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국가 - 노동 희소 사회, 알바 공화국을 위해
우석훈 지음 / 레디앙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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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희소 사회를 맞는 우리의 자세


천만국가/ 우석훈 / 레디앙 / 202411

양솔규 노동사회교육원 운영위원

 

출처 : 부산노동권익센터 <부산 노동자와 동행하다> Vol. 30 (2025.12.)

 


이틀 전 인상적인 뉴스가 여러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작년 12.3 계엄령이 내려지자 비상계엄 선포에 반대하는 시국선언문을 작성하고, ‘동료학생’ 577명의 서명을 끌어내었던 용인외대부고 학생회장이 하버드대학교에 합격했다는 뉴스다. 내가 주목한 것은 국내파의 하버드대 합격이라든가, ‘용기있는 시국선언이 아니다. 합격 소감을 묻는 말에 한국의 다문화와 저출산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싶다고 답한 그의 패기이다.


20여 년이 넘는 동안 정부는 물론, 지자체와 정당, 정치인 모두 나서 저출생 대책을 내세워 봤지만, 가시적 성과는커녕 실패만 거듭했다. 이제는 대답을 회피하거나 주먹구구식 대책만 반복하고 있다. 난공불락의 문제를 고등학생이 장차 해결해 보겠다니, 그 패기에 미안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성덕선과 그 친구들, 정환이, 선우, 택이 모두 돼지띠 1971년생들이다. 이들이 태어난 1971년 신생아수는 자그마치 102만 명이나 되었다. 합계출산율 4.54.(합계출산율이란 여성 1명이 가임 기간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다.) 합계출산율이 2.1명 미만일 경우, 외부에서 이민자가 없으면 장기적으로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한다. 합계출산율이 1.3명 미만일 경우, 외부에서 이민자가 없으면 장기적으로 인구가 상당히감소한다. 이를 각각 저출산, 초저출산이라 부른다. 서울시 성평등 언어사전에 따르면, ‘저출산이라는 용어가 출산율 저하의 책임을 아이를 낳는 주체인 여성에게 떠넘긴다면서 저출생이라는 용어로 바꿔 부를 것을 제안한다. 아무튼 2024년 현재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48명이다. 충격적인 것은 서울은 0.581, 부산은 0.683으로 제1, 2의 도시가 평균보다 더 밑돈다는 것이다. 부동산 가격 상승과 이로 인한 경기도 인구 적체 등은 서울의 고령화와 보수화와 함께 초저출산율을 낳고 있고, 부산은 청년 인구층 유출로 노인과 바다다운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1차 베이비붐 세대(60~67년생)와 제2차 베이비붐 세대(68~74년생), 70년대 중후반기 출산률 감소세대(75~77년생), 2차 베이비붐세대와 에코베이비붐 세대의 중간세대(78~82년생, 전후세대들의 자녀세대)가 지나면서 본격적인 저출산 세대가 시작된다. 저출산 1세대(83~90년생: 60만명 대) 이후 일시적인 제3차 베이비붐 세대(91~94년생: 71만명 대)가 있기도 했지만, 저출산 2세대(95~99년생 60만명 대), 밀레니엄 베이비붐세대 (2000~2001년생: 63, 55만명) 이후 저출산 3세대(2002~2007년생)에 이르러서 40만 명 대로 떨어지고 말았다.



2016년 발간된 인구학자인 조영태 교수의 정해진 미래는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인구학적 관점을 대중적으로 널리 확산시켰다. 더구나 이즈음부터 합계출산율은 1.1~1.2를 기록하면서 인구축소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던 시기였다. 아니나다를까 2017, 2018년 출생아수는 35만 명, 32만 명으로 떨어졌고, 2020년에는 27만 명으로 떨어진다. 지금의 초저출생 문제의 심각성은 출생아수가 이전에 비해 너무 적다는, ‘규모의 문제도 있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감소의 속도가 빠르다는 데 있다.


2016년 당시 조영태 교수는 산업의 구조와 사회변동을 일단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몇 가지 제안을 한다. 첫째 다문화주의 이면의 순혈주의를 지우라고 권고한다. 두 번째로 인구대책을 복지차원을 넘어 투자의 개념으로 접근하자고 한다. 준만큼 받아가는 복지가 아니라, 국가가 먼저 고용주거등에 선제적으로 투자해 선순환 구조의 기초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작고 안정적인 한국을 준비하기 위해 사교육비 같은 불필요한 자원 소비를 최소화하고, ‘후속 세대의 질적 성장을 위해 기업이 당분간 희생해야 한다고 본다. 세 번째로 출생아 수 45만 명을 유지하자고 제안한다. 2002년 이후 15년 넘게 출생인구가 40만 명대였다며, 앞으로 10년 동안 40만 명 대를 유지한다면, ‘인구변동이 아니라 안정적 인구유지를 실현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255) 그러나 그의 제안과는 반대로 2020년대의 출생아수는 20만 명대로 떨어지고 만다.


88만원 세대의 공저자 우석훈 박사는 천만국가에서 연간 10만 명이 태어나고 기대수명이 100년인 조건이 장기간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한국의 최종인구수는 1천만명 정도 된다면서 잠재인구 천만국가를 가정한다. 스웨덴(1050만 명)이나 스위스(885만명) 정도의 인구수로 축소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저자도 출생아수 급감이 곧 총인구수의 드라마틱한 감소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라 본다. 다만, 1천만 명이라는 숫자가 인구감소의 심각성을 보다 부각시켜 줄 수 있다고 본다. 저자는 스웨덴이나 스위스와 같은 나라들도 인구수는 적지만 강한 산업적 전통과 풍부한 문화다양성을 지켜나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들이 강소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인구의 절대적 숫자보다 안정적 유지에 있다. 반면 한국의 인구소멸의 급격한 속도는 예견되는 시장축소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과 역량을 소거한다. 그렇기 때문에 급격한 변동에 브레이크를 걸고 장기간의 안정기를 되찾아야 하는 것이다.


한국은 오랫동안 노동에 비해 자본이 부족한 자본 희소 사회였다. 노동력은 넘쳐났고, 대량투입, 대량생산이 당연시되었다. 그러면서 사람을 막 대하는 문명이 만들어졌다. 돈은 적게 주고, 일은 많이 시키고, 사람을 함부로 대하며 필요 없으면 버리고 가는 문화 말이다.

