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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인의 반란자들 - 노벨문학상 작가들과의 대화
사비 아옌 지음, 정창 옮김, 킴 만레사 사진 / 스테이지팩토리(테이스트팩토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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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인의 반란자들이란 제목으로 노벨문학상 작가들의 사진과 인터뷰 담은 책이다. 한 명의 인터뷰도 만만치 않은 일인데, 16명을 모아놓았으니 문학에 큰 관심이 없다한들 어찌 이런 책을 어찌 놓칠 수 있으랴. 하지만 작가들의 면면을 보니 익숙한 작가들도 여럿이지만, 생소한 작가들도 여럿 보인다.

 

이 책은 노벨상 수상자들의 작품 하나하나에 주목하기 보단 그들의 세계관에 관심을 가진다. 그들의 인생을 통해, 문학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어가며, 이루어가려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들은 그들의 작품을 통해 진실을 추구하려 하지만, 그것은 때론 그 땅의 기득권과 주류의 신경을 건드리는 일이기도 하다.

 

오르한 파묵은 이스탄불을 통해 아르메니아인과 쿠르드인 대학살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스탄불의 터키화는 폭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국가는 일종의 인종 청소를 수행함으로써 이 도시에서 모든 언어들의 소리가 잦아들도록 만들었다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유의 상징이 되었지만, 터키 극우민족주의자들에게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

 

월레 소잉카는 자국의 진정한 민주주의의 결여를, 정부와 측근들만 배를 채우는 석유사업과 도처에서 벌어지는 근본주의자들 간의 분쟁을 가차 없이 비판한다. 그는 대중의 우상이자 나이지리아의 만델라로 불린다. 그는 자국의 평화를 꿈꾸며, 니제르 델타 지역의 석유자원 통제를 놓고 투쟁하는 게릴라들과 정부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며, 검은 황금으로 축적한 부의 재분배를 주장하고 있다.

 

왜소하지만 강단 있는 나단 고디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헤이트에 맞서 투쟁했고, 승리했다. 가오 싱젠은 중국의 속을 들춰냄으로써 더 이상 중국에 갈 수 없는 처지이다. 나기브 마푸즈는 이집트에서 일고 있는 이슬람 근본주의 열풍에 맞서고 있으며, 오래전에 괴한에게 당한 피습으로 눈이 멀고 귀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인터뷰를 하고나서 몇 개월 후 죽었다고 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독창적이다. 그들은 문학과 일관성에 대한 완전한 신앙을 공유하고 있다. 또한 대부분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혹은 인도적인 이유로 현실에 참여하고 있다. 그들의 작품은 언어의 보편성을 획득하면서 이 사회에서 주도적인 비전을 제시한다. 그들은 정치적 신념을 넘어, 예술가로서의 마지막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반란자들이라는 제목처럼 세계적으로, 문학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그/녀도, 나고 자란 땅에서는 환영받지 못하는 모습들을 본다. 예술이란 현실을 전복하는 일이기도 하니, 어쩌면 예술가들의 숙명일 수도 있을 테다.

 

나는 도망자일 뿐, 영웅이 아니라는 가오 싱젠은 말한다. 나는 좌파니 우파니 하는 우스꽝스러운 차별성 너머에 존재한다. 나는 권력의 한계에 대항하는 메커니즘으로 형성된 시스템을 믿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급진적인 정치혐오주의자일 것이다. 어떤 이즘이 없이 산다는 것, 그게 바로 나의 저항의 형태이다.”

 

노벨상 수상 이후에 자서전을 통해 나치 전력을 고백해 한동안 소란스러웠던 귄터 그라스의 인터뷰도 기억에 남는다. “치명적인 트라우마까지, 그 모든 것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그는 실제로 가족들의 아픈 기억마저 작품에 남긴다. 용기랄까, 솔직함이랄까. 그렇기에 과거의 기억을 자신의 문학적 원천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독일에서 우리는 정치가나 역사가 같은 유명인사들이 주기적으로 하는 말을 듣는다. ‘,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페이지는 넘기도록 합시다.’ 그러나 그들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과거는 항상 되돌아온다. 모든 대학살과 전체주의 체제에 의해 저질러졌던 그 야만성과 함께.”

