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에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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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에 이어 발표한 소설이다. 정신분석학적 표현을 보자면 전작과의 연장선에 있는듯도 하나 조금 더 나아가 여기에 생물학을 입혔다. 인간의 정신이 생물학적 육체의 생리에 근간을 이룬다는 것을 알았다는듯 이 소설은 그 전작들 보다 훨씬 농밀하고 객관적이며 정곡을 정확히 집어내고 있다. 그것은 기억보다 마음보다 육체가 더욱 정직한 까닭이 아닐까 싶다.

정신분석학에 가미된 생물학적 지식들. 그리고 절묘하게 짜여진 상황설정과 구성, 형식, 시점들. 정말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매우 성실한 작가다. 많이 공부하고 연구했다는게 작품 곳곳에 드러난다. 그래서 임상사례 소설로도 손색이 없다고들 하지만 혹자는 오히려 이런점을 꼬집어 그건 소설이 아니라고도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 소설은 이런게 아니라고. 하지만 어디 박완서 아줌마 식의 구구절절 이야기 보따리만이 소설이라고 할 수 있나. 소설이란 말그대로 극적 드라마가 미덕이다. 하지만 요즘 나오는 소설들을 가만보면 작가가 정말 '날로 먹으려'하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현장경험 없이(이건 발로 안 뛰고 책상머리 앞에서 상상만 했다는것이다) 그리고 전문지식 없이(이건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을 새삼 다시 말하고 있다는것 또는 감성만으로 밀어부친다는 것이다) 쓰여진 작품들을 보면 한없이 가볍다는 생각 뿐이다. 여기서의 가벼움은 하루키의 태산보다 무거운 가벼움이 아니다. 그냥 깃털처럼 후 불면 꺼져버릴듯한 가벼움.

그에 비하면 김형경의 소설들은 아주 오래도록 읽어야 한다. 한문장을 그냥 넘어감이 없다. 낯선 단어와 유려한 표현들이 자꾸 눈길을 걸고 넘어진다. 장점이 곧 단점이 된다고 그런 이유로 김형경 소설은 스피드는 좀 떨어진다. 박진감이나 빨려드는 재미가 덜한 편이다.

또 김형경은 단어 만들어 내기로도 유명한데 문맥상의 의미는 알겠는데 막상 사전을 찾으면 없는 단어들이 많다. 뉘앙스로 만들어내는 자신만의 낱말들이 많은 작가. 그건 다독과 문장을 만드는 오랜 훈련에 의해 육화된 글쓰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형경의 소설은 꽉찼다. 그래서 소장할 가치가 있다는 것. 독파하고 나면 마음이 뿌듯하다는 것.

이 소설의 매력은 흥미로운 구도에 있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두 가지 사건. 그리고 그 사건을 각각의 관점에서 서술하는 촛점화자의 이야기. 또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내용은 성(性)에 관한 담론인데 성과 죽음의 상관관계로 정신분석학(프로이트의 관점)과 더불어 생물학적 지식이 삽입되어 참 재밌다. 이를테면 오르가즘은 죽음의 순간을 짧게 맛보는 것이라는 얘기가 있는것처럼 섹스는 에로스와 타나토스(죽음충동)의 결합체란다. 그리고 이를 가장 잘 나타내는 우리신체 부위의 낱말이 있는데 그게 바로 '젖무덤'이다. 아하, 무릎을 치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읽게 되는 소설이다. 지적 충만감을 맛 보고 싶다면, 사랑에 대한 좀더 적날한 진실을 알고 싶다면 지금 이 책을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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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
천운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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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천운영의 두번째 소설집

그로테스크한 탐미주의자. 그녀의 글에선 짐승의 냄새가 난다. 작품들을 읽는 내내 육식성 동물의 끈적끈적한 체취와 냉철한 눈빛이 시종일관 떠올랐다.