IMF 이후 심각해진 양극화-저성장은 경쟁을 가속화시켰다. 사람들은 결혼, 출산, 육아 보다는 당장의 생존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일자리가 몰려 있는 수도권으로 지방의 청년들은 대거 이동했다. 수도권 부동산 가격은 폭등했고, 강남불패-학벌사회는 공고해졌다. 성별로 분할된 고용조건, 노동조건 역시 우리 사회의 특징 중 하나다. 학령인구가 줄었는데도 학교에서의 경쟁은 점점 더 강화되었다. 급기야 4세 고시, 7세 고시, 영어유치원 등, 영유아 사교육비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의 어린이·청소년 주관적 행복지수는 2024OECD 조사대상 22개국 중 최하위이다. 가정과 학교에서 행복하지 않은 청소년들이 성인이 된 후 행복한 가정을 꾸릴 동기를 갖게 될까? 여성들은 어떤가? 최근 5년 간 우울증 진료건수는 20대 여성, 30대 여성이 다른 세대, 남성들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높았으며, 증가 추세 또한 압도적이다. 가임기 여성들의 처지는 성차별적 고용경제 구조 속에 놓여 있다. 저자는 차별 받고, 고통 받을 확률이 높은 환경에서 자녀를 출산하고 싶은 부모가 있을까?”라고 묻는다.




극우주의자 아베도 죽기 전 “1억 총활약 플랜을 추진하면서 인구 1억 명 유지(12천 인구에서 후퇴하더라도)를 위해 비정규직 임금 끌어올리기,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보육시설 확충, 고령자 요양원, 정년연장 등을 추진했다. 국힘-민주 집권이 반복되었지만 상황은 그대로이다.

스웨덴이나 프랑스 등 유럽의 정체된 출산율이 더 높아진 것은 육아의 사회화, 공보육제도 확충, 출산과 양육에 대한 지원 등 때문이다. 덴마크 출신의 사회학자 요스타 에스핑-안데르센(Gøsta Esping-Andersen)끝나지 않은 혁명이라는 책을 통해 초저출산율을 보이던 스웨덴 등 스칸디나비아와 서유럽 나라들에서 다시 출산율이 반등하는 이유로, ‘성역할 방식의 변화와 보다 성평등적인 복지국가 구축이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노동 희소 사회로의 전환기에 자본 희소 사회의 못된 버릇을 유지하는 한 국가소멸은 기정사실이 되고 말 것이다. 사람을 환영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함께 키워 나가야만 그나마 1인당 국민소득은 유지하면서 강소국 위치라도 점할 수 있다. 모두의 문제는 아무의 문제도 아니다. 저출생 문제를 이제 아무의 문제도 아닌 것에서 모두의 문제로 끌어올려야 한다.


<함께 보면 좋은 자료>

정해진 미래/ 조영태 / 북스톤 / 20169

인구와 부/ 조영태, 고우림 / 북스톤 / 202510

끝나지 않은 혁명/ 요스타 에스핑 안데르센 / 나눔의집 / 20143

EBS, <다큐멘터리K 인구대기획 초저출생> 10부작, 2024 / Wavve 등에서 볼 수 있음.

이미 몇 차례 강조했듯이 우리가 지금부터 만들어야 하는 나라는 ‘알바들의 공화국‘이지 중산층의 나라 혹은 상속자들의 공화국이 아니다. 천만국가로서 안정성을 갖는다는 것은 많은 국민들이 경제적으로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저지선을 구축하지 못한 채 인구 천만이 되면 그건 그냥 망해가는 나라의 일시적 모습일 뿐이다. 작고 강한 나라가 아니라, 망해가는 작은 나라다.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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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김기창 지음 / 민음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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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담(冊談)

 

가고픈 광남(光南)의 도시마산

 

 


양솔규 편집위원장


 

마산/김기창/민음사/202411/18,000

 

2006년 4월에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142)에 저무는 골목 안역사와 출구-마창 3부작라는 제목의 서평을 실은 바 있다마산 창원 역사읽기(불휘, 2003), 마창노동자문학회 참글의 작품집 출구마산창원진해 문학교실과 르포문학 실기교실 수강생들과 김하경 선생 등이 만든 저무는 골목에서 삶을 만나다』 등에 대한 서평이었다.


그리고 2018년 12월 교육원 <연대와소통통권50호에 나는 김대홍이 쓴 마산·진해·창원이라는 책에 대해 공간을 기억하고 이해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서평을 실었다그리고 7년이라는 시간이 더 지났다그 사이 코로나가 있었고윤석열 계엄령이 있었으며대통령 선거를 두 번이나 치렀다.

 


이번엔 78년생 마산 출신의 소설가 김기창이 이야기를 통해 마산을 기억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제시한다한양대 사회학과 98학번인 저자는 3명의 서로 다른 시간대의 인물들을 등장시켜 마산의 정치적산업적 변화들을 시계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70년대 중반 수출자유지역의 젊은 공장 노동자 동미, 1999년의 대학생 준구, 2021년의 태웅과 은재를 묶는 키워드는 광남(光南)’이다남쪽에서 빛나리전노협 결성을 주도했던 마창노련의 로고도 광남을 표현한 거 아니었나. ‘광남(光南)호텔’, ‘광남(光南)()’등이 소설 전반에 등장하는데인천 답동성당 신부가 지어준 이름이란다빛날 광()은 사람 인 빛날 광(어진사람인(위에 불화()자가 붙으면 빛이 난다는 것소설 속 신부는 빛은 하늘 위의 해가 아니라 어진 사람의 마음이 만드는 거라고빛나는 사람은 결국 어진 사람이라고.’ 말한다남쪽의 빛을 찾아 수많은 사람들이 마산으로 스며들었다소설 속 동미도 그러했고지금의 이주노동자들도 그러하다그러나 마산은 그런 사람들의 기대를 배반했다. “마산은 20세기에 호출됐다가 21세기에 버림받은 도시였다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별처럼 반짝였다가 IMF 외환 위기 전후로 찾아온 정보화 시대에 스리슬쩍 퇴출당한 후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한 채 결국 이름마저 잃은 도시였다.”


