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확실한 결말, 범인이 밝혀질 때의 통쾌함 같은 걸 원하는 분들은 책을 덮으시라. 이 책은 정말로 도망자의 이야기이다. 윌 스미스가 나오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와 비견할 만하달까. 아니 그렇지 않다. 국가와 싸우지만 이 도망자는 윌 스미스처럼 전직 첩보요원 같은 동료도 만나지 못하고 심지어 누가 자신을 죽이려 하는지조차 알아내지 못한다. 원인은 그저 미궁 속에 빠질 뿐이다. 몇 십년의 세월을 넘나들며 모자이크처럼사건을 재구성하지만 그렇다해도 전지적 작가시점은 아니다. 왜냐하면 범인의 시점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나오는 화자는(3인칭이긴 하지만) 모두다 우연히 휘말린 사람들, 밖에서 구경만 하던 사람들밖에 없다. 그로 인해 마지막까지도 우리는 출구가 없는 미로에 갇혀 빙빙 돌고 있는 것 같은 갑갑함을 느끼게 된다. 이사카 고타로의 이야기는 언제나 그랬다. 호쾌하고 흥미진진한 그의 묘사 뒤에는, 언제나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는 복잡한 세계가 숨어 있었다. 나치시대 독일에서나 나타날 것 같은 악의 평범성, 정체를 파헤칠 수 없는 거대한 권력집단... 국가가 (어떤 이유에서든지) 한 개인을 적으로 몰아붙인다면 그 개인은 얼마나 무력할 수밖에 없는가가 단순한 탈주극 같은 스토리 속에 절절히 묻어난다. 똑같이 국가에 의해, 권력 집단에 의해 누명을 썼지만 골든 슬럼버의 주인공은 에너미오브스테이트처럼 멋있게 음모를 파헤쳐 누명을 벗어나지 못한다. 고래와 마주치면 그저 미친듯이 도망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는 것, 승리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다는 것이 유쾌하기까지한 문체 속에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패배주의적인 작품은 아니다. '살아남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거대한 재해-개인을 짓밟아 자기 뜻대로 조종하려고 하는 세력의 의도를 일그러뜨리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문체가 경쾌하여 시니컬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축축 처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평범하고 작은 사람들의 작은 용기가 거대한 세력의 공포와 마찬가지로 뚜렷하게 나타나 있기 때문에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음 마치... 그래 말하자면 재해물 같다. 인간이라는 이름의 재해지만, 어쨌거나 인간이 이겨내거나 해결할 수는 없는, 그저 살아남으면 다행인 그런 재해. 단테스 피크나 볼케이노에서는 화산을 막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피해를 줄이고 살아남는 것이 목표가 아닌가. 겨우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그 극복기에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않나... 골든슬럼버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이란 것은 그런 것인 모양이다. 스릴러나 추리물을 기대하면 실망할 수밖에 없는 건 역시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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