹인들을 위해 점자로도 내는데, 글 읽지 못하는 엄마에게는 그가 딸인지도 모르는 이가 책을 대신 읽어준다.

엄마는 어떻게 엄마가 된것일까. 엄마도 누군가의 자식이었을텐데...

처음엔 배를 내어주고, 피와 살을 떼어내서 낳고, 젖을 물리고, 밥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고, 허리가 휘고, 마음을 졸이고, 눈물을 흘리고, 이를 깨물고, 돈을 벌고, 가슴을 잃고, 엄마가 되었기 때문에 엄마로 살았던 엄마는 참 힘들고 고단했다. 그래도 행복했다고 말한다. 니가 있어서 행복했던 날이 얼마나 많았냐...얘야 너는 그렇게 내게 좋은 기억을 많이 남겨준 사람이었다. 라고 담담히 말한다. 옛날집 마당까지 훓어보고 지난 삶 키워낸것들을, 마음 기댄 사람을, 고모와 막내딸을 돌아보고 옛날집 햇살같이 따뜻한 손길로 마지막 여전히 엄마다운 마지막 당부를 남기지만, 그 고단한 생의 마지막에 이제 그만 나를 놓아달라고... 죽어서도 이집에 묻히는것은 이제 싫다 고 한다.

"잘 있어요...... 난 이제 이 집에서 나갈라요."

서울역에서 엄마가 아버지의 손을 놓쳤을때, 자식들이 엄마를 잃어버린 그 날, 엄마는 그 집에서 나가 비로소 엄마라는 무거운 굴레를 내려놓고 세살짜리 딸로 돌아간다.

아무리 손주라도 내 자식 상하게 하는것은 싫더라는 엄마는 제 자식들을 키워내느라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채 뼈가 드러나도록 움푹 패인 상처를 안고 딸이 되어 엄마의 품에 안긴다. 엄마가 태어났다는 오래된 고향집 마루에서 이제 상처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제 딸을 안은 엄마는 슬픔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되어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 그 표정은 언젠가 죽은 아이를 낳아 안았던 바로 그 표정이었다.

그들은 조금씩 받아들인다. 골프를 치고 여행을 가고, 자식들을 키우고, 하지만 여전히 엄마를 잃어버린 서울역에서 우두커니 서있는다. 그리고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그 피에타 상 앞에서, 세상의 엄마에게 읊조린다.

엄마를 부탁한다고..

에필로그에서 막내딸은 나는 엄마처럼 할 자신이 없다고 말한다. 단 몇시간만 있더라도 엄마가 한 모든일들을, 그걸 해낸 엄마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엄마의 일생을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말하고 싶다고 한다. 막내딸은 알고있을 것이다. 이제 그런말을 할 기회는 없다는 것을, 자신 역시 엄마라는 이름으로 숨겨진 이야기들을 담아둔채 묵묵히 자식들을 키워내고 살것이라는 것을...

발개진 눈으로 방문을 열었을때, 그자리에 엄마가 있었다면 이렇게 머리가 아프도록 많이 울지는 않았을 것이다. 

며칠후 엄마가 돌아오면 이번엔 내가 맞이하고 싶다. 이번엔 내가 기다렸노라고...

작가가 말하지 않는가..아직 기회가 있는자.

사랑할수있는 한 사랑하라.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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