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중지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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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명상, 삶에 대한 명상, <죽음의 중지> (주제 사라마구, 해냄,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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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사라마구가 2005년에 쓴 책이 번역되어 나왔다. 한국 최고의 번역가 정영목이 맡았다.(중역이긴 하지만.)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 (11쪽) 

그리고 마지막 문장 역시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 (279쪽)

로 끝맺는다. 

줄거리는 짧게 요약해야 한다. 왜냐하면 세세한 긴 이야기는 철학적 성찰을 제공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에서 죽음이 멈추었다. 죽음이 중지하자, 장의사들, 보험업자들, 병원 등이 타격을 입는다.
어느 누구도 죽지 않기에 혼란은 가중된다.
꼭 죽어야만 하는 사람들, 예를 들어 죽음 직전의 가족을 둔 빈민층들은 곤란에 빠진다.

이들은 국경 너머로 데려가 죽음으로 '인도'한다. 이를 두고 살인이냐 아니냐 논란이 벌어진다.
또한 '죽음으로의 인도'가 마피아와 국경수비대의 비호와 짝짝꿍 아래 이권사업이 된다. 

이러한 비즈니스 말고도 국가는 일대 혼란이 벌어진다. 죽어야만 하는 모후는 죽지 않는다.
인구는 급속하게 늘어난다. 죽지 않는 사람들을 먹여 살려야만 한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전하, 우리가 다시 죽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습니다...무슨 일이 일어나 주어야겠군. 그렇습니다. 전하. 무슨 일이 일어나 주어야 합니다. (116쪽)

 
그러다 다시 죽음이 시작된다. 기다리던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다.
여기서부터 주제 사라마구는 '죽음'을 의인화 한다.
'죽음'씨는 죽음 일주일 전 편지로 통보하는 형식으로 다시 죽음을 재개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러자 또다시 혼란이 벌어진다. 

대학살보다 훨씬 심각했다. 죽음의 일방적 휴전이 지속되던 일곱 달 동안 죽음 직전에 이른 대기자 명단은 육만 명이 넘었다.(143쪽)
 

그렇지만 만족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는 세워지지 않는다.  

죽음은 어느날 '죽음 통보 우편'이 반송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49세의 첼리스트.
그러자 죽음은 '여성'으로 변장하여 그를 찾아간다. 그리고 '죽음' 자체는 그와 함께 잠자리에 들며 소멸한다.
'죽음'이 잠들자 다음날 '죽음'은 또다시 중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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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죽음을 맞이했을 때 모두가 경건하게 죽음을 애도하고 삶을 돌아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의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다가오지는 않는 법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세력들, 즉 마피아, 병원, 정부, 언론, 성직자, 장의사협회, 빈민층, 외국 등은 모두가 죽음의 중지에 똑같이 반응하지는 않는다. 사업의 손익계산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하나의 계기이다. 그런데 그 죽음이 계속 되다가 '중지' '재개' '재중지'의 과정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사회적 세력들의 수만큼 복잡했던 죽음에 대한 자세는 또다시 일대 혼란의 혼란을 거듭하게 되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일대 혼란이 벌어진다. 사람들에게 어쩌면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과 같은 것. 바로 '죽음의 중지'가 이러한 혼란을 일으킨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하다.
불로초는 진시황만이 먹어야 하는 것이지 중생들이 먹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죽음이 첼리스트를 '사랑하는 것'인지는 분명히 묘사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죽음은 첼리스트에게 집착한다. 그 집착은 결국 죽음 자체의 소멸을 불러온다. 죽음씨가 마지막에 '잠이 드는 것인지, 죽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어쨌든 죽음은 멈추었다. 

주제 사라마구의 전작들처럼 그는 불특정 다수들에게 어마어마한 사건을 짊어지운다. <-자들의 도시> 시리즈 외에도 <돌뗏목>과 같은 책도 익명의 사람들에게 어떤 사건을 부여하고 이에 대한 대응을 세세하게 그려 나간다.

주제 사라마구는 마르케스(백년동안의고독), 보르헤스와 더불어 세계3대 작가이자 환상적 리얼리즘을 대표한다.
그의 명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읽는 이로 하여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어떤 충격이다.

우리가 살면서 그 사람의 인생이나 방향을 잡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책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예를 들면,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 맑스의 <공산당 선언> 등. 어떤 이들에게는 주제 사라마구의 책들이 매우 큰 영향을 미칠 것임에 틀림 없다.   

<죽음의 중지>는 주제 사라마구의 비교적 최근의 책이다. 

거의 20년동안 포르투갈 공산당 활동만 하다가 다시 문필을 시작한 주제 사라마구는 아흔이 다 되어감에도 불구하고 생생하고 녹슬지 않는 필력을 가지고 있다.(칠레의 소설가 루이스 세풀베다 역시 좌파활동을 꾸준히 해 온 사람이다. 남미 및 이베리아 문학의 힘이다.)

지금 나는 그의 저서 <돌뗏목>도 읽고 있다. 2008년작 <코끼리의 여행>의 번역본 출간도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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