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나다
조병준 지음 / 디자인하우스 / 1999년 12월
평점 :
절판


나는 왠지 말이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과 불신을 가지고 있다. 직접 당해본 적도 없으면서 이런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현재 여행기자라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가까운 제 3자의 입장에서 보고 있는 지금. 역시나 생각하는 것은, 여행을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은 여행기자가 되선 안돼. 라는 것. '적당히' 좋아하는 사람만이 여행기자가 되어야 하고, 잘 해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어줍잖은 근거를 들자면, 여행기자는 여행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글자이기는 하지만 여행이 50% 이고 여행 외의 것들이 50% 이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여행만 다닐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에 따른 책임감도 당연히 따라올 뿐만 아니라 자기가 가고 싶다고 해서 그곳을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역시나 경제논리에 좌우되며 사회성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어야만 한다, 라는 생각. 뭐, 마지막 것은 어느 직업인들 다르지 않겠지만 말이다. 호기심은 필수사항이다. 그리고 다가갈 수 있는 재주와 능력도 마찬가지. 결국, 그냥 '기자'인 거다. 어느 기자가 게으른가, 어느 기자가 돌아다니는 것을 싫어하는가, 어느 기자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없는가. 결국, 그저 '여행' 이 전문인 기자일 뿐이다.  

아무튼간에, 어느날 점심시간. 영풍문고 중앙 매대에 서서 눈물을 쥘쥘 흘려버리고 말았다. 때마침 우울했던 그날은, 아무도 구해주지 않았던 그날은, 조병준이 마음을 건드려 버리고 말았다. 애초부터 여행이 좋아보였던 것은 paper 때문이었고, 조병준 때문이었다. PAPER만이 실을 수 있었던 조병준의 글. 감성이 가득한, 개인적인 체험이 가득한 조병준의 글. 그의 여행에 여행지에 대한 정보는 아무것도 없다. 그는 단지, 어느 여행지에서 만난 누군가를 이야기할 뿐이다. 어느 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어느 곳이 얼마나 재미난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어느 가이드북보다도, 그 어느 여행지 영상보다도 그곳으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그게 바로, 여행 에세이 작가의 특징일까. 모두가 이야기하는 한비야. 나는 그녀의 책은 도통 손이 가질 않아서. 그리고 하늘호수... 어쩌고를 쓴 사람의 책 역시도. 그들은 대단한 사람들이지. 너무 대단한 것들을 이야기해서, 딴나라 얘기같다. 여행은, 내가 생각하는 여행은 그런게 아닌가보다. 

조병준의 글을 읽으며 내가 울었던 것은, 내가 그처럼 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을까. 여행지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유럽 지역에서는 쉬울까? 그저 나는 내 한계가 느껴져서 서러웠다. 그는 30이 넘어서 그의 여행을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그에게는 사람을 대할줄 아는 방법과 영어 실력이 있었다. 아냐, 단지 그것만은 아니었을텐데. 단지 그것만은 아닐텐데.  

기자들이 다녀오는 많은 곳들과 그들이 적어오는 글들과 그들이 찍어오는 사진들을 편집하는 일을 하는 나는. 이를테면 여행정보 코디네이터 쯤을 꿈꾸고 있을까? 많은 이들이 객원기자를 꿈꾸며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꺼내놓는다. 가장 많이 꺼내놓는 이야기는, 저는 여행을 좋아하고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다.  

그러니까, 나도 여행을 좋아하고, 글쓰는 것을 좋아하고,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합니다 - 이지만, 그것만이 다가 아님을 너무 확실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여행기자를 꿈꾸지 않는다. 그냥,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 에 머무를 수 있다면, 그리고 실제로 여행을 다닐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겠다. 여행을 많이 다닐 수 있는 것도 행복한 일이겠지만, 내가 원하는 여행을, 내가 행복해하며, 여행의 본질대로 자유롭게 - 다닐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과제로 소설을 썼던 때를 기억한다. 나는 그때 무엇을 쓰든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나는 무엇을 쓰든 그렇게 거짓말같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때 무엇을 쓰든 그렇게 억지스러울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무엇하나 내가 경험한 얘기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설은, 그런것이지. 내가 경험하지 않은, 지어낸 이야기.  
... 그렇지만 나는 내가 경험하지 않는 일을 지어낼 수가 없었다. 고작 상상력의 부족이었을까 ...  
아아, 그래서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대체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햇빛이 내리쬐는 광화문에 서서, 나는 또 생각했다. 골똘히 나에게 침몰할 수 있는, 그런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진심으로...  

누군가 옆에서 이야기하려나? 너는 지금도 충분히, 너한테만 침몰하고 있다고... 후훗_
 
저 너머엔 무지개가, 내게 무언가를 가르쳐 줄 현자가, 그 무엇인가가 있을 것만 같다.
그냥 그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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