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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살아가는 힘 -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는 인생법
문요한 지음 / 더난출판사 / 2014년 4월
평점 :
오늘 하루 열심히 살았구나. 어제도 열심히 살았고, 아마 내일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내 삶은 왜…? 라는 생각이 들 때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물론 정말 남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사는 경우도 있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열심히 사는 것이 열정이나 목표가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관념 내지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뭔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스스로에게 위로와 위안을 주면서, 나아가 만에 있을지 모를 실패에 대한 사전 면죄부가 되기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은 이를 ‘소외된 능동성’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p.30). 행동은 존재하나 주체는 없기 때문이다.
‘소외된 능동성’이라니! 어제의 내 삶, 오늘의 내 삶, 그리고 아마도 내일의 내 삶을 묘사하는데 이보다 적확한 표현은 없을 것 같다. 저자 문요한 씨는 심리 훈련 전문가이지 정신과 전문의로서 닦아온 메스를 이처럼 폐부에 단도직입적으로 들이대고 있다.
저자의 전작 <굿바이 게으름>이 30만부 이상 팔리면서 큰 인기를 끌었던 모양이다. 안타깝게도 책 이름이나 혹은 저자의 이름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렇고 그런 ‘멘탈 힐링’을 빙자한 뻔한 책이 한 권 더 늘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고 또 넘길수록 초기의 부정적인 생각은 사라지게 되었다. 너무나 식상한 표현이지만 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나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새삼 되새겨보면서, 진정한 자율성을 찾기 위해 ‘나’를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책의 장점 중 하나는, 거창한 심리학적이나 정신분석학적 이야기가 아니라 자잘한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는 점이다. 책의 큰 주제인 자율성 그리고 능동성에 관해서 정신과 의사로서 본인의 상담 사례를 적절히 섞어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 ‘나’ 말고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 저자는 결정 장애와 관련하여 재미 있는 이야기를 한다. 애초에 후회 없는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는데 ‘무결점의 결정’을 내리기 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면서, 오히려 그렇기에 결정을 못하거나 주객전도의 상황에 빠지곤 한다는 것이다. 추억을 잘 담기 위한 카메라를 고르던 사람이 가격비교 사이트 등에서 수 많은 기종과 다양한 가격대라는 선택지를 마주하면서 어느새 본질과 목적은 상실해버리고 단지 조금이라도 좋은 제품을 싸게 사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된 사람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가격이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왜,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인가가 핵심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면서 비판하고 있다.
다만 이 책의 단점은 사례가 지나치게 많이 언급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장점이긴 하지만 동시에 단점이기도 한 것이다. 왜냐하면, 저자가 인용하는 사례의 상당수가 해외의 논문과 연구 결과에서 가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과 의사로서의 전문성을 살리면서 생생한 목소리를 담으려는 것은 좋으나, 대한민국 3040의 현실에서 벗어난 이야기거나 혹은 지나치게 원론적이고 아카데믹한 이야기를 읽고 있다 보면 생생한 장점조차 희석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또 하나 이 책의 아쉬운 점은, 정확한 독자가 누구이며 자율성을 회복하는 대상이 누군지에 대해서 다소 불명확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반적으로는 삶의 주도권을 잃어버린 3040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 듯하나, 한편으로는 3040 본인이 아니라 부모로서의 3040을 이야기하면서 그들 자녀의 자율성을 논하는 지점에 이르게 되면 이 책의 목적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혼란스럽게 느껴지곤 한다.
일부 아쉬운 점은 있지만, 챕터 말미에 다양한 워크북이 포함되어 있어 나 자신을 돌이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순탄한 삶을 살아오던 사람들 중 대다수가 어느 순간에는 비포장도로에서 길을 헤매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다시 평탄한 길로 접어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평탄한 길은 다시는 오지 않을 수도 있음을 깨닫고 그 대신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잡으면서 울퉁불퉁한 비탈길에서도 ‘이 차의 주인은 나다. 운전은 내가 한다’라는 마음을 잃지 않는 마음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사람마다 시기는 다르지만 대개 스무 살을 넘으면 인생은 방향 표시도 제대로 없는 비포장도로에 접어든다. 누구나 아찔한 어지럼증에 시달리기 쉽다. 그러한 인생에 가장 좋은 멀미약은 포장도로를 찾기보다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잡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