그녀의 데뷔작 ‘바늘’에서 보여줬던 분위기가 작품집 전체에 퍼져있었다. 그래서일까. 각각의 작품들이 연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수면 밑으로는 조금씩 연결되어 있는게 느껴졌다.
이를테면 같은 사건을 두고 이 소설에서는 이 인물의 시점으로 다른 소설에서는 저 인물의 시점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 그러면서 자신의 전사를 내보이고 있었다. 소설 속 주인공의 전사가 아닌 작가 바로 자신의 전사. 작품들을 퍼즐삼아 어렴풋하게 작가를 연상해 봤다. 할머니의 가슴에 집착하고 엄마의 존재에 대한 동경과 두려움, 아버지에 대한 거리감과 애증을 가진 아이. 작가가 혹 조모에 손에 키워진 것이 아닐까하는 추측을 하게 한다.
그리고 이 작가에게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첫 번째 소설집은 아직 못 봤지만 두 번째 소설집에서까지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드는 것은 어찌보면 아마추어 같다는 느낌이 든다.
자신의 내면을 고스란히 내보이는 것. 작품들의 연계성은 하나의 사건이 픽션이 아닌 실화이고 그건 곧 작가의 이야기라는 공식을 제시한다. 그러면서 작가가 자신의 트라우마로 응석을 부리고 있는건 아닌가하는 의문이 든다. 작가 천운영의 스타일은 인정하지만 그녀가 아직 프로작가라는 것에는 못미더운 기분을 갖게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스타일은 마음에 든다.

요즘 느끼는것이지만 이 세계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산재해 있어서 우리는 늘 선택을 강요받는다. 선택과 깊이.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절실한 코드는 바로 이게 아닐까. 무언가를 선택해야하고 그 폭을 좁혀서 그것에 좀 더 깊이 들어가야하는 과정.
앞으로 21세기는 편집광 만이 살아남는단다. 신의 경지에 다다를만큼의 완벽성. 자신의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한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치밀함. 이야기가 좀 삼천포로 빠졌지만 아무튼 남과는 다른 차별성이 있어야 살아남는다. 자신의 스타일을 완벽하게 추구해야만 그 사람의 이름이 브랜드화 되는것이다. 그런면서 천운영은 좋은 점수를 받는다. 자신만의 색을 가졌다는 것은 굉장히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입지가 굳혀진 것은 그의 소설들이 과학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그 방면의 프로다. 얼마 전 안 사실이지만 그는 과학잡지의 기자로 일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그는 과학적 시각으로 보는 법을 익혀왔다. 개미를 16살때부터 12년동안 쓴 작품이라고 하니 알만하지 않나.

나만의 스타일을 가질 것. 장르를 선택하니 이제 스타일이 남았다. 그러고보면 인생은 선택의 연속으로 흘러간다. 눈 앞에 보이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선택이다.
자장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물론 짬짜면을 먹으면 된다- 애인을 만나러 갈까 도서관에 짱 박혀 글을 쓸까 -물론 난 쪼르르 달려 나간다- 설거지를 할까 말까 -결국은 엄마에게 한대 맞고 한다- 이런 선택의 과정 속에 지친 우리를 위해 술집의 안주 ‘아무거나’가 탄생했고 여자들은 자신들의 고민 없이도 어디로든 잘만 데려다 주는 소위 ‘리드하는 남자’를 좋아한다.
그러나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두 가지가 분명 존재한다. 이 세상에 돌연히 나온것과 홀연히 사라지는 것. 아무도 이 상황은 선택할 수 없다. 물론 자살을 스스로 선택한 죽음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나같은 지독한 운명론자에게는 씨알도 안먹히는 소리다. 그건 제 명대로 살다 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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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들의 섬 밀리언셀러 클럽 3
데니스 루헤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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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백 페이지에 가까운 이 소설을 읽는데 하루를 몽땅 바쳤다. 어쩌면 오늘 대구에 갔을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시간을 소진하는 것보다 이 소설 한편에 모두 쏟아 부은게 탁월한 선택이었다.

공포물인가 했더니만 스릴러였다. 스티븐 킹 소설은 읽은게 거의 없지만 비슷한 류 일 것이다. 그래서 하루만에 읽은게 가능했겠지만. 그렇다고 킬링 타임 용으로써의 작품 정도는 아니다. 책 표지에도 있는 말처럼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소설이다. 이 작가의 전작인 ‘미스틱 리버’도 보고 싶다. 이 소설이 영화화 되고 있다던데 식스센스처럼 결말이 백미인 그런 영화가 될게다. 그래서 이 책의 리뷰에서 사람들이 모두 조심스러웠나 보다.


식스센스가 한창 극장가에서 상영될 무렵 표를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는 사람들에게 버스를 타고 지나가던 한 남자가 “그거 범인 누구야!” 라고 말했다는 것처럼 -나는 이런 사람들에게 충동적인 살의를 느낀다- 이 책의 반전을 리뷰에 모조리 풀어 놓는다면 아마도 이 출판사에선 내게 테러를 가할지도 모른다. 타인의 행복을 앗아가는 그런 파렴치한은 되지 말자.

