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군의 홈피를 홈쳐 보다 스타세일러의 노래와 최민식의 '가다'에 뻑가 부랴부랴 현주에게 문자를 넣어 표를 예매하라고 했다. 마침 사장님네 제사가 있는 날이어서 운좋게도 9시 45분 프로를 볼 수 있었다. 대체적으로 모든 상황이 좋았다. 게다가 이건 또 웬 떡이냐. 영화관의 우리 자리 옆으로는 (냄새와 숨소리만으로도 황홀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귀염둥이들이 쭈루룩 앉아 있는 게 아닌가. 그러고보니 우리 자리 뒤쪽으로도 주루룩 다 늙거나 젊은 남자들이다. 구미는 지역 특성상, 어딜 가나 여자들의 무리로 버글거린다. 술집에도, 감자탕집에도, 나이트에도, 물론 영화관에도.  근데, 여자보다 남자가 많은 것이다. 그렇다. 이 영화는 박찬욱의 영화며 일본 만화가 원작인 영화며,  무엇보다 최민식이 나오는 영화인 것이다. 

그런 영화가 있다. 기를 쓰고 실망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게 하는. 영화의 관계자도 아니고, 특별히 좋아하는 배우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감독의 정신세계를 진작부터 흠모해 왔던 것도 아니고, 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도 아닐 텐데 보기도 전에 이건 아무리 지랄같더라도 절대 실망하지 말자, 싶어지는 영화. 이 영화가 그랬다. 불편하고, 불쾌하고, 황당하고, 머리 아팠지만,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선뜻 권해지지는 않지만, 남들이야 욕을 하거나 말거나 나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 글쎄 지랄같더라도 실망하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괜찮기까지 하더란 말이다.

나는 김지하의 담시들을 좋아한다. 오적과 소리내력은 임진택이 소리를 한 테잎으로도 갖고 있는데 들을수록 구수하고 찰지고 맛난다. 그렇더라도 오르가즘 면에서는 똥바다보다 약하다. 몇 십 년을 참은 똥을 푸득푸득푸드득 싸내지르는 장면을 읽을 때면 짜릿함이 온 몸을 휘감아 오줌이 마려울 정도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행한 배설, 혹은 복수(를 보는 것)에도 또한 그런 쾌감이 있다(맞다. 내가 변태라 그렇다) 미도와 오대수의 섹스가 결국 이우진이 그토록 오래 갈아댄 칼로 내지른 복수에 다름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뒤늦게 무릎을 치며 당시의 이우진을 떠올렸다. 미치게 통쾌해하며 파안대소했었어야 했는데 둘을 관계하게 하기 위해 최면까지 걸었던 그는 이렇게 물었었다. 미도가 정말 오대수를 사랑하는 걸까...오마이갓.. 

이우진의 복수는 결국 무엇이었을까. 서로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행하게 된 섹스? 그렇다면 그는 이렇게 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알면서도 서로 사랑했어. 너네도 그래봐, 라고. 이우진은 누나의 죽음을 슬퍼하는 게 아니라 누나와의 사랑을 슬퍼했던 것이며 진작에 동반자살이라도 했어야 할 것을 저희들의 아픈 관계를 다른 누군가에게 전이시키기 위해 15년을 기다려 왔던 것이다. 대상으로는 그들의 관계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인 오대수가 적당했고, 그 전이는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그는 15년 동안이나 보류해 두었던 자신의 죽음을 그제서야 행한다. 누나의 손을 놓은 바로 그 손으로.

그러나 거기서 끝낼 것이지 뭘 또 한 번 복잡하게 꽈 보겠다고 최면술사는 찾아 갔으며, 뭘 또 최면의 힘을 빌어 자아를 분리씩이나 하고, 뭘 몬스터가 어쩌고 그랬단 말인가. 나원.. 통 알 수가 없으니. 

아무튼 영화는 좋았다. 민식이 형님의 연기와 다소 어색하면서도 능청스러워 우스워 죽겠었던 보이스오버는 말할 것도 없고, 유지태의 우아한 몸놀림도, 강혜정의 깜찍한 연기도 좋았다. 근데...거...여자아이들의 젖꼭지들은 왜 그렇게들 음...색이 짙던지...흠...다들 그런가..ㅡㅡ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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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kitchen 2003-11-23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그 최면술사가 그러니까...어떤 기억을 지웠던가 보지...어떤 기억일까...나는 오대수와 미도의 관계가 밝혀지는 그 부분이라고 생각해. 오대수가 감금으로 인한 자신의 야수적인 성격 모두를 버리진 않았을 거라고, 그 기억은 남겨 뒀을 거라고 생각해. 근데, 미도의 관계가 밝혀지는 부분이 지워졌다고 한다면, 마지막에 미도가 사랑한다고 했을 때 왜 그런 웃음을 지은 거지?

soulkitchen 2003-12-17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바보...기억은 지워지지 않은 거였잖아...나는 보지 못했는데 마지막에, 그 빈 의자를 보여줄 때, 그 나무에 최면술사의 시체가 걸려있는 게 보였다고 한다. 바보..대체 뭘 본 거야? 역시...그래서 웃은 거였어....다시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