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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시모 피아니시모
츠지 히토나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츠지의 사랑을 주세요와 편지, 냉정과 열정사이만 알던 나에게 이 책은 완전 츠지에 대한 시각을 확 바꿔버렸다. 피아니시모 피아니시모 이 얼마나 잔잔해져버리게 하는 제목인가. 약하게, 약하게... 당연히 마음을 아리게 하거나 눈물을 흘리게 하거나 짠하게 만들어 줄 그런 소설인 줄 알았다. 설마 설마 설마 설마 유괴 살인 납치 유령 분열 회색 등 내가 싫어라 하는, 무서워 하는 모든 것들이 태그로 붙을 수 있는 책이라고는 차마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선뜻 불을 끄고 스탠드를 키고 침대에 엎드려 읽기 시작하다가 완전 무서워져서 10페이지 읽고 책장을 덮었다. 그래도 잘 잘 수 있었던 것은 그 날이 피곤했기 때문이었을까,
결국 끝에 가서야 이 책은 마냥 무섭기만 한 책이 아님을 알았지만 그래도 츠지가 그려낸 회색 세계가 어찌나 섬찟한지 제대로 읽지 못하였다. 속독에 속독을 거듭해 겨우 내용만 따라 갔을 뿐인지라 이 책에 대해 제대로 리뷰하기는 어렵겠다. 그래도,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은 멋지다!
피아니시모가 츠지의 데뷔작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 책의 주인공들이 그대로 나오는 이 책은 80년대에서 2007년으로 뛰어넘어 일본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얼마나 망가져있는가 사람들은 얼마나 곯아있는가. 특히 주인공 도오루의 분신 히카루의 대사들은 속속들이 마음을 찌른다. 그래, 사실 그럴지도 몰라. 나란 인간은, 또 너란 인간은 속으로 그런 생각들을 하며 가식적으로 살고 있는지도 몰라. 그럴지도 몰라. 하고 말이지.
인상깊은 것들 중 하나가 도오루의 짝이었던 '자의식 과잉' 군. 도움도 받지 않고 도와주지도 않는다. 일체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어버리고 혼자서 꿋꿋이 살아간다. 다수결을 반대하며 개인주의를 찬양한다. 개인주의를 역설하고 선동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개인주의가 침해당할 것 같으면 반드시 이의를 제기한다.
아, 이 얼마나 비비 꼬인 사람이란 말인가! 동시에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렇게 심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저 사람의 10% 만큼은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어떤지. 현실이 어떤지, 사람들이 어떤지. 이 책의 몽환적인 분위기와 판타지 게임같은 묘사의 뛰어남을 새삼 실감하며 등줄기에 흐르는 식은땀을 식혀본다. 정말 한 여름 오싹해지게 만드는 건 귀신도 유령도 아닌, 인간이라는 그 존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