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세스지 지음, 전선영 옮김 / 반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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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작가인 세스지가 일본의 소설 창작 사이트에 석 달간 올렸던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와 관련된 괴담들’의 게시글을 편집하여 출간한 작품입니다. 긴키 지방은 일본 혼슈 서부 지역을 광범위하게 일컫는 지역명으로, ‘수도에서 가까운 지역’을 의미하며, 교토가 수도였던 시절의 지명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우리 나라로 치면, ‘경인 지역’인 셈이죠.



소설의 서두는 친구가 실종되어 재보를 받고 있다는 호소로 시작됩니다. 작품의 중심은 1에서 4의 넘버링으로 이어지는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글들인데, 자신을 본서의 작가와 동일한 ‘세스지’라고 칭하는 화자와 호러 잡지의 의욕적인 신참 편집자가 되어 소속 회사가 과거에 다루었던 긴키 지방 괴담을 파헤치다 실종된 ‘오자와’군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 중심글 사이에 이 잡지의 단편, 독자 투고글 및 편지, 인터뷰 녹취, 인터넷 정보 수집글, 심령 전문 인플루언서의 심령스팟 탐사 스레 등이 무작위로 배치되는데, 그 내용도 하교 길에 행방불명된 소녀, 수련회에 참가한 학생들이 숙소 베란다에서 보이는 산속에서 정체불명의 생명체의 목격담, 유명 심령 스팟인 터널에 들어가 라이브 방송을 하던 인플루언서의 돌변, 호기심에 찾아간 심령 스팟에서 목격한 얼굴만 내밀고 무슨 말을 지껄이던 남자가 자신의 일상에서 계속 목격되자 패닉에 빠져 버린 대학생, 입지 찢어질 만큼 활짝 웃으며 2층까지 점프하는 여자, ‘기다리는 거야’라고 말하며 항상 아파트 베란다에 앉아 있던 모친이 윗층의 자살자가 끔찍하게 추락한 장면을 ‘생글생글 온화하게’ 웃으며 지켜보던 어머니, 크고 흰, 사람처럼 생긴 동물과 같은 존재를 산에서 목격한 아이, 신자의 자살이 잇따르고 있다는 ‘스피리추얼 스페이스’라는 교단의 소문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한 편집자의 잠입 취재기 등으로 가지각색입니다. 그러나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 괴담들이 모두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일들’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며, 독자는 화자의 친구가 실종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제가 인상 깊게 느꼈던 점은, 분명 소설임을 알고 읽기 시작했음에도 점차 느끼게 되는 사실감이었습니다. 언뜻 보기에 흔한 인터넷 괴담 정도 수준의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작가인 세스지가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와의 연관성을 집요하게 강조하며 점차 현실성을 획득하게 됩니다. 여러 지역에 걸쳐 있는 엄청나게 넓은 공간에서 ‘있을법한 유사한’ 사건이 계속 벌어지니 독자들은 이를 ‘그럴 듯’하다고 인지하게 되는 것인데, 감정을 자극하고 단순화되고 반복적이며 99%의 거짓에 1%의 진실만을 담은 괴벨스의 선동에 나치 독일 치하의 국민들이 넘어갔던 것과 유사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획득한 리얼리티는 정체가 불분명한 화자와 친구의 실종의 미스터리와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게 되며, 마침내 목도하게 되는 이 모든 것의 근원에 독자는 진실로 공포감을 느끼게 됩니다.



반전이라 할 수 있는 마지막 부분의 화자의 독자를 향한 고해는 이 공포감의 마지막에 도돌이표를 추가하게 됩니다. 결국 처음으로 돌아가 괴담을 다시 읽게 되며 느끼게 되는 소름은, 나도 소설 속 에피소드에 등장한 희생자들처럼 끔찍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자포자기의 심정이 발로인 것입니다. 웰메이드 모큐멘터리 호러 소설,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관하여’를 읽고 다같이 저주에 빠져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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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츠와프의 쥐들 : 카오스 브로츠와프의 쥐들
로베르트 J. 슈미트 지음, 정보라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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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워치츠카 간호사와 어떤 의사, 경사가 봐도 누군지 알 수 없었던 세 번째 사람이 맨손으로 아그니에슈카의 배를 찢었다. 미엘레흐는 그들이 아그니에슈카의 뱀처럼 구불거리는 유리 같은 회분홍빛 내장을 손에 쥔 것을 보았고 창자에서 새어 나온 역겨운 가스 냄새를 맡았다. 미엘레흐는 굳어버린 듯 우뚝 선 채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의 악몽을 지켜볼 뿐이었다. 혼란이 그의 주위를 지배했다. 공포에 질린 환자들이 가시철망에 다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임시 울타리로 몰려들었다. 도망치려 하는 와중에 서로 짓밟았다. 도살의 장면에서 어떻게든 멀리 떨어지려 몸부림쳤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으로 짐작해 보건대 다른 임시 건물들에서도 똑같이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p.23)

