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도쿄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서른에 가까워질수록, 내가 '서른이 되면'하고 가졌던 꿈과 희망들은 다 이뤄지지 않을 것임을 체감한다. 서른이 되면 난 안정된 직장과 안정된 사람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지혜가 있고 사람을 잘 대할 수 있고 어떤 상황이든 안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전체적으로 안정되고 무르익은 사람, 이 되어있을 줄 알았다. 평균수명이 길어져서 그런지, 내 주위의 그 어느 누구도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었다고 해서 안정되어있지는 않더라. 우리는 전반적으로 계속 고민하며 살아야 하는 시대에 태어났나보다.

스무살 도쿄를 읽으면서 생각했다. 나는 서른 후반이 되어도 스무살 같겠구나. 나의 이십대는 끝나지 않겠구나. 6개의 챕터로 나눠 다무라 히사오의 20대를 그려내는 동안 나는 두가지가 떠올랐다. 1. 그래도 남들처럼 살았구나 (연애의 경험 횟수는 빼고) 2. 나이가 들면 이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게 될까.

1978년부터 1989년까지, 다무라 히사오의 20대를 시기별로 구분해 적고있는 책이 스무살 도쿄다. 1978년과 1979년의 순서가 바뀌어 있는 걸 제외하면 이 책은 나이 들어가는 과정을 따르고 있다. 나고야에서 태어나 도쿄로 온 19살, 짧게 끝나버린 대학생활, 빨리 시작된 직장생활, 회사를 그만두고 맘맞는 사람들과 차린 회사, 알아가는 사회생활. 히사오는 남들이 30대 초반까지 가서야 느낄 감정들을 좀 미리 느낀다는 생각은 든다. 경험이 빡셀수록, 얻는 것은 많다, 라는 걸 다시금 실감한다.

이 책의 미덕은 스무살의 타지에서 살고있는 자취생이 챙겨야 할 것들을 빼놓지 않고 언급하고 있는 점이다.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십대와는 다를 것이다. 고향이 주는 의미, 부모님이 하는 잔소리와 바람, 부모님이라는 존재의 비중, 친구와 고향친구의 차이, 회사 동료와 커리어의 무게까지도. 지루하게 설명하지 않고 에피소드를 통해 솔직하게 말하고 있는 오쿠다히데오. 시간을 넘나들지만 그 시간에 그 분위기, 바로 내가 겪었던 것처럼 회상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들.


" 야, 전차 끊겼어. " 똑같이 시계를 쳐다보던 선배 하나가 좋아 죽겠다는 듯 말했고, 일동으로부터 "아휴~"하는 자포자기적인 한숨이 새어나왔다.
- p9

그보다 누구에게 허락받을 것도 없이 자유롭게 외박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이 통통 튀었다. 오늘, 정말로 나의 독립이 시작된 것이다.
...
그치지 않는 박수와 환성 속에서 히사오는 도쿄의 밤공기를 가슴 가득히 들이켰다.
-p139

여섯개의 에피소드들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나고야올림픽, 1981년 9월 30일 편이다. 히사오가 처음 들어간 회사에서 어느정도 위치에 올라, 어린 나이에 후배를 거느리게 된 이후의 일이다. 사장도 무섭지 않고, 회사의 유력자와도 편한 위치가 된, 일도 익숙해지고 인정도 받고 있고. 일할 기분도 나고, 가장 열심히 일하고 있기도 한, 그런 날의 이야기다.

아주 익숙한 기분, 나는 아직 뭣도 아닌데 뭔가 할 줄 안다고 생각하며 다른 이들을 우습게 보는 그런 오만함도 이십대의 모습이다. 그렇다고 삼십대에 그런 걸 안 할줄 아는가, 우리는 아마 끊임없이 오만할 것이다. 더불어, 코가 납작하게 깨질일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20대는 그렇게 쉽게 실망하고 쉽게 의기양양해지며 멋도 몰라 다른 이들을 내려다보고 잘난 줄 안다. 그러다 무너지는 사건 하나에 무릎 꿇고 의기소침해지기도 하고 내가 이 자리에 있었지, 하고 깨닫기도 하고.그러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생각하고 그래도 세상에 찌들지 않으려고 발버둥친다. 결국 다시 돌아갈 길이더래도.

모든건, 순수의 이름으로 세상에 덜 찌들었다는 명목하에  아름다워 보인다.

이 책에서 오쿠다 히데오가 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은게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도쿄는 좋은 곳이야, 꺼억." 아저씨가 딸꾹질을 했다. "뭔가 되어보겠다고 벅찬 꿈을 품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지." 아저씨는 컵의 술을 뚝뚝 흘리더니 그 젖은 손을 쓱쓱 핥아 먹었다.
 ...
"젋다는 건 특권이야. 자네들은 얼마든지 실패해도 괜찮다는 특권을 가졌어. 근데 평론가라는 건 본인은 실패를 안 하는 일이잖아? 그러니 안 된다는 거야."
-p137

이제 반년 남짓 남았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덤벼들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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