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중지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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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명상, 삶에 대한 명상, <죽음의 중지> (주제 사라마구, 해냄,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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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사라마구가 2005년에 쓴 책이 번역되어 나왔다. 한국 최고의 번역가 정영목이 맡았다.(중역이긴 하지만.)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 (11쪽) 

그리고 마지막 문장 역시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 (279쪽)

로 끝맺는다. 

줄거리는 짧게 요약해야 한다. 왜냐하면 세세한 긴 이야기는 철학적 성찰을 제공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에서 죽음이 멈추었다. 죽음이 중지하자, 장의사들, 보험업자들, 병원 등이 타격을 입는다.
어느 누구도 죽지 않기에 혼란은 가중된다.
꼭 죽어야만 하는 사람들, 예를 들어 죽음 직전의 가족을 둔 빈민층들은 곤란에 빠진다.

이들은 국경 너머로 데려가 죽음으로 '인도'한다. 이를 두고 살인이냐 아니냐 논란이 벌어진다.
또한 '죽음으로의 인도'가 마피아와 국경수비대의 비호와 짝짝꿍 아래 이권사업이 된다. 

이러한 비즈니스 말고도 국가는 일대 혼란이 벌어진다. 죽어야만 하는 모후는 죽지 않는다.
인구는 급속하게 늘어난다. 죽지 않는 사람들을 먹여 살려야만 한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전하, 우리가 다시 죽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습니다...무슨 일이 일어나 주어야겠군. 그렇습니다. 전하. 무슨 일이 일어나 주어야 합니다. (116쪽)

 
그러다 다시 죽음이 시작된다. 기다리던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다.
여기서부터 주제 사라마구는 '죽음'을 의인화 한다.
'죽음'씨는 죽음 일주일 전 편지로 통보하는 형식으로 다시 죽음을 재개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러자 또다시 혼란이 벌어진다. 

대학살보다 훨씬 심각했다. 죽음의 일방적 휴전이 지속되던 일곱 달 동안 죽음 직전에 이른 대기자 명단은 육만 명이 넘었다.(143쪽)
 

그렇지만 만족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는 세워지지 않는다.  

죽음은 어느날 '죽음 통보 우편'이 반송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49세의 첼리스트.
그러자 죽음은 '여성'으로 변장하여 그를 찾아간다. 그리고 '죽음' 자체는 그와 함께 잠자리에 들며 소멸한다.
'죽음'이 잠들자 다음날 '죽음'은 또다시 중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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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죽음을 맞이했을 때 모두가 경건하게 죽음을 애도하고 삶을 돌아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의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다가오지는 않는 법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세력들, 즉 마피아, 병원, 정부, 언론, 성직자, 장의사협회, 빈민층, 외국 등은 모두가 죽음의 중지에 똑같이 반응하지는 않는다. 사업의 손익계산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하나의 계기이다. 그런데 그 죽음이 계속 되다가 '중지' '재개' '재중지'의 과정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사회적 세력들의 수만큼 복잡했던 죽음에 대한 자세는 또다시 일대 혼란의 혼란을 거듭하게 되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일대 혼란이 벌어진다. 사람들에게 어쩌면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과 같은 것. 바로 '죽음의 중지'가 이러한 혼란을 일으킨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하다.
불로초는 진시황만이 먹어야 하는 것이지 중생들이 먹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죽음이 첼리스트를 '사랑하는 것'인지는 분명히 묘사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죽음은 첼리스트에게 집착한다. 그 집착은 결국 죽음 자체의 소멸을 불러온다. 죽음씨가 마지막에 '잠이 드는 것인지, 죽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어쨌든 죽음은 멈추었다. 

주제 사라마구의 전작들처럼 그는 불특정 다수들에게 어마어마한 사건을 짊어지운다. <-자들의 도시> 시리즈 외에도 <돌뗏목>과 같은 책도 익명의 사람들에게 어떤 사건을 부여하고 이에 대한 대응을 세세하게 그려 나간다.

주제 사라마구는 마르케스(백년동안의고독), 보르헤스와 더불어 세계3대 작가이자 환상적 리얼리즘을 대표한다.
그의 명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읽는 이로 하여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어떤 충격이다.

우리가 살면서 그 사람의 인생이나 방향을 잡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책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예를 들면,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 맑스의 <공산당 선언> 등. 어떤 이들에게는 주제 사라마구의 책들이 매우 큰 영향을 미칠 것임에 틀림 없다.   

<죽음의 중지>는 주제 사라마구의 비교적 최근의 책이다. 

