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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삼촌 브루스 리 2
천명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2월
평점 :
그녀가 가진 최고의 미덕은 무엇보다도 생에 대한 의심없는 열정과 자신이 인생에 대해 쏟아붓는 노력만큼 반드시 보상을 받겠다는 확고한 의지였다. 그것은 이미 늙기도 전에 죄의식과 무기력으로 시들어가고 있는 나의 삶에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한편, 내 병든 영혼을 생의 이편으로 강력하게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그것을 나는 신촌 뒷골목의 어느 모텔방에서 깍쟁이처럼 군살하나 없이 매끄러운 그녀의 몸을 더듬는 동안 선연하게 깨달았다. 그리고 나의 본능 또한 이미 오래전부터 그것을 간절하게 원하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나는 내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우울과 무기력을 내 몸 바깥으로 조금씩 밀어내고 있었다.
현대인의 삶에는 어느정도 비극적인 요소가 내재해 있습니다. 그래서 지하철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직장인의 피곤한 얼굴에서, 술집에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격양된 어조로 떠드는 중년사내들의 모습에서, 그리고 무거운 가방을 메고 터덜터덜 횡단보도를 건너는 어린 여학생의 발걸음에서 슬픔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더 이상 구원을 꿈꾸기가 어려워졌기 떄문입니다. 믿음은 무너졌고 성공은 아득해 보이기만 합니다. 생활은 점점 더 편리해지느데도 사람들은 더 외로워지는 걸까요? 그래서인지 세상엔 인생의 긍정적인 측면에 대해 강조하는 책들이 차고도 넘칩니다. 한편에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말하고 다른 한편에선 물질문명에 반한 정신적인 가치를 강조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여전히 화려한 영웅담과 고난을 극복한 인간승리극에 열광합니다. 또한 해피엔딩이 예고된 달콤한 로맨스와 성공의 비결이 담긴 유명인사들의 자서전을 읽습니다. 그서은 매우 당연한 일입니다. 모두가 그런 멋진 인생을 꿈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소설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왜 소설을 읽는 걸까요?
나는 소설이 기본적으로 실패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이루지 못한 사랑에대한 이야기이며 부서진 꿈과 좌절된 욕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중략> 어떤 의미에서 모든 소설은 결국 실패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실패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 호지 않은 이들, 아직도 부자가 될 희망에 들떠 있는 이들은 소설을 읽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누군가는 그 구원 없는 실패담을 읽는 걸까요? 그것은 불행을 즐기는 변태적인 가학취미일까요? 아니면 그래도 자신의 인생이 살 만하다는 위안을 얻기 위해서일까요? 나는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이유가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속에 구원의 길이 보이든 안 보이든 말입니다. 만일 손에 들고 있는 책이 좋은 소설이라면 독자들은 책을 읽는 동안 불행에 빠진 사람이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 불행과 실패 속에서도 여전히 구원을 꿈꾸며 꾸역꾸역 살아가는 사람이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될 것입니다.<중략>
소설을 읽는 동안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도 별 상관이 없습니다. 잠시 키득거리거나 주인공에 대한 연민으로 눈물짓거나 또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빠져 우울증 약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깜빡 잊거나, 다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그것이 커다란 행복을 가져다주진 못하더라도, 그리고 구원의 길을 보여주진 못하더라도 자신의 불행이 단지 부당하고 외롭기만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래서 자신의 불행에 대해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