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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의 연구 ㅣ 암실문고
앨 앨버레즈 지음, 최승자 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3월
평점 :
자살을 다룬 책이 널리 읽히는 고전의 반열에 오르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사회적으로
터부시되는 주제를 다룬다는 점 외에도 이런 책의 대부분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과학 관점에서 자살을 병리학 또는 심리학, 문화인류학 등의 관점으로 분석하는데, 그리스 시대에 칭송 받던 자살이
카톨릭이 득세하던 중세 시대에는 자신을 ‘죽이는’ 행위로
죄악으로 여겨지다, 르네상스 이후에는 다시 유행처럼 번졌던 것과 같이 시대마다 자살을 보는 관점이 매우
상이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어떤 책이 인류 보편의 가치의 관점으로 자살을 다룬다면 독자의 사랑을
꾸준히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술의 관점에서 자살을 연구한 이 책 ‘자살의 연구’와 같이 말입니다.
‘자살의 연구’는 미남의 당대 최고의 영국 시인 테드 휴즈와 결혼하였으나 불우한 어린 시절과
남편의 외도로 불행한 삶을 이어나가며 집필 활동을 이어가다 결국 자살로 절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실비아
플라스’와 저자 앨버레즈와의 인연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자살에 대한 강박은 평생 동안 그림자처럼 그녀를 따라다녔고 비극으로 점철된 결혼생활은 결국 그녀가 이 강박을
실현하게 만들었습니다. 평생의 우울과 강박은 그녀의 문학적 천재성에 불을 지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강력한 뮤즈가 되었습니다. 시한부 환자가 버킷
리스트를 완성하는 것과 같이, 그녀는 자살 이전까지 자신의 내적 고통을 예술로써 승화한 것이죠.
그러나 앨버레즈는 한편으로 이렇게 주장합니다. 실비아 플라스는 어쩌면
자살을 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말입니다. 에너지가 넘치다 못해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인 예술가들이
자신의 예술적 자아를 확장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살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이를 통해 스스로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고자 하는 것과 같은 선택을 그녀도 했다는 것이죠. 인간의 삶의 모든 면에 있어 가장
큰 위기는 그 이후가 없는 ‘죽음’이라는 점을 볼 때,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으며 유독 예술인들이 자살을 많이 선택한다는-통계적으로
그렇지 않을 수 있지만 사회 통념상으로는 그러한-것은 이런 주장의 반증이 될 수 있습니다. 유명 화가가 사망하면 그가 남긴 작품의 평가액이 치솟는다는 사실도-더
이상의 공급은 없기에-‘예술가의 자살론’이 적어도 물질적으로는
유효함을 알려줍니다.
‘자살은 어쩌면 실패로 점철된 생애의 역사에 내리는 파산 선고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은 그 한 가지 결단으로 종결됨으로써 그 결단의 궁극성을 통하여 적어도 완전한 실패로부터는 벗어나게 되는
생애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종류의 최소한의 자유가, 자신이
고른 방식으로 자신이 선택한 시간에 죽을 수 있는 자유가, 원한 적 없었던 저 모든 숙명들로 인한 난파로부터
그 생을 구원하는 것이다.(본서 p.157)’
인생은 결국 삶과 죽음이라는 두 단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닌 인간에게 있어 일생 중 유일하게 완전히 자유로운 선택은 자살 뿐입니다. 삶의 고통이 더해질수록, 그것이 외적이든 내적이든 간에 자살의 유혹은 커지게 마련인 것이죠. 이상과
자신의 작품의 현실 간의 간극이 영원히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예술가는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그 자신이
작가이자 비평가였던 저자는 특히 문학사에서 존재했던 사례-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통으로 촉발된 자살
신드롬, 20세기 다다이즘의 도래, 카뮈의 부조리 철학론
등-를 들며 자살의 문학적 의미를 깊이 있게 탐구합니다. 이렇게
언뜻 의식의 흐름 기법처럼 전개되는 자살의 연구의 마지막은 충격적이게도 저자 자신의 자살 시도 경험입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자살’을 주제로 글을 쓰게 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카뮈는 ‘단 한가지 자유가 있을 뿐이다. 죽음과 화해할 수 있는 자유. 그 이후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라는 말로 자살을 정의했습니다. 신문지상에 여러 인물의 안타까운
소식이 자주 전해지는 요즘, 카뮈의 이 말이 더욱 와 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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