 

그리고 오에 겐자부로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 사실 그의 작품을 읽어본 건 살아남의 자의 슬픔이라는 단편소설뿐이다. 하지만 삶과 죽음, 남거나 떠나거나 하는 어떤 고비와 경계의 순간마다 곱씹게 되는 장면이자 문구이기도 해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인상 깊었던 것은 그의 작가로서의 첫 자극제는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의 소리 없는 고통을 자극하고 설명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오늘날 인간의 고통을 표현하는 전문가다. 그리고 일본 사회에서 천황제 등에 반대하며, “스스로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개인의 실체를 옹호한다.” 야스쿠니 신사의 극우민족주의에 맞선 채, 아사쿠사 사원이 상징하는 개개인의 종교성을 지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인터뷰보다 먼저 사진이 중심이 되는 기획되었다는 말을 들어서 사진에 대한 기대가 많았었다. 작가들이 전문 모델이 아니고, 거동이 편치 않은 이들도 여럿이니 사진작가도 자신의 생각대로 구도를 만들기는 어려웠을 것 같은 생각은 들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하지만 사진은 조금 아쉽다. 그리고 아무래도 작가들이다 보니 메타포로 손 사진을 공통적으로 찍은 것 같은데, 너무 구태의연한 테마가 아니었을까 싶다. 차라리 각자가 작품을 쓸 때 사용하는 필기구(만년필, 타자기, 컴퓨터 등)을 매치했으면 좀 더 각자의 스타일을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왜 흑백을 택한 것인지도 좀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작가들이 좀 낯설다면 당연히 내용도 낯선 점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라고 해도 주로 미국과 서유럽, 동아시아에 관련된 뉴스만을 접하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미와 아프리카, 동유럽 등 세계인으로서의 감수성을 좀 더 균형 있게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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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자 잡혀간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꿈꾸는 자 잡혀간다 실천과 사람들 3
송경동 지음 / 실천문학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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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버스 기획자 송경동 시인의 산문집. 기대 없이 펼쳤는데 꽤나 괜찮다. 지난달엔 미셸 투르니에의 책이 그러하더니. 꽤나 절절한 삶을 유려한 문장으로 다듬어 낸다. 자신을 연민하거나 변명하지 않고 진솔하다.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건조하지 않고 유려하다. 그것이 시인의 공력인지, 노동운동가로서의 삶의 태도로 닦여진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매일같이 언어를 다듬고 다듬어 냈던 결과임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사실 책의 첫 장을 넘기기 전까진 저자 송경동과 희망버스 기획자 송경동을 연관 짓지 못했다. 한진 중공업 사태와 희망버스에 그래도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했기에 첫 장을 펼치자마자 뒷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한진 중공업 사태가 지금까지 흘러오면서 다치고 피 흘렸던 많은 노동자들의 이름보다는 하나의 사건으로서 주목을 해 온 탓이리라. 이제는 고인이 된 노동자들의 이름을 책에서 마주하면서도 기억에 없는 것이 어느 덧 미안해진다.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언론을 탓하거나, 세상사가 바빴다는 것이 변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스스로가 더 잘 안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성장과정과 가족사를 다룬 1부와 2부가 기억에 많이 남고 좋았다. 그리고 3부에서부터 콜트/콜텍, 대추리, 기륭전자, 용산 사태, 그리고 한진 중공업 사태와 희망버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책을 읽어가며 그 동안 바쁜 일상에 또는 내가 아니더라도라며 접어두었던 것들에 대해 관심을 환기시킬 수 있었다. 여전히 현재진행중이며, 모양을 달리하며 반복될 일이다. ‘꿈꾸는 자 잡혀간다.’ 라는 제목처럼 여전히 슬픈 세상일지는 모르겠지만, 잡혀가더라도 꿈꾸는 자들이 마르진 않을 것이다.

 

책 안에 군데군데 작가의 시가 인용되는데, 개인적으로는 시보다는 산문이 더 마음에 든다. 앞으로도 시 보다는 산문으로 좀 더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다. 노동운동이라는 한 가지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기에 불편한 부분이 전혀 없지는 않으나, 그래도 많은 것을 환기시켜 준 책이다. 아무튼 책이라도 많이 팔려 조금은 삶의 기운에 보탬이 되길 바란다. 희망버스는 계속 되어야 할 테니.

 

*책을 다 읽어 갈 무렵, 책에서도 언급된 콜트/콜텍 사건에 대해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1,800여일을 끈 사건은 한 지붕 두 가족에 대해 엇갈린 판결(콜트의 건은 노동자의 손을, 콜텍의 건은 사측의 손을 들어주었다.)이 나왔다.  

