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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식 ㅣ 메피스토(Mephisto) 2
척 팔라닉 지음, 최필원 옮김 / 책세상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빅터 맨시니는 세상에서 섹스보다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섹스중독자다. 그래서 비행기, 여자 화장실, 교회를 가리지 않고 섹스에 탐닉한다. 그의 직업은 전문적인 질식사 연출 사기꾼.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다가 갑자기 음식이 목에 걸려 질식하는 척하는 것. 분명히 누군가 달려와 그를 구해낼 것이고, 그렇게 그영웅은 생명의 은인이 되어 그의 남은 여생을 책임지게 된다. 이백번도 넘는 사기극 덕분에 그는 매주 은인들이 보내 준 수표 세례를 받으며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
내가 이 짓을 하는 것은 사람들의 단조로운 일상에 짜릿한 자극을 주기 위해서다. 내가 이짓을 하는 것은 영웅을 창조하기 위해서다. 사람들을 시험에 들게 하기 위해서다. 내가 이 짓을 하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다. 사람은 누군가를 구해주면 그 사람을 영원히 사랑하게 된다.>
-책 표지에서
우선 이 작가는 특이하다. 생긴건 익살스러운 게 꼭 짐 캐리를 닮았는데 소설도 그렇게 익살 맞으며 때때로 천재성도 번뜩인다. 하지만 그 천재성은 움베르토 에코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처럼 잘 닦여진 견고함이 아니라 성글고 거칠지만 그래서 더욱 매력적인 기질이다. 컨테이너 열차의 엔진수리공으로 일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그의 이력을 보니 더욱 이해가 된다.
처음엔 그 독특한 상상력들이 마치 ‘남자 아멜리 노통’ 같다고 느꼈는데 노통보다 몇 배 위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 천재성을 너무 믿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학습되지 않은 길들여지지 않은 기질이 너무 오바 되어서인지 퇴고는 적어도 한두번 했어야 됐지 싶다. 너무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는 것. 그게 자신의 발목을 잡는 함정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에게 말해 주고 싶다.
<파이트 클럽>에서도 보여줬던 중독자에 대한 담론이 여기서도 나오는대 여기선 ‘섹스 중독자’ 하나만을 심도 깊게(?) 파고든다. -섹스 중독에 대한 아이디어는 여성편력이 심한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나갔던 섹스중독자 모임에서 얻었다고 하니 역시 이 시대의 글쓰기란 결국은 누가 더 많이 발품을 파는가에 달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파이트 클럽의 주요 소재가 ‘중독모임’ 과 ‘이중적 자아’였다면 여기서는 크게 ‘역할놀이’로 볼 수 있는데 이 연극적 역할 놀이는 정말 너무 한다 싶게 여러 가지 형태와 상황에 많이 써먹어서 좀 어지럽기도 하고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종국에는 “아주 신났네 신났어” 하는 심정이 될 정도로 작가는 혼자서 신나서 작품을 묘하게 끌고 나간다.
이 작가를 보면서 떠오른 국내 작가가 있다. 20대 초반, 내가 열렬히도 사랑했던 작가 장정일. 지금은 잊혀진 옛 애인처럼 아련하지만 뭔가 문학을 제도적으로 학습 받지 않은 독학파라는 느낌면에서 그들은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그들의 상상력이 자유로운 것일까. 나도 그렇게 끊임없이 자유로운 상상력 속에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들처럼 살면 안되겠지. 남들과 똑같이 읽고 보고 사고하면 안되겠지.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런 말들로 지금의 나를 위로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