 

이러한 평가도 어쩌면 전성기를 잃어버렸다고 느끼는 과거 세대들만의 평가일 수도 있다갈 길을 찾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추억의 회고만이 출구일지도 모른다도시는 하나의 용광로 같고저무는 골목이 있으면그 옆에 불이 켜지는 골목이 생기기 마련이다홍콩바는 없어졌지만, 30년만에 잘피가 돌아왔고광암해수욕장도 문을 열었다지금의 마산을 기반으로 희망을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과거의 눈부신 영광보다도 현재의 작은 성과가 더 소중할 수도 있다은재와 태웅이 그러하다아버지가 세운 광남호텔이 위기에 처하고 빚이 불어나자 은재는 신장질환을 앓는 어머니를 둔 태웅과 함께 희망을 찾아 나선다다름아닌 돝섬돝섬은 70년대 인물 동미에게도, 90년대 인물 준구에게도, 2020년대 은재와 태웅에게도 변함없는 희망의 이정표 같은 곳이다. ‘광남(光南)’의 시각적 현현(顯現)이 돝섬인 것이다. 2010년대 시군 통폐합을 거치며 마산(馬山)’이라는 지명은 사라졌지만개항기에도 코로나 시기에도 여전히 마산 앞바다에는 돝섬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마산의 장소들이 등장한다. 3·15 의거탑돝섬임항선북마산역홍콩빠만날고개해병대 진동리 참전전첩비경남대학교어시장시내버스 차고지(현 브라운핸즈 마산점등 마산에 실제 존재하는 장소들이 배경으로 등장한다또한 우리와 직간접적으로 인연이 있는 사람들부마항쟁 당사자이자 재야 사학자 박영주 선생경남대 배대화 교수허정도 건축가 등에 이 소설은 빚지고 있다고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다.


 

IMF 직후인 1998드라마 <야망의 전설>에는 주인공 이정태(최수종 분)가 마달수(조재현 분)과 함께 마산의 건달로 등장한다한때 전국 7대 도시 중 하나였던 마산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50%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마산의 존재를 전국적으로 각인시켰다마산 유지 출신 아버지가 조봉암을 지지하다가 진보당 사건으로 고초를 당하다가 자유당지지 사업가 박창식(한진희)에게 죽임을 당한다두 아들이정우(유동근), 이정태(최수종)가 이후 현대사의 중요 사건들, 5.16 쿠데타실미도 사건워커힐 호텔과 정경유착 등이 등장한다. 5.16 이후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전부 마산을 떠난다그리고 주요 무대는 서울 등으로 바뀐다. ‘연극(드라마가 끝나고 만 것처럼관객들은 모두 마산을 잊어버리고 만 것일까소설의 끝에 준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뭔가 나아지리란 희망이 사라지고또 다른 희망이 스멀스멀 피어나고 있을 것이라고.” 결국삶은 계속된다인천을 떠난 남편과 함께 마산을 떠나 브라질에 정착한 동미도결국 마산에 돌아와 손녀사위와 함께 삶을 이어간다떠날 때는 죽은 것처럼 보였던 도시가 살아나는 도시 같았다부디 그러기를.


 

<함께 보면 좋은 책>

 

마산·진해·창원/김대홍/가지출판사/201811/16,000

마산 창원 역사읽기/마산창원지역사연구회/불휘미디어/200310/12,000

그곳에 마산이 있었다/남재우,김영철/글을읽다/2016

걸어서 만나는 마산이야기/유장근 외/리아미디어/2011

마산번창기/스와 부고츠(諏方武骨)/창원시정연구원/2021

마산 창원지역 연구/경남대학교 경남지역문제연구원/경남대학교출판부/199610/12,000

마산항지/스와 시로/창원시정연구원/2021

한 도시 이야기/허정도/불휘미디어/2024/22,000

도시의 얼굴들/허정도/지앤유/201811/17,000

저녁놀이 질 무렵이면 불길 같은 파도가 마산자유무역지역 제1공구 끝에 있는 폐공장 바로 앞까지 밀려왔다. 파도는 크리스마스트리용 장식품을 만들다 13년 전 문을 닫은 그곳을 긴 잠에서 깨우려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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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는 대한민국 - 우리가 선택한 파국과 소멸의 사회경제학
김현성 지음 / 사이드웨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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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 73호 2025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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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는 대한민국
자살하는 대한민국
김현성2024도서출판 사이드웨이


양솔규 / 편집위원장


『자살하는 대한민국』/김현성/사이드웨이/2024년4월30일/19,000원


35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1990년 3월, 망원동 한 연립주택 반지하방에서 일어난 화재 사건 말이다. 당시 서른살이었던 아버지 권씨는 부천에서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었고, 엄마 이씨는 합정동에서 파출부 일을 하고 있었다. 5살 혜영양과 3살 용철군 남매는 엄마 아빠가 없는 반지하방에서 하루 종일 놀다가, 성냥불 장난을 했고, 불이 옷장과 옷가지에 옮겨 붙어 화재가 발생했다. 이 화재로 아이들은 숨을 거뒀다. 많은 사람들은 이 비극적인 사건에 안타까워 하며 함께 눈물을 흘렸다. 이들이 공감했던 이유는 자신에게도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었을 게다. 당시 물가와 부동산 가격은 폭등하고 있었고, 생존을 위협받는 농민들은 농약을 먹고 죽거나, 정든 고향을 떠나 도시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권씨 부부도 공주 계룡면에서 농사를 짓다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온 상태였다. 인신매매와 유괴가 활개치고 있었고, 맞벌이를 하면서 아이들을 맡길 곳도 마땅치 않고, 그렇다고 밖에 애들을 놔둘 수도 없었다. 부엌에는 연탄불, 식칼 등 위험한 물건들이 많았고, 밖에 나갔다가 자칫 교통사고나 유괴라도 당할까 걱정되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애들 먹을 밥을 차려놓고 요강을 놔두고, 밖에서 자물쇠를 잠그고 일을 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사고가 35년이 지난 부산에서 일어났다. 지난 6월25일 새벽, 부산 개금동의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해 일곱 살과 열 살 자매가 숨졌다. 불은 콘센트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화재 당시 부모들은 생계를 위해 청소 일을 하기 위해 이른 시간 집을 나갔다고 한다. 사고가 나기 전 이 가족은 주민센터에 생활고 지원 신청을 했다고 할 정도로 경제적 어려움이 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화재 사고가 연이어 부산에서 일어난다. 7월2일 기장군 아파트 화재로 자매가 숨졌고, 14일에는 부산 북구 아파트 화재로 노모와 아들이 숨졌다.

35년 전의 혜영, 용철 사건이 떠올랐고, 이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정태춘의 노래 “우리들의 죽음”을 다시 오랜만에 들어보게 된다. 이 노래 뒤쪽에는 죽은 아이들의 심정을 담은 나레이션(아마도 민중가수 박란희?)이 흘러 나온다.


우린 그렇게 죽었어. 그때 엄마아빠가 거기 함께 있었다면……. 아니, 엄마만이라도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 우리가 방 안의 연기와 불길 속에서 부둥켜 안고 떨기 전에, 엄마아빠가 보고 싶어 방문을 세차게 두드리기 전에, 손톱에서 피가 나게 방 바닥을 긁어대기 전에, 그러다가 동생이 먼저 숨이 막혀 어푸러지기 전에, 그때 엄마아빠가 거기에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 우리가 어느 날 도망치듯 빠져나온 시골의 고향 마을에서도 우리 네 식구 단란하게 살아갈 수만 있었다면……. 아니, 여기가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축복을 내리는 그런 나라였다면……. 아니, 여기가 엄마아빠도 주인인 그런 세상이였다면…….

