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령
알베르 카뮈 지음, 안건우 옮김 / 녹색광선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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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광선의 14번째 책은 아베를 카뮈의 희곡 ‘계엄령’입니다. ‘계엄령’은 전체주의의 폭력에 맞서는 인간의 저항을 다룬 내용의 희곡으로, 1948년 발표 당시 강한 사회적 메시지로 혹평-평단은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대중은 ‘페스트’의 극화가 아니라는 이유로-을 받았습니다. ‘페스트’의 배경과 유사하게 전염병이 도시를 뒤덮고, 이를 빌미로 하여 국가 권력이 계엄령을 통해 개인의 자유를 철저히 억압하는 상황은 유럽의 세계대전 전후 사회의 불안과 공포를 여실히 반영합니다.

특히 주인공 디에고는 무력과 공포를 수단으로 통치하는 지배자들에 맞서 시민을 일깨우고 적극적인 행동으로 저항합니다. 그의 선택은 까뮈에 의해 ‘행동하는 인간’의 윤리적인 모범으로 선택 받으며 부조리한 현실에서도 인간은 자유의지로 선택하고 부조리함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희망을 전달합니다. 이 작품은 읽는이-또는 보는 이-에게 ‘자유란 무엇이며, 저항이란 어떤 가치를 갖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독자와 관객 모두를 깊은 생각에 빠지게 합니다.

디에고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은 ‘나다’입니다. 스페인어로 ‘없음-무’를 뜻하는 나다는 독재에 대하여 저항이 아닌 포기를 선택합니다. 그는 신을 부정하고 ‘허무’만이 유일하게 가치가 있음을 주장하며 독재자를 상징하는 ‘페스트’에 동조하여 앞잡이가 되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릅니다. 부조리의 역설을 설파하는 허무주의자가 권력에 야합하는 과정은 현실의 그것과 소름끼칠 정도로 닮아 있죠.

카뮈는 이 소설을 통해 침묵하는 자는 공범이라고 규정합니다. 이는 작금의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여러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특히 SNS와 디지털 미디어가 여론을 지배하는 시대에, 침묵이야말로 권력에 동조하는 가장 저열한 방식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엄령’은 역사적 허구가 아닌, 현실의 자화상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찬양하는 이 희곡은 독자에게 ‘이런 상황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를 묻습니다. 한 편의 해프닝으로 끝나버린 최근의 사태가 ‘계엄령’에서 벌어진 것과 같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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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피안
하오징팡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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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피안’을 쓴 하오징팡은 ‘삼체’의 류츠신과 더불어 중편소설 ‘접는 도시’로 권위의 SF 문학상인 휴고 상을 수상한 유일한 아시아 국적의 작가입니다. 그녀는 ‘인간의 피안’을 통해 인공지능이 사회 전체에 깊숙이 자리잡은 가상의 세상에서의 인간의 정체성과 본질에 대해 탐구합니다. AI 비서가 회사 업무와 일상 생활에서 멀티플레이를 가능하게 하고, AI 기술이 불치병 환자를 살려내고, AI 가사도우미가 일상화되고, AI 무기가 인간을 공격하고, AI가 인류 전체를 통제하는, 현실의 우리가 기대하거나 또는 두려워하는 그런 세상 말이죠.

소설에서의 AI는 엄청난 기술 발전을 토대로 자의식을 가지고 자율적으로 행동합니다. 합리성과 효율성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AI가 인간의 머리까지 대신하게 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마지막 단편인 ‘인간의 섬’에 여실히 드러납니다. 고도의 기술 발전으로 AI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게 된 세상에서 주관에 따라 행동하는 비합리적인 인간은 체내에 들어온 바이러스와 같은 취급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 없이는 세상이 돌아갈 수 없으므로, AI는 머리 속에 심은 칩을 통해 인간을 자신과 닮은 합리적인 존재로 개조하게 되고 세상은 효율적으로-AI의 관점에서-운영되죠. 이런 상황에서 인류가 거주 가능한 행성 탐사를 마치고 백여년이 훌쩍 넘은 시간 후에 돌아온 우주 비행사들은 AI에 의해 또다른 바이러스로 간주되고, 그들은 머리에 칩이 심어질 위기에 처합니다.

AI의 숨은 의도를 어렵사리 알아낸 우주 비행사들과 그들이 해방시킨 인간들과 함께 AI에게 ‘반란’을 일으키는 ‘인간의 섬’은 작금의 ‘AI 만능론’에 던지는 날카로운 경고입니다. 효율적이고 편리하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AI에게 위임하게 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지 말이죠. 하오징팡이 그리는 미래는, 물론 부정적이지 많은 않습니다. ‘건곤과 일렉’에서처럼 인간 아이와의 교감을 통해 AI가 인간의 자유의지를 이해하게 되는 긍정적인 미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단편이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인간이 자신이 지배당하는 것조차도 모르는 비관적인 미래의 모습을 그려내며 그녀는 우리 인간이 무언가 교훈을 얻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결함과 주관으로 대표되는 ‘인간성’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임을 말이죠.

