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전 한 잔 밀리언셀러 클럽 4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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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밀리언셀러클럽에서 데니스 루헤인 켄지와 제나로 시리즈 1편을 내주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가에서 쉽게 눈에 띄었다.

가라 아이야 가라, 비를 바라는 기도를 읽었을 때도 느끼는 거지만 이 시리즈는 참 헐리웃 스릴러 같다. 사회의 어두운 면, 부조리함에 대한 숙명론적인-이건 주인공의 독백에서도 나오는 말이다- 인식, 그 회색 사회에서 유난히 컬러풀하게 두드러지는 캐릭터들을 보자면 말이다. 죽을 위기에서도 농담을 쉬지 못하는 마초 탐정과 그의 아리따운 미녀 파트너, 듬직하다 못해 무섭기까지한 지원군까지... 그가 그려내는 인간들은 어딘가 영화속에서 훌쩍 뛰어나온 듯한 캐릭터들은 이 소설을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주는 일등공신이지만, 한편으로는 어딘가 가볍다는 생각을 잊지 못하게 한다.

피해자들-혹은 가해자가 되기도 하지만 종국적으로는 악의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소극적이며 피동적으로 그려져서 그들은 피해를 당하기 위해 이세상에 태어난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것은 주인공 1인칭 시점으로 그려져서 그런 면도 있다. 그러나 한껏 부딪혀 깨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보니 휩쓸리고만 가련한 사람들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잘 동감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러니까 캐릭터가 나쁜놈-약한놈-착한놈으로 너무 확실하게 구분되는 느낌이랄까.. 사회에 만연한, 생활화된 부조리에서 비롯된 극단적인 비극 내에서, 캐릭터들의 갈등이 나에게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1인칭 시점 때문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여기의 캐릭터는 고통과 갈등으로 변화하는 면이 없다. 주인공들은 어차피 처음부터 강했고 거칠었다. 악당은 그냥 악당이었고 피해자는 그냥 피해자였고.. 그래 부바는 그냥 부바고 리치는 그냥 리치지. 앤지가 결국 필을 차버렸지만, 글쎄. 앤지는 강인한 여자였잖아. 처음부터. 마치 유예기간을 주고 있는 것처럼 보일정도로.

사람은 원래 쉽게 변할 수 없는 법이지만 말이야. 스토리 상으로는 확실히 기승전결이 있는데, 캐릭터 시점에서 보자면 그냥 일직선인 것 같아 보인달까. 그래 이해할 수 없게 뜬금없이 변해버리는 캐릭터도 웃기긴 하지만, 시리즈물의 첫편이고 캐릭터 극이니 일관성 있는 캐릭터가 중요하기도 하겠지만, 그렇다면 이 편에만 나오는 캐릭터에게라도 변화할 기회를 주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 그런 점에서 이전 편들에 비해 마음에 든 점이 하나 있다. 롤랜드. 그는 아직 변화하지는 않았지만 곧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증오와 악의에 몸과 마음을 내던지기 전에, 이번 일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겠지.

나는 미야베 미유키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그녀는 범죄를 그리면서, 범죄 자체보다는 범죄로 인해 변해가는, 변해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것에 탁월하다. 만약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다른 무엇보다 그런 시각이 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범죄가 사회에 문제인 이유는, 그것이 사람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시키기 때문일 테니까.

ps. 그렇다고 이 책이 재미 없었다는 건 아니다. 재미 있었기에 리뷰가 이렇게 길어지는 거고 시리즈 나오는 족족 찾아 읽고 있는 것이다. 변화하지 않는, 비현실적인 만큼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산재해 있고, 사건은 흥미롭게 진행되는 데다가, 날카롭게 다듬어진 글 또한 눈길을 끌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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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사냥꾼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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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 대한 로망이 있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미야베 미유키식 선물... 이랄까. 그렇게 매혹적이거나 심장을 울리는 이야기도 아니고 추리물로 읽기는 그다지 별로지만... 미야베 미유키식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볼 만 할 듯. 정작 여기에 오마주된 책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너무 심심할지도?

역시 미야베 미유키는 할아버지와 소년에 대해 너무 잘 그려낸다. 현재를 일궈온 지난 세대의 대표로서 할아버지가 있고 그 현재의 문제들을 바꾸고 변화시킬 미래 세대의 대표로서 손자가 나오는 느낌. 그 감성들이 마음에 와닿는달까. 그런 할아버지 같은 시각이나 감수성에 질려서 떠나가버린 사람들도 많지만 세상의 수많은 인간군상을 할아버지와 같은 시선으로 관조하는 그녀의 그 감수성이 아마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이미 세상의 쓴 맛 단 맛 다 보고, 무슨 일이 있어도 놀랍지 않을 나이가 된 사람이 보는 세계는 쓸쓸하고 안타까워 보인다. 어른들의 '요즘 것들은...'하면서 혀를 차는 그 때의 그 느낌이랄까. 그러나 무관심이나 경멸이나 무책임에서 비롯된다기보다는 결국은 세계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느낌의 말투다. 요즘 간간히 보는 콜드케이스 같은 느낌이랄까.