엄마 아빠 너무 슬퍼하지 마. 이건 엄마 아빠의 잘못이 아니야. 여기 불에 그을린 옷자락의 작은 몸뚱이를 두고 떠나지만, 엄마 아빠 우린 이제 천사가 되어 하늘나라로 가는 거야. 그런데 그 천사들은 이렇게 슬픈 세상에는 다시 내려올 수가 없어. 언젠가 우린 다시 하늘나라에서 만나겠지. 엄마 아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배운 가장 예쁜 말로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어.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이제 안녕.


정태춘의 노래 속 이 아이들의 나레이션을 들으며 눈시울을 붉히던 기억들이 많이 있을 거다. 그런데 35년이 지난 한국은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을까? 경제적으로 성장을 하고, 복지제도도 확충되었다고 하지만, 아이들이 (죽지 않기 위해) 바라던 나라로 바뀌었을까? 그때와 달리 도시화율(90년: 79%=>2021년: 90.7%)은 극단적으로 높아졌고,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소수에 불과하다. 수도권 인구 구성비는 1990년에는 42.8% 였으나, 2024년에는 50.8%에 달한다. 신자유주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고 말하던 것도 벌써 20년 이상 되는 거 같다. “엄마아빠가 주인인 그런 세상”은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축복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죽지 않고 버틸 만한 세상”이면 감지덕지일텐데. 농담으로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다고 하면, 지하까지 파고든다고 하는데, 한국의 상황이 그렇다.


OECD 자살률 1위. 2003년부터 2023년까지 21년동안 2018년 단 한 해를 빼놓고는 모두 1위를 기록한 ‘자살대국’이다. 그중에서도 15~29세 자살률은 꾸준히 늘고 있다. 경제적 빈곤과 정신적 고통, 경쟁의 심화와 압박감, 취업 곤란과 부채 등 청년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2023년 고독사 사망자는 3,661명인데, 그 중 청년 고독사 사망자 수는 앞선 5년간 5~7%대를 기록하고 있다. 고립·은둔 청년 규모가 약 54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노인 빈곤율도 OECD 최고 수준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65세 이상 빈곤율은 38.9%로 OECD 평균인 13.5%의 3배에 이른다. 그러나 국민연금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월 최대 32만원의 기초연금으로는 택도 없다. 고령 일자리도 없다.

저출산 문제는 한국 침몰의 바로미터이다. 2023년 합계출산율은 가임여성 1명당 0.721명(인구 1000명당 출산아 수 4.5명: 조출생률)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한 명이 태어날 때 다섯 명이 죽는 사회다. 육아휴직과 수당은 근로한 기간이 6개월 미만인 경우에는 해당사항이 없다. 결혼하지 않으면, 출산도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비혼출산이 불법은 아니지만, 거의 없다. 비혼출산율은 2.5%에 불과하다. 미국은 40%가 비혼출산이고, 멕시코는 70%이며, 프랑스도 62%, 영국 49%에 달한다. 결국 낮은 출산율은 낮은 혼인률에 근거하는데, 그 이유는 결혼과 출산이 매우 값비싼 ‘사치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높은 전세금과 주택매매가는 청년들의 결혼에 허들이 되었고, 여성들은 출산이 미래의 높은 기회비용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쉽게 선택할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침몰 징후는 뚜렷하다. 그러나 행동으로 변화를 보여주는 주체는 없다. 안그래도 기후 변화로 인한 재난이 더 빈번하고 크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빈곤과 경제적 사회적 문제들도 끊임없이 터져나오고 있다. 앞서 언급한 연이은 부산 아파트 화재사건도 기후위기와 사회경제적 문제가 중첩된 사건이다. 언론은 에어컨 전력량을 견디지 못하는 노후한 ‘멀티탭’과 노후한 아파트의 ‘스프링쿨러’의 부재를 반복해서 언급하고 있지만, 강남의 아파트에서 이런 문제가 벌어지지는 않는다. 어린 두 아이를 두고 새벽에 일하러 나갈 수밖에 없는 부부의 노동조건, 복지조건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김현성의 『자살하는 대한민국』(사이드웨이, 2024)는 한국사회가 스스로 ‘사멸’해 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 믿을 수 없는 현실은 다른 외부의 세력 때문에 벌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긴 세월 동안 한국 공동체 구성원들 스스로가 선택하면서 만들어 온 경로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사멸’을 향하는 ‘운명’을 스스로 바꿀 의지가 없고, 해결을 거부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건 한국인의 품성이 나빠서도 아니고, 특정한 정치 세력(국민의 힘, 또는 더불어민주당) 때문도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돈의 문제’ 때문에 ‘사멸’하고 있다고 본다. 즉 한국은 아프지만 ‘병원비’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의 선택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논리 구조는 이렇다. 한국의 공동체는 병들었고, 그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기꺼이 주머니를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돈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타국 대비 생필품 비용이 비싸고 대신 사회인프라와 서비스 물가는 싸다. 그 중 식료품 물가가 매우 높고, 임대료와 음식점 물가는 낮다. 최근 식료품 물가는 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물론 한국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많이 먹는다.) 식료품비가 비싼 이유는 농업생산성이 낮아서 그렇다. 농경지는 너무 좋고, 농업은 중소 자영농 중심으로 영세하다. 헌법 121조에 농지의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고 명문화되어 있다. 그래서 농지는 전세권을 설정할 수 없다. 농업 보호 정책은 농업소득 보전에도 실패하고 경쟁력도 획득하지 못했으며 농업소멸 직전에 와 있다. 한편 낮은 에너지 물가, 낮은 교통비, 낮은 서비스 물가는 수출주도 경제발전 과정에서 억제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식료품 물가가 높으니 이를 쉽게 올릴 수도 없다. 더구나 정책 의사결정권자들은 ‘민심’=‘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여기에다 사교육 문제가 있다. 자녀가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사교육 지출을 할 수밖에 없다. 준조세의 성격을 가진다. 학생 1인당 월 평균 52만원을 쓴다. 가계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3인 가구: 17%(서울 23%), 4인 가구: 28%(서울 38%)) 핵심 납세자 집단의 상당수가 10%~40%의 준조세를 이미 어딘가에 납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한국 가계들은 가처분소득이 낮을 수밖에 없다.


