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ㆍ양파 매운맛의 비밀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동물의 세계에서 스컹크의 방귀나 복어의 알은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는 훌륭한 방패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식물에도 동물과 유사한 자기보호 반응이 있을까.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마늘, 양파, 고추의 경우를 한 번 살펴보자.이들 채소의 공통점 중 하나는 모두 `매운맛` 을 지녔다는 점이다. 마늘이나 양파는 있는 그대로 가만히 두면 절대 독한 냄새를 풍기지 않지만 껍질을 벗기거나 칼로 자르면 곧바로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이는 양파나 마늘세포 속의 알린이란 물질이 알리나아제라는 효소의 도움을 받아 알리신으로 바뀌면서 매운 맛이 뿜어져 나오기 때문인데 이것이 바로 마늘, 양파, 파, 부추, 달래 등의 향인 셈이다. 이처럼 마늘이나 양파의 매운맛은 사람이나 다른 세균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는 방패가 된다.

고추의 경우는 좀 독특하다. 고추 매운맛의 정체는 캡사이신이라는 화학물질 때문인데 이 물질은 적으로부터 고추를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지만 때로는 고추씨를 각지로 널리 퍼뜨리는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인간을 제외한 포유동물은 캡사이신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 물질이 뉴런을 자극해 고통을 느끼기 때문. 하지만 조류는 세포표면에 화학물질과 꼭 맞는 수용체가 부족해 포유동물보다 캡사이신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다. 만약 캡사이신이 수용체와 결합하면 세포의 이온채널이 열려 이온들이 안으로 들어오게 되고 신경의 전기적 충격이 촉발돼 뇌는 이를 고통으로 인식하게 된다.

고추씨의 확산과 관련해 연구자들이 미국 애리조나 남부의 칠레고추밭을 비디오테이프로 녹화한 결과, 개똥지빠귀와 같은 새들만 칠레고추를 먹고 쥐들은 주변에 있는 맵지 않은 빨간색 열매만 먹는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실험실에서도 쥐들은 맵지 않은 고추는 먹었지만 칠레고추에는 코를 대지 않았다. 그런데 맵지 않은 고추를 먹은 쥐의 배설물에서 나온 씨는 발아가 되지 않았지만 같은 것을 먹은 조류의 배설물에서 나온 씨는 손으로 씨를 뿌린 것과 다름없이 싹이 났다. 매운 고추를 먹은 후 배설한 씨도 발아율이 60%에 달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연구자들은 고추가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동물은 내쫓고 자신의 자손을 퍼뜨리는 데 도움이 되는 동물은 유인하도록 화학물질을 선택적으로 생산한다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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