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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유산 ㅣ 대교북스캔 클래식 5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오현수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광명시 하안 도서관의 도서주간 행사의 일환으로 책 교환을 하는 때가 있다. 무겁게 책을 들고 가서 무겁게 책을 바꿔오는 아주 좋은 날. 그 행사에서 무언가의 책을 들고 가서 이 책으로 바꿔왔다. 정말 새것같은 그런 책이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것 같은 깨끗한 책.
빨강머리 앤의 작가 루시 M. 몽고메리. 삐삐롱 스타킹과 함께 책장에 꽂혀있는 이 책은 몽고메리씨가 얼마나 상상을 즐겼는지, 사람들 관찰을 즐겼는지, 사람들의 각각 다른 성격을 얼마나 살폈는지, 얼마나 능한 분석가인지 톡톡히 보여주고 있다. 정말이지, 유쾌,통쾌,상큼하다.
사랑의 유산이라는 마치 할리퀸 같은 제목을 가진 이 책은 유산으로 남겨진 단지 하나로 책 한권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 단지 하나에 얽힌 일대 대 가족, 작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의 집착과 사랑, 연애, 감정, 질투, 인생사, 습관들을 한자리에 보여주며 때로는 비웃고 때로는 비꼬고 때로는 칭찬하며 때로는 질투하고 때로는 비난한다. 완벽한 관찰자의 입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나오는 턱에 누가 누군지 구분하지도 못하면서 그냥 읽어 내려갔다. 정말 재밌다. 수다쟁이 몽고메리.
빨강머리 앤의 고향, 그 작은 마을에서 몇권의 책을 발전시켰는지를 보면 몽고메리가 얼마나 이야기 꾼인지 알 수 있다. 빨강머리 앤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상상을 했을까. 그 많지도 않은 작은 사회 안에서 서로를 얼마나 꿰뚫게 되는지 조금은 느껴볼 수 있었다. 지금, 너무 다양한 사람들이 있을지언정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안단 말인가. 이렇게 다양한 인물을 한데 모아놓을 수 있을까.
나를 비춰보고, 당신을 비춰보고, 건너편 사람을 비춰봤다. 우리는 여기 나온 등장인물들을 조금씩 섞어서 나를 구성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베키 아주머니가 내려준 유산이란 건 결국 깨져버린 단지가 아니라 각자의 삶에 변화의 계기, turning point가 아니었을까. 내가 원하는 것 그러나 내가 할 수 없었던 것들을 하게 해 준, 그런 계기가 아니었을까.
뭐 하나 숨길 수 없었던 그만큼 솔직했던 입담의 베키 아주머니였던 만큼 모두가 원하는 것들을 꿰뚫어 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거친 입담만큼 모두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title is 사랑의 유산이었을지도. 후훗.
내년에 또 가서 바꿔야겠다. 좋은 책은 돌려 읽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