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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나의 삼촌 브루스 리 ㅣ 나의 삼촌 브루스 리 1
천명관 지음 / 예담 / 2012년 2월
평점 :
아무런 야심도 없이 서울 땅을 밟은 촌놈이 누가 있을까? 그들은 모두 중원을 평정하고 금의환향을 꿈꾸었지만 주연을 고사하고 조연은 커녕 단역도 아닌 엑스트라로 전락한 처지를 깨닫곤 다들 조금씩 더 독해졌을 것이다. 형을 움직인 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니었다. 그를 움직인 것은 콤플렉스였다. 그리고 교과서에는 안 나오는 혼돈과 외로움이었다.
그날의 사건은 원정이 꿈속이 아닌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현실 속에선 아무런 상상도 할 수 없어 삼촌은 차라리 원정에 대해 온갖 상상을 하며 혼자 행복해하던 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속에선 으스러져라 그녀의 허리를 껴안고 냄새라도 맡아볼 수 있었지만 현실에서 그것은 범죄가 되었다. 또한 현실에선 갈고리가 존재하지도 않았고 삼촌의 영춘권도 아무 쓸모가 없었다. 자신이 상상하던 그 모든 것들이 꿈에서 깨는 순간 얼마나 터무니없고 허망한 것이었는지!
품에 안을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그녀는 스크린 속에서 맨살을 드러낸 채 한껏 교태를 부렸다. 하지만 삼촌은 그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어 그녀의 몸짓은 공허하게 느껴졌고 지어낸 듯 더빙을 한 성우의 목소리는 마음을 더욱 씁쓸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