<1954년, 외딴섬의 정신 병동에서 환자 한명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조사를 위해 파견되 두 명의 연방 보안관은 실종 사건이 환자들을 대상으로 불법 시술을 일삼는 병원측의 비리와 관련있다는 추측ㅇ르 하곤 병원의 비리를 밝히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중증 정신 병자들만 수용한 병동으로 잠입하려 한다. 하지만 몰아닥친 강력한 폭풍우로 정신 병동의 보안은 마비 상태에 이르고, 정신 병자들이 병동에서 쏟아져나오면서 연방 보안관들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다.>


책 표지에 간략하게 소개된 줄거리는 대략 위와 같다. 여기서 더 이상 무언가를 말한다면 나도 파렴치한이 될 것이기에 내용에 대한 언급은 피해야겠다.

결말에서 난 작가의 시각이 궁금했다. 하드 보일드로 끝낼 것인가, 휴머니즘으로 끝낼 것인가에 대해. 결과는 내 생각과는 달리 하드 보일드하게 끝나 버렸고 난 작가가 인간에 대한 애정이 부족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쪽이 오히려 완성도가 더 높겠다 싶은 생각이다.


독자들을 감쪽같이 속인 작가가 참 깜찍하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나 추리물은 3인칭 전지적 시점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걸 느끼면서 그제 읽은 뒤렌마트의 ‘노부인의 방문’에서 나왔던 마녀사냥이 생각났다. 미친다는 개념도 그런 게 아닐까 싶은데 모든 사람이 한 사람을 미치게 만들 수 있고 그것에서 열외 당하지 않으려면 집단에 복종해야 한다는 면에서 비슷한 개념이지 않나. 진실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고. 역시 집단이란 무서운 존재다. 군중, 시청자, 여론, 네티즌들로 표현되고 있는 집단들의 광기 혹은 파워를 보라. 그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무엇에도 관철 시킬 수 있다. 드라마의 결말을 좌지우지하고 마녀재판처럼 연예인 하나를 잡아다가 사장 시켜 버린다. 그들의 하나하나는 선량하고도 연약한 시민들이지만 뭉치면 괴물딱지로 변해 엄청난 파워를 지니게 된다.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말을 했나보다.

또 한가지, 정신적 외상 즉, 트라우마는 벌어진 상처와도 같아서 세균이 더 쉽게 침투한다. 정신이 아픈 사람들은 이 상처를 잘 돌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상처만 아픈게 아니다. 정신의 상처는 보이지 않기에 방치 될 위험이 더 크다. 게다가 그 상처는 나만이 알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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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식 메피스토(Mephisto) 2
척 팔라닉 지음, 최필원 옮김 / 책세상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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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빅터 맨시니는 세상에서 섹스보다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섹스중독자다. 그래서 비행기, 여자 화장실, 교회를 가리지 않고 섹스에 탐닉한다. 그의 직업은 전문적인 질식사 연출 사기꾼.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다가 갑자기 음식이 목에 걸려 질식하는 척하는 것. 분명히 누군가 달려와 그를 구해낼 것이고, 그렇게 그영웅은 생명의 은인이 되어 그의 남은 여생을 책임지게 된다. 이백번도 넘는 사기극 덕분에 그는 매주 은인들이 보내 준 수표 세례를 받으며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

내가 이 짓을 하는 것은 사람들의 단조로운 일상에 짜릿한 자극을 주기 위해서다. 내가 이짓을 하는 것은 영웅을 창조하기 위해서다. 사람들을 시험에 들게 하기 위해서다. 내가 이 짓을 하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다. 사람은 누군가를 구해주면 그 사람을 영원히 사랑하게 된다.>

-책 표지에서




우선 이 작가는 특이하다. 생긴건 익살스러운 게 꼭 짐 캐리를 닮았는데 소설도 그렇게 익살 맞으며 때때로 천재성도 번뜩인다. 하지만 그 천재성은 움베르토 에코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처럼 잘 닦여진 견고함이 아니라 성글고 거칠지만 그래서 더욱 매력적인 기질이다. 컨테이너 열차의 엔진수리공으로 일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그의 이력을 보니 더욱 이해가 된다.

처음엔 그 독특한 상상력들이 마치 ‘남자 아멜리 노통’ 같다고 느꼈는데 노통보다 몇 배 위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 천재성을 너무 믿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학습되지 않은 길들여지지 않은 기질이 너무 오바 되어서인지 퇴고는 적어도 한두번 했어야 됐지 싶다. 너무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는 것. 그게 자신의 발목을 잡는 함정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에게 말해 주고 싶다.

