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문예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정수윤 옮김 / 한빛비즈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일본 문학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좋아하는 작가가 두 사람이 있다. 무라카미 류(하루키가 아니라)와 히라노 게이치로이다.

무라카미 류는, 20대 초반에 그의 대다수 작품을 읽으면서 우울하면서도(역시 하루키와는 다른 의미의) 퇴폐적이면서도 희망적이고(아마도 하루키와는 다를!) 소설들에 흠뻑 빠지기도 했고 ‘남자는 소모품이다’와 같은 에세이집을 읽으면서 그만의 독특한 사상과 시니컬하면서도 잘난척하면서도 의의로 수줍은 성격에 존경심을 느끼기까지 했었다. 한편, 히라노 게이치로는 우연히 지인의 사무실에 들렀다가 읽게 된 ‘일식’부터 시작해서 ‘책을 읽는 방법’과 ‘소설을 읽는 방법’ 등 작가에 앞서 한 명의 책벌레로서 그의 생각에 동조하게 되었고 한국에 방문했을 때는 모 온라인서점 이벤트에 당첨되어 홍대 북까페에서 직접 그를 만나는 기회를 갖기도 했었다.

무라카미 류와 히라노 게이치로는 데뷔부터 공통점이 있다. 젊은 나이에 데뷔했다는 것(20대 초반),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나 게이치로의 ‘일식’처럼 그 시대와는 다소 맞지 않는 충격적인 데뷔작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두가지 공통 사항으로 인해 두 사람 사에는 커다란 교집합이 존재하게 되었다. 바로 일종의 신춘문예상 격인 ‘아쿠타가와 상’ 수상자라는 점이다. 아쿠타가와 상은, 당연한 말이겠지만, 아무나 주지 않는다. 문단에 의미가 있는 젊은 (천재) 작가에게 수여하는 상이라는 점에서 두 사람은 20년 이상을 건너 뛴 채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류와 게이치로의 책이 꽂힌 책꽂이를 정리하다가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저 두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고, 둘 다 젊은 나이에 (내게도) 의미 있는 작품으로 데뷔를 했지. 그리고, 그래서, 그 결과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했고. 그런데, 대관절 정작 아쿠타가와는 무엇 또는 누구이길래 저 두사람이 같은 상을 받은 걸까?’ 라고.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아쿠타가와는 사람 이름이고, 이미 한 세기 전에 인정 받은 젊은, 그리고 요절한 천재 작가라는 것을.

이 책 “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은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의 소설은 아니다. 단편집 또는 작품선이라는 이름으로 시중에 이미 몇 권의 도서과 나와 있다. 이 책은, 그가 쓴 독백이자 자기 성찰이며 비판이고 비관이자, 아쿠타가와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일종의 에세이집이다.

책은 크게 3부로 나뉘어 있다. I부 창작에 대해는 본인 자체의 작품 활동과 배경에 대해 논하고 있다. 2부 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에서는 본인의 작품 세계를 넘어 전반적인 문학 풍조와 평론을 논하고 있다. 3부 내가 만난 사람들은 다시 조금 더 개인적인 관점으로 돌아와서 그를 둘러싼 선후배와 동료 등을 가벼운 조로 이야기한다. 특히 내게 흥미로웠던 것은 1부였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무라카미 류와 히라노 게이치로가 어떻게 신인 작가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는가에 대한 대답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슬프다. 정신병을 앓는 어머니 밑에서 태어나고 이모에게서 자란 유년기를 딛고 촉망 받는 작가로 성장한 그의 이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9세기말-20세기초의 동서양 많은 예술가가 그러했듯이 아쿠타가와 역시 개인적인 갈등, 고민 그리고 한계라는 어려움과 동시에 가족 내에서의 문제와 특히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은 것이 짧은 글들 구석 구석에 날카로운 칼날처럼 담겨져 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결국 스스로 택한 죽음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오늘날의 독자인 나로서는 그의 투쟁과 체념이 더욱 가슴 아프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능력 있고, 촉망 받는 젊은 작가였지만 스스로 죽음을 택한 아쿠타가와.
그를 기려서 일본 문학계에서는 ‘아쿠타가와 상’을 제정했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본 작가 두 사람이 그 상을 수상했다.
그래서 이 책은 100년 전 일본 땅에서의 소설가를 이해하기 위한 책이기도 하지만, 무라카미 류나 히라노 게이치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봤으면 한다(최근 한국에서도 인기 있는 작가 중 또 다른 수상자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 편협한 문학 취향 내에서는 오직 두 사람밖에 모르는 관계로 더 이상의 소개는 생략한다...). 

또 한 가지. 이 책을 읽다가 떠오른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한국 사람이다. 작가이다. 아쿠타가와와 매우 많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이상이다. 젊은 천재, 우울증, 요절, 그리고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든 권위 있는 문학상. 마치 쌍둥이 같고 형제같다.

궁금한 마음에 찾아보았더니, 이상이 아쿠타가와를 동경했다고 한다. 이상의 ‘날개’에서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첫 구절,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의 대상이 바로 아쿠타가와라는 이야기도 있었다(진위 여부는 내 부족한 식견으로는 알 수 없지만). 그렇다면, 이 책 “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은 난해한 천재로만 교과서에서 배웠던 이상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는 한 장에 몇 엔 몇십 전 하는 원고료 제도를 벗어날 수 없다. 많이 받고 적게 받음으로 우열을 가리는 것은 물론 불공평한 일이다 (p.60)

예술가는 비범한 작품을 위해서라면 부득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기기도 한다. 나도 물론 충분히 저지를 수 있다는 뜻이다. 나보다 힘들이지 않고 저지르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p.25)

우리는 비록 의식하지 못할지라도 어느 틈엔가 앞사람의 발자취를 뒤쫓는다. 우리가 독창적이라고 하는 건 앞사람의 발자취를 살짝 엇어난 것에 불과하다. 그것도 끽해야 한 발짝 정도, 아니 한발짝이라도 나와 있으면 그야말로 시대를 풍미하는 작품이다(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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