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에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에 이어 발표한 소설이다. 정신분석학적 표현을 보자면 전작과의 연장선에 있는듯도 하나 조금 더 나아가 여기에 생물학을 입혔다. 인간의 정신이 생물학적 육체의 생리에 근간을 이룬다는 것을 알았다는듯 이 소설은 그 전작들 보다 훨씬 농밀하고 객관적이며 정곡을 정확히 집어내고 있다. 그것은 기억보다 마음보다 육체가 더욱 정직한 까닭이 아닐까 싶다.

정신분석학에 가미된 생물학적 지식들. 그리고 절묘하게 짜여진 상황설정과 구성, 형식, 시점들. 정말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매우 성실한 작가다. 많이 공부하고 연구했다는게 작품 곳곳에 드러난다. 그래서 임상사례 소설로도 손색이 없다고들 하지만 혹자는 오히려 이런점을 꼬집어 그건 소설이 아니라고도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 소설은 이런게 아니라고. 하지만 어디 박완서 아줌마 식의 구구절절 이야기 보따리만이 소설이라고 할 수 있나. 소설이란 말그대로 극적 드라마가 미덕이다. 하지만 요즘 나오는 소설들을 가만보면 작가가 정말 '날로 먹으려'하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현장경험 없이(이건 발로 안 뛰고 책상머리 앞에서 상상만 했다는것이다) 그리고 전문지식 없이(이건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을 새삼 다시 말하고 있다는것 또는 감성만으로 밀어부친다는 것이다) 쓰여진 작품들을 보면 한없이 가볍다는 생각 뿐이다. 여기서의 가벼움은 하루키의 태산보다 무거운 가벼움이 아니다. 그냥 깃털처럼 후 불면 꺼져버릴듯한 가벼움.

그에 비하면 김형경의 소설들은 아주 오래도록 읽어야 한다. 한문장을 그냥 넘어감이 없다. 낯선 단어와 유려한 표현들이 자꾸 눈길을 걸고 넘어진다. 장점이 곧 단점이 된다고 그런 이유로 김형경 소설은 스피드는 좀 떨어진다. 박진감이나 빨려드는 재미가 덜한 편이다.

또 김형경은 단어 만들어 내기로도 유명한데 문맥상의 의미는 알겠는데 막상 사전을 찾으면 없는 단어들이 많다. 뉘앙스로 만들어내는 자신만의 낱말들이 많은 작가. 그건 다독과 문장을 만드는 오랜 훈련에 의해 육화된 글쓰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형경의 소설은 꽉찼다. 그래서 소장할 가치가 있다는 것. 독파하고 나면 마음이 뿌듯하다는 것.

이 소설의 매력은 흥미로운 구도에 있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두 가지 사건. 그리고 그 사건을 각각의 관점에서 서술하는 촛점화자의 이야기. 또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내용은 성(性)에 관한 담론인데 성과 죽음의 상관관계로 정신분석학(프로이트의 관점)과 더불어 생물학적 지식이 삽입되어 참 재밌다. 이를테면 오르가즘은 죽음의 순간을 짧게 맛보는 것이라는 얘기가 있는것처럼 섹스는 에로스와 타나토스(죽음충동)의 결합체란다. 그리고 이를 가장 잘 나타내는 우리신체 부위의 낱말이 있는데 그게 바로 '젖무덤'이다. 아하, 무릎을 치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읽게 되는 소설이다. 지적 충만감을 맛 보고 싶다면, 사랑에 대한 좀더 적날한 진실을 알고 싶다면 지금 이 책을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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