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비상구
이시다 이라 지음, 최선임 옮김 / 지식여행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윤정언니가 추천해준 것은 이시다 이라의 LAST. 어두운 이야기라는, 어디선가 들은 설명에 의해 손이 스멀스멀 가다가도, 다시 돌아온 책. 이번엔 그 옆에 있는 푸른 비상구를 집었다. 책 표지엔 책에 대한 어떤 설명도 없다. 2005년에 나온 책이니만큼, 띠지가 있었을까? 앗, 그러고 보니 뒷면에는 약간의 내용이 있다. 거기엔, 

"누구나 자신에게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불행들과 등을 맞대고 살아가는 법...
하지만 언젠가 거기에서부터 다시 사작한다"
  

라고 씌여있다.  

이 문장은 이 책을 완벽하게 대변하는 글귀다. 이 책은 오묘하게 사람 마음속의 제일 낮은 곳을 파고들어 그것을 끄집어 낸다. 아무도 슬픔을 토로하지 않지만 그들의 행동에는 그들의 아픔이 묻어난다. 티를 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티를 냄으로서 다른 이들이 다치면 그 상처가 배가 되어 자신에게 돌아온다.  

아사다 지로가 착하지만 안쓰러운 구석의 사람들로부터 하얗고 깨끗한 눈물을 이끌어낸다면 이시다 이라는 두 죽먹 불끈쥐고 그게 어쨌단 말이야~ 라며 회한의 눈물을 뚝뚝 흘리게 만든달까 - 어쨌든 이 책만 두고 본다면 조금은 비슷한 느낌이다.  

# 늘 태양처럼 빛나는 친구를 곁에 두고 그 친구가 자신의 친구라는 게 자랑스럽지만, 조금은 질투도 나는 그런 소년. 자신을 밀쳐내고 미치광이 칼잡이에게 죽어버린 친구를 보내지 못해 미쳐가는 소년의 이야기. 

# '히키코모리' 방안에서 나오지 않는 아이들을 일컫는 일본어. 획일적인 학교교육을 비웃다가 (그야말로 비웃다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밖으로 떠도는 소년. 그러다 폐물, 고철을 줍는 아저씨의 일을 돕게 되고 그 아저씨와 인연을 맺는다. 라는 이야기.  

"괜찮아.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유고가 말한 바보스러움, 그건 어른도 똑같이 느끼는 거야. 하지만 바보스러움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것도 바보스럽지. 모두들 주위 상황에 적당히 맞추면서 살아가는 거야. 형씨도 조금만 어른 흉내를 내봐"  

라는 아저씨의 말. 그 말을 잇는 저자의 '참견'은  

온몸에 내리쬐는 석양은 온화한 온기를 남겼다. 창밖으로 펼져쳐 있는 건물 하나하나에 각각의 삶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라는 것.

# 푸른 비상구. 지하철에서 일부러 뛰어내려 한쪽 다리를 잃어버린 외아들 기요코. 방에서 나오지 않다가 내선으로 부모를 부르고, 늘 짜증과 심술로 괴롭힌다. 아버지는 모든걸 감내하며 퇴직을 권고하는 회사의 처치에도 불구하고 굴하지 않으며 꿋꿋하다. 어느날 한쪽 다리 밖에 없는 사람이 물 속에 있는 장면을 찍은 포스터를 보고 다이빙에 빠진 외아들. 빚을 내서라도 다이빙을 시켜야 하는 아버지, 의 이야기. 

# 남편이 다른 여자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 죽고, 두 아이를 키워야 하는 엄마.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지만 큰 아들 아이가 갑자기 귀가 안들리는데... 병원에서 마주친, 말을 할 수 없게 된 여자아이의 엄마와 친해져 그 가족의 나들이에 초대를 받는다. 그 곳에서 일어나는 신기한 이야기. 

# 초보 모터크로서 쇼헤. 초등학생들과의 경기에서도 져버리는 초보가 늘 그를 지켜보던 한 여자의 코치로 인해 한달만에 초등학생들을 이긴다. 그 여자에게는 비밀이 있다.  

# 활달한 아들이 갑자기 뇌종양에 걸린다. 더불어 아버지는 뇌출혈로 쓰러지고... 힘든 상황에서 서로 지탱해야 하는 가족들의 이야기. 

# 독신 사진가 구니히로, 좋아하는 한 그루의 벚꽃을 담는 순간 나타난 그녀. 그가 누군지 이미 그녀는 알고 있다. 다가오는 그녀에게 숨겨져있는 사연은 뭘까?

이력을 봤더니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의 저자다. 그닥 나랑 코드가 맞지는 않았던 인기 드라마. 어찌보니 얼핏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사람은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고, 서로가 가진 상처를 비비며 살아간다. 일까? 상처받을수록 닫히는 마음을 열어줄 사람은 꼭 그 사람이 아니면 안되는 많은 날들과 많은 시간들을 견뎌내며 그 사람을 기다리는 것일까? 우연히, 그 결정적인 시기만 그려낸 이시다 이라. 기다리세요, 그러면 언젠간 상처를 쓰다듬어줄 수 있을 거에요. 라는 것일까?  

보다 현실적인 감각으로 글을 써내는 이 사람. 더 볼까 말까 햇갈린다.  

어찌됐든, 한번에 읽어내려갔으니, 흡입력이 있는 작가.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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