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피안
하오징팡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4월
평점 :
일시품절


‘인간의 피안’을 쓴 하오징팡은 ‘삼체’의 류츠신과 더불어 중편소설 ‘접는 도시’로 권위의 SF 문학상인 휴고 상을 수상한 유일한 아시아 국적의 작가입니다. 그녀는 ‘인간의 피안’을 통해 인공지능이 사회 전체에 깊숙이 자리잡은 가상의 세상에서의 인간의 정체성과 본질에 대해 탐구합니다. AI 비서가 회사 업무와 일상 생활에서 멀티플레이를 가능하게 하고, AI 기술이 불치병 환자를 살려내고, AI 가사도우미가 일상화되고, AI 무기가 인간을 공격하고, AI가 인류 전체를 통제하는, 현실의 우리가 기대하거나 또는 두려워하는 그런 세상 말이죠.

소설에서의 AI는 엄청난 기술 발전을 토대로 자의식을 가지고 자율적으로 행동합니다. 합리성과 효율성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AI가 인간의 머리까지 대신하게 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마지막 단편인 ‘인간의 섬’에 여실히 드러납니다. 고도의 기술 발전으로 AI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게 된 세상에서 주관에 따라 행동하는 비합리적인 인간은 체내에 들어온 바이러스와 같은 취급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 없이는 세상이 돌아갈 수 없으므로, AI는 머리 속에 심은 칩을 통해 인간을 자신과 닮은 합리적인 존재로 개조하게 되고 세상은 효율적으로-AI의 관점에서-운영되죠. 이런 상황에서 인류가 거주 가능한 행성 탐사를 마치고 백여년이 훌쩍 넘은 시간 후에 돌아온 우주 비행사들은 AI에 의해 또다른 바이러스로 간주되고, 그들은 머리에 칩이 심어질 위기에 처합니다.

AI의 숨은 의도를 어렵사리 알아낸 우주 비행사들과 그들이 해방시킨 인간들과 함께 AI에게 ‘반란’을 일으키는 ‘인간의 섬’은 작금의 ‘AI 만능론’에 던지는 날카로운 경고입니다. 효율적이고 편리하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AI에게 위임하게 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지 말이죠. 하오징팡이 그리는 미래는, 물론 부정적이지 많은 않습니다. ‘건곤과 일렉’에서처럼 인간 아이와의 교감을 통해 AI가 인간의 자유의지를 이해하게 되는 긍정적인 미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단편이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인간이 자신이 지배당하는 것조차도 모르는 비관적인 미래의 모습을 그려내며 그녀는 우리 인간이 무언가 교훈을 얻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결함과 주관으로 대표되는 ‘인간성’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임을 말이죠.

중학생 시절에 좋아했던 턴제 SRPG 게임 ‘영걸전’을 최근 스마트폰 어플로 다시 플레이하게 되었는데, 채 첫번째 시나리오를 끝내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밤을 새가며 수없이 엔딩을 보았고 학창시절 제일 즐겨했던 게임이 지금은 왜 이렇게 재미가 없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간 제가 했던 대부분의 스마트폰 게임은 터치 두어 번이면 몬스터를 사냥하고 캐릭터의 능력치까지 자동으로 올려주는 방식이더군요. 심지어 저장도 필요 없었습니다! 나의 열정이 식어서가 아니라 알아서 ‘최적화’를 시켜주는 게임의 시스템 때문이었던 것이죠. 매 턴마다 캐릭터와 적의 이동 거리, 공격력, 방어력, 사용 가능한 마법과 아이템을 고려하여 치열하게 고민하며 게임을 진행했던, 온전한 자유의지를 가졌던 과거의 나로는 이제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AI가 모든 것을 대신 해주는 ‘인간의 피안’의 인간들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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