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적초 - 비둘기피리꽃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재밌었다. 전반적으로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나 큰 상실감을 맞게 된 사람들이 그것을 정리해가는 과정을 담은 단편집이었기 때문에 시기적절하달까, 내가 흔들리기에 좋았달까. 가장 마음에 든 건 첫번째인,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는 여자 이야기. 슬픔과 상실감을 차곡차곡 정리해가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추억이 없는 이 여자는 할머니의 죽음으로 공허한 와중에 부모님의 죽음을 둘러싼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기시작한다. 이겨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빈 마음에는 역시 자기부정밖에 남지 않는 법인지 여자가 부정적인 결론으로 나아가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깨어지고 다시 누군가의 도움, 자기 자신의 도움으로 회복하는 이야기. 죽음으로 흔들려 버린 일상을 차곡차곡 복구해나가는 이야기랄까. 초능력이라는 것은 그저 감초고, 사실은 그런 이야기였다는 느낌이다. 이 여자는 죽어가는 장면의 기억을 되살려냄으로써 자신을 용서하고 상실감을 극복해서 살아갈 결심을 하게 되긴 했지만 실제로 죽은자는 말이 없는 법이라, 그에게 용서를 하든/구하든 대답을 들을 수 없고, 날 사랑했냐고 당신은 행복했냐고 묻고싶어도 물을 수 없고, 게다가 오래 아프다 죽기라도 하면 괴롭고 힘든 모습만 뇌리에 남아서 추억을 되새기고 싶어도 쉽게 되지가 않는다. 슬픈 일이다. 난 이여자 같은 초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니 별 수 없다. 그냥 사랑했다고 행복했다고 믿으면서, 한순간 한순간의 미소와 포옹과 온기를 기억하면서 그것을 힘으로 삼아서 내일을 사는 수밖에. 크로스 파이어의 원형이라는 단편은 오히려 파이로키네시스가 나오지 않았어도 상관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로스 파이어 자체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여기서의 여자에는 감정이입을 할 수 없고, 정말로 '인간이 아니다'라는 인식밖에 들지 않으니까. 좀 내용이 붕 떠있다는 느낌을 받긴 했지만 여기서도 상당히 이미지가 명료하게 박혔달까 그런 장면이 하나 있다. 지금은 살해당하고 없는 여동생이 처음 걸음마를 떼어서, 복도 벽을 잡고 아장아장 걷다가 현관 턱에서 고꾸라질 때 화자가 뛰어가 끌어안고 자신이 대신 뒤통수를 부댔다던 구절. 어제 조카를 안아 드는 데 그 장면이 번뜩 떠올랐다. 작고 따스한 것. 언제까지고 보호해줄 수만은 없는 것. 보통이라면 안타깝고 아쉬워도 한 사람의 어른이 된 것에 감사하며 행복해하며 친구처럼 지내며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그 장면 때문에 남자의 상실감, 그리고 그것을 대치하듯 자라났을 분노가 극대화되어 다가왔다. 자신이 장전된 총이라고 마음대로 사용하라고 -자기 자신이 없는 것 마냥 말하던 그녀는 감정이 없는듯 공허하기만 하고. 장편화된 것을 알고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그냥 프롤로그처럼만 보일 뿐이다. 구적초는 조금 심심했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가졌다고 해서 그 능력이 없으면 형사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여자는, 아마도 내 취향이 아니었나보다. 자존감 없는 여자가 둘이나 주인공(?)이라니. 왼쪽 머리가 둔중하게 느껴지는 건 초능력이 빠져나가서가 아니라 진짜 뇌경색일 수도 있으니까-뇌경색때문에 초능력을 못 쓰게 된 걸지, 또 누가 아나! 병원에 일단 가보고 모든 수단을 써본 뒤에 포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텐데 라고 보는 내내 생각했다. 집중이 안되었달까. 그리고 마지막은 걍 커플이 되는 얘기였어. 그래서 더 열받아(응?). 내가 미야베 미유키를 좋아하긴 하지만 이런 주인공이 싫은 건 어쩔 수 없으니까 별 하나 빼고 별 네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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