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1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소감 <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 / 알랭 드 보통 

 

얼마 전 교보문고에 갔다가 본
'알랭 드 보통'의 <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가 누나 집에 놓여 있다.
맵싸한 겨울 바람을 이겨내고 누나 집에 오자 책이 있다.
빵집아저씨가 줬나보다.

 이 책은 알랭 드 보통이 영국 런던의 항공 허브인 '히드로 공항'에서 일주일동안 취재를 한 결과물이다.

책의 한 쪽엔 공항에서 벌어진 사진, 책의 다른 한 쪽엔 취재글이 놓여 있다.
다시 말하면, 총 200쪽 중 사진 100쪽, 글 100쪽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쉽게 술술 넘어간다.
마치 공항을 지나치는 여행자들의 발걸음처럼 말이다.
책으로 보는 영국판 <다큐멘터리 3일> 정도라고나 할까? 

이 책은 마치 여행자의 시간적 흐름을 쫓아가듯 구성되어 있다.

1. 접근, 2. 출발, 3. 게이트 너머, 4. 도착

 그러나 다시 발걸음은 공항으로 이어지게 된다...
역자 정영목은 그러나 그 것이 단순한 환원이 아니며, '상승 나선운동'이라 정의한다.
그리고 저자는

"우리는 점차 행복을 이곳이 아닌 다른 곳(예를 들어 프랑스)과 동일시하는 일로 돌아간다...
(다시)우리는 짐을 싸고, 희망을 품고, 비명을 지르고 싶은 욕구를 회복한다.
곧 다시 돌아가 공항의 중요한 교훈들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만 하는 것이다"
(205쪽)

라고 말한다.

하지만, 다시 우리는 현실, 즉 발딛는 곳으로 또다시 올 것이다. 
지금 발레오 공조 노동자들은 먹튀자본과의 투쟁을 위해 프랑스에 가 있다.
CFDT를 비롯한 프랑스 노동조합들이 결합했다고 한다. 국제연대의 정신이다.
그들은 다시 파리 드골 공항을 통해, 혹 또다른 나리타공항 등을 추가로 경유해서 귀국길에 오를 지 모른다.
수많은 사연들이 공항에 있다. 그들에게 출국과 귀국은 어떤 의미일까?
결단이다. 삶의 진전을 위한 결단, 가족의 행복을 위한 결단이었을 것이다.
 

"결단의 전조로서의 여행이라는 개념은 한때 종교적 순례의 핵심적인 요소였다.
순례는 내적 진화를 촉진하고 강화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 모든 것이 이 답사를 쉽게 잊지 못하도록 도와주는 시련에 불과했다.
(201쪽)

 
그 뿐만이겠는가? 이주 노동자의 피눈물나는 귀향이 있고,
사랑하는 연인의 애닮은 이별이 있고,
부모 자식간 이별과 만남이 있을 것이다.
바로 '각 사람의 지위와 그에 따른 불안'이 드러나는 곳이다.
 

"터미널이라는 살아 있는 혼돈의 실체에 비하면 책이란 얼마나 얌전하고 정적인 것이냐"
(83쪽)

라고 저자는 반문한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가 네로 황제를 위하여 쓴 '분노에 관하여'라는 논문,
그 중에서도 특히 분노의 뿌리는 희망이라는 명제가 떠올랐다.
(57쪽)

 
이 글을 보며 소위 87년의 항쟁과, 87년 노동자대투쟁의 발생 원인을 생각하게 한다.
분노의 뿌리인 '희망'이 그 시대엔 응축되고 폭발력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과연 지금의 20대들, 소위 88만원 세대들에게 희망이란 존재하는가?
위의 명제를 뒤집으면 '희망이 없으면 분노도 없다'가 된다.
희망은 단순한 개인 감정의 창조물이 아니라, 사회적 과정의 결과이다.
역설적이다. 희망은 지극히 주관적 감정이지만 사회 속 형성을 거쳐여만 하기에 그렇다.

 
"예수는... 가장 축복받은 존재였음에도 지상에 사는 동안 내내 가난했으며...
올바름과 부 사이의 직접적인 등식을 배제하는 것... 능력주의에 따른 특권의 설명에 흠집을 내는 것"
(129쪽)
 

이것이 대한민국 국민들, 돈 없어 공부 못하는 10대와 자율사립고,
비싼 등록금에 좌절하는 대학생과 유학가는 자녀들간의 간극에 대한 저자의 분명한 설명이다. 
 

이 책에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상품사슬과 노동력사슬, 공장식 패스트푸드의 기내식 도입도 보여준다. 

"터미널에서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스위스 회사 게이트 구르메 소유의 창문이 없는 냉각된
공장에서는 방글라데시와 발트 해 연안의 여러 나라들에서 온 여자들이 15시간 이내에
대류권 어딘가에서 먹게 될 아침,점심,저녁 8만 개를 만들고 있었다.
대한항공은 소고깃국을 내놓을 것이고, 일본항공은 연어 데리야끼, 에어프랑스는 당근 퓌레를 깔고 그 위에 치킨 에스칼로프를 깔아 내놓을 것이다.
(135쪽)

 

하지만, 주로 생존을 위해 노동력을 '옮겨와 정주하며 파는' 사람도 있지만,
주로 실현(어떤 실현인지는 다양하겠지만)을 위해 노동력을 '옮겨야만 하는 사람도 있다.
 

"밤이면 공항은 유목민의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들의 본거지가 된다.
어떤 한 나라에 헌신할 수 없는 사람, 전통을 보면 뒷걸음질치고 안정된 공동체를 수상쩍게 여기는 사람,따라서 다른 어느 곳보다 현대 세계의 중간지대에서, 등유 저장 탱크, 비즈니스 파코, 공항 호텔로 인해 풍경이 상처를 입은 곳에서 오히려 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다."
(157쪽)

 

사실 풍경이 상처를 입은 곳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이러한 노마드적 삶만이 아니다.
발터 벤야민을 비롯한 도시 관찰자들은 근대 대도시들의 삶의 성격을
바로 이와 같이 묘사한 것이다.
그것의 글로벌 축소판이 바로 공항인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도 구획은 분명하다.
히드로 공항에 도착한 후 사람들이 접하는 최초의 장벽아닌 장벽은
영국인/비영국인, 영어권/비영어권, 유럽/비유럽의 장벽이다. 

"권력은 이곳에서 자신만만하다. 출생이라는 우연에 의해서 특권을 누리며
이곳을 비켜가는 사람들에게는 삼가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만큼 자신이 있다."
(179쪽)

 저자가 말하듯이 "화성인이 온다면 구경시켜 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장소가 공항"인 이유는
그곳이 바로 글로벌 자본주의의 가장 발전된 모습을 응축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생산과 유통, 소비의 적나라한 모습이 바로 공항에서 구현된다.
때론 화려해보이나 슬픈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공항 그 자체도 글로벌 자본주의의 경쟁하는 자본이기도 하다.

베이징 공항, 카타르 도하 공항, 그리고 이 책의 배경인 히드로 공항,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 등이
현재 벌이고 있는 유래없는 대규모 확장공사는 바로 유통 허브로서 시장력을 넓히기 위한
자본의 경쟁 그 자체인 것이다. 

200쪽에 글로벌 자본주의의 축소판을 100장의 귀한 사진과 함께 확인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