그는 죽어가는 경관에게서 불에 덴 듯 펼쩍 떨어져 나갔다. 오른손에 여전히 권총을 쥐고 있다는 사실을 아랑곳하지 않고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 학살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은 부상자를 자신이 죽인 것이다. 그것도 부하를. 동료 경관을. 그는 입술을 꽉 깨물고 카롤 크워스가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등대지기’의 몸에 마지막 경련이 지나갔을 때 그는 도망쳤다. 아무것도 돌아보지 않고 곧바로 정문을 향해 뛰었다. (p.102)

…위협이 되는 군경은 예외 없이 저 오른쪽에 있는 작은 천막으로 보내집니다. 거기서 모두 ‘예방주사’를 맞지요. 그 덕분에 그룬발트 광장까지 가는 구급차 안에서 조용히 잠들 수 있고, 광장에 도착하면 즉시 아래로 내려가서 가솔린 범벅이 되어 횃불처럼 활활 타오르는 거요. 그 소년을 내가 비인간적으로 대했다고 생각한다면, 이 도시의 미래를 위해서 내 부하들이 겪어야 하는 희생을 생각해 보시오. 그 애가 죽어야 다른 애들 천 명이 살아남을 수 있소. 알아듣겠소?” (p.348)

‘아포칼립스’는 기독교적 종말의 이미지로 대표되는 요한묵시록의 영어명인데, 장르 문학에서는 인류 멸망의 상황을 다룬 하위 장르를 뜻합니다. 아포칼립스 장르에서도 ‘좀비 아포칼립스’는 대중문화에서 꾸준히 등장하는, 인기 만점 카테고리입니다. 아포칼립스의 다른 하위 장르와 달리 그 멸망의 원인이 한때 인간이었던 것들이라는 점에서 비롯되는 무력감과 비애, 인간의 형상을 한 순수할 정도로 극단적인 폭력성을 보유한 좀비에게 가해지는 잔혹한 폭력, 좀비의 확산 하에서의 혼돈의 군상극 등이 이 장르의 인기의 원인일 것입니다. 하나가 둘로, 다시 넷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좀비의 확산 속도와의 제로섬 게임을 해야하는 인류 세력의 절망은 독자에게 깊은 페이소스를 자아냅니다. 물론 좀비와의 격렬한 전투 그 자체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즐기는 독자도 있을 것이구요.

오늘 소개할 ‘브로츠와프의 쥐들’은 ‘좀비물’의 페이소스와 카타르시스 모두를 경험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폴란드 출신의 작가는 자신이 살았던 브로츠와프의 1960년대에 있었던 실화에서 영감을 얻어 이를 ‘공산주의 좀비 아포칼립스 장르문학’으로 탄생시켰습니다. 냉전 시대 공산주의 소련이 지배하는 1963년 폴란드의 브로츠와프, 출혈성 천연두의 대유행으로 봉쇄된 도시에서 환자들이 돌변합니다. 그들은 이성을 잃은 듯 보이고, 어떠한 고통도 느끼지 못하며, 인간을 학살하고 문자 그대로 ‘인간을 잡아먹는 좀비’로 변하게 된 것이죠. 좀비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출몰하며 사람들을 찢어발기고, 죽은 이들은 곧바로 좀비로 변하며 좀비의 세력은 들불처럼 순식간에 번지며 폐쇄적인 브로츠와프를 아비규환의 도시로 만듭니다. 경찰과 군인은 동료와 부하를 잃어가면서도 좀비를 막기 위해 분투하고, 간호학교 교장과 학생들, 가게 주인, 한 가족의 가장 등 평범한 이들이 좀비의 공격에서 가까스로 탈출하거나 희생되는 와중에 지도자들과 군부는 사건을 은폐하고 자신들의 잇속만을 챙깁니다. 그러나 좀비는 사람을 가려가며 물어뜯지 않으매,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권력자는 일반 시민들과 함께 무차별적인 죽음을 맞게 됩니다.