거의 20년동안 포르투갈 공산당 활동만 하다가 다시 문필을 시작한 주제 사라마구는 아흔이 다 되어감에도 불구하고 생생하고 녹슬지 않는 필력을 가지고 있다.(칠레의 소설가 루이스 세풀베다 역시 좌파활동을 꾸준히 해 온 사람이다. 남미 및 이베리아 문학의 힘이다.)

지금 나는 그의 저서 <돌뗏목>도 읽고 있다. 2008년작 <코끼리의 여행>의 번역본 출간도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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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남자
폴 오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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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반납해야 되기 때문에 먼저 읽지는 않았지만

기록을 해두어야겠다.

 

 

따뜻한 노인의 시선, 폴 오스터 <어둠 속의 남자>

 



폴 오스터가 쓴 <어둠 속의 남자>(2008)는 불행과 고단한 삶, 심지어 고통의 역사를 담고 있지만

생각보다는 매우 따뜻한 메세지를 담고 있다.

 

전체적인 구조는 역자가 말하듯이 <아라비안나이트>를 닮아 있었다.

틀 속의 틀, 그림 속의 그림과 같은 구조. 즉 액자구조의 형식.

 

주인공 '오거스트 브릴'은 가공인물 '오언 브릭'을 통해 하나의 픽션을 완성해 나간다.

작자 폴 오스터까지 합치면 삼중 구조인 셈이다.

 

이러한 삼중 구조가 나타내는 것은 바로 철학자 '조르다노 브루노'의 다중 리얼리티(multi reality) 개념이다.

 

현실이라는 것은 단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야. 많은 현실이 있는 거야. 단 하나의 세상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세상이 있는데 그것들이 서로 평행하게 달리고 있어...각 세상은 다른 나라에 가 있는 누군가가

꿈꾸고 상상하고 저술하는 바 그대로의 세상이라고. 각각의 꿈꾸고 상상하고 저술하는 바 그대로의 세상이라고.

 

즉, 이러저러한 아픔을 간직하고, 사별한 노인 '오거스트 브릴'은

잠이 안올 때마다 이야기를 상상하곤 한다.

그 이야기 속 주인공이 '오언 브릭'이며 주인공은 미국의 2차 내전 상황에 빠져든다.

그리고 '오언 브릭'은 이 전쟁을 창시한 작자, 즉 '오거스트 브릴'을 살해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왜 주인공 브릴은 가공 인물 브릭에게 이러한 기괴한 임무를 부여한 것일까?

 

그는 이 세상을 발명하지 않았어. 오직 이 전쟁하고 브릭 자네만을 발명했지. 이걸 이해하지 못하겠나?

이건 자네의 이야기지.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그 노인은 말이야. 자기 자신을 죽이려고 자네를 발명한 거야.

(98쪽)

 

 

'임꺽정'에게 홍명희를, '장길산'에게 황석영을 살해하라는 명령과 같다.

 

2차 내전 상황을 그린다는 점에서 이 책은 <에코토피아>와 닮아 있다.

<에코토피아>에서 연방에서 탈퇴하고 독립한 주들이 세로 생태적인 나라를 건설한다. 

마찬가지다. 연방주에서 분리한 주들은 내각제로 운영되고, 연방주의 대통령은 조지 W.부시이다.

분리 독립주들은 뉴욕 주, 뉴햄프셔, 버몬트, 매사추세츠, 코네티컷, 뉴저지, 펜실베니아 주 등이다.

 

폴 오스터는 이러한 2차 내전 상황을 바로 '이라크 전쟁'에 비유하고 있다.

 

바로 주인공 '오거스트 브릴'의 불쌍한 손녀 카티아의 애인인 타이터스가 이라크 전쟁에 전쟁용역업체 직원으로

참전하면서 발생하게 되는 비극적 결말은 이 책의 전제가 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계속 굴러가기만 한 '괴상한 세상'에 대해

폴 오스터는 오거스트 브릴을 통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오거스트 브릴을 입을 통해 폴 오스터가 말해주고자 하는 것은

단지 참혹함 만이 아니며, 통제불가능한 불행만은 아니다.

폴 오스터가 말해주는 바는 소설 속 소개된 것처럼, 또 영화 도쿄이야기의 시아버지의 말처럼 ,

"행복해지기를 바래"(109쪽)라는 축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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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다리로 가자면.

 

할아버지 브릴이 첫번째 부인 소니아와 이혼 후 다시 재결합하는 과정에서

소니아가 브릴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살림을 합치기를 원하지 않았다는 부분이 나온다. 

 

KBS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배종옥과 김갑수를 닮아 있다.