이렇게 뭉뚱그린 감상을 하는 이유는 사실 읽은지 오래되어 세세한 내용이 기억나지 않기 때문.. 이기도 하고 각각의 에피소드가 실제로 그렇게 강렬한 느낌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야베 미유키치고도 평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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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탐정은 환영받지 못한다 밀리언셀러 클럽 73
P.D. 제임스 지음, 이옥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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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집었는데 생각보다 재밌었다. 원제는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 어디서 많이 들어본 제목이다. 사쿠라바 가즈키의 소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 떠오르지 않는가? 내용은 정반대의 대상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지만. 떠돌이 아버지 때문에 명석한 두뇌에도 불구하고 대학조차 나오지 못한 코딜리아(아 도대체 누가 딸내미 이름을 이런 이름으로 짓는 건지)는 스승이자 대부와 같은 존재인-도대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버니의 죽음으로 얼떨결에 탐정사무소를 물려받는다. 애초에 탐정 면허도 총기소지증도 없는, 뭣도 없는 그냥 이십대 여자애다. 그렇지만 그녀는 다들 '여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의 어두움과, 편견과 맞서 싸우는 길을 택하고 만다. 따스한 낮의 정취, 소박한 오두막, 케임브릿지에서의 뱃놀이 따위와 폭풍우 치는 밤 고저택에서 벌어지는 참극, 한밤중 낡은 오두막에 목이 매달린 베개인형, 폭발로 이어지는 추격전, 이끼 낀 낡은 우물이 서로 교차하듯이 나타난다. 빛과 어둠의 대비가 오히려 밝음 이면에 숨어 있는 부조리를 더 깊고 음습한 것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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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으로 향하다 - 리암 니슨 주연 영화 [툼스톤]의 원작 소설 밀리언셀러 클럽 97
로렌스 블록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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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승리의 로렌스 블록!

역시 재미있다. 하드보일드 소설다움이 철철 넘친달까. 매튜는 그래도 지난번 사건 때보다 좀더 안정적으로 술을 참아내고 있고, 연애도 순조롭게 진행중이다. 그저 하는 일이 좀 정신을 갉아먹는 종류일 뿐이다. 좀이 아니라 많이인가. 800만가지 죽는 방법이 기억이 안 나서 저번 편에 무슨 짓을 했길래 절친은 아일랜드에 짱박혀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람. 게다가 캐넌, 마약 도매상 주제에 선량한 척하기는. 아니 선량하진 않다. 음 뭐랄까 뭐라고 해야 하지. 만화속 인물처럼 '깨끗하고 쿨하고 멋진' 그런 느낌이어서 조금 거부감이 들었다. 그렇게 '쿨'할 수 있는 직업인가 그게? 일레인도 그렇고 유리도 그렇고 여기에 나온 사람들은 너무 '멋'이 있다. 알콜중독에 마약중독인 피터 마저. 아니 원래 이 장르가 이렇게 괜히-괜히는 아닌가?- 바닥 파면서도 쿨한척 멋있는 척 하는 게 좀 있기 마련이겠지만.

사실 로렌스 블록의 글은 그런 부분이 장점이기도 하다. 매튜 스카더를 비롯해 그가 만나는 캐릭터들은 하나 같이 매력있고 재밌다. 여기저기 발로 뛰면서 수사하는 모습을 쫓다가 매튜에 앞서서 단서를 발견하게 되었을 때는 흥분되기도 한다. 그런데 여전히 모뎀에 삐삐, 수신자표시기능도 없는 뉴욕의 모습에 orz 겨우 누가 전화했는지 알아내는 것만으로 최첨단처럼 굴지마! 버럭. 하고 싶은 순간도 분명 있었지.

또 신경쓰이는 점을 들자면, 캐넌이라는 캐릭터. 앞에서 말했듯이 마약 도매상 주제에 쿨하고 멋지고 상냥하기까지 한데 '적'에 대해서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거의 광기 같은-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할 거 같던데 그렇게 할 정도의 증오를 잘만 품고 있다. 그런 증오를 가지면 사람은 망가지기 마련인데도 그는 망가지지 않는다. 그것이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증오는 사람을 갉아먹기 마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고통에 겨워하다가 복수를 하고선 훌쩍, 토고로 가서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그의 이야기가 어딘가 비현실적으로 들린 것이다. 게다가 형은...

분명 재미있게 읽기는 했는데 캐릭터들이 하나씩 어긋나 있달까. 뭔가 이치에 안 맞는 것 같달까. 자꾸만 찜찜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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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방관자의 심리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이성현 옮김 / 노마드북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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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신검시관은 그래도 구질구질한 인생 가운데에서 소주 한잔 걸치면서 따스하게 보듬어주는 선배 아저씨~ 같은 느낌이 났는데 이 살인방관자의 심리는 뭐랄까... 진짜 구질구질해서 도저히 봐줄 수 없는 인생들이 나온다. 제목이 말해주는 것처럼 살인을 저지르려 해서 저지르는 게 아니라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 조금씩 일그러지고 구질구질해져 가는 모습이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다. 정리해고 당하고 가족에게 아무 말못하다가 강도로 돌변한 사내, 착한 줄만 알았던 죽은 아들의 어두운 과거, 지옥의 합숙훈련 도중 친구가 죽자 훈련이 중단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마는 현실, 가진 돈 다 털어 출마한 면장 선거에 자꾸만 떠오르는 과거의 뺑소니 사건, 모두다 일어날법한 일이며 나조차도, 난 그렇게 되지 않을거야! 라고 단언할 수 없는 그런 죄의식과 강박관념의 감옥들이 그려져있다. 읽으면 수렁에 빠져드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아니 내가 인생이라는 수렁에 이미 빠져들어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 인생이란 건 구질구질한 수렁같은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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