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솔규 / 편집위원장
『자살하는 대한민국』/김현성/사이드웨이/2024년4월30일/19,000원
35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1990년 3월, 망원동 한 연립주택 반지하방에서 일어난 화재 사건 말이다. 당시 서른살이었던 아버지 권씨는 부천에서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었고, 엄마 이씨는 합정동에서 파출부 일을 하고 있었다. 5살 혜영양과 3살 용철군 남매는 엄마 아빠가 없는 반지하방에서 하루 종일 놀다가, 성냥불 장난을 했고, 불이 옷장과 옷가지에 옮겨 붙어 화재가 발생했다. 이 화재로 아이들은 숨을 거뒀다. 많은 사람들은 이 비극적인 사건에 안타까워 하며 함께 눈물을 흘렸다. 이들이 공감했던 이유는 자신에게도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었을 게다. 당시 물가와 부동산 가격은 폭등하고 있었고, 생존을 위협받는 농민들은 농약을 먹고 죽거나, 정든 고향을 떠나 도시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권씨 부부도 공주 계룡면에서 농사를 짓다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온 상태였다. 인신매매와 유괴가 활개치고 있었고, 맞벌이를 하면서 아이들을 맡길 곳도 마땅치 않고, 그렇다고 밖에 애들을 놔둘 수도 없었다. 부엌에는 연탄불, 식칼 등 위험한 물건들이 많았고, 밖에 나갔다가 자칫 교통사고나 유괴라도 당할까 걱정되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애들 먹을 밥을 차려놓고 요강을 놔두고, 밖에서 자물쇠를 잠그고 일을 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사고가 35년이 지난 부산에서 일어났다. 지난 6월25일 새벽, 부산 개금동의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해 일곱 살과 열 살 자매가 숨졌다. 불은 콘센트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화재 당시 부모들은 생계를 위해 청소 일을 하기 위해 이른 시간 집을 나갔다고 한다. 사고가 나기 전 이 가족은 주민센터에 생활고 지원 신청을 했다고 할 정도로 경제적 어려움이 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화재 사고가 연이어 부산에서 일어난다. 7월2일 기장군 아파트 화재로 자매가 숨졌고, 14일에는 부산 북구 아파트 화재로 노모와 아들이 숨졌다.
35년 전의 혜영, 용철 사건이 떠올랐고, 이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정태춘의 노래 “우리들의 죽음”을 다시 오랜만에 들어보게 된다. 이 노래 뒤쪽에는 죽은 아이들의 심정을 담은 나레이션(아마도 민중가수 박란희?)이 흘러 나온다.
우린 그렇게 죽었어. 그때 엄마아빠가 거기 함께 있었다면……. 아니, 엄마만이라도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 우리가 방 안의 연기와 불길 속에서 부둥켜 안고 떨기 전에, 엄마아빠가 보고 싶어 방문을 세차게 두드리기 전에, 손톱에서 피가 나게 방 바닥을 긁어대기 전에, 그러다가 동생이 먼저 숨이 막혀 어푸러지기 전에, 그때 엄마아빠가 거기에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 우리가 어느 날 도망치듯 빠져나온 시골의 고향 마을에서도 우리 네 식구 단란하게 살아갈 수만 있었다면……. 아니, 여기가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축복을 내리는 그런 나라였다면……. 아니, 여기가 엄마아빠도 주인인 그런 세상이였다면…….
엄마 아빠 너무 슬퍼하지 마. 이건 엄마 아빠의 잘못이 아니야. 여기 불에 그을린 옷자락의 작은 몸뚱이를 두고 떠나지만, 엄마 아빠 우린 이제 천사가 되어 하늘나라로 가는 거야. 그런데 그 천사들은 이렇게 슬픈 세상에는 다시 내려올 수가 없어. 언젠가 우린 다시 하늘나라에서 만나겠지. 엄마 아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배운 가장 예쁜 말로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어.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이제 안녕.
정태춘의 노래 속 이 아이들의 나레이션을 들으며 눈시울을 붉히던 기억들이 많이 있을 거다. 그런데 35년이 지난 한국은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을까? 경제적으로 성장을 하고, 복지제도도 확충되었다고 하지만, 아이들이 (죽지 않기 위해) 바라던 나라로 바뀌었을까? 그때와 달리 도시화율(90년: 79%=>2021년: 90.7%)은 극단적으로 높아졌고,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소수에 불과하다. 수도권 인구 구성비는 1990년에는 42.8% 였으나, 2024년에는 50.8%에 달한다. 신자유주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고 말하던 것도 벌써 20년 이상 되는 거 같다. “엄마아빠가 주인인 그런 세상”은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축복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죽지 않고 버틸 만한 세상”이면 감지덕지일텐데. 농담으로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다고 하면, 지하까지 파고든다고 하는데, 한국의 상황이 그렇다.