 

*1부와 2부를 읽으면서는 천명관의 고래 생각이 많이 났다. 고래는 설화를 차용한 소설이고, 이 책은 산문집이지만, 절절한 내용을 유려한 문체에 담아내서였을까...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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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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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다양한 면모가 궁금한 팬이거나, 그의 전작주의 독자라면 모르겠지만, 친구들이 하루키, 하루키 할 때도 달랑 1권의 소설을 읽었을 뿐인 나에게 이 두꺼운 잡문집이 무슨 재미를 줄까 하는 것이 첫 인상이었다.

 

내가 읽은 하루키의 책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였는데, 몽환적인 분위기가 인상에 많이 남아있다. 그리고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에세이집을 가까운 책장에 꽂아두고 있는 것이 나와 하루키의 인연의 전부라면 전부일 것이다.

 

한참 달리기에 빠져 있을 때, 달리기의 문화사 같은 책을 찾다가 하루키가 이런 책도 쓰는가라는 호기심에 사둔 책이다. 그리고 글보다는 보스턴 마라톤을 완주했다는 이야기와 책에 실리 그의 사진에 큰 인상을 받았다. 뭔가 책상머리에 앉아 하루 종일 글을 쓰는 사람의 몸이 아니었다. 잔 근육이 멋지게 발달된 마라토너의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 책에서도 재즈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는데, 취향이 굉장히 잘 발달된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의 작품과 별도로 하루키라는 인물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소설가-재즈 매니아-마라토너라는 이 삼각구도가 내가 하루키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이다.

 

개인적인 인상과는 별도로 이 책 역시 잘 팔리고 있는 것을 보며 여전히 건재한 하루키가 느껴지기도 한다. 1Q84의 영향도 있었겠으나, 이러한 잡문집이 팬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러한 생각으로 책을 펼쳐들었다.

 

책은 하루키가 잡지 등에 기고했었던 글들을 몇 가지 범주로 나누어 싣고 있다. 서문이나 해설문, 수상 소감이나 인사말, 그가 취미처럼 생각하는 ‘음악’이나 ‘번역’에 대한 글들, 그리고 이 잡문집의 일러스트를 그린 안자이 미즈마루와 와다 마코토를 비롯한 주변사람들에 대한 글들. 정확히 따져 보지는 않았지만, 시기적으로는 90년대를 전후로 하는 글들이 주를 이루었던 것 같다.

 

일상적인 감상이나 소회를 담은 소소한 글이기 보다는, 잡지 등에 싣기 위해 어떠한 소재나 주제를 가지고 짧게 쓴, 그의 표현을 빌리면 ‘잡문’이지만 내용이 가볍지 많은 않다. 그래서 각각의 잡문들이 다루는 소재가 생각보다 생소하거나 오래된 것들이 많아, 그것들은 공유하는 폭이 작은 나로서는 책을 따라가기가 다소 벅찼고, 공감할 수 있는 여지들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개인적으론 ‘음악에 관한 글들’과 ‘번역하는 것, 번역되는 것’에 관한 글들을 흥미롭게 읽었다. 음악에 관한 글들은 그가 오랜 시간 동안 기르고 축적해온 취향과 지식의 폭이 결코 적지 않기 때문에 그 자체로 공부가 많이 된다. 세대가 다르고, 그가 다루는 음악의 폭이 나의 그것보다 몇 배나 넓어 쫓아가기 바쁘지만, 그가 다루는 음악들을 오늘밤에라도 찾아 듣고 싶은 욕구를 일으킨다. 특히, 재즈애호가답게 그 분야의 글이 풍부한터라, 재즈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굉장히 좋은 평론 몇 편을 읽은 느낌이다.

 

그리고 ‘번역’에 관한 글들은 요즘 습작처럼 번역을 해 보는데, ‘외국어 실력보단 국어실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는 중이라 더 살갑게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그런 글들을 보며 그가 외국어, 언어를 다루는 감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고, 번역에 대해 조금의 감을 더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가 루이비통의 의뢰를 받고 썼다는 ‘바람을 생각하자’라는 글이 있다. 그와 그의 부인이 그리스의 이름 모를 섬에 거주하면서 느낀 ‘바람’에 관한 에세이인데, 개인적으로 ‘바람’을 좋아해서인지 이 글이 인상에 많이 남는다.

