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무엇으로 싸우는가
신기주 지음, 최신엽 그림 / 한빛비즈 / 2016년 7월
평점 :
절판


남자는 왜 사는가(buy)
 
‘경기도 사는 40대 남성, 로또 1등 확률 높네요’.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가 지난 8월 31일 발표한 2016년 상반기 복권 판매 동향을 소개한 기사의 헤드라인을 보고 눈이 확 끌렸다. 경기도에 살고, 남성이라는 점에서 이미 66.7%의 자격을 갖추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론 우스개로 하는 말이지만 서울에 살아서 아쉽다거나 여성이라서 아쉽다거나 하는 주변 사람들의 말보다도, 내게 가장 와닿았던 것은 “40대”라는 점이었다. 
경기도에 사는 40대 남성은 무엇을 지키고자, 무엇을 얻고자, 무엇을 버리고자 OMR카드와 싸우는 것일까? 경제적인 이유가 상당수를 차지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내재되어 있을 것만 같았다. 마침 최근 읽은 “남자는 무엇으로 싸우는가”라는 책이 떠올랐다. 
 
그 남자는 누구인가
 
대한민국 정통 남성지 중 하나의 피처 디렉터인 신기주 씨는 다양한 성격의 매체에서 여러 분야의 글을 기고하고 있다. 수많은 남자를 만나왔을테고 남자를 위한 글을 써왔을 저자가 ‘남자는 무엇으로 싸우는가’라는 도발적인 화두를 던지다니. 그가 봐온 사회 여러 계층의 남자들, 특히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의 남성을 다룬 이야기라면, 곧 불혹을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갈대처럼 흔들리는 나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일 수 밖에 없었다. 저자가 책에서 다루는 대상은 역시나 남성 잡지 에디터답게 성공한 남자들이다. 특히 영웅들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흔한 영웅이 아니다. 여기서의 영웅은 대중문화를 다뤄온 저자의 영역을 십분 살린 사람들이다. 배트맨, 조커, 윤대협, 닥터 하우스 등 현실이 아니라 대중문화 속 영웅들이다. 
 
‘남자들’과 ‘그 남자’는 구분되어야 한다.
 
남성을 논하면서 사실 자기 자신을 논하는 에세이로서의 성격(책의 80%)은 흥미로웠다. 대중문화 캐릭터의 특성을 바탕으로 남성의 성공담과 때로는 실패담을 논하면서도 저자 본인의 자기 성찰을 다루었다가 다시 대중문화로 돌아오는 일종의 교차 편집을 통해서, ‘나’에 대해서도 돌이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의 20%에 대해서만큼은 공감하기 어려웠다. 대중문화를 넘어 정치, 역사와 철학 등을 가져오면서 남자’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교조적이거나 현학적이거나 아니면 지나친 자기변호적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챕터 중간 중간에 일종의 ‘남자는 왜’라고 구성되어 있는, 철저하게 구분하고자 위함인지 이 부분은 까만 바탕에 인쇄되어 있다, 부분들이 전혀 공감이 가지 않았다. 남자는 왜 - 뮤즈가 필요한가, 길을 묻지 않는가, 여왕에게 충성하는가, 수염을 기르는가, 미식에 빠지는가, 근육을 키우는가, 허세를 부리는가, 정치판을 기웃거리는가, 피규어를 사 모으는가 - 시리즈는 본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이 시대 남성을 비판하거나 변호하고 싶은 건지에 대해서 그 성격이 너무나 애매모호하다.
 
당신(저자)과 나는 남성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 뿐, 전혀 다른 사람인데 ‘남자는 왜’라는 이름으로 집단화시키고 진단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경기도 사는 40대 남성이라고 모두가 로또 1등에 당첨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성이라고 - 40대이건 아니건 - 다 같지 않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미 집단과 세대를 논하는 시기를 넘어서 나 자신의 개인이 모두에게 중요한 시기로 접어든지 오래인 2016년에, 남성’들’이라고 논하는 것은 나머지 ‘들’에게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흥미로운 찌라시를 읽었다. 증권가에서 40대후반~50대초반 386세대와 20대후반~30대초반 밀레니엄 세대는 완전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디나 존재하는 세대 차이가 아니라, 아예 인종 차이라고 생각한다. 살아온 환경과 문화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밀레니엄 세대부터는 아예 다른 인종으로  진화해버린 것이다. 그 누구보다 트렌드와 세대에 대해 밝은 저자가 를 몰랐을리도 없을 테고, 온라인에 연재되었던 글을 모아서 만든 편집 기획의 미스였거나 아니면 저자가 - 미안한 이야기지만 - ‘너희들 그리고 우리’에 대해서 무엇인가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는 부채의식을 지닌 아재가 되어가고 있거나.
 
그럼에도 ‘남자들’은 싸우고 싸워야 한다.
 
서문에서 신기주 씨도 밝히고 있다. 이 책은 가장 개인적인 에세이집이라고. 남자의 인생을 논하다보니 소재는 본인 인생이 되었고, 본인 나이를 생각하다보니 결국 40대 자기에 관한 이야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은 모름지기’같은 집단론에 대해서는 공감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목소리에는 울림의 힘이 있다. 

내가 감히 누구의 인생을 평할 자격은 당연히 없지만, 50대의 신기주 씨는 지금보다도 더 멋지고 행복하게 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니,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40대, 그리고 나의 50대, 나의 60대는 ‘내’가 걸어온 길보다 더 나을 것이라 생각한다. 모두가 그럴 것이며 그래야만 할 것이다. 히스 레저나 신해철처럼 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뒷방 늙은이처럼 정점에서 조금씩 밀려나더라도 진짜 즐거움을 알아가는 <슬램덩크>의 윤대협과 같은 선배가 될 수도 있고, 외로움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동시에 더 큰 외로움이 자기에게 들이 닥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철갑을 두르는 토니 스타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디서 그 무엇이 되던 간에, 결국 우리는 조금씩 죽어가고 있지 않은가? 가만히 있으면서 슬픈 죽음을 맞이하기엔 40대도, 30대도, 50대도, 20대도, 60대도, 혹은 10대도, 아직은 너무 젊다. 싸우고 싸워야 한다. 왜 싸우고, 무엇에 대해 싸우고,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에 대해 이 책은 저자 개인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에게 설명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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