OECD 자살률 1위. 2003년부터 2023년까지 21년동안 2018년 단 한 해를 빼놓고는 모두 1위를 기록한 ‘자살대국’이다. 그중에서도 15~29세 자살률은 꾸준히 늘고 있다. 경제적 빈곤과 정신적 고통, 경쟁의 심화와 압박감, 취업 곤란과 부채 등 청년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2023년 고독사 사망자는 3,661명인데, 그 중 청년 고독사 사망자 수는 앞선 5년간 5~7%대를 기록하고 있다. 고립·은둔 청년 규모가 약 54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노인 빈곤율도 OECD 최고 수준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65세 이상 빈곤율은 38.9%로 OECD 평균인 13.5%의 3배에 이른다. 그러나 국민연금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월 최대 32만원의 기초연금으로는 택도 없다. 고령 일자리도 없다.
저출산 문제는 한국 침몰의 바로미터이다. 2023년 합계출산율은 가임여성 1명당 0.721명(인구 1000명당 출산아 수 4.5명: 조출생률)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한 명이 태어날 때 다섯 명이 죽는 사회다. 육아휴직과 수당은 근로한 기간이 6개월 미만인 경우에는 해당사항이 없다. 결혼하지 않으면, 출산도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비혼출산이 불법은 아니지만, 거의 없다. 비혼출산율은 2.5%에 불과하다. 미국은 40%가 비혼출산이고, 멕시코는 70%이며, 프랑스도 62%, 영국 49%에 달한다. 결국 낮은 출산율은 낮은 혼인률에 근거하는데, 그 이유는 결혼과 출산이 매우 값비싼 ‘사치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높은 전세금과 주택매매가는 청년들의 결혼에 허들이 되었고, 여성들은 출산이 미래의 높은 기회비용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쉽게 선택할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침몰 징후는 뚜렷하다. 그러나 행동으로 변화를 보여주는 주체는 없다. 안그래도 기후 변화로 인한 재난이 더 빈번하고 크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빈곤과 경제적 사회적 문제들도 끊임없이 터져나오고 있다. 앞서 언급한 연이은 부산 아파트 화재사건도 기후위기와 사회경제적 문제가 중첩된 사건이다. 언론은 에어컨 전력량을 견디지 못하는 노후한 ‘멀티탭’과 노후한 아파트의 ‘스프링쿨러’의 부재를 반복해서 언급하고 있지만, 강남의 아파트에서 이런 문제가 벌어지지는 않는다. 어린 두 아이를 두고 새벽에 일하러 나갈 수밖에 없는 부부의 노동조건, 복지조건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김현성의 『자살하는 대한민국』(사이드웨이, 2024)는 한국사회가 스스로 ‘사멸’해 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 믿을 수 없는 현실은 다른 외부의 세력 때문에 벌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긴 세월 동안 한국 공동체 구성원들 스스로가 선택하면서 만들어 온 경로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사멸’을 향하는 ‘운명’을 스스로 바꿀 의지가 없고, 해결을 거부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건 한국인의 품성이 나빠서도 아니고, 특정한 정치 세력(국민의 힘, 또는 더불어민주당) 때문도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돈의 문제’ 때문에 ‘사멸’하고 있다고 본다. 즉 한국은 아프지만 ‘병원비’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의 선택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논리 구조는 이렇다. 한국의 공동체는 병들었고, 그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기꺼이 주머니를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돈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타국 대비 생필품 비용이 비싸고 대신 사회인프라와 서비스 물가는 싸다. 그 중 식료품 물가가 매우 높고, 임대료와 음식점 물가는 낮다. 최근 식료품 물가는 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물론 한국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많이 먹는다.) 식료품비가 비싼 이유는 농업생산성이 낮아서 그렇다. 농경지는 너무 좋고, 농업은 중소 자영농 중심으로 영세하다. 헌법 121조에 농지의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고 명문화되어 있다. 그래서 농지는 전세권을 설정할 수 없다. 농업 보호 정책은 농업소득 보전에도 실패하고 경쟁력도 획득하지 못했으며 농업소멸 직전에 와 있다. 한편 낮은 에너지 물가, 낮은 교통비, 낮은 서비스 물가는 수출주도 경제발전 과정에서 억제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식료품 물가가 높으니 이를 쉽게 올릴 수도 없다. 더구나 정책 의사결정권자들은 ‘민심’=‘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여기에다 사교육 문제가 있다. 자녀가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사교육 지출을 할 수밖에 없다. 준조세의 성격을 가진다. 학생 1인당 월 평균 52만원을 쓴다. 가계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3인 가구: 17%(서울 23%), 4인 가구: 28%(서울 38%)) 핵심 납세자 집단의 상당수가 10%~40%의 준조세를 이미 어딘가에 납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한국 가계들은 가처분소득이 낮을 수밖에 없다.