 

... 인간이 진정으로 바람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우리네 인생 중에 아주 짧은 한 시기뿐일 것이다. 왠지 그런 것 같다. ...

 

바람 뿐 아니라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진정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정말 짧은 한 시기 뿐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보며 그런 시기의 감상과 생각들을 잡문이든 아니든 기록해 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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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을 보내주세요
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 -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간절히 필요한 순간, 두뇌에 신선한 자극을 주는 지적 유희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정란 옮김 / 예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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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재미와 감동을 온전히 말로 전하지 못하는 것은 아직 소화가 덜 되었기 때문이라. 머릿속 어딘가에 담아두거나 또는 서재에 꽂아두고 세월 속에서 되새김질 하며 숙성시켜야 하는 종류의 책이 있다면, 이 책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채 다 먹기 전이라도, 먹고 나서 어떤 맛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어도, 이건 확실히 “맛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음식이 있듯, 이 책 역시 그러한 책이다. 오랜만에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책을 만난 지라 더욱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프랑스에서 출간된 것이 1994년이니 거의 20년이 흘렀는데도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자극을 준다. 이 책은 철학에세이다. 하나의 주제를 짧은 분량에 수필적 형식을 빌려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 목적과 내용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저자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열쇠-개념’들은 한정되어 있다고 전제하며, 자신만의 사유의 범주로 116개의 ‘열쇠-개념(key concept)'를 제시한다. 이 ‘열쇠-개념’은 음과 양처럼 하나의 개념이 다른 개념과 짝을 이루고 있으니, 58개의 ‘짝-열쇠-개념’으로 정리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 것은 이 세상을 사유하는 도구로 58개의 ‘짝-열쇠-개념’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조금 과하게 해석한 것일 수는 있으나, 오역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책을 읽기에 앞서 자신이 세상을 사유하는 도구는 무엇인가를 점검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거칠게는 ‘선과 악’으로 세상을 나누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음양오행으로 만물의 이치를 꿰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질문에 대한 저자 나름의 대답인 것이니, 책이 비록 에세이 형식을 빌리고 있으나 저자로서도 그리 녹록한 기획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 내내 즐거우면서도 불편한 간극이 생겨난다.

 

일단 이 책은 술술 읽힌다. 술술 읽히기엔 멈칫거리며 사유하게 만드는 문장들이 꽤 있고, 백과사전처럼 새롭게 알게 되는 지식과 정보들이 툭툭 튀어 나오지만, 예의 프랑스 철학처럼 글이 꼬여 있지 않다. 오히려 문학적 글쓰기의 능한 작가의 내공 덕분에 꽤나 두뇌를 쓰게 만들면서도 술술 읽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열쇠-개념’들도 ‘남자와 여자’, ‘사랑과 우정’, ‘웃음과 눈물’, ‘고양이와 개’, ‘포크와 스푼’, ‘신과 악마’처럼 일상적이고, 자주 이야기되는 것들이다. 진중권이나 문화철학자 김용석의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이 책 역시 맘에 들어 할 것이다. 다만, 둘의 책이 분량과 밀도에서 좀 더 묵직한 스트레이트라면, 이 책은 에세이라는 형식 탓에 분량과 밀도에서 확실히 잽이라는 느낌이다.

 

그래서 불편한 간극이 생겨난다. 저자가 쉴 새 없이 잽을 날리며 우리의 사유를 툭툭 건드리지만(물론 잽도 계속 맞다보면 휘청거릴 수 있겠지만), 결코 스트레이트나 어퍼컷을 날리지는 않는다. 116개의 ‘열쇠-개념’이 저자 나름대로 세상을 사유하는 ‘골든 키’임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키에 대한 글들이 농밀한 사유나 논리적 전개과정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철학적 주제라고 해서 논리적 글쓰기의 관점에서 보면 한 마디로 충분치 않다. 대신 문학적 글쓰기를 통해 사유와 정보를 좀 더 자유롭게 변주하고 구성해 내기에 즐겁운 책읽기가 가능해진다. 읽는 사람의 성향 또는 목적에 따라 만족도가 달라질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스타일은 충분히 멋진데, 저자의 의도에 이런 스타일이 최선인지는 개인적으로는 좀 더 생각을 해 봐야 할 것 같다.