‘브로츠와프의 쥐들’는 분단위로 잘게 쪼개져 진행되는 챕터는 마치 브로츠와프 조감도를 전지적 시점으로 실시간으로 보는 듯한 효과를 부여하여, 독자로 하여금 극한의 긴장감과 속도감을 부여합니다. 또한 폐쇄적 권위주의 탓에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도 모른 채 잔인하게 찢어발겨지는 사람들을 보며, 동시에 안타까움과 분노를 느끼게 되기도 하는 것이죠. 그러나 이 소설을 읽으며 느끼는 가장 궁극적인 감정은, 절망입니다. 결국, 브로츠와프 뿐 아니라 전 지구가 좀비 떼로 뒤덮일 것이라는 근원적 공포 말입니다. 자신의 종의 절멸, 이것보다 더한 절망이 있을까요?

부커상과 필립 K. 딕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권위있는 작가이자 슬라브문학 전문 번역가인 정보라의 기획과 번역으로 출간된 ‘브로츠와프의 쥐들:카오스’는 총 3부작중 1부작입니다. 부디 이 좋은 작품이 꼭 완결되기를 기원하며 조만간 이 책을 구매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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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몸으로
김초엽 외 지음, 김이삭 옮김 / 래빗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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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서평단에 선정되어 주관적으로, 그러나 진심을 담아 작성한 글입니다.

죽음의 반대말은 삶이 아니야. 죽음과 삶은 언제나 나란히 겉지. 가끔 뒤섞이면서. 서로의 의미가 되어주면서. 고통과 쾌락도 마찬가지야. 둘은 나란히 걷고, 뒤섞이고, 서로의 의미가 되지. 희열과 쾌락은 고통을 품고 있고, 고통 역시 그것들을 품기도 하고 불러오기도 해. 인간의 몸은 고통을 위해, 죽음을 원하기도 하고. 그건 다시 말하자면 인간은 본인의 의지로 자신을 파괴하고 싶어 해. 죽음의 순간과 형태, 그때 느낄 고통의 크기까지.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원하는 삶과 쾌락. (p.239., ‘철의 기록’)

기술의 발전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진 SF의 세상에서의 인간의 몸은 어떻게 될까요? 복구나 강화를 목적으로 임플란트로 교체하고, 노동은 로봇이 대신합니다. 노화를 정복하고 외모를 마음대로 바꾸거나, 마인드 업로딩으로 몸 전체를 바꿉니다. 환경 오염 또는 자의로 컴퓨터 속 데이터 세계로 이주하기도 합니다. 결국, SF 문학 속 인간의 몸은 더 이상 존중받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현실의 우리 또한 점차 이러한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과학과 의학, 기술의 발전을 통해 질병과 상해의 완치율은 100%를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인류는 높은 비율로 온라인 세상에 몰두하고 있고, 성형을 통해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에게, 우리에게, 몸은 더이상 중요한 대상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몸을 경시하는 이런 풍조는, 인간이 몸을 가지고 있는 한 근본적으로 잘못된 생각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디지털 세상에 빠져도, 현실의 나는 몸을 가지고 오프라인에서 활동하는 사회적 존재일 뿐이고, 아무리 성형을 통해 아름다워진다 해도, 나의 외모는 내가 인지할 수 밖에 없는 본래의 얼굴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몸으로 인한 여러 제약이 존재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제약으로 인해 우리는 자유를 갈망할 수 있게 됩니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고나 할까요. 애초에 정신적 존재로 타고나지 않는 이상, 우리는 몸을 소중히 여길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한국과 중국의 여섯 명의 여성 작가들이 몸을 주제로 SF 앤솔러지를 펴냈습니다. '잊혀져 가는 몸의 감각을 그리워하는 디지털 세계의 인류', '접촉을 통해 언어가 뒤섞이는 전염병의 창궐을 막으려는 이들', '아이를 구하려다 죽은 후 가게 된 곳에서 만난 다양하게 자신의 몸을 바꾼 사람들',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죽었던 생모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 '세상을 지배하게 된 AI가 인간의 감정을 빼앗은 이유', '타인과의 감각 공유가 가능한 임플란트를 뇌에 삽입한 사람들'. 연관성이 없어보이는 다양한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는 '살아 있음의 소중함'입니다. 인간은 감정을 통해 경이를 체험하며, 감정은 몸이 없다면 결코 온전히 누릴 수 없습니다. '몸의 소중함에 대한 찬가'인 셈이죠.

