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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도시 이야기 - 상 - 베네치아공화국 1천년의 메시지 ㅣ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시오노 나나미 지음, 정도영 옮김 / 한길사 / 2002년 5월
평점 :
영화제가 열리는 곳, 비엔날레가 열리는 곳, 그리고 한 국가가 태어났다가 죽어간 곳, 그 곳은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바다의 도시라 불리는 베네치아다.
나에게 전기를 읽는 일은 그다지 익숙치 못한 일이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책 중에서 전기를 찾는 일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책을 읽는 데 있어서는 거의 철저하다고 할 만큼 잡식성으로 이런 저런 책을 읽었다. 아무래도 소설 쪽에 치우친 듯한 느낌이 있지만 소설도 한 가지만 치우쳐 읽지 않았다. 근데 유독 그 중에서 전기를 찾기는 힘들다. 그런 내가 정만형에게 빌린 바다의 도시 이야기는 한 사람의 전기가 아닌 한 국가의 전기였다.
시오노나나미의 이름은 로마인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다. 15년 동안 1년에 한 권씩 써서 로마사를 집대성 하겠다는 의도는 그 자체만으로도 화제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제 11권 째에 이른 로마인이야기 이전의 시오노나나미는 줄곧 이탈리아에 대해서 써왔다. 로마인이야기도 그 연장선상에 있겠지만 로마인이야기 이전에 쓴 또 다른 한 국가의 전기인 바다의 도시 이야기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이탈리아 북부의 베네치아, 종종 우리들이 베니스라고 부르기도 하는 도시를 다루고 있다.
1000년에 걸친 베네치아의 역사는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흥과 쇠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런 베네치아의 역사는 이탈리아에 매료된 시오노나나미에게는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재료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시오노나나미는 그 재료를 가지고 한 사람의 전기조차 읽기 어려워하는(어려워한 다기 보다는 자주 접하지 못했다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독자에게 한 국가의 전기를 읽도록 만들었다. 한 위대한 사람의 전기는 그 자체가 상당한 압력을 가지게 마련이다. 그 압력이란 위대한 문학작품이 가지는 그것과 비슷한 것이다. 그러나 한 위대한 국가의 전기가 가지는 압력은 그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전기 중에는 한 사람에 대한 전기보다 한 국가에 대한 전기가 더 적은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압력 때문인지 한 국가의 전기가 가지는 매력은 한 사람의 전기가 가지는 매력을 능가한다. 시오노나나미는 그 때문에 이탈리아로 갔을 지도 모른다. 제국의 땅이며, 종교의 땅이고, 르네상스의 기원지인 이탈리아이기 때문이다. 시오노나나미의 저작들은 종교의 땅인 이탈리아와 르네상스의 기원지인 이탈리아를 너무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그리고 제국의 땅인 이탈리아에 대해서는 지금 다루고 있다. 그런 시오노나나미였기에 베네치아는 르네상스의 기원지인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정수로 느꼈을 거다. 그래서 베네치아라는 한 국가의 전기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간 걸 지도 모른다.
베네치아는 펄 위에 세워진 도시다. 사람들은 필요에 의해 베네치아를 만들었고, 어쩔 수 없이 바다로 나갔다. 바다 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고기잡이 말고는 교역 밖에 없다. 그런 상황이 베네치아를 교역국가로 만들었다. 교역국가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자급자족을 할 수 없는 국가이다. 먹을 것조차도 수입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국가가 교역국가 베네치아다. 베네치아에게 교역은 젖먹이 아기에게 젖과 같았을 것이다. 교역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교역 당사자들 간의 우호관계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우호관계를 이루는 것은 외교다. 베네치아의 외교를 이런 절대적인 필요성 가운데 발전했다. 베네치아의 외교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외교란 저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할 정도로 뛰어났다. 교역국가로 성장한 베네치아이기에 상업을 비롯한 돈버는 일에 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하지만 바다 위로 교역하는 국가에서 교역품을 해적에게 모두 다 뺏겨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래서 베네치아의 해군력은 강력해졌다. 교역에 필요한 기지를 확보하기 위해서 해외기지가 필요했고, 그 해외기지를 온전히 잘 통치하기 위해 강력한 행정력도 필요했다. 그 행정력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베네치아에 가장 잘 맞는 통치체제가 필요했고, 그 필요성은 베네치아 특유의 공화정을 탄생시켰다. '태초에 장사가 있었나니' 베네치아는 그런 국가였다.
오르막이 있으면 분명 언젠가는 내리막이 있게 마련이다. 베네치아도 항상 오르막을 오르기만 한 것은 아니다. 1000년에 걸치는 역사 중에 내리막도 있었지만 그 내리막을 다시 오르기도 했다. 성자필쇠라 했던 가 결국 베네치아도 다시는 오르지 못하는 내리막을 내려가게 된다. 유럽세계에서 교역의 중심은 신세계와 아프리카를 경유하는 인도항로가 생기기 전까지는 지중해에 있었다. 하지만 조금씩 교역의 중심은 대서양으로 옮겨가기 시작하고 그 와중에 베네치아의 교역은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지중해 교역의 쇠퇴는 베네치아의 쇠퇴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지중해가 유럽의 중심이었던 시대가 지나가면서 베네치아는 경제의 중심을 수공업과 농업으로 돌리기 시작한다. 그러한 변화는 교역국가였던 베네치아가 더 이상 교역국가가 아니게 만들었다. 교역을 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들의 필요성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하고, 베네치아는 알게 모르게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베네치아가 더 이상 베네치아가 아니게 되자 베네치아의 쇠퇴는 바로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베네치아의 저력은 어쩔 수 없는 내리막을 내려가는 속도마저 늦췄다. 하지만 끝끝내 추락을 멈추지는 못했다.
종종 한 사람의 죽음은 한 국가의 죽음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베네치아의 죽음은 그 누군가 때문도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시오노나나미는 베네치아를 천수를 누릴 만큼 누리고 죽은 사람에 비유한다. 위대한 사람의 죽음은 종종 그 스스로의 무게에 눌려 비참하기도 하다. 하지만 베네치아 그 위대함에 짓눌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자신의 위대함을 넓게 펼쳐내기까지 했다. 그래서 베네치아는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시오노나나미는 그 특유의 담담함으로 베네치아가 흥하는 것을 그려냈다. 그리고 그 특유의 담담함으로 베네치아가 쇠하는 것도 그려냈다. 조금씩 수명을 다해가는 베네치아를 그리는 시오노나나미의 글은 장송곡을 연상케했다. 장송곡 중에서도 장엄한 장송곡이었다. 2003/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