배종옥도 김갑수의 집요한 설득에도 불구, 이전의 관계를 완전하게 회복하지는 않는다.

 

나(브릴)는 매해 그녀의 생일 때면 그녀에게 청혼을 했어.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암호문, 혹은 그녀가 다음 생일까지 나를 믿어도 좋다는 징표 같은 거였어.(219쪽)

 

곧이곧대로 말을 들으면 안된다. 관계는 말에 우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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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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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 없는 길을 간다!  <더 로드 the Road>(코맥 매카시,2008, 문학동네)

 

양솔규 블로그 : http://blog.naver.com/dohwasun

 

 

지루하다. 아버지와 아들의 기나긴 여정은.

식인의 추적을 피해 가고자 하는 고단한 여정은 당연히 조우를 배제한다.

 

아버지와 아들은 완전히 파괴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인 탈출을 감행한다. 그러나 그 탈출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지 못한다.

막연히 남쪽, 바다를 상상할 뿐이다.

하지만 그 바다는 최종적으로 검은 절망을 안겨준다.

아버지는 죽는다.

아들은 살아남아 다른 어느 가족과 다시 여정을 시작한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은 최근의 영화와 소설 등에서 다루는 '파괴 이후'를 다루는 그 흐름에 같이 서 있다.

 

영화 <해프닝>,<나는 전설이다> 등과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와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더이상 80-90년대 식으로 세상의 종말을 막고자 하는 과정을 영웅을 등장시켜 그리지 않는다.

역자가 지적하듯이 <더 로드> 역시 배경이 세계가 완전히 파괴되는 '과정 자체'가 아니라, 파괴된 '이후'의 세계이다.

무엇이 이러한 끔찍한 묵시록적 상황을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러한 '과감한 생략'이 우리에게 부여하는 바는 과거미래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다.

 

그 결말 역시 희망적으로 말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른다. 이 책의 결론, 식인을 하지 않는, 어린 아이들을 포함한 가족을 만난다는 이유만으로 희망을 말할 수는 없다. 마치, 영화 <미션>에서 탈출을 감행하는 원주민 아이들로 제국주의에 대한 '희망'을 얘기하는 것은 부족한 것과 같다. 더군다나 이 새로운 가족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역시 불명확하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길에서 만난 노인이 말한다.

 

이런 때에는 말을 적게 할수록 더 좋은 거요. 무슨 일이 일어났지만 우리가 살아남아 길에서 만난 거라면 우리는 할 말이 있을 거요. 하지만 우린 살아 남은 게 아니오. 그러니까 우린 할 말이 없소.(195쪽)

 

바로 이것이 파괴된 세계의 진정한 비극이다. 살아 남았으되, 살아 남은 것이 아니라는 점.

주제 사라마구의 <죽음의 중지>는 이 문제에 대해 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쨌든 2005년과 2006년 1년 상간으로 나온 현 시대를 대표하는 미국의 작가와 포르투갈의 작가가

완벽하게 이러한 문제에 대해 공통적으로 인식한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침내 우리가 모두 사라지면 여기에는 죽음 말고는 아무도 없을 거고 죽음도 얼마 가지는 못할 거요. 죽음이 길에 나서도 할 일이 없겠지. 어떻게 해볼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죽음은 이럴 거요. 다들 어디로 갔지? 그렇게 될 거요. (197쪽)

 

 

주제 사라마구나 코맥 매카시가 보여주는 바는 소설의 스케일이 단순히 책의 두께나 등장인물의 수로 켜켜이 쌓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소설이 상상력의 산물인 만큼, 독자의 상상력과 작가의 상상력이 만나 발휘되는 증폭되는 것 같다. 또한 소재의 묵직함 역시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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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은 후 영화 <더 로드>를 보았다.

책 표지에 등장인물 사진이 있었기 때문에 상상한 정도의 그림이 나왔다.

아버지 역할을 맡은 '비고 모르텐슨'은 체중감량과 수염 때문에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반지의 제왕>에 나온 아라곤이더라.

요즘 읽고 있는 주제 사라마구의 <돌뗏목>에 보니, 아라곤은 또한 스페인의 북동부 지방 명칭이기도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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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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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감 <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 / 알랭 드 보통 

 

얼마 전 교보문고에 갔다가 본
'알랭 드 보통'의 <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가 누나 집에 놓여 있다.
맵싸한 겨울 바람을 이겨내고 누나 집에 오자 책이 있다.
빵집아저씨가 줬나보다.

 이 책은 알랭 드 보통이 영국 런던의 항공 허브인 '히드로 공항'에서 일주일동안 취재를 한 결과물이다.