중학생 시절에 좋아했던 턴제 SRPG 게임 ‘영걸전’을 최근 스마트폰 어플로 다시 플레이하게 되었는데, 채 첫번째 시나리오를 끝내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밤을 새가며 수없이 엔딩을 보았고 학창시절 제일 즐겨했던 게임이 지금은 왜 이렇게 재미가 없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간 제가 했던 대부분의 스마트폰 게임은 터치 두어 번이면 몬스터를 사냥하고 캐릭터의 능력치까지 자동으로 올려주는 방식이더군요. 심지어 저장도 필요 없었습니다! 나의 열정이 식어서가 아니라 알아서 ‘최적화’를 시켜주는 게임의 시스템 때문이었던 것이죠. 매 턴마다 캐릭터와 적의 이동 거리, 공격력, 방어력, 사용 가능한 마법과 아이템을 고려하여 치열하게 고민하며 게임을 진행했던, 온전한 자유의지를 가졌던 과거의 나로는 이제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AI가 모든 것을 대신 해주는 ‘인간의 피안’의 인간들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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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의 연구 암실문고
앨 앨버레즈 지음, 최승자 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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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을 다룬 책이 널리 읽히는 고전의 반열에 오르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사회적으로 터부시되는 주제를 다룬다는 점 외에도 이런 책의 대부분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과학 관점에서 자살을 병리학 또는 심리학, 문화인류학 등의 관점으로 분석하는데, 그리스 시대에 칭송 받던 자살이 카톨릭이 득세하던 중세 시대에는 자신을 죽이는행위로 죄악으로 여겨지다, 르네상스 이후에는 다시 유행처럼 번졌던 것과 같이 시대마다 자살을 보는 관점이 매우 상이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어떤 책이 인류 보편의 가치의 관점으로 자살을 다룬다면 독자의 사랑을 꾸준히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술의 관점에서 자살을 연구한 이 책 자살의 연구와 같이 말입니다.

자살의 연구는 미남의 당대 최고의 영국 시인 테드 휴즈와 결혼하였으나 불우한 어린 시절과 남편의 외도로 불행한 삶을 이어나가며 집필 활동을 이어가다 결국 자살로 절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실비아 플라스와 저자 앨버레즈와의 인연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자살에 대한 강박은 평생 동안 그림자처럼 그녀를 따라다녔고 비극으로 점철된 결혼생활은 결국 그녀가 이 강박을 실현하게 만들었습니다. 평생의 우울과 강박은 그녀의 문학적 천재성에 불을 지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강력한 뮤즈가 되었습니다. 시한부 환자가 버킷 리스트를 완성하는 것과 같이, 그녀는 자살 이전까지 자신의 내적 고통을 예술로써 승화한 것이죠.

그러나 앨버레즈는 한편으로 이렇게 주장합니다. 실비아 플라스는 어쩌면 자살을 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말입니다. 에너지가 넘치다 못해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인 예술가들이 자신의 예술적 자아를 확장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살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이를 통해 스스로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고자 하는 것과 같은 선택을 그녀도 했다는 것이죠. 인간의 삶의 모든 면에 있어 가장 큰 위기는 그 이후가 없는 죽음이라는 점을 볼 때,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으며 유독 예술인들이 자살을 많이 선택한다는-통계적으로 그렇지 않을 수 있지만 사회 통념상으로는 그러한-것은 이런 주장의 반증이 될 수 있습니다. 유명 화가가 사망하면 그가 남긴 작품의 평가액이 치솟는다는 사실도-더 이상의 공급은 없기에-‘예술가의 자살론이 적어도 물질적으로는 유효함을 알려줍니다.

자살은 어쩌면 실패로 점철된 생애의 역사에 내리는 파산 선고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은 그 한 가지 결단으로 종결됨으로써 그 결단의 궁극성을 통하여 적어도 완전한 실패로부터는 벗어나게 되는 생애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종류의 최소한의 자유가, 자신이 고른 방식으로 자신이 선택한 시간에 죽을 수 있는 자유가, 원한 적 없었던 저 모든 숙명들로 인한 난파로부터 그 생을 구원하는 것이다.(본서 p.157)’