제가 가장 경이롭게 읽었던 작품은 '난꽃의 역사'입니다. 입양을 앞둔 어린 샤오즈의 할머니 '천메이란'이 주인공인 이 작품은, 이야기의 시작부터 거의 끝까지 초지일관 그녀의 '특이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성깔이 바다에 내리는 빗방울'같으며 이웃에게 '샤우자보(미친 여성)'으로 불리며, 내뱉는 불길한 말마다 모두 현실이 되어 그녀가 '까마귀 주둥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으며, 자신이 특정일에 죽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샤오즈의 입양자에게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하는 등 괴팍한 행동을 일삼았습니다. 작품의 마지막은 60여년 후의, 저명한 예술가이자 물리학자 '천위즈' 박사가 전시한 작품과 이에 연관된 과학 이론이 어떤 지원자로 인해 진실로 인정받았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되는데, 저는는 전혀 연관이 없어보이는 이 두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를 일순간 깨닫게 되고 커다란 경이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SF의 뻔한 주제를 이렇게 아름답게 만들어낼 수 있다니. 물론 다른 단편들도 여러분들을 경의 세상으로 이끌 충분한 자격이 있으니, 함께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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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비포 유 미 비포 유 (다산책방)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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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서평단에 선정되어 주관적으로, 그러나 진심을 담아 작성한 글입니다.

똑바로 누워 윌을 생각했다. 그의 분노와 슬픔을 생각했다. 윌의 어머니가 했던 말을 곱씹으며 생각했다. 내가 그의 마음에 닿을 수 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는 얘기. 눈발이 창밖에서 황금빛으로 날리던 그날 밤 ‘몰라홍키 송’을 듣고 웃음을 참으려 해쓰던 그를 생각했다. 따스한 살갗과 부드러운 머리카락, 그 손, 살아 있는 사람. 내가 꿈도 꿀 수 없을 만큼 똑똑하고 재미있는 사람. 아지도 스스로 목숨을 끊기보다는 훨씬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사람의 그 손을 생각했다. 그러다 결국 머리를 베개에 묻고 울었다. (p.193)

“혹시 이거 알아요?”
밤새도록 그 얼굴을 바라볼 수도 있었다. 눈가에 잔주름이 지는 특유의 웃음. 목이 어꺠로 이어지는 그 지점. “뭔데요?”
“가끔은 말이에요, 클라크. 이 세상에서 나로 하여금 아침에 눈을 뜨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다는 건 오로지 당신뿐이라는 거.” (p.412)

나는 생각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일을 했다. 몸을 기울여 그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갰다. 그는 짧은 순간 망설이는가 싶더니 키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모든 걸 잊었다. 수백만하고도 한 가지 더 댈 수 있을, 이래서는 안되는 이유를 내 모든 두려움,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 나는 그에게 키스했다. 그의 살냄새를 맡고 손가락 끝으로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흝었다. 그가 내게 키스하자 이 모든 것도 다 사라지고 그저 윌과 나만 남았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섬에 단둘이. 수천 개의 별이 빛나는 하늘 아래 이렇게 단둘이. (p.497).