두 번째 문제는 서울-수도권 집중의 문제이다. 수도권과 서울 집중은 한국 공동체의 물리적 소멸의 원인이다. 서울 출산율은 전국 평균을 밑도는 0.53명 수준이다. 서울이 포화상태가 되자, 경기도로 인구가 몰려 들었다. 취업의 남방한계선이니, 기업 이전의 남방한계선이니 하는 말도 회자되었다. 동작은 스스로를 강남4구라 강변하니, 충청도와 강원도도 이제 자신을 ‘준수도권’이라 자칭한다. 서울과 수도권의 인프라 개선은 이 공간을 더욱 매력적이게 만들고 수요를 창출했다. 고소득층일수록 아파트 거주율이 높고, 주거 공간이 계급화되고 있다.

좋은 일자리도 수도권이 독식하고 있다. 높은 소득과 상대적으로 짧은 노동시간=높은 노동생산성을 보여주는 좋은 일자리는 대체로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서비스업 중 금융보험업은 서울에 집중되어 있고, 제조업 중 부가가치가 높은 반도체, 2차 전지, 디스플레이 등도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IT 산업 역시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참여정부의 행정수도 건설은 헌재의 ‘관습헌법’ 판결로 가로막혔고, 부울경메가시티는 국민의힘 부울경 시장, 도지사의 철회로 막을 내렸다.
노동생산성이 낮은 것도 한국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 중 하나이다. 제조업 노동생산성은 높은 편이지만, 서비스업의 노동생산성, 특히 도소매 및 숙박음식점, 교육서비스업, 운수 및 창고업 등이 매우 낮은 생산성을 나타낸다. (이미 건설업, 운수업, 숙박음식점 등 낮은 노동생산성 업종의 많은 인력이 외국인노동자들로 채워지고 있다. 저자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더 많은 문제만 양산할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의 서비스업이 낮은 노동생산성을 갖는 이유는 규모가 영세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저부가가치 업종에 편중되어 있으며, 시장이 좁아서이기도 하다. 또한 한국의 서비스업은 수출에 적합하지 않은 업종이 많은데, 그나마 수출 비중이 높은 건설과 운송도 중국과의 경쟁으로 부가가치가 높지 않다. 이는 자영업의 낮은 생산성 문제와 연결된다. 한국은 역시 자영업의 나라이다. 그런데, ‘영세한’ 자영업의 나라이다. 비교가능한 대상국들에 비해 2~5배 더 영세하다. 그 영세한 업체들끼리 무한 경쟁을 하면서, 서비스업의 물가를 스스로 억제하고 있다. 당연히 노동시간은 많은데, 빈곤율은 높다.(임금노동자의 3배)
중소기업도 생산성이 낮다. 대기업의 30% 수준에 머물고 있다. 대기업의 하청업체 이외의 다른 역할을 기대할 수 없고, 글로벌 벨류체인에 직접 올라탈 수 없으니 낮은 부가가치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중소기업의 노동유연성을 확보하는 방식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미 노동유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외부수량유연성과 임금유연성은 이미 높은 편이다. 노조 조직률은 10%로 OECD 평균인 26%보다 훨씬 낮다. 사회안전망도 얕다.
그나마 한국에서 지갑을 조금이라도 열 수 있는 집단은 수도권에 거주하며, 좋은 교육을 맏고, 고생산성 수출 대기업에 종사하는 경제 활동 인구 집단 정도이다. 그러나 이들은 배ㅏ적이다. 물적, 인적 자본의 세습을 추구한다. 조귀동은 이를 ‘세습 중산층 사회’라고 일컬었다. 대다수의 임금 노동자, 대다수의 자영업자들이 저생산성 상황에 처해 있고, 그나마 좋은 일자리는 수도권에 몰려 있으니, 청년들은 수도권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서울의 주거는 한정되어 있으니, 청년들은 서울에는 들어오지 못하고 경기도와 인천에 정착한다. 노인빈곤율은 40%로 OECD 1위이다. 자산을 가지고 있는 노년층도 언제 빈곤층으로 떨어질지 모를 정도로 불안하다. 연금의 소득 커버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가지고 있는 주택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금융자산은 적고 주택자산만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 살던(노인들을 포함) 사람들은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 그대로 그곳에서 늙어간다. 서울이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서울과 경기도의 투표성향이 디커플링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노년층은 지방소멸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에 있는 주택을 포기하기 어렵다. 노년층은 최저임금 보다 낮은 임금도 기꺼이 감수한다. 노인들의 저임금 공급은 청년들의 일자리에도 영향을 미친다.