 

그러나 하나하나의 글에서 빠져나와 116개의 ‘열쇠-개념(key concept)’/‘58개의 ‘짝-열쇠-개념’으로 전체를 조망하노라면, 작가가 이런 에세이 형식으로 자신의 거대한 기획을 실현하려고 했던 저의를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다. 오히려 혼란의 시대에 코미디의 수요가 늘어나는 것 처럼, 조금은 읽기에 수월한 글들이 대중들에게 좀 더 환영받을 수 있을테니, 책으로선 이 쪽의 운명이 좀 더 나은건지도 모를 일이다. 

 

 

* 이 책은 98년에 국내의 한 출판사가 「상상력을 자극하는 110가지 개념」이라는 제목으로 내 놓았던 책을 다시 내 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 (* 참고로 이 책은 116개의 ‘열쇠-개념’을 담고 있는데 비해, 과거의 책은 110가지 개념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이 책에서 2개의 개념을 짝으로 하나의 글을 쓰고 있으므로, 6개라면 3개의 글이 그 때 누락됐거나/아님 새롭게 추가된 것일 텐데. 저간의 사정을 알 수 없으나 좀 더 제대로 된 역본으로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감사한다.

 

** ‘그런데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간절히 필요한 순간, 두뇌에 신선한 자극을 주는 지적 유희’, 이런 부제는 책의 가치를 오히려 깎아내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으로 남는다. 이 책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간절히 필요한 순간 적어도 열에 일곱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될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순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이 책의 가치는 상관없이 빛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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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황홀]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칼과 황홀 - 성석제의 음식 이야기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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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음식이야기다. 황석영의 뒤를 잇는 이야기꾼이라는 얘기를 적잖이 들어온지라 언제가 성석제의 책을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쭉 하고 있었다. 그래서 서점에 새 책이 나올 때 마다 한 번씩 뒤적여 보고는 했는데, 왠지 입에 잘 붙지가 않았다. 깊이 생각을 해 본적이 없어 딱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황석영의 것도 그러했다. 개인적으로 치는 이야기꾼은 천명관이다. 그의 <고래>를 읽으면서 소설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이렇게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이 있구나하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과정을 거쳐 오다 이번에 성석제의 음식기행이라 할 수 있는 <칼과 황홀>을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앞서의 과정처럼 왠지 잘 읽히지가 않았다. 이야기꾼이라면 옛날 옛적에 하는 그 순간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귀를 쫑긋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나를 확 낚아채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몇 번을 펼치고 몇 번을 덮고 하는 사이에 점점 무슨 맛인지 알 것 같았다. 인공조미료에 중독되어 있다가 소금과 간장, 된장 등의 천연 조미료만으로 만든 음식을 먹으면 처음에는 무언가 밋밋하게 느껴지다가 그 맛에 혀가 적응될 즈음이면 몸 자체가 그 맛에 반응하는 것처럼. 성석제를 왜 이야기꾼이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조금씩 알 것 같았다.

 

이 책은 담백하지만 그 담백함 속에 다양한 맛을 느끼게 해 준다. 그래서 심심하지가 않다. 공간과 문화라는 날줄과 시간과 추억이라는 씨줄을 엮어 만들었기에 이야기가 허툰 것 없이 조밀하면서도 넓다. 음식과 지역의 이름에 얽힌 어원과 역사를 쫓다가도, MSG나 글루탐산과 같은 조미료의 화학성분을 이야기하고, 어느 순간에는 용궁반점과 펭귄반점의 대결을 이야기한다. 베를린에 체류하면서 다양한 다문화 음식들을 두루 살피고, 평범한 두부과자에 얽혀있는 진실을 이야기한다.

 

생명을 취하고 조리하는 도구인 ‘칼’로 만든 요리를 먹으며 우리는 ‘황홀’에 빠진다. 일상에 치여 무언가 허기를 채우고자 한다면 오랜 세월 기르고 거른 이 책을 먹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하지만 조심할 것은 분명 이 책에 나온 음식점들을 가보고 싶을 것이고, 가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나중에 이걸 먹어봐야지 하는 단순한 욕망이 지친 일상을 좀 더 힘차게 할 것이다. 책 곳곳에 있는 정훈이의 만화는 책을 읽는 동안 한 번씩 기분을 새롭게 해 준다. 그리고 책 마지막에 정리되어 있는 저자의 맛 지도와 추천 맛 집도 꽤 괜찮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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