고등교육까지는 받지 못한 카페 종업원, 남들은 독특하게 여기지만 본인은 확고한 패션 취향, 실직 위기에 처한 중년의 아버지와 타고난 머리에도 뜻하지 않게 아이를 낳고 키우게 된 동생, 병든 할아버지 등 대가족을 부양하는 의무를 가진, 나고 자란 영국 시골 마을을 평생 벗어나 본 적 없는 26살 여성,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조차 알 수가 없게 된, 그러나 언제나 친절하고 쾌활한 그녀의 이름은 루이자 클라크입니다.
그녀는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습니다. 바로 자신이 6년동안 일했던 마을 유일의 카페가 문을 닫는다는 것. 그녀는 곧바로 일자리를 찾아보지만 조그만 관광지 마을에서 이는 하늘의 별따기와도 같았죠.. 좌절하던 루이자에게 주어진 마지막 일자리는 전신마비 환자의 ‘임시 6개월 간병인’ 대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그녀는 높은 시급을 주는 이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공한 오만한 젊은 사업가, 온 세상을 여행하는 익스트림 스포츠맨, 매력적인 약혼녀와 상류층 친구들. 그러나 불의의 사고로 한순간에 자유를 뺏긴 남자. 평생을 휠체어에 갇혀 죽음만을 기다리는 사지마비 환자, 그의 이름은 윌 트레이너입니다.
원하는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던 사람이 식사조차 혼자서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가족과 달리, 윌은 이 고통을 끝내기만을 원합니다. 가족은 안락사를 결정한 윌을 겨우 설득해 6개월의 시간을 벌었습니다. 그래서 나타난 새로운 간병인, 그런데 그녀는 평범하지 않습니다. 형형색색의 우스꽝스러운 패션, 어색한 미소, 썰렁한 농담… 그는 곧 마무리될 자신의 인생을 스쳐 지나갈 뿐인 그녀를 무시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각자의 목표-한 사람은 돈, 다른 한 사람은 죽음-를 위한 여정 중에 어쩔 수 없이 동행하게 된 두 사람의 관계는 순탄할 수가 없습니다. 냉소와 비아냥으로 일관하는 그 앞에서는 아무리 성격이 좋은 루이자라도 참아내기 힘들고, 이미 죽기로 결심한 윌에게 임시 간병인인 그녀는 눈앞을 어른거리는 날파리와도 같이-하지만 손을 휘둘려 쫓아낼 수도 없는-어떠한 의미도 없는 것처럼 보였죠. 그러나 그들은, 당시의 자신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깊은 ‘트라우마’를 경험했다는 것. 루이자는 고단한 삶에서 비롯된 자기 결정권을 상실하며 사회적으로, 윌은 끔찍한 사고로 목 아래가 마비된 재활 불가능 환자가 되며 신체적으로 낙오했습니다. 그들은 서서히 서로가 비슷한 부류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견뎌내기 힘들었던 함께 하는 시간이 점점 즐거워지고 그렇게 그들은 점점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남은 시간은 6개월뿐. 루이자와 윌의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될까요?

예전에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를 보았었는데, ‘시한부 환자와 간병인의 우정과 사랑’이라는 스토리라인만 기억나고 그 둘의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책을 다 읽고 나서 왜 결말이 기억나지 않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로맨스 소설’답지 않은 의외의 엔딩이었기 때문이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미 비포 유’를 전형적인 로맨스 소설로 평가 절하하는 사람들은 이 반전의 결말을 두고 ‘평범함’의 범주에서 벗어나기 위한 얄팍한 장치라 비판하지만, 저는 다르게 이야기하렵니다. 루이자와 윌이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했기에 서로에게 할 수 있는 것을 했을 뿐이라구요. 그들은 트라우마로 상실했던 자기결정권을 각자에게 진심을 담아 선물했고, 기쁘게 받았습니다. 소설은 두 사람이 내린 결론에 대해 독자에게 이해를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로맨스 소설의 기본 공식을 모범적으로 구사하며 세심하게 배려합니다. 소설이 일종의 열린 결말로 마무리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미래를 응원하고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기회가 된다면 나머지 시리즈도 꼭 읽어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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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지음, 야나 렌조바 그림, 이한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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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서평단에 선정되어 주관적으로, 그러나 진심을 담아 작성한 글입니다.

