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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텍스트의 시대
로버트 스코블, 셸 이스라엘 지음, 박지훈, 류희원 옮김 / 지&선(지앤선)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작년 하반기에 인기를 끌었던 '응답하라 1994'에는 삼천포라는 인물이 나온다. 방학을 맞아 고향에 내려간 삼천포는 지역 어른들이 이웃 지역 사람들과 행정 구역 합병을 놓고 논쟁을 벌이는 가운데에 휘말리게 된다. 조정 과정을 거쳐 삼천포 시는 사천 시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태어나게 되었다. 삼천포라는 이름 대신 사천이라는 이름이 채택된 이유 중 하나로는, '잘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라는 말의 어감이 너무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한참 잘 나가다가 '삼천포'에 빠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화 중에도 종종 발생한다. 그것은 마치 뜨거운 육개장을 먹으면서 '어 시원하다'라고 하는 것이 결코 정말 차가워서 그런 것이 아닌 것처럼, 때로는 어떤 상황은 숨겨진 의미라던지 그 전후 상황이 중요한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맥락'이며 영어로는 컨텍스트(Context)라고 한다.
IT 관련 유명 저널리스트인 Robert Scoble 로버트 스코블은 수많은 IT 혁신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오늘날이 '컨텍스트의 시대'라는 것을 규정하였고, 그 결과물로 작가인 셸 이스라엘과 함께 책으로 내놓았다. 그리고 그 책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번역된 것이 바로 한국어판 '컨텍스트의 시대'이다.
저자(들)는 모바일 기기, 소셜 미디어, 빅데이터, 센서, 위치기반 서비스라는 5가지 세상을 바꿀 기술을 언급하고 있다. 개별적으로도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요소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고, 이것이 바로 '컨텍스트의 시대'가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컨텍스트의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바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요소들이 하나로 뭉쳐 진화한 결과물이 바로 구글 글래스라고 주장한다. 즉, 저자는 현존하는, 그리고 앞으로 등장할 제품 중에서 구글 글래스만큼 상황을 잘 인식하고 맥락 속에서 움직이는 제품은 없다는 매우 강하면서 매우 낯선(우리 상당수는 아직 실물을 본 적도 없다) 강한 주장을 펴고 있다.
결국 이 책은 구글 그리고 구글 글라스에 관한 책이다.
그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마이크로 커미션(소액 수수료)라는 개념이다. 구글 글래스와 같은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컨텍스트를 인식하고 사용자의 순간 순간에서 가장 적합한 광고 추천을 제시해 줄 것이다.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물건/서비스를 구매하게 되면 맥락 인식 사업자(구글과 같은)는 상품 가격의 작은 일부를 수수료로 받게 될 것이다. 즉, 일종의 인텔리전트 삐끼가 된다는 것이다. 성공적인 호객 행위는 단순히 아무 고객을 아무 시점에 아무 가게로 추천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즉, 단순해 보이는 호객 행위일지라도 그 이면에는 상당히 정교한 분석이 자리잡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앞서 말한 5가지 기술 요소의 융합이라고 할 수 있다.
구글 글래스에 대한 지나친 극찬과 낙관주의만 제외한다면 이 책은 제법 흥미로운 관점에서 쓰여져 있다. 엄청난 폭풍우를 불러올 기술인 모바일, 소셜 미디어, 빅데이터, 센서, 위치기반 서비스라는 5가지 요소에 대한 정의와 개별적인 소개가 잘 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각 요소 간의 관계와 영향력에 대한 설명은 상당히 미흡한 편이다. 물론 이러한 단점 조차도 '구글 글래스가 최고다. 안 써봤으면 말을 마세요'라는 편향된 결론 앞에서는 큰 문제가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가장 큰 문제는 지나치게 편향되고 낙관적이면서 방어적인 시각이 담겨 있어 읽는 과정에서 다소 불편함을 준다는 점이다. 지나친 낙관주의 특히 기술에 대한 낙관주의는 일단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글 글래스가 가져오는 생활의 편리함을 모르는 사람은 그냥 입 다물고 가만히나 있어라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지나친 오만함은 미래를 진단하고 예측하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태도는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요즘 유행하는 기승전O라는 표현을 빌자면, 책은 결국 기승전'구글글라스'이다.
우리는 책을 집필하면서 자동차 산업이 컨텍스트 기반 기술 자체와… 감명을 받았다. 하지만, 동시에 구글 글래스와 같은 디지털 안경이 가진 영향력에 대해서는 현재 고려하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실망했다. (P.127)
그런데 놀라운 점은 저자의 태도가 막판에 가서 극적으로 변한다는 점이다.
11장까지 컨텍스트, 웨어러블, 구글 글래스에 대해서 극찬만을 나누다가 마지막 12장에 가서는 약간 수그러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새로운 기술의 미덕만을 극찬해 온 논조를 반성하고 사생활 침해에 대한 부작용을 살짝 언급한다. 모든 컨텍스트 비서(PCA; Personal Contextual Assistant)는 사용자의 허가에 기반하여 설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용자들을 안심시킬 수 있고, 회사의 투명도가 적어도 구글 수준 혹은 그 이상이 될 수 있는 회사들에게는 엄청난 기회와 새로운 세계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책 전반에 걸친 지나친 기술 낙관주의 시각으로 미루어 보건데 마지막 장의 충고는 그다지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균형잡힌 시각을 제시해야 한다는 주위의 조언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책 전반에 걸쳐서 제시했던 유토피아로의 입장권과는 어울리지 않는 마무리는 오히려 그 앞의 모든 지나쳤을 지언정 강렬한 주장마저도 가볍게 만들어 버렸다.
<사족: 또 다른 단점>
책을 번역한 박지훈 씨는 삼성전자 소프트웨어센터에 근무하는 IT 전문 인력이다. 그런데 책의 기본 번역의 일부는 전혀 IT 전문가스럽지 않은 부분이 존재해서 의아했다. 물론 공동 번역자 류희원씨가 기술 인력이 아니라 일반인 관점에서 접근했다고는 하지만, 책의 타겟을 잘 못 잡았거나 (어떤 이유에서간에) 번역가가 IT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부분이 제법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친절하여 마치 독자의 수준을 의심하고 있는 듯한 주석도 제법 있었다. 이는 번역의 스타일이고 독자의 선호도 차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에서는 주석을 통해서 지나치게 독자와 교감을 직접 나누려고 하는 점이 다소 불필요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었다. 쓸데 없는 주석을 너무 많이 달아서 흐름을 깨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점은 번역의 큰 아쉬움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