책의 한 쪽엔 공항에서 벌어진 사진, 책의 다른 한 쪽엔 취재글이 놓여 있다.
다시 말하면, 총 200쪽 중 사진 100쪽, 글 100쪽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쉽게 술술 넘어간다.
마치 공항을 지나치는 여행자들의 발걸음처럼 말이다.
책으로 보는 영국판 <다큐멘터리 3일> 정도라고나 할까? 

이 책은 마치 여행자의 시간적 흐름을 쫓아가듯 구성되어 있다.

1. 접근, 2. 출발, 3. 게이트 너머, 4. 도착

 그러나 다시 발걸음은 공항으로 이어지게 된다...
역자 정영목은 그러나 그 것이 단순한 환원이 아니며, '상승 나선운동'이라 정의한다.
그리고 저자는

"우리는 점차 행복을 이곳이 아닌 다른 곳(예를 들어 프랑스)과 동일시하는 일로 돌아간다...
(다시)우리는 짐을 싸고, 희망을 품고, 비명을 지르고 싶은 욕구를 회복한다.
곧 다시 돌아가 공항의 중요한 교훈들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만 하는 것이다"
(205쪽)

라고 말한다.

하지만, 다시 우리는 현실, 즉 발딛는 곳으로 또다시 올 것이다. 
지금 발레오 공조 노동자들은 먹튀자본과의 투쟁을 위해 프랑스에 가 있다.
CFDT를 비롯한 프랑스 노동조합들이 결합했다고 한다. 국제연대의 정신이다.
그들은 다시 파리 드골 공항을 통해, 혹 또다른 나리타공항 등을 추가로 경유해서 귀국길에 오를 지 모른다.
수많은 사연들이 공항에 있다. 그들에게 출국과 귀국은 어떤 의미일까?
결단이다. 삶의 진전을 위한 결단, 가족의 행복을 위한 결단이었을 것이다.
 

"결단의 전조로서의 여행이라는 개념은 한때 종교적 순례의 핵심적인 요소였다.
순례는 내적 진화를 촉진하고 강화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 모든 것이 이 답사를 쉽게 잊지 못하도록 도와주는 시련에 불과했다.
(201쪽)

 
그 뿐만이겠는가? 이주 노동자의 피눈물나는 귀향이 있고,
사랑하는 연인의 애닮은 이별이 있고,
부모 자식간 이별과 만남이 있을 것이다.
바로 '각 사람의 지위와 그에 따른 불안'이 드러나는 곳이다.
 

"터미널이라는 살아 있는 혼돈의 실체에 비하면 책이란 얼마나 얌전하고 정적인 것이냐"
(83쪽)

라고 저자는 반문한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가 네로 황제를 위하여 쓴 '분노에 관하여'라는 논문,
그 중에서도 특히 분노의 뿌리는 희망이라는 명제가 떠올랐다.
(57쪽)

 
이 글을 보며 소위 87년의 항쟁과, 87년 노동자대투쟁의 발생 원인을 생각하게 한다.
분노의 뿌리인 '희망'이 그 시대엔 응축되고 폭발력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과연 지금의 20대들, 소위 88만원 세대들에게 희망이란 존재하는가?
위의 명제를 뒤집으면 '희망이 없으면 분노도 없다'가 된다.
희망은 단순한 개인 감정의 창조물이 아니라, 사회적 과정의 결과이다.
역설적이다. 희망은 지극히 주관적 감정이지만 사회 속 형성을 거쳐여만 하기에 그렇다.

 
"예수는... 가장 축복받은 존재였음에도 지상에 사는 동안 내내 가난했으며...
올바름과 부 사이의 직접적인 등식을 배제하는 것... 능력주의에 따른 특권의 설명에 흠집을 내는 것"
(129쪽)
 

이것이 대한민국 국민들, 돈 없어 공부 못하는 10대와 자율사립고,
비싼 등록금에 좌절하는 대학생과 유학가는 자녀들간의 간극에 대한 저자의 분명한 설명이다. 
 

이 책에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상품사슬과 노동력사슬, 공장식 패스트푸드의 기내식 도입도 보여준다. 

"터미널에서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스위스 회사 게이트 구르메 소유의 창문이 없는 냉각된
공장에서는 방글라데시와 발트 해 연안의 여러 나라들에서 온 여자들이 15시간 이내에
대류권 어딘가에서 먹게 될 아침,점심,저녁 8만 개를 만들고 있었다.
대한항공은 소고깃국을 내놓을 것이고, 일본항공은 연어 데리야끼, 에어프랑스는 당근 퓌레를 깔고 그 위에 치킨 에스칼로프를 깔아 내놓을 것이다.
(135쪽)

 

하지만, 주로 생존을 위해 노동력을 '옮겨와 정주하며 파는' 사람도 있지만,
주로 실현(어떤 실현인지는 다양하겠지만)을 위해 노동력을 '옮겨야만 하는 사람도 있다.
 