두 번째 문제는 서울-수도권 집중의 문제이다. 수도권과 서울 집중은 한국 공동체의 물리적 소멸의 원인이다. 서울 출산율은 전국 평균을 밑도는 0.53명 수준이다. 서울이 포화상태가 되자, 경기도로 인구가 몰려 들었다. 취업의 남방한계선이니, 기업 이전의 남방한계선이니 하는 말도 회자되었다. 동작은 스스로를 강남4구라 강변하니, 충청도와 강원도도 이제 자신을 ‘준수도권’이라 자칭한다. 서울과 수도권의 인프라 개선은 이 공간을 더욱 매력적이게 만들고 수요를 창출했다. 고소득층일수록 아파트 거주율이 높고, 주거 공간이 계급화되고 있다.



좋은 일자리도 수도권이 독식하고 있다. 높은 소득과 상대적으로 짧은 노동시간=높은 노동생산성을 보여주는 좋은 일자리는 대체로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서비스업 중 금융보험업은 서울에 집중되어 있고, 제조업 중 부가가치가 높은 반도체, 2차 전지, 디스플레이 등도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IT 산업 역시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참여정부의 행정수도 건설은 헌재의 ‘관습헌법’ 판결로 가로막혔고, 부울경메가시티는 국민의힘 부울경 시장, 도지사의 철회로 막을 내렸다.


노동생산성이 낮은 것도 한국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 중 하나이다. 제조업 노동생산성은 높은 편이지만, 서비스업의 노동생산성, 특히 도소매 및 숙박음식점, 교육서비스업, 운수 및 창고업 등이 매우 낮은 생산성을 나타낸다. (이미 건설업, 운수업, 숙박음식점 등 낮은 노동생산성 업종의 많은 인력이 외국인노동자들로 채워지고 있다. 저자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더 많은 문제만 양산할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의 서비스업이 낮은 노동생산성을 갖는 이유는 규모가 영세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저부가가치 업종에 편중되어 있으며, 시장이 좁아서이기도 하다. 또한 한국의 서비스업은 수출에 적합하지 않은 업종이 많은데, 그나마 수출 비중이 높은 건설과 운송도 중국과의 경쟁으로 부가가치가 높지 않다. 이는 자영업의 낮은 생산성 문제와 연결된다. 한국은 역시 자영업의 나라이다. 그런데, ‘영세한’ 자영업의 나라이다. 비교가능한 대상국들에 비해 2~5배 더 영세하다. 그 영세한 업체들끼리 무한 경쟁을 하면서, 서비스업의 물가를 스스로 억제하고 있다. 당연히 노동시간은 많은데, 빈곤율은 높다.(임금노동자의 3배)


중소기업도 생산성이 낮다. 대기업의 30% 수준에 머물고 있다. 대기업의 하청업체 이외의 다른 역할을 기대할 수 없고, 글로벌 벨류체인에 직접 올라탈 수 없으니 낮은 부가가치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중소기업의 노동유연성을 확보하는 방식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미 노동유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외부수량유연성과 임금유연성은 이미 높은 편이다. 노조 조직률은 10%로 OECD 평균인 26%보다 훨씬 낮다. 사회안전망도 얕다.


그나마 한국에서 지갑을 조금이라도 열 수 있는 집단은 수도권에 거주하며, 좋은 교육을 맏고, 고생산성 수출 대기업에 종사하는 경제 활동 인구 집단 정도이다. 그러나 이들은 배ㅏ적이다. 물적, 인적 자본의 세습을 추구한다. 조귀동은 이를 ‘세습 중산층 사회’라고 일컬었다. 대다수의 임금 노동자, 대다수의 자영업자들이 저생산성 상황에 처해 있고, 그나마 좋은 일자리는 수도권에 몰려 있으니, 청년들은 수도권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서울의 주거는 한정되어 있으니, 청년들은 서울에는 들어오지 못하고 경기도와 인천에 정착한다. 노인빈곤율은 40%로 OECD 1위이다. 자산을 가지고 있는 노년층도 언제 빈곤층으로 떨어질지 모를 정도로 불안하다. 연금의 소득 커버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가지고 있는 주택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금융자산은 적고 주택자산만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 살던(노인들을 포함) 사람들은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 그대로 그곳에서 늙어간다. 서울이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서울과 경기도의 투표성향이 디커플링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노년층은 지방소멸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에 있는 주택을 포기하기 어렵다. 노년층은 최저임금 보다 낮은 임금도 기꺼이 감수한다. 노인들의 저임금 공급은 청년들의 일자리에도 영향을 미친다.


노인들이 (서울 주택을 팔고) 지방으로 떠나기 위해서는 연금을 통한 소득대체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3층 연금제도(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의 소득대체율은 47%에 불과하다. 국민연금 고갈이라는 정치적 선동 때문에, 국민연금의 국가 지급보증 명문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잠재부채(암묵적 부채)라는 개념은 일종의 사기다. 이런 핑계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법 개정안에는 ‘국가는 연금급여가 지속해서 안정적으로 지급되도록 필요한 시책을 수립, 시행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국가는 국민과 마찬가지로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데 인색하다. 한국의 공적연금 재정투입률은 미국의 절반 수준인 9.4%에 머물러 있다. (출범 당시 70%였던 소득대체율은 40%로 낮아졌다.)


저자는 이렇게 꽉 짜여진 출구 없는 악순환의 고리 속에서도 대안을 찾아 나선다. 첫 번째는 점진적인 국가 채무의 증가이다. 내국인 개인의 국채 보유 비율을 늘리는 방법이다. 현재 0.1%에 불과한 개인 국채 비율(미국 0.5%, 일본 2.4%, 영국 10%)을 높이는 것은 이자소득도 발생하기 때문에 증세나 사회보험 지출 증액보다 거부감이 덜할 것으로 본다.


보수적인 경제학자, 기획재정부 곤료들은 ‘구축효과’를 내세우면서 미래에 쓸 돈이 많기 때문에 지금 돈을 아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래 세대의 수를 늘리거나 미래 세대의 생산성이라도 보전하기 위해 당장 지금 투자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다. 국가 채권을 내국인들이 소유한다고 가정한다면 외환 위기 발생 가능성도 매우 낮다. 또한 채권 발행하여 들어오는 돈으로 정부가 매입하는 ‘대응 자산’은 상당부분 주요 기축통화 등을 사들여 외환보유고를 마련하는데, 말하자면 국채를 발행한 후 외국 돈을 사들여 저축하는 형태인 것이다. 이렇게 확보한 돈으로 정부 지출을 늘려 나가는 것은 단순히 소득 분배를 넘어, 일상생활의 고비용을 차츰 축소해 나감으로써 장기적으로 모두가 공동체를 위해 지갑을 열어 보자는 사회적 합의를 위한 바탕이 된다. 그런 연후에야 증세의 논의를 시작하면서, 황금 티켓을 이미 쥐고 있는 사회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뒤로 증세를 통해 확보한 재원으로 2070~2100년의 시기를 버텨내야 한다는 것이다. 2050년이 되면 인구 4000만 명 선이 붕괴된다고 한다. 25년이나 남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25년밖에 안남은 것이기도 하다. ‘정해진 미래’를 어떻게 돌파해 나갈 것인지는 지금 현재의 선택으로 좌우된다.