노인들이 (서울 주택을 팔고) 지방으로 떠나기 위해서는 연금을 통한 소득대체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3층 연금제도(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의 소득대체율은 47%에 불과하다. 국민연금 고갈이라는 정치적 선동 때문에, 국민연금의 국가 지급보증 명문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잠재부채(암묵적 부채)라는 개념은 일종의 사기다. 이런 핑계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법 개정안에는 ‘국가는 연금급여가 지속해서 안정적으로 지급되도록 필요한 시책을 수립, 시행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국가는 국민과 마찬가지로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데 인색하다. 한국의 공적연금 재정투입률은 미국의 절반 수준인 9.4%에 머물러 있다. (출범 당시 70%였던 소득대체율은 40%로 낮아졌다.)
저자는 이렇게 꽉 짜여진 출구 없는 악순환의 고리 속에서도 대안을 찾아 나선다. 첫 번째는 점진적인 국가 채무의 증가이다. 내국인 개인의 국채 보유 비율을 늘리는 방법이다. 현재 0.1%에 불과한 개인 국채 비율(미국 0.5%, 일본 2.4%, 영국 10%)을 높이는 것은 이자소득도 발생하기 때문에 증세나 사회보험 지출 증액보다 거부감이 덜할 것으로 본다.
보수적인 경제학자, 기획재정부 곤료들은 ‘구축효과’를 내세우면서 미래에 쓸 돈이 많기 때문에 지금 돈을 아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래 세대의 수를 늘리거나 미래 세대의 생산성이라도 보전하기 위해 당장 지금 투자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다. 국가 채권을 내국인들이 소유한다고 가정한다면 외환 위기 발생 가능성도 매우 낮다. 또한 채권 발행하여 들어오는 돈으로 정부가 매입하는 ‘대응 자산’은 상당부분 주요 기축통화 등을 사들여 외환보유고를 마련하는데, 말하자면 국채를 발행한 후 외국 돈을 사들여 저축하는 형태인 것이다. 이렇게 확보한 돈으로 정부 지출을 늘려 나가는 것은 단순히 소득 분배를 넘어, 일상생활의 고비용을 차츰 축소해 나감으로써 장기적으로 모두가 공동체를 위해 지갑을 열어 보자는 사회적 합의를 위한 바탕이 된다. 그런 연후에야 증세의 논의를 시작하면서, 황금 티켓을 이미 쥐고 있는 사회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뒤로 증세를 통해 확보한 재원으로 2070~2100년의 시기를 버텨내야 한다는 것이다. 2050년이 되면 인구 4000만 명 선이 붕괴된다고 한다. 25년이나 남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25년밖에 안남은 것이기도 하다. ‘정해진 미래’를 어떻게 돌파해 나갈 것인지는 지금 현재의 선택으로 좌우된다.
저자가 그려 놓은 ‘자살하는 대한민국’의 꽉 짜여진 불행한 구조는 분명 개개인의 선택이나, 품성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정부’의 역할이라는 것도 결국은 사람들의 뜻이 모이고, 개개인들의 선택이 모여서 조직화되어야 시작할 수 있는 점에서 우리는 그 ‘세력화’에 여전히 주목할 수밖에 없다.(설사 저자가 주목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저자는 말한다. 사회적 “약자성을 탈출하려는 시도가 발언권이 강한 사람들에 의해 차단되고” 있다고. 그 약자성을 가진 사람들의 발언권을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지는 우리 몫일 것이다.
저자의 혜안은 두 가지에서 빛을 발한다. 첫 번째는 한국 사람들이 가난하다는 점. 즉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가처분소득이 적다는 점. 거기서부터 출발해 현재의 악순환 구조와 스스로 그 구조를 받아들이고 고착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어쩌면 활동가들은 인정하지 않을지 몰라도 노동조합 조합원들은 이 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내면화해 전략적으로 살아왔는지 모른다. 두 번째는 2100년이라는 긴 시간지평 속에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내기 위해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OECD가 말하는 한국사회의 황금 티켓 증후군에서 벗어나는 길은 요원하지만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노동에서 출발하는 B플랜도 구체화하자.
<함께 보면 좋은 책>
『천만국가』/우석훈/레디앙/2024년11월/18,000원
『세습 중산층 사회』/조귀동/생각의힘/2020년1월/1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