<파이트 클럽>에서도 보여줬던 중독자에 대한 담론이 여기서도 나오는대 여기선 ‘섹스 중독자’ 하나만을 심도 깊게(?) 파고든다. -섹스 중독에 대한 아이디어는 여성편력이 심한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나갔던 섹스중독자 모임에서 얻었다고 하니 역시 이 시대의 글쓰기란 결국은 누가 더 많이 발품을 파는가에 달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파이트 클럽의 주요 소재가 ‘중독모임’ 과 ‘이중적 자아’였다면 여기서는 크게 ‘역할놀이’로 볼 수 있는데 이 연극적 역할 놀이는 정말 너무 한다 싶게 여러 가지 형태와 상황에 많이 써먹어서 좀 어지럽기도 하고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종국에는 “아주 신났네 신났어” 하는 심정이 될 정도로 작가는 혼자서 신나서 작품을 묘하게 끌고 나간다.

이 작가를 보면서 떠오른 국내 작가가 있다. 20대 초반, 내가 열렬히도 사랑했던 작가 장정일. 지금은 잊혀진 옛 애인처럼 아련하지만 뭔가 문학을 제도적으로 학습 받지 않은 독학파라는 느낌면에서 그들은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그들의 상상력이 자유로운 것일까. 나도 그렇게 끊임없이 자유로운 상상력 속에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들처럼 살면 안되겠지. 남들과 똑같이 읽고 보고 사고하면 안되겠지.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런 말들로 지금의 나를 위로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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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뇌로의 여행 -상
아이작 아시모프 / 작가정신 / 199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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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절판인지 사진을 구 할 수가 없어서 아시모프의 사진이 들어있는 다른 책으로 대신한다.



<두뇌로의 여행> 아이작 아시모프 -작가정신


SF계의 거장, 아이작 아시모프. SF 문학에 있어서 이 작가를 빼놓고는 얘기가 안 된다. 이름은 익히 알고 있던 이 작가를 처음 만난게 바로 이 소설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도서관 인문과학 코너를 방황하다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작 아시모프. 그의 연작들이 책장 한편을 가득 차지하고 있었다. 그중 그의 대표작이자 가장 긴 소설. 파운데이션 시리즈가 있었고 로봇 시리즈와 두뇌로의 여행이 보였다. 이 소설은 상, 하로 두 권인데 전작으로 한 권짜리 ‘마이크로 결사대’ 라는 작품이 있다. 그 소설은 아주 오래된 영화(맥 라이언의 초기작이라고 한다)가 원작인데 축소된 잠수함을 타고 인간의 몸을 탐사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원작이 소설이고 그것을 토대로 영화를 만드는 기존의 방식과는 달리 마이크로 결사대는 먼저 나온 영화를 바탕으로 아이작 아시모프가 소설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거기서 아쉬움을 느꼈는지 그 이후에 선 보인 작품이 바로 이 소설이다.

여기서 아시모프는 자신의 전공인 생화학에 대한 지식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데 그런 부분이 바탕이 되어 자칫하면 터무니 없어 보일 수 있는 상상력에 현실성을 얻어 준다. 게다가 미국 대 소련이라는 대립구도의 설정은 참 탁월하다는 생각이 든다. 각 진영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줄다리기와 그런 욕망에 희생되는 과학정신의 순수성이 이 작가의 영리함을 보여준다.

저명한 경제학자 피터 드러커는 이런 말을 했다. 약점을 보강하기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강점을 더 발전 시켜라. 아시모프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점을 잘 알고 있는 작가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3세때 미국으로 이민을 온 특이한 이력은 마치 낳아 준 엄마와 키워 준 엄마, 두 명의 모친을 지닌 것처럼 느껴진다. 때문에 그는 미국의 편을 들 필요도 없고 소련의 편에 설 필요도 없으며 반대로 미국의 자본주의를 욕할 수 있고 소련의 경직된 사고를 비아냥거릴 수도 있는 포지션을 확보했다. 그리고 이 작가가 거장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미국을 선택한 것도 소련을 선택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시모프가 선택한 것은 과학자였다. 미국인도, 소련인도 아닌 과학자. 그는 과학자이자 작가였다.