저자가 그려 놓은 ‘자살하는 대한민국’의 꽉 짜여진 불행한 구조는 분명 개개인의 선택이나, 품성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정부’의 역할이라는 것도 결국은 사람들의 뜻이 모이고, 개개인들의 선택이 모여서 조직화되어야 시작할 수 있는 점에서 우리는 그 ‘세력화’에 여전히 주목할 수밖에 없다.(설사 저자가 주목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저자는 말한다. 사회적 “약자성을 탈출하려는 시도가 발언권이 강한 사람들에 의해 차단되고” 있다고. 그 약자성을 가진 사람들의 발언권을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지는 우리 몫일 것이다.


저자의 혜안은 두 가지에서 빛을 발한다. 첫 번째는 한국 사람들이 가난하다는 점. 즉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가처분소득이 적다는 점. 거기서부터 출발해 현재의 악순환 구조와 스스로 그 구조를 받아들이고 고착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어쩌면 활동가들은 인정하지 않을지 몰라도 노동조합 조합원들은 이 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내면화해 전략적으로 살아왔는지 모른다. 두 번째는 2100년이라는 긴 시간지평 속에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내기 위해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OECD가 말하는 한국사회의 황금 티켓 증후군에서 벗어나는 길은 요원하지만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노동에서 출발하는 B플랜도 구체화하자.



<함께 보면 좋은 책>

『천만국가』/우석훈/레디앙/2024년11월/18,000원

『세습 중산층 사회』/조귀동/생각의힘/2020년1월/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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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 - 이태원 참사 가족들이 길 위에 새겨온 730일의 이야기
10·29 이태원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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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연대, 희망의 연대

 

출처 : 부산노동권익센터 <부산 노동자와 동행하다> Vol. 29 (2025.10.)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김초롱 / 아몬드 / 20231029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10.29 이태원참사 작가기록단 / 창비 / 20231029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 10.29 이태원참사 작가기록단 / 창비 / 20241029

이태원으로 연결합니다/ 용산FM 기획 / 플레이아데스 / 20241029


양솔규 노동사회교육원 운영위원



가을을 맞아 가족과 연화리에 나들이 갔다. 맛있는 해산물도 먹고, 회도 먹었다. 오랜만에 간 연화리에는 못보던 건물도 많았고, 새로 생긴 카페와 음식점도 많았다. 고즈넉하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연화리의 모습은 퇴색되고 있었다. 어느샌가 부산의 관광명소로 연화리가 알려지게 되었고, TV 예능프로그램에도 심심찮게 소개되곤 했다. 마치 변해버린 제주도 함덕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해변가 밤산책에 나서자 더욱 변해버린 연화리가 뚜렷해졌다. 연화리 해변 가운데에는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가 해변의 조망권을 장악했다. 상가에는 스타셰프’(현수막에 본인을 스스로 스타셰프라고 칭했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 입주예정이라는 현수막이 붙었다. 해변을 따라 더 가자 멀리 숙박시설처럼 보이는 거대한 건물이 어둠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엔 아난티 호텔 건물 끄트머리가 얼핏 보였다. 거의 완공된 듯해 보이는 정체불명의 거대 건물이 왜 영업을 안하고 어둠 속에서 숨죽이고 있는 것일까 궁금했다. 지도앱을 열어 검색해보니, 아뿔싸. 지난 2월 화재가 발생해 노동자 6명이 질식사로 죽고, 27명이 부상을 입은 그 반얀트리 해운대 호텔 참사의 현장이었다. 불과 8개월 전에 일어난 사건이다. 그러나 나는 이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고, 참사의 현장이 연화리에 있는지도 몰랐다. 죄책감이 몰려왔다.

우린 일상에 찌들며 많은 것을 잊고 산다. 모든 것을 기억하며 살 수는 없는 법이고, 망각(忘却) 역시 살아가기 위해선 필요하고 중요하다. 그러나 잊지 않기 위해, 아니 잊어버리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기억하고 보존해야 할 서사와 가치도 있는 법이다.

2016년 뜨거웠던 겨울, 박근혜 탄핵을 외치는 촛불혁명’(?)이 시작되었고, 그 중심에 세월호 유가족이 있었다. 벚꽃대선을 거쳐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기대했다. 그러나 5년이 지날 동안 문재인 정부는 그 어느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채 물러났다. 의지가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일부 진전도 있었다.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도 제정되었고, 2024년 시행되었다. 그러나 이 법은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1장 총칙 제1)에 한정된 법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스스로 인정했듯이 사회적참사 특조위의 세월호 참사 관련 54건의 권고사항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렇게 세월호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은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그리고 평행이론처럼 2024년 겨울 또다시 뜨거운 겨울이 시작되었다. 윤석열 정부의 국민에 대한 계엄령에 맞선 시민들의 빛의혁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저항의 중심에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가 있었다. 다시 대선을 거쳐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후 벌어진 이태원 참사에 윤석열 정부가 보여준 것은 기만과 폭력, 정치화와 사기뿐이었다. 극우 유튜버들의 극악무도한 유가족에 대한 테러와 조롱은 도를 넘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방조하는 것을 넘어 부추겼으며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박근혜는 진도체육관에 모습이라도 드러냈지만, 윤석열은 유가족의 만남 요청에 끝까지 응하지 않았고, 세월호 사건 당시 해수부장관이었던 이주영은 여러차례 사의를 표명하고 결국 그해 12월에 물러났지만, 이상민 행안부장관은 최장수 장관으로 군림하며 윤석열 내란까지 함께했다. 윤석열 정부 3년 동안 온갖 비난과 탄압과 무관심을 버텨 온 유가족들이 바라는 것 오직 진상규명과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 위한 성찰과 준비이다. 과연 이재명 정부는 이런 과제를 수행할 수 있을까?

