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몸으로
김초엽 외 지음, 김이삭 옮김 / 래빗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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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서평단에 선정되어 주관적으로, 그러나 진심을 담아 작성한 글입니다.

죽음의 반대말은 삶이 아니야. 죽음과 삶은 언제나 나란히 겉지. 가끔 뒤섞이면서. 서로의 의미가 되어주면서. 고통과 쾌락도 마찬가지야. 둘은 나란히 걷고, 뒤섞이고, 서로의 의미가 되지. 희열과 쾌락은 고통을 품고 있고, 고통 역시 그것들을 품기도 하고 불러오기도 해. 인간의 몸은 고통을 위해, 죽음을 원하기도 하고. 그건 다시 말하자면 인간은 본인의 의지로 자신을 파괴하고 싶어 해. 죽음의 순간과 형태, 그때 느낄 고통의 크기까지.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원하는 삶과 쾌락. (p.239., ‘철의 기록’)

기술의 발전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진 SF의 세상에서의 인간의 몸은 어떻게 될까요? 복구나 강화를 목적으로 임플란트로 교체하고, 노동은 로봇이 대신합니다. 노화를 정복하고 외모를 마음대로 바꾸거나, 마인드 업로딩으로 몸 전체를 바꿉니다. 환경 오염 또는 자의로 컴퓨터 속 데이터 세계로 이주하기도 합니다. 결국, SF 문학 속 인간의 몸은 더 이상 존중받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현실의 우리 또한 점차 이러한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과학과 의학, 기술의 발전을 통해 질병과 상해의 완치율은 100%를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인류는 높은 비율로 온라인 세상에 몰두하고 있고, 성형을 통해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에게, 우리에게, 몸은 더이상 중요한 대상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몸을 경시하는 이런 풍조는, 인간이 몸을 가지고 있는 한 근본적으로 잘못된 생각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디지털 세상에 빠져도, 현실의 나는 몸을 가지고 오프라인에서 활동하는 사회적 존재일 뿐이고, 아무리 성형을 통해 아름다워진다 해도, 나의 외모는 내가 인지할 수 밖에 없는 본래의 얼굴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몸으로 인한 여러 제약이 존재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제약으로 인해 우리는 자유를 갈망할 수 있게 됩니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고나 할까요. 애초에 정신적 존재로 타고나지 않는 이상, 우리는 몸을 소중히 여길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한국과 중국의 여섯 명의 여성 작가들이 몸을 주제로 SF 앤솔러지를 펴냈습니다. '잊혀져 가는 몸의 감각을 그리워하는 디지털 세계의 인류', '접촉을 통해 언어가 뒤섞이는 전염병의 창궐을 막으려는 이들', '아이를 구하려다 죽은 후 가게 된 곳에서 만난 다양하게 자신의 몸을 바꾼 사람들',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죽었던 생모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 '세상을 지배하게 된 AI가 인간의 감정을 빼앗은 이유', '타인과의 감각 공유가 가능한 임플란트를 뇌에 삽입한 사람들'. 연관성이 없어보이는 다양한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는 '살아 있음의 소중함'입니다. 인간은 감정을 통해 경이를 체험하며, 감정은 몸이 없다면 결코 온전히 누릴 수 없습니다. '몸의 소중함에 대한 찬가'인 셈이죠.

제가 가장 경이롭게 읽었던 작품은 '난꽃의 역사'입니다. 입양을 앞둔 어린 샤오즈의 할머니 '천메이란'이 주인공인 이 작품은, 이야기의 시작부터 거의 끝까지 초지일관 그녀의 '특이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성깔이 바다에 내리는 빗방울'같으며 이웃에게 '샤우자보(미친 여성)'으로 불리며, 내뱉는 불길한 말마다 모두 현실이 되어 그녀가 '까마귀 주둥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으며, 자신이 특정일에 죽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샤오즈의 입양자에게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하는 등 괴팍한 행동을 일삼았습니다. 작품의 마지막은 60여년 후의, 저명한 예술가이자 물리학자 '천위즈' 박사가 전시한 작품과 이에 연관된 과학 이론이 어떤 지원자로 인해 진실로 인정받았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되는데, 저는는 전혀 연관이 없어보이는 이 두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를 일순간 깨닫게 되고 커다란 경이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SF의 뻔한 주제를 이렇게 아름답게 만들어낼 수 있다니. 물론 다른 단편들도 여러분들을 경의 세상으로 이끌 충분한 자격이 있으니, 함께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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