이렇게 자신의 전공이 따로 있는 투잡 작가들을 보면 부러움과 질시가 생긴다. 변호사인 존 그리샴이 그랬고 준과학자인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그렇다. 소재꺼리가 얼마나 풍부해지겠는가. 하다못해 식품영양학과나 유아교육과를 나왔더라면 어땠을까. 문학을 전공하면서 글을 쓴다는 것. 이 얼마나 시대와 맞지 않는 고리타분한 위치인지. 물론 내 떡은 언제나 남의 떡과 비교해 봤을 때 더 초라하고 맛없어 보이는 법이다. 그렇다고 배수아가 화학과를 나왔다해서 화학에 대한 소설을 쓴 건 못 봤다. 이윤기 선생님도 신화를 이야기할 제 빼놓을 수 없는 분이지만 그 분이 신화를 소재로 소설을 쓴 것도 아직 보지 못했다. 어찌됐든 핑계일 뿐이다.

각설하고, 제목이 말해 주듯 내용은 분자크기로 축소화 된 배를 타고 축소화 된 인간들이 뇌로 여행을 떠난다는 얘기다. 물론 나들이 가는 것은 아니고 세계의 석학-바로 이 축소화 이론을 만든 소련의 과학자- 샤피로프의 혼수상태인 뇌로 들어가서 그가 죽기 전에 그의 머리 속에 있을 다 완성되지 못한 이론의 나머지 부분을 찾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의 과학자 모리슨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는 뇌파를 통한 혁신적인 프로그램을 연구중인데 인간의 뇌에서 창조적인 일을 하는 부분이 있다는 걸 발견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부분의 뇌파를 자신의 뇌파에 맞게끔 설정해 놓은 컴퓨터 프로그램에 입력하다 보면 그의 생각과 감정들이 전이되어 오는 기이한 경험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그의 이론들을 받아 들이지 않았고 그를 미치광이 취급을 한다. 어쨌든 샤피로프는 생전에 그의 이론이 자신의 연구에 중계역을 할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고 그로인해 모리슨은 소련으로 납치되어 온다. 그리고 그의 납치는 소련이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는 연구를 알아내기 위한 미국의 암묵적 용인이 있었다. 미국과 소련은 서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비밀리에 연구하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순수한 과학자의 시각으로 볼 때 이건 굉장히 비효율적인 일인 것이다. 서로 정보를 공유한다면 인류의 미래는 지금보다 훨씬 발전적일 것이었다.

하여, 그들은 축소화 되어 주사기를 통해 샤피로프의 대동맥을 지나고 소동맥을 지나서 모세혈관을 지나 뇌에 도달한다. 그 과정에서 백혈구와의 목숨을 건 사투가 있었고 몇 개의 적혈구를 파괴하기도 했으며 혈소판을 정화 시켜 물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이 뇌에 도착하고 얼마 후 혈장의 흐름이 눈에 띠게 더디어 진 것을 볼 수 있었다. 샤피로프가 죽은 것이다. 그렇게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났지만 첫 인체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온 그들은 세상의 환영을 받는다. 그리고 모리슨은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는데 여기서 반전. 아무것도 알아 내지 못한 줄 알았던 샤피로프의 이론을 그는 알았던 것이다. 후에 이 사실을 안 소련에서는 그를 막으려고 했으나 이미 그는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후다. 그리고 미국에 도착하여 정부기관원들에게 그동안의 일들을 회고한 모리슨은 양국이 정보를 합친다면 과학은 지금보다 더 눈부시게 발전할 거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세상은 그렇지가 않다고 말한다. 어쨌든 과학이 전부는 아니니까. 세상을 여러조각으로 갈라 놓기에는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이념과 종교, 인종, 민족, 관습, 역사 등등의 것들.

그리고 여기서 아시모프는 특유의 위트를 선보이는데 한 정부기관원의 대사다. 학계의 인정을 못 받던 이단아 과학자인 모리슨이 소련으로 납치되어 인체여행을 격은 후 자신의 이론을 확인하고 나라에 이바지할 정보를 가지고 돌아오기까지의 시간은 모두 6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몹시 지처 있었고 하루만 쉬겠다는 말을 한다. 7일째 되는 날 그는 쉬려 한다는 것이다. 천지창조의 패러디. 아시모프는 이런류의 농담을 좋아하는 것 같다. 어떤 단편에서 마지막 문장이 ‘빛이 있으라’ 였다는 것을 보면 말이다. SF라는 장르 자체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다는 점에서 그는 스스로를 조물주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뭐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어찌됐든 작가는 자신이 만들어낸 세계의 피조물들에게는 신으로써 존재하니까.

1992년, 아시모프가 타계했을 당시 그의 팬들은 이런 말로 그를 잃은 슬픔을 대신했다고 한다. 그는 비로소 자신의 고향별로 돌아가는 외계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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