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리뷰] 소설가의 일

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단 한 번도 읽지 않은 작품의 작가님이라고 해도, 어느 작가가 산문집, 에세이를 냈다라고 하면 나도 모르게 사는 경우가 있다. 보통 작가님들이 쓰는 에세이 등에는 책이 나오기 마련이고 나는 그런 책에 대한 이야기를 무척 좋아한다. 이번에도 「작가님」이 내신 산문집이네? 하고 덥석 집어온 것일 뿐이다.
물론, 생각 이상으로 작가님의 유머코드가 나랑 맞았고 이야기도 재미있게 잘 풀어내셔서 문득 이 작가가 상상으로 써낸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그래서. 나중에 꼭 읽어봐야 할 작가님으로 등극.
애초에 김연수 작가님이라고 하면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으니까.

산문집이라는 특성답게 작가님이 겪은 일이라던가 작가님이 생각하는 것 등을 김연수 작가님 스타일로(사실, 이 책이 처음이라 이게 작가님 스타일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풀어냈는데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소설에 대해서 쓰셨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제목처럼 「소설가의 일」이다.
김연수 작가님이 소설을 쓰는 법, 이야기를 구성하는 법, 그렇게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 어떤 착오를 겪었는가 등등.

때로는 공감하며, 때로는 이 작가님은 이러시구나. 나는 아닌데 하고 반박도 하면서(사실 공감하고 느낀 게 더 많긴 했다)

작가님의 일화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그것이 아닐까 한다.
자전거 일화. 이걸 보면서 계속 큭큭대고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그 전까지는 분명 객관적으로 판단을 해야 한다고 했으면서……. 얼마나 화나셨으면. 작가님 스스로도 자전거 도둑에 대해서만은 객관적이지 못하겠다고 말했으니.

읽는 사람에 따라 다소 어수선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나는 바로 그 정신없음이 마음에 들었다. 사실 원래 작가라는 직업이 자신의 이야기를 너무 들려주고 싶어서 된 직업답게 할 말이 무척 많을 텐데, 비록 소설을 쓸 때는 점잖을 뺄지 몰라도 산문집 같은 곳에서만큼은 어수선하게 굴어도 상관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하고 싶은 말이 좀 많겠어, 무려 소설가인데.

항상 작가가 되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 줄이라도 쓰면 언젠가는 된다」「얼떨결에 낸 글이 얼떨결에 당선이 되었다」라는 말을 많이 하신다.
이 책을 덮으면서 나도 그 「언젠가」가 오기를 기원해 본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고 있으면,
`지금 뭔가를 쓰고 있다면, 그는 소설가｀라는
그 문장의 질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프루스트 씨는 그때 뭔가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 내용이 뭐든,
내가 이해하든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든,
그는 뭔가를 썼고,
그의 시간은 11권의 책으로 남았다.
소설가의 일생이란 그런 것이다.
그 일생 앞에서는 다작이라는 말도 무의미하고,
수면용 소설이라는 말도 무의미하다.
그저 어떤 시간의 흐름이 있을 뿐이다.

[마이리뷰] 풋내기들

풋내기들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우열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3월

내가 어디에서 착각을 한 건지는 몰라도 로맨스 소설집이라고 알고 본 소설. 레이먼드 카버가 「대성당」을 썼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의 소설은 한 권도 읽어본 적 없다. 어쨌든 이 책은 개인적으로 꽤 재미있었다.
비록 착각으로 구매한 소설이기는 했지만, 소설 편식은 없는 편이니까.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은 이 책을 처음으로 접했는데 원래 이런 스타일의 작가인가는 다른 책을 조금 더 읽어봐야 알 것 같다. 왠지 「더블린 사람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식의 소설. 그 책과 닮은 듯 안 닮은 듯.

오픈 엔딩이나 어딘가 어중간하게 느껴지는 결말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별로 읽고 싶지 않아 할 것 같다. 이야기 한 편을 읽고 나면 잠시 멍 때리게 만드는 소설이다. 모호한 것 같기도 하고.

소설은, 짧은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어딘가에 존재할 것만 같은 우리의 일상을 약간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서술한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긴장감으로 인해 신경을 잔뜩 곤두세우게 만든 후, 갑자기 이야기의 중간 부분을 칼로 쳐내는 느낌이 든다. 그 뒤에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또다른 결말을 맞이할 지는 독자들의 상상 속에 맡겨둔 채. 이런 식의 소설도 꽤나 좋아하는 편이라 상당히 즐거웠다.