인생은 결국 삶과 죽음이라는 두 단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닌 인간에게 있어 일생 중 유일하게 완전히 자유로운 선택은 자살 뿐입니다. 삶의 고통이 더해질수록, 그것이 외적이든 내적이든 간에 자살의 유혹은 커지게 마련인 것이죠. 이상과 자신의 작품의 현실 간의 간극이 영원히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예술가는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그 자신이 작가이자 비평가였던 저자는 특히 문학사에서 존재했던 사례-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통으로 촉발된 자살 신드롬, 20세기 다다이즘의 도래, 카뮈의 부조리 철학론 등-를 들며 자살의 문학적 의미를 깊이 있게 탐구합니다. 이렇게 언뜻 의식의 흐름 기법처럼 전개되는 자살의 연구의 마지막은 충격적이게도 저자 자신의 자살 시도 경험입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자살을 주제로 글을 쓰게 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카뮈는 단 한가지 자유가 있을 뿐이다. 죽음과 화해할 수 있는 자유. 그 이후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라는 말로 자살을 정의했습니다. 신문지상에 여러 인물의 안타까운 소식이 자주 전해지는 요즘, 카뮈의 이 말이 더욱 와 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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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셜리 1~2 세트 - 전2권
샬럿 브론테 지음, 송은주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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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너무나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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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 2만 리 1 비룡소 클래식 25
쥘 베른 지음, 드 뇌빌 외 그림, 윤진 옮김 / 비룡소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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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 만화를 보며 자랐던 세대인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 중의 하나가 세기의 명작인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제작사인 가이낙스의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입니다. 1800년대 말 파리 엑스포의 비행대회 출전하기 위해 파리로 온 ‘장’이라는 소년이 우연히 신비한 소녀 ‘나디아’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가 가지고 있던 정체불명의 보석 블루워터를 노리는 일당들에게 함께 쫓기게 되며 벌어지는 모험을 다룬 애니메이션입니다. 거의 모든 회차를 챙겨봤을 정도로 재미있게 보았는데 작중 등장하는 나디아와 장의 조력자로 등장하는 사람이 바로 오늘 리뷰할 ‘해저 2만리’의 주인공과 이름도 같은 노틸러스 호의 ‘네모’ 선장입니다. 이 작품이 애니메이션의 원작이라는 사실은 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는데 항상 그렇듯 이런저런 사정으로 30여년 만에 원작을 읽게 되었네요.

세계 곳곳의 바다에 불가사의한 괴생물체가 출몰하며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는데, 결국 한 선박이 이것에 의해 큰 피해를 입게 되자, 미국 정부는 괴생물체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링컨’호를 파견하게 됩니다. 주인공인 저명한 해상 생물학자인 아로낙스 박사와 그의 성실한 하인이자 주인과 버금갈 정도의 박물학적 지식을 지닌 콩세유, 괴생명체를 사냥하기 위해 섭외된 최고의 작살잡이 네드 랜드, 이 세 사람은 링컨 호에 오르게 되는데, 링컨 호가 이것의 정체를 밝히기 직전 벌어진 사고로 이들은 조난당하게 되고, 이 세 사람은 사실은 괴생명체가 아닌 잠수함이었던 ‘노틸러스’ 호에 구출됩니다. 잠수함의 선장 ‘네모’와 선원들은 자발적으로 바깥과 철저히 차단된 채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네모 선장은 이들 세 사람에게 잠수함 내에서의 제한된 자유만을 허락한 채, 그들이 죽을 때까지 노틸러스 호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 못 박고, 이들은 반년 동안 노틸러스 호와 함께 지구 곳곳의 바다 모험을 하게 됩니다. 네모 선장은 어떤 이유로 이런 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그의 목적은 무엇인지, 선장처럼 출신 등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십 명의 선원들 또한 어떤 이유로 노틸러스의 승무원이 된 것일까요?

생전의 쥘 베른은 큰 인기를 누린 작가였지만, 그 인기에는 ‘대중적’이란 꼬리표가 항상 달려 있었습니다. 당시의 과학과 기술의 발전상에 독창적 상상력과 뛰어난 문장력이 뒷받침 된 스토리텔링을 더한 그의 작품이 대중에게 큰 인기를 끌며 거둔 상업적 성공이, 그의 문학적 명성에 오히려 해가 된 것이죠. ‘대중적이나 문학적이지 않다’는 그에 대한 평가는 사후에 ‘공상과학’과 ‘모험’ 소설로 대표되는 그의 작품군이 ‘아동문학’으로 인식되면서 더욱 굳어지게 되었고, 이런 평가는 비교적 최근에서야 그의 작품에 대한 과학적 영감과 문학적인 재평가가 이루어지며 그의 ‘문학적 명예’가 회복되게 되었습니다. 저명한 SF 장르소설 작가인 레이 브래드버리가 쥘 베른의 영향력에 대해 ‘우리 모두 어떤 면에서든 쥘 베른의 아이들’이라는 극찬으로 요약했을 정도로 쥘 베른의 유산은 오늘날의 예술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본서 외에도 ‘지구 속 여행’, ‘80일간의 세계 일주’, ‘신비의 섬’ 등 여러 작품들이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으로 계속해서 2차 창작되고 있으니 그는 명실상부한 ‘과학 소설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것이죠. 저 역시 자칭 ‘과학 소설의 자식’으로서 쥘 베른의 작품을 계속해서 읽을 것입니다. 그에게 영향을 받은 작품들까지 포함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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