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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신 - 토크계의 전설 래리 킹에게 배우는 말하기의 모든 것
래리 킹 지음, 강서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말하기는 인간을 다른 동물과 다르게 만들어주는 특징 중 하나일 것이다. 글자를 배우는 것과 달리 -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 중에는 말씀은 잘하지만 읽고 쓰기는 못하는 분들이 계신 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 말하기는 특별한 학습 과정을 거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말 잘하는 사람’에 대한 동경도 인류 역사 내내 존재해왔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위대한 철학자, 지도자들은 ‘말’을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전쟁을 일으켜 왔으며, 오죽했으면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라는 말이 있겠는가. 내 세대는 어릴 적 웅변학원이 유행이었다.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시키는 대로 ‘이 연사 당차게 ____ 주장합니다’라며 마지막에 오른 주먹을 하늘을 향해 내질러야 한다는 것이 하나의 공식일 정도였다. 그러나, 학원에서 강요당한 대다수 지식이 그러하듯, 이런 웅변 기법은 아무짝에 쓸모 없었다. 작은 발표 하나라도, 아니 선생님한테 지목되어 일어나 국어책 한구절을 읽는 것조차도 부끄럽고 어려우며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대학에 와서, 경영학이라는 특성 상 프리젠테이션을 종종 하게 될 때도 말하기는 많은 이들에게 공포였다. PPT는 내가 만들게 발표는 네가 해라. 라는 빅 딜 아는 빅 딜이 성사될 정도였으니, 말하기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았다. 사회에 진출해서는 그  두통이 더욱 심각해졌다. 이해관계에 따라 모여있는 사람들, 혹은 아예 처음보는 낯선 사람들과의 대화를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자주 벌어졌기 때문이다. 아주아주 어릴 때부터 말하기를 해왔지만, 여전히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것이 말하기였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점에서 전설적 토크쇼 진행자인 래리 킹 Larry King이 말하는 말하기의 비법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50년 이상 말하기를 직업으로 삼아온 사람, 대서양 바다에 빠져도 입이 떠오를 것 같은 영화 감독 우디 알렌과 더불어 유태인 할아버지로서의 뭔가 독특한 이미지, 그리고 무엇보다 전세계 그 누구보다도 더 유명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왔던 멜빵바지. 그런 래리킹으로부터 말하기의 비밀에 대해 배울 수 있다면, 비록 청중이 2명만 되더라도 등 뒤에서 식은 땀이 흐르기 시작하는 나일지라도 뭔가 달라질 수 있지 않겠냐는 기대감이 팽배했다.


<<대화의 신>>은 7개 그리고 1개, 총 8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대화의 기본 원칙부터 설명하고, 5가지 상황 별로 구분해서 어떤 식으로 대화를 이끌어 나가야 하는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8번째 장에서는 50년 이상 토크쇼를 이끌어 오면서 만났던 최고/최악의 게스트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독자가 어떤 점을 유의해야 하는지로 마무리하고 있다. 

흥미 가득한 채 책을 한장 한장 넘기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어디선가 봤던 내용들인 것이다. '말하기의 본질, 법칙이 결국 머릿 속 지식으로만 가능한게 아니기 때문이겠지...내가 이 내용들을 몰라서 그동안 말하기가 어려웠던 건 아니잖아'라고 생각하면서 계속 넘기다가, 그래도 이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 깨달았다.



래리킹이 최근에 펴낸 책이 아니라, 무려 20년 전 1994년에 나온 <<How to talkt to anyone, anytime, anywhere>> 의 번역본인 것이다. 대학 때 영어 공부를 하다보면 한번쯤 호기심에 사보게 되는 바로 그책이다. 집안 구석을 다 뒤져서 원서를 찾아냈다. 원서와 번역본을 비교하면서 읽어봤는데 거의 달라진게 없는 책이다. 20년전에 나온 책을 살며시 포장해서 시중에 등장시키다니. 그 사실을 알았다면 사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2001년에 나온 <<래리킹, 대화의 법칙>>과 같은 역자의 책인 것이다. 출판 업계에서 종종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는 들었지만, 솔직히 이건 실망을 넘어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재탕으로 나온 책임에도 불구하고 번역도 이상한 부분이 많다.  'Keep It Simple, Stupid'는 위대한 원설가들이 공동적으로 지킨 원칙이다. 이를 해석하지면 "단순하게 말하라고, 이 멍청아!"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192페이지에는 이를
"단순하게 그리고 머리 나쁜 사람도 알아듣게 하라"
라고 번역되어 있다. 1992년 빌 클린턴이 미 대통령에 당선될 때의 전설적인 캠페인 문구가 있다.
"It's the economy, stupid"는 당시 조지 부쉬와 로스 페로의 삽질에 맞서 
"(국민들이 원하는) 문제는 경제라고, 이 멍청아! "였지, "경제를 머리 나쁜 사람도 알아들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2001년에 나온 <<래리킹, 대화의 법칙>>에서는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모르지만, ",stupid"를 저런 식으로 해석한 것을 보니 할 말을 잃었다.



- 새롭게 포장된 -대화의 신이 말하는 비법이 궁금하다면 한번쯤 들춰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 또래 상당수가 그랬듯이) 웅변학원을 다닌다고, 스피치 학원을 다닌다고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 달라질 것은 전혀 없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 인생 살이 대부분이 그렇지만 - 일단 무조건 많이 해보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손에 들린 전화기를 내려놓고, 앞에 앉은 사람과 당장 대화를 시작해보라. 중요한 건 내가 말하는 것보다 상대방의 대화를 들어주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임을 잊지 말고, 나 자신을 보여주는 솔직함과 함께.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라고 이야기는 하지만, 이 책은 제공 받기 전에 개인적으로 이미 사서 보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쉬운 점이 더욱 가득한 책이다. 


p.s. 나는 똑같은 책을 여러권 가지고 있음에도, 왜 말하기는 여전히 두려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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