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검정 그물 스타킹
이신조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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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안여사에게 종종 한소릴 듣곤 하는 이유는 한번 읽었던 책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인데 ...

이 책 역시도 언젠가 읽었던 책이었든가, 아니면 몇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책의 그 단편만 다른 모음집에 실렸었든가... 했기 때문이겠다. 내가 알고 있었던 단편은 '콜링 유'. 

나는 책 소개에 있어 별로 친절한 편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책의 단편들을 정리나 한번 해볼까 한다. 이렇게라도 정리해두지 않으면 정말 다 잊어버릴 것 같아서. 날이 갈수록 헤매는 이 기억력. 

1. 나의 검정 그물 스타킹

2. 정류장에서 너무 먼 집

3. 9와 1/2 F

4. 거울 여자

5. 산책

6.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7. 콜링 유

8. 오징어

9. 럭키 서울 

이렇게 적어두고 나니 또 어렴풋이 전에 읽은 책이었던 듯한 기억도 난다. 쓸쓸한 책이었다. 희망도 결말도 없는 쓸쓸한 책. 그렇지만 뭔가 깊숙이 개입할 여지는 별로 없었던 책. 그러니까 며칠이 지난 지금 또 그렇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결국 달달하고 사랑스럽고 훈훈한 책을 즐겨하니까. 이렇게 쓸쓸한 책은 금방 잊어버리고 만다. 단순한 내가 살아가는 법칙이라고 변명이나 해두자. 

현대소설 수업시간이었던가. 분명 그 시대에 그 시대를 읽는 소설로 좋은 평가를 받는 작품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소설들의 단점은 그렇게 시기를 반영해버린 만큼, 시간이 지난 후에 읽으면 '후지다'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게 된다. 생명력이 짧다고 해야 할까. '산책'은 현재 아주 훌륭히 번성하고 있는 수 많은 의류, 화장품 브랜드들의 '네임'이 나온다. 쉬크하고 큐트하고 걸리쉬한 그런 브랜드들. 뭐 몇몇은 없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여지없이 갑자기 소설이 뒤떨어져버리는 느낌이랄까. 물론 이 소설은 엘라 피츠제럴드를 좋아하는 엘라와 마루야마 겐지를 좋아하는 좁은방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뭐, 나의 편견일지도. 

역시나 나는 단편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아주 잠시 나타났다가 또 금방 사라진다. 친절하지도 않고 사랑스럽지도 않다. 곰곰히 생각해봐야 하는 이야기들만을 던지는 단편들은 그냥 그렇다. 그래도 콜링유는 내 기억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던 걸 보니 인상깊었던 게다. 아르바이트로 모닝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화자의 이야기. 아, 그냥 쓸쓸하다. 그래도 마지막에 다소 희망을 남겨주었기에 내 기억속에 남았겠지. 그러나 다시 읽으니 그것은 희망도 절망도 아닌, 아니, 희망일 수도 절망일 수도 있는. 애매모호한 중간의 결론. 마치 현실처럼.  

김영하의 평을 옮긴다. 그의 말이 딱 맞다는 생각이 든다.  

"이신조의 소설들은 한 마리 고양이가 쓴 것이다. 콘크리트의 숲에서 살아가는, 이 작고 예민한 짐승은 부드러운 앞발 속에 날카로운 발톱을 감춘 채 도시의 어딘가에서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 짐승의 움직임은 차분하고 때로 민첩하지만 대체로 게으르다. 이 교활한 게으름이야말로 고양이만의 것이다. 그렇게 권태를 가장한 채 세상을 어슬렁거리는 이 고양이에게서 '습격자의 눈동자'를 발견하는 이들은 드물다. 그 '습격자의 눈동자'에 비친 도시는 풍요로우나 가혹하며 익명 속에서 불우하며 무심한 살의로 가득한 곳이다. 그런 세상에서 한 마리 고양이로 살아남을 수 있르까. 우아한 발걸음과 은폐된 적의를 보존하면서도 누구와도 깊고 내밀한 지경을 형성하지 않을 그런 고양이로? 이신조의 소설이 던지는 질문은 그런 것이다. 공동체를 보존하고 세상을 건설하고 소외를 지양하는 일이 애초부터 불가능하다고 믿는 소설. 그것은 분명 고양이의 것이다. " - 김영하 (소설가)  

Thanks 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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