"밤이면 공항은 유목민의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들의 본거지가 된다.
어떤 한 나라에 헌신할 수 없는 사람, 전통을 보면 뒷걸음질치고 안정된 공동체를 수상쩍게 여기는 사람,따라서 다른 어느 곳보다 현대 세계의 중간지대에서, 등유 저장 탱크, 비즈니스 파코, 공항 호텔로 인해 풍경이 상처를 입은 곳에서 오히려 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다."
(157쪽)

 

사실 풍경이 상처를 입은 곳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이러한 노마드적 삶만이 아니다.
발터 벤야민을 비롯한 도시 관찰자들은 근대 대도시들의 삶의 성격을
바로 이와 같이 묘사한 것이다.
그것의 글로벌 축소판이 바로 공항인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도 구획은 분명하다.
히드로 공항에 도착한 후 사람들이 접하는 최초의 장벽아닌 장벽은
영국인/비영국인, 영어권/비영어권, 유럽/비유럽의 장벽이다. 

"권력은 이곳에서 자신만만하다. 출생이라는 우연에 의해서 특권을 누리며
이곳을 비켜가는 사람들에게는 삼가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만큼 자신이 있다."
(179쪽)

 저자가 말하듯이 "화성인이 온다면 구경시켜 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장소가 공항"인 이유는
그곳이 바로 글로벌 자본주의의 가장 발전된 모습을 응축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생산과 유통, 소비의 적나라한 모습이 바로 공항에서 구현된다.
때론 화려해보이나 슬픈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공항 그 자체도 글로벌 자본주의의 경쟁하는 자본이기도 하다.

베이징 공항, 카타르 도하 공항, 그리고 이 책의 배경인 히드로 공항,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 등이
현재 벌이고 있는 유래없는 대규모 확장공사는 바로 유통 허브로서 시장력을 넓히기 위한
자본의 경쟁 그 자체인 것이다. 

200쪽에 글로벌 자본주의의 축소판을 100장의 귀한 사진과 함께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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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암과 진보당 - 한 민주사회주의자의 삶과 투쟁 커리큘럼 현대사 3
정태영 지음 / 후마니타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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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도민일보 - 책이 희망이다 2009.7.31> 

조봉암과 진보당 - 한 민주사회주의자의 삶과 투쟁

정태영 / 후마니타스 / 19,000원

죽산 조봉암 서거 50주기를 기리며



최근 각계에서는 한국 진보정당운동의 선구자인 죽산 조봉암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 움직임이 활발하다. 비운의 정치인인 조봉암과 ‘진보당’이 외쳤던 ‘민주주의’, ‘민주적 사회주의’, ‘평화통일’은 당시에는 매우 불온한 슬로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해방 이후 사회(민주)주의자의 입장을 갖고 서구적인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했다. 또한 1956년 5월 15일 치러진 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220만표(23.8%)라는 놀라운 지지를 얻기도 했다. 이러한 지지세를 모아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진보정당인 ‘진보당’이 창당되었다.

하지만 그의 존재 자체가 눈엣가시였던 이승만 정권은 조봉암과 ‘진보당’에게 북한의 지령에 의해 활동했다는 누명을 씌운다. 구실로 삼은 것은 이승만의 ‘무력통일론’에 반대되는 ‘진보당’의 ‘평화통일론’이었다.

1959년 7월30일, 변호인단이 올린 대법원 항소는 기각되었고, 하루만인 7월 31일 죽산 조봉암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조봉암과 함께 활동을 해 온 저자는 2006년 7월 31일 47주기에 이 책을 발간했으며, 오늘은 그가 사형된 지 50주기이 되는 날이다.



“이 박사는 소수가 잘살기 위한 정치를 했고 나와 나의 동지들은 국민 대다수를 고루 잘살게 하기 위한 민주주의 투쟁을 했다. 나는 이 박사와 싸우다 졌으니 승자로부터 패자가 이렇게 죽음을 당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내 죽음이 헛되지 않고 이 나라의 민주 발전에 도움이 되기 바랄 뿐이다.”



죽산 조봉암이 남긴 유언이 50년의 세월을 넘어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양솔규 (진보신당 경남도당 정책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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