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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뇌로의 여행 -상
아이작 아시모프 / 작가정신 / 1992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절판인지 사진을 구 할 수가 없어서 아시모프의 사진이 들어있는 다른 책으로 대신한다.
<두뇌로의 여행> 아이작 아시모프 -작가정신
SF계의 거장, 아이작 아시모프. SF 문학에 있어서 이 작가를 빼놓고는 얘기가 안 된다. 이름은 익히 알고 있던 이 작가를 처음 만난게 바로 이 소설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도서관 인문과학 코너를 방황하다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작 아시모프. 그의 연작들이 책장 한편을 가득 차지하고 있었다. 그중 그의 대표작이자 가장 긴 소설. 파운데이션 시리즈가 있었고 로봇 시리즈와 두뇌로의 여행이 보였다. 이 소설은 상, 하로 두 권인데 전작으로 한 권짜리 ‘마이크로 결사대’ 라는 작품이 있다. 그 소설은 아주 오래된 영화(맥 라이언의 초기작이라고 한다)가 원작인데 축소된 잠수함을 타고 인간의 몸을 탐사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원작이 소설이고 그것을 토대로 영화를 만드는 기존의 방식과는 달리 마이크로 결사대는 먼저 나온 영화를 바탕으로 아이작 아시모프가 소설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거기서 아쉬움을 느꼈는지 그 이후에 선 보인 작품이 바로 이 소설이다.
여기서 아시모프는 자신의 전공인 생화학에 대한 지식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데 그런 부분이 바탕이 되어 자칫하면 터무니 없어 보일 수 있는 상상력에 현실성을 얻어 준다. 게다가 미국 대 소련이라는 대립구도의 설정은 참 탁월하다는 생각이 든다. 각 진영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줄다리기와 그런 욕망에 희생되는 과학정신의 순수성이 이 작가의 영리함을 보여준다.
저명한 경제학자 피터 드러커는 이런 말을 했다. 약점을 보강하기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강점을 더 발전 시켜라. 아시모프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점을 잘 알고 있는 작가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3세때 미국으로 이민을 온 특이한 이력은 마치 낳아 준 엄마와 키워 준 엄마, 두 명의 모친을 지닌 것처럼 느껴진다. 때문에 그는 미국의 편을 들 필요도 없고 소련의 편에 설 필요도 없으며 반대로 미국의 자본주의를 욕할 수 있고 소련의 경직된 사고를 비아냥거릴 수도 있는 포지션을 확보했다. 그리고 이 작가가 거장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미국을 선택한 것도 소련을 선택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시모프가 선택한 것은 과학자였다. 미국인도, 소련인도 아닌 과학자. 그는 과학자이자 작가였다.
이렇게 자신의 전공이 따로 있는 투잡 작가들을 보면 부러움과 질시가 생긴다. 변호사인 존 그리샴이 그랬고 준과학자인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그렇다. 소재꺼리가 얼마나 풍부해지겠는가. 하다못해 식품영양학과나 유아교육과를 나왔더라면 어땠을까. 문학을 전공하면서 글을 쓴다는 것. 이 얼마나 시대와 맞지 않는 고리타분한 위치인지. 물론 내 떡은 언제나 남의 떡과 비교해 봤을 때 더 초라하고 맛없어 보이는 법이다. 그렇다고 배수아가 화학과를 나왔다해서 화학에 대한 소설을 쓴 건 못 봤다. 이윤기 선생님도 신화를 이야기할 제 빼놓을 수 없는 분이지만 그 분이 신화를 소재로 소설을 쓴 것도 아직 보지 못했다. 어찌됐든 핑계일 뿐이다.
각설하고, 제목이 말해 주듯 내용은 분자크기로 축소화 된 배를 타고 축소화 된 인간들이 뇌로 여행을 떠난다는 얘기다. 물론 나들이 가는 것은 아니고 세계의 석학-바로 이 축소화 이론을 만든 소련의 과학자- 샤피로프의 혼수상태인 뇌로 들어가서 그가 죽기 전에 그의 머리 속에 있을 다 완성되지 못한 이론의 나머지 부분을 찾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의 과학자 모리슨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는 뇌파를 통한 혁신적인 프로그램을 연구중인데 인간의 뇌에서 창조적인 일을 하는 부분이 있다는 걸 발견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부분의 뇌파를 자신의 뇌파에 맞게끔 설정해 놓은 컴퓨터 프로그램에 입력하다 보면 그의 생각과 감정들이 전이되어 오는 기이한 경험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그의 이론들을 받아 들이지 않았고 그를 미치광이 취급을 한다. 어쨌든 샤피로프는 생전에 그의 이론이 자신의 연구에 중계역을 할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고 그로인해 모리슨은 소련으로 납치되어 온다. 그리고 그의 납치는 소련이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는 연구를 알아내기 위한 미국의 암묵적 용인이 있었다. 미국과 소련은 서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비밀리에 연구하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순수한 과학자의 시각으로 볼 때 이건 굉장히 비효율적인 일인 것이다. 서로 정보를 공유한다면 인류의 미래는 지금보다 훨씬 발전적일 것이었다.
하여, 그들은 축소화 되어 주사기를 통해 샤피로프의 대동맥을 지나고 소동맥을 지나서 모세혈관을 지나 뇌에 도달한다. 그 과정에서 백혈구와의 목숨을 건 사투가 있었고 몇 개의 적혈구를 파괴하기도 했으며 혈소판을 정화 시켜 물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이 뇌에 도착하고 얼마 후 혈장의 흐름이 눈에 띠게 더디어 진 것을 볼 수 있었다. 샤피로프가 죽은 것이다. 그렇게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났지만 첫 인체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온 그들은 세상의 환영을 받는다. 그리고 모리슨은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는데 여기서 반전. 아무것도 알아 내지 못한 줄 알았던 샤피로프의 이론을 그는 알았던 것이다. 후에 이 사실을 안 소련에서는 그를 막으려고 했으나 이미 그는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후다. 그리고 미국에 도착하여 정부기관원들에게 그동안의 일들을 회고한 모리슨은 양국이 정보를 합친다면 과학은 지금보다 더 눈부시게 발전할 거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세상은 그렇지가 않다고 말한다. 어쨌든 과학이 전부는 아니니까. 세상을 여러조각으로 갈라 놓기에는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이념과 종교, 인종, 민족, 관습, 역사 등등의 것들.
그리고 여기서 아시모프는 특유의 위트를 선보이는데 한 정부기관원의 대사다. 학계의 인정을 못 받던 이단아 과학자인 모리슨이 소련으로 납치되어 인체여행을 격은 후 자신의 이론을 확인하고 나라에 이바지할 정보를 가지고 돌아오기까지의 시간은 모두 6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몹시 지처 있었고 하루만 쉬겠다는 말을 한다. 7일째 되는 날 그는 쉬려 한다는 것이다. 천지창조의 패러디. 아시모프는 이런류의 농담을 좋아하는 것 같다. 어떤 단편에서 마지막 문장이 ‘빛이 있으라’ 였다는 것을 보면 말이다. SF라는 장르 자체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다는 점에서 그는 스스로를 조물주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뭐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어찌됐든 작가는 자신이 만들어낸 세계의 피조물들에게는 신으로써 존재하니까.
1992년, 아시모프가 타계했을 당시 그의 팬들은 이런 말로 그를 잃은 슬픔을 대신했다고 한다. 그는 비로소 자신의 고향별로 돌아가는 외계인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