'능동적 원인'이야말로 유전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자연선택을 통한 진하가 일어나려면 반드시 그래야 한다. 그리고 유전자가 생물에게 쓰 이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가 생물을 이용한다. 유전자는 생물을 임시 탈것으로 이용 이용하며, 미래 세대로 옮겨가는 수단으로 삼는다. 이는 사소한 견해 차이, 결코 단순한 단어 게임이 아니다. 근본적인 차이다. 중요한 문제다' (p.244)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및 동물행동학자, 유명 과학저술가, 유전자(gene)과 같이 세대를 이어 전해지는 문화/사회적 단위 ‘밈(Meme)’의 창시자, 진화론의 기수, 신다윈주의의 선봉장, 다윈의 롯트와일러(투견), 창조론자의 재앙, 전투적 무신론/회의론자…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자 중 한명인 리처드 도킨스의 이 많은 수식어 중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다윈의 롯트와일러(투견)’입니다.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어언 200여년, 교황청조차 인정한 진화론과 아직도 기싸움 중인 창조론자들을 말 그대로 ‘흠씬 두들겨 패는’ 통쾌한 그의 글빨은 언제 봐도 유쾌/상쾌/통쾌하기 때문입니다. (‘만들어진 신’에서 이 기분을 더욱 만끽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창조론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원수인 존재인데, 막상 본인은 ‘자신은 공격적이지 않으며,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을 말하니까 대응할 수 없는 상대 입장에서는 짜증나는 것일 뿐’이라는 광역 도발을 했었죠. 심지어 그는 같은 진화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와도 진화에 대한 각론이 다르다는 이유로 평생 대립각을 세우며 그를 대차게 깠습니다. (물론 그들은 상호 발전적인 관계의 좋은 학계 동료이기도 했죠)

도킨스는 진화론의 영역에서도 매우 진보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학자입니다. 자연선택이 유전자 수준에서 작용하며, 진화는 거의 일정한 속도로 일어나고, 생명체가 획득하는 형질 대부분이 자연에 적응한 결과라는 것이죠. 최근에 주류 인터넷 ‘밈’으로 자리잡은 ‘유전자 만능론’과도 어느정도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는 무려 40년도 전에 생명체는 유전자의 탈것이며 자신의 유전자를 보존하고 전달하기 위한 생존 기계에 불과하다고 설파했습니다. 지금 보아도 여전히 급진적인 이 주장이-동시에 창조론자들의 부아를 치밀게 만드는-당시에는 얼마나 파격이었는지 짐작도 가지 않습니다. 다윈 생전의 사람들이 ‘인류가 원숭이의 조상’이라는-진화론의 대한 오해와 무지로 빚어진 촌극-것에 충격을 받았던 것과 동일한 수준의 주장이죠. ‘인간은 유전자의 노예!’

이렇듯 평생을 저작과 강의 등을 통해 진화론 진영의 선봉에서 활발히 활동해왔던 리처드 도킨스가 최근에 신작 ‘불멸의 유전자’을 출간하였습니다. 만년이 되어 덜 공격적이 된 것인지, 그는 이 저작을 관통하는 대표적인 키워드를 ‘생존 기계’, ‘탈 것’ 등의 자극적인 표현이 아닌 ‘사자의 유전서(genetic book of the dead)’라는 멋진 용어로 설정합니다. 그는 그간의 주장을 요약 발전시켜, 생명체는 자연선택에 의해 아직 쓰여지고 있는 한 권의 책으로서, 이 책은 지금의 우리에게는 쓰임이 없지만 한때 조상들이 가졌던 유전자가 기록된 유전자 역사의 보관소이자, 미래는 과거나 현재와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가정하에 후손에게 남겨질 미래의 유전자의 예측서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도킨스는 그간의 저작에서 펼쳤던 여러 주장들을 종합하는 차원에서 이 책을 쓴 듯하며, 여전히 날카롭고 유머러스한 문체와 새로운 시각과 비유, 주장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생물의 사례, 이해를 돕는 유려한 일러스트는 이 책을 가히 ‘도킨스 저작의 끝판왕’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를 낳고 키워보신 분이라면 누구나 아이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발견하는 경험을 해봤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의 ‘사자의 유전서’를 물려주었고, 그럼으로서 진정한 ‘영생’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니라구요? 그러면 이 책을 꼭 읽어보세요.

* 이 글은 도란군의 서재 네이버 블로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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