변화의 조짐은 보인다. 이태원 참사 3주기를 3일 앞둔 현재, 김민석 총리는 25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3주기 시민 추모대회에 참석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공적 책임과 공적 안전망의 붕괴가 불러온 참담한 재난이었다고 밝혔다. 또한 1023일에는 정부가 경찰청과 서울시청, 용산구청에 대한 합동감사 결과 62명을 징계조치 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이태원 참사가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 용산 이전하면서 서울경찰청과 용산경찰서가 대통령실 인근 경비에 우선순위를 두고 인력을 운용한 것이 영향을 줬다고 확인했다. 참사 당일 대통령실에는 인근 집회 관리를 위한 경비인력이 집중적으로 투입됐으나 이태원 일대에는 전혀 배치되지 않았다. 당시 경찰 지휘부 역시 이 점을 알면서도 대책을 강구하지 않았다는 게 국무조정실 설명이다.


촛불혁명이니 빛의혁명이니 이런 과도한 의미부여가 정말로 의미를 득하기 위해서는 실제적인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오송참사도 세월호도 이태원참사때도 독립적인 상설 재난 조사기구가 설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아직 요원한 상태이다. 생명안전기본법도 무산되었다.

20245, 10·29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이 통과되었고, 913일 특조위가 공식 출범했다. 그러나 특조위의 본격적인 조사는 20256월에야 시작할 수 있었다. 특조위 공식 활동기한은 20266월까지이며, 필요시 3개월, 보고서 작성을 위해 3개월 더 연장할 수 있다. 특조위의 활동과 결과 발표는 중요한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는 생존자 김초롱이 쓴 책이다. 생존자 김초롱은 생존 이후 심각한 우울증과 자살 충동을 느꼈다. 이후 인터넷과 신문에 심리 상담기를 연재하기도 했고, 살기 위해 연대하고 붙투하는 과정을 에세이로 발표했다. 모든 참사가 피해자에 초점을 먼저 맞추기는 하지만, 관심이 생존자와 희생자를 넘어서는 넓은 의미의 피해자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알려준다. 지난 8월 이태원 참사 현장에 출동했던 30, 40대 소방관 2명이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이태원 참사 159번째 희생자도 참사 생존자인 고등학교 1학년생으로, 참사 이후 1212일 숨진 채 발견된 바 있다.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10.29 이태원참사 작가기록단이 기록한 이태원 참사 가족들, 이태원 참사 피해자의 친구들, 생존자, 이태원 주민들에 대한 인터뷰집이다. 이 책을 준비한 작가기록단이 없었다면, 과연 이태원 참사를 어떻게 다차원적으로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을까? 이태원으로 연결합니다역시 용산FM이 기획하고, 이태원 주민부터, 핼러윈 축제 참가자, 드랙 아티스트, 이태원 클럽 DJ, 경리단길 이주민 등 다양한 인물들을 인터뷰했다. 이태원과 핼러윈,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사건의 정치적 지형과 묘하게 중첩되면서 이태원 참사를 정치화하고, 편가르기, 왜곡하는 다양한 양태를 경험했다. 이에 대해 이태원으로 연결합니다가 면역력을 키워줄 수 있을 것이다. 김승섭 작가는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픔이 기록되지 않았으니 대책이 있을 리도 없었겠지요. ()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기억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억되지 않은 참사는 반복되기 마련입니다.”


일주일 남은 10월달을 눈물 어린 책을 보며 기억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이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각인하기 위함이다.


올해 고() 신애진씨의 어머니, 아버지도 책을 냈다. 이 책도 아로새기다. 너에게 가는 길(김남희), 특별한 날은 특별히 아프다(신정섭) 이 책도 일독을 권한다.


<함께 보면 좋은 책>

이태원 참사 - 한국의 재난관리를 논하다/ 이동규 / 윤성사 / 2023416

정부가 없다 - 이태원 참사가 우리에게 남긴 이야기/ 정혜승 / 메디치미디어 / 20231029

문화과학 113-애도와 책임, 10·29 이태원참사: 2023년봄호/ 문화과학 편집위원회 / 문화과학사 / 202337

슬픔의 위안/ 론 마라스코·브라이언 셔프 / 현암사 / 20193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산만언니 / 푸른숲 / 20216

먼지가 가라앉은 뒤/ 루시 이스트호프 / 창비 / 20259

애도와 투쟁/ 더글라스 크림프 / 현실문화 / 20214

이 폐허를 응시하라/ 리베카 솔닛 / 펜타그램 / 2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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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이후 - 혐오, 양극화, 세대론을 넘어
신진욱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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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요요는 이제 그만!


출처: 부산노동권익센터 <부산 노동자와 동행하다> vol.27. (2025.6)


광장 이후/ 신진욱, 이재정, 양승훈, 이승윤 / 문학동네 / 20255


양솔규 노동사회교육원 운영위원


얼마 전 사무실이 이사를 했다. 짐 정리도 마저 해야 하고, 새로운 근무 환경에 적응도 해야 해서 분주한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오래된 자료뭉치들 속에서 불쑥 경향신문 한 부가 뚝 떨어졌다. 날짜를 보니 20221월 초였다. 돌이켜보면 불가사의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정치권에 인연이 없었던 윤석열은 제1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가 되었다. 그때는 명태균건진법사의 존재도 범인들은 알지 못하던 때였다. 윤석열 대선후보는 이철규, 장재원, 권성동 등 초기 윤핵관들을 기용하기 시작했고, 당시 당대표였던 이준석과 치열한 갈등이 드러나던 시절이었다. 윤석열은 2022년 당시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를 해산시켰고, 김종인과 결별했다. 당의 공식 기구들은 무력화되었고 윤석열 대선후보와 윤핵관 수중에 급속히 편입되었다. 불과 35개월 전의 일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우리는 3명의 대통령을 거친 것이다.

이후 약 2년의 시간은 경험했다시피 사회적 퇴행과 경제적 추락의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노동기본권의 후퇴는 치명적이었다. 집권 초기부터 건설노조와 화물연대를 표적삼았던 정권의 탄압은 타임오프제에 대한 근로감독, 노조 회계공시 제도, 노동시간 유연화 확대 등으로 이어졌다. 물가는 폭등하고 임금은 낮아졌다. 실질소득은 감소하고, (청년 포함)실업률은 치솟았으며, 구직활동 포기자도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맞서는 투쟁은 힘있게 체계적으로 조직되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새 패배주의가 확산되었다.



123일의 비상계엄 선포는 어쩌면 우리의 안일함과 무기력함에 경종을 울리는 죽비와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촛불혁명을 통해 박근혜가 탄핵된 후 마치 세상은 금방이라도 변할 것처럼 상기되었지만, ‘촛불정부라 자칭하던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를 핑계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내려가 버렸다. 코로나19와 세계적 유동성 증가, 아파트 부동산 가격 폭등, 조국사태 등. 문재인 5년의 시간동안 식어버린 열망과 에너지는 환멸로 바뀌었다. 촛불연합은 해체되었다. 20대 여성들은 혜화역 시위, 버닝썬, N번방 사건, 신당동 사건 등을 거치면서 광장정치에 결합했지만, 20대 남성들은 불신과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더불어 청년 고용시장은 악화되었고, 노동시장 이탈 현상은 가속화되었다.


