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여, 안녕! 오에 겐자부로 장편 3부작 3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그러니까 말야. 나는 지금부터 어둠 속에서 눈을 뜰 때마다 밤 사이에 '커다란 소리'를 들었는지 어떤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그렇게 해서 자신이 아직 이 쪽에 머물러 있는지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는 거지...

 거기다 또 하나, 이건 잠이 깨고 나서의 일인데 지금 '숲의 집'에서 지내고 있자니까 시간의 진행이 빠르다고 느껴진다네. 그것도 일정 시간을 두고 깨닫는, 그런 것이 아니지. 바로 지금 시간이 가고 있다, 라고 실감하는 거야. 골짜기에서 지내던 어린 시절, 한밤중에 잠이 깨면 벽시계가 11시를 치곤 했지. 그러고 나서, 다시 한 번 잠이 들 때까지의 시간이, 정말이지 길고도 힘들었어. 

 하지만 지금, 그것도 잠이 깨어 있는 동안에 죽게 된다면, 나는 시계를 옆에 두고 다섯시간이고 여섯 시간이로 바늘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을 수 있지. 시간은 흐르니까..." 

 "그리고 '커다란 소리'가 몸의 안쪽으로부터 들려온다, 그런 건가?" 하고 시게루가 말했다. "나의 '파괴하는' 교본에서는 시한폭탄을 장치한 녀석이,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게 되지."


"폭탄으로 살해당하는 쪽에서는 ... 시게가 살상을 피하는 아이템을 교본에 넣지 않는다면 말야... 기다리는 시간이라는 문제는 없어. 외부와 내부에서 동시에, 갑자기 '커다란 소리'가 울리지. 그런데 내 쪽은 말야, 자신의 유기체가 파괴되는 '커다란 소리'를 미리 알면서, 시계를 앞에 두고 기다리는 거라네. 시간은 간다! 라고 새삼스레 감탄하면서..."

 
p 433 


... 전쟁 후 이 나라엔 막대한 수의 실업자가 발생했어. 그 시절 그들을 남미로 이민 보냈었고. 우리가 20대 초반 무렵이었지. 이건 도미니카로 건너간 이민자들에게 할당된 벌판의 , 현재 사진이라네. 이렇게 돌덩이 투성이인... 어린 시절의 우리들이 던질 수 있는 크기가 아니지... 끔찍한 벌판이야. 


이런 땅은 일굴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더니 돌은 3년 지나면 비료가 된다고 외무성 관리가 말했다는구먼... 그런 말이 내가 우선적으로 모으고 있는 '징후'라네.
 

이런 식으로 기민이 되어버린 이들은 다시는 회복되지 않아. 망가져버린 채로 있지. 하지만 내가 '징후'로 발견하는 것은 아까 말한 것 같은 언어를 내뱉는 젊은 관료 역시, 망가진 채 회복되지 않는다는 바로 그 사실이야. '망가져 있는 인간의 언어' 라든가 '회복할 마음이 없는 인간의 언어'라고 항목을 붙여둔 부분들을 보면 시게도 나득할거야."

...

"모럴리스트식의 인간비평은 아직 망가져버리지는 않은... 회복할 마음도 있는, 그런 자를 향한 거지? 내가 '징후'에 적어놓은 것은 그런 레벨의 것이 아니야.

 인간이 회복될 것을 생각하지 않게 되어버리는, 그 분기점을 넘어선 건너편에서 나오는 언어라네. 아까 그 말은 50년 전 것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같은 언어들이 나오고 있어." 
 
p449 

자네는 내가 병문안을 갔던 병원에서, 젊은 나보코프가 베를린을 떠나기 직전에 쓴 소설의, 시 같은 결말을 번역한 적이 있다고 했지?"


"안녕, 나의 책이여! 죽어 마땅한 자의 눈처럼, 상상했던 눈도 언젠가 감겨야만 하리니."


"일단 쓰여진 인물은 계속 살아남지만 책을 쓴 인간은 사라져야만 한다고... 오네긴이라는 인물에 작자인 푸시킨이 대비되지. 


고기이 역시 자신이 쓴 책에게 작별을 고해야 할 나이야. 그런 주제에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소설과는 또 다른 것을 쓰고 있어."
 ...

p457
 

 
회사가 멀어서 좋은 점은, 출근시간 40분 동안만 책을 읽어도 약 5일에 걸쳐 460페이지의 책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아, 물론 내일 반납해야 하는 책이기에 오늘 점심시간과
퇴근시간까지 할애해서 끝을 만났다.

 끝을 향해 갈수록, '사건'이 진행될수록 점점 무거워지는 마음과
등장인물들이 혼란스러워할수록 혼란스러워지는 마음과
급기야 '회복될 수 없는 인간' 까지 읽고서는
더욱 거칠어진 마음까지.

고기이(내가 보기엔 작가)가 하고 있는 '징후찾기' 작업은
결국 인간의 종말, 회복될 수 없을 만큼 망가지는 인간 '종'의
종말의 '징후'다.


인간이 인간다움을 잃어버렸을 때
내가 생각하는 인간다움은 약간 동양적인 면이 강한 것 같지만,
인간은 스스로 다투고 죽이다 결국 멸망하게 될 것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핵보유를 반대하다 결국 소설에서처럼
내가 죽기전까지 핵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점점 인간의 성악설을 신뢰하게 된다.
인간은 약해서, 유혹에 쉽게 넘어가고
먼 미래를 보기 보다 가까운 이익에 고개를 숙인다.
본래 선했는가? 아니, 그 약함이 죄를 짓는 것이다.

이건 어찌보면 기독교 신앙과도 일맥상통하는지, 
가물가물한 기억에 그런 것 같은데 
그 약함으로 신을 믿고 의지한다, 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신을 믿음으로 죄를 짓지 않는가? 아니 오히려 신을 방패삼아 떳떳하게 군다.

서울시를 하나님께 상납하신 분을 봐도 그렇다. 마릴린맨슨을 닮은 외모를 빌미삼아
나는 모자른 사람, 그럼에도 성공했다 라는 이상한 논리를 펴며
본인의 꿋꿋한 의지를 실현시켜 달라고 기도하지 않겠는가?

국민들의 반대는 단지 하나님이 시험하시는 것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한편 또 다른 반성은
나와 다른 가치를 지향한다고 하여 그들을 악하다 평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인데
그 다른 가치를 추구함으로서 하게 되는 악행들을 보면
타인을 해치게 되는 행동들을 보면
역시 그 가치는 옳지 않다, 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총 체인지링, 우울한 얼굴의 아이, 책이여, 안녕!
오에겐자부로 말년의 이 3부작의 끝에서부터 읽기 시작했으니
3-2-1의 순서로 가볼까 하지만
도서관에 책이 있는 순서대로 읽게 될 것 같다.
 

아사다 지로 이후에 제대로 관심가는 작가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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