윤석열 탄핵 과정에는 처음 보는 광경들이 많이 벌어졌다. 보수 기독교를 기반으로, 노년 세대들을 동원하던 태극기 집회에 청년들이 대거 등장했다. 극우 청년들은 서부지법 폭력사태에 가담하고, 건국대 앞 양꼬치거리를 행진하며 반중극우 무력시위를 했다. 주변의 이웃, 친구, 가족이 극우폭력의 주체로 세력화해 등장한 것이다. 낯선 모습에서 공포는 배가될 수밖에 없다. 사회적 현상의 이면에는 사회적 구조가 있다. 윤석열 탄핵과 내란 진압으로는 끝낼 수 없는 지난한 과제가 놓여 있다는 얘기다.



세월호 세대이고, 촛불혁명에 대거 참여했던 세대들이 불과 8년만에 탄핵반대, 극우화되었다? 믿기 힘든 현실이었다. 언론(특히 조선일보)에서는 탄핵반대와 민주당을 비판하는 청년들의 인터뷰를 지속적으로 기사화했다. 응원봉을 든 20대 여성과 탄핵반대 CCP(중국공산당) OUT 피켓을 든 20대 남성을 대비해 젠더갈등을 부추겼다. 하지만, 탄핵 과정에서 발표되는 여론조사(갤럽, 리얼미터 등)들을 보면 20대들의 탄핵찬성 비율이 훨씬 높았다. 분명 현상은 존재하고, 극우는 세력화되었으나, 과대대표되고 있는 것도 분명했다. 하지만 과대대표가 곧 다수가 될 가능성이 없다는 걸 뜻하지는 않는다. 이만큼 왔다면 저만큼도 갈 수 있는 거다. 들이밀어 봤으니, 밀어붙일 수 있는 거다. 무엇보다 극우파들에게 탄핵 사태로 열린 광장은 자신들의 발언력과 파급력, 캐파(capacity)를 가름해볼 수 있는 효과적인 실천의 장이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윤석열이 조사를 받기 위해 특검에 출석했다. 중요한 건 이제 윤석열 개인의 신상이 아니다. 윤석열을 옹호하고, 내란을 획책하고, 이를 지지해주고 엄호한 우리 사회 엘리트들과, 이에 동원되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회계층들이 공고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두 번의 혁명을 통해 두 번의 탄핵이 이루어졌지만 아직도 약 50%의 시민들은 내란당과 보수를 지지한다. 박근혜 탄핵 이후 여론 지형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재명의 우클릭, 중도보수 선언은 이런 지형을 바탕으로 한다.


광장 이후는 두 명의 사회학 연구자와 두 명의 사회복지학 연구자가 쓴 논문 모음집이다. 이 책을 보면 과연 지난 겨울 쿠데타와 연이은 광장의 모습을 보다 더 정밀하게 추적 관찰할 수 있다. 신진욱은 한국의 극우세력이 부상하고, 보수정권이 이를 공식화해주는 유례없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파시즘의 위험을 경고한다. 탄핵 이후에도 극우 기득권 엘리트들과 대중적 하부구조(자유대학, 자유마을, 극우기독교세력 등)는 전혀 약화되지 않았다. 언제든 활성화될 수 있는 세력이 된 것이다. 이제 이명박근혜시기, 자생력없던 어버이연합이 아니다.

양승훈은 탄핵 정국에서 주목받은 현상, 청년 남성’, ‘이대남들의 극우화 현상에 주목한다. 저자가 봤을 때 청년 남성은 전혀 동질적 집단이 아니다. 계급이 다르고, 지역이 다르고, 출신과 업종이 다르다. 이들 다수가 보수도 아니고, 보수라 하더라도 보수로 굳어진 것도 아니며, 극우파는 더더욱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에게 말을 걸어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정치세력, 사회세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유일하게 이준석과 윤석열은 능력주의공정을 내걸고 세대포위론을 근거로 이들에게 파고든 것이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이 우리에게 응원봉을 주지 않았다.”는 말이다. 여성들은 남태령에서, 광화문에서, 국회에서 응원봉을 들고 다시 만난 세계속에서 주체화되었지만, 남성들에게는 일종의 티켓인 응원봉을 그 누구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점차 소극적이 되었고, 페미니즘 등과의 일대 논쟁을 벌이기보다는, 냉소와 짜증으로 일관했다. 이른바 열전에서 냉전으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누군가로부터의 말걸기와 광장으로의 초대장을 왜 청년 남성들은 마냥 기다려야만 하는지 의문이다. 어느 세대, 어느 누구라도 스스로 주체가 되고,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않는 이상 주목받지도, 세력화되지도 못했던 건 자명한 사실이다. 진보세력이 청년 남성세대에게 다가가는 것이 과제인 건 맞지만, 유일한 과제는 아니며, 오히려 사회 전체의 몫으로 봐야 한다.

이승윤의 논문은 이 책의 핵심을 담고 있다. 저자는 진보적 청년 여성’ vs ‘보수적 청년 남성이라는 허위적인 구도에 거리를 두는 대신, 소득, 고용형태, 사회보험 여부를 종합하여 지난 20년 간 청년 세대의 불안정성이 증가하고 양극화가 심해지는 경향을 분석한다. 노동의 경계가 녹아내리고, 노동의 개념이 모호해지는 이른바 액화노동속에서 청년 프레카리아트화가 진행되고 있다. 청년 남성 가운데 매우 불안정한집단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청년 남성의 비관성이 여성에 비해 훨씬 높다. 저자는 청년 노동시장에서 청년 남성이 경험하고 있는 특수한 상황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경제활동의 주 부담자 역할을 내면화한 남성들의 기대와 실제 노동시장 상황의 괴리가 남성들의 심리적, 사회적 경험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이러한 존재의 불안정성이 급진좌파 정치쪽으로도 향할 수 있고, 반대로 극우 포퓰리즘 쪽으로도 갈 수 있다며, 섣불리 재단하기보다는 적극적인 실천을 통해 사회적 연대를 진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영국의 웨스트민스터대학 교수인 정치학자 샹탈 무페는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에서 새로운 헤게모니 구성체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려운 말 같지만, 서로 의견을 조율하고, 꼬시고, 같은 편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극우 문제의 해결은 사회 전체의 각성과 지속적인 실천, 국가의 강력한 대응과 구조변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민주주의의 위협에 맞서 민주주의를 급진화시킬 필요가 있다. ‘광장 이후의 실천이 정치적 요요를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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