술과 담배, 날카로운 분위기들이 어우러져 퇴폐적인 분위기도 은근 풍기고.
그러고 보면 진짜로, 술, 담배가 안 나온 편이 없는 듯. 알코올 중독자인가 싶을 정도로 등장인물들은 연거푸 술을 마셔대고 매캐한 담배 냄새가 진동을 한다.

「더블린 사람들」이나 이 책이나…… 비슷한 분위기의 단편 소설집을 연이어서 읽으려니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생각이 많아지는 듯하다.
아무래도 다음부터는 단편 소설 - 장편 소설 이런 순으로 봐야할 듯. 거의 대부분은 장편 소설 위주로 보기는 하지만.

그는 계속 창가에 서서 지나간 삶을 떠올린다.
그날 아침 이후 힘겨운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게 다른 여자들이 생기고,
그녀에게 다른 남자가 생기고.
하지만 그날 아침, 바로 그날 아침에,
그들은 춤을 췄다.
둘은 춤을 췄고,
언제까지나 그런 아침이 올 것처럼
서로를 품에 안았고,
나중에는 와플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바깥에서는 모든 것이 얼어붙고 있었지만,
그들은 서로 기대어 웃다가 눈물이 다 났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마이리뷰] 천국 주식회사

천국 주식회사
사이먼 리치 지음,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2월

교회는 좋은 곳이고 하느님은 성스러운 분이라고 세뇌하지 않는 책이라 마음에 들었다. 딱히 교회 중심의 이야기도 아니고. 하느님과 천사들이 어느 곳에서나 보던 평범한 인간과 같아서 읽기 편했던 책. 살짝 얄미운 감도 있지만.

크레이그는 천국 주식회사에서 일하는 일중독 천사이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이 달의 천사상을 받는 데 있다. 어느 날 크레이그가 일하는 기적부에 일라이자라는 신입 여천사가 오게 된다. 그런데 그녀가 한 한 가지 행동 때문에 어처구니없게도 하느님은 지구를 멸망시키겠다는 선언을 한다. 모든 직원들이 환호하는데 오직 일라이자만이 죄책감에 시달리고 크레이그는 그녀를 도와 지구 멸망을 저지하기로 한다. 하느님은 크레이그에게 딱 한 달간의 여유를 줄 테니 기도문 중 하나를 선택해 그것을 들어주면 지구 멸망 계획을 취소하기로 약속한다. 크레이그와 일라이자는 기도문들 중, 샘과 로라가 서로를 원한다는 것을 알고 둘을 이어주기로 한다. 그러나 곧 그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었음을 깨닫는다.

이 책에는 우리가 평소 생각하던 하느님과 천사들이 나오지 않는다. 천사들은 승진을 위해 노력하고 가끔 실수도 하며 그럴 때는 좌천되거나 퇴직 당한다. 그들은 인간처럼 승진 소식 하나에 뛸 듯이 기뻐하고 상사에 비해 열 배가 넘는 일거리들을 가지고 허덕인다. 하느님은 또 어떤가. 인간들이 저주를 퍼부을 때면 의기소침해지기도 하고 달걀 오믈렛을 먹으며 좋아하는 경기를 관전한다. 그가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팀이 이기느냐 지느냐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천사들을 동원해 「기적」을 일으키기도 한다.

한 없이 인간적이어서 얄밉기도 하고 공감이 가기도, 웃음을 터뜨리게도 만들었던 그들.

책에는 두 가지 로맨스가 등장한다. 지구 멸망을 막기 위해, 가장 중요한 샘과 로라. 그리고 크레이그와 일라이자.
크레이그와 일라이자가 샘과 로라의 행동을 보며 답답해서 가슴을 치는 동안 나는 그들 또한 샘과 로라와 다르지 않다는 것에 빙그레 웃고 말았다.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은 자신에게 기적이 벌어지기를 바란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기적이 꼭 필요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들은 일상에서 발견하는 사소한 기적들을 기적이라 치부하지도 않고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닐까. 사실 기적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늘 위 천사들은 우리가 그 기적을 지나치는 것을 보고 인간들은 왜 저리 멍청할까 하면서 가슴을 탁탁 치고 있을지도.

「응? 근데 왜 이것만 두 장으로 되어 있죠?」
「같은 기도가 또 있다는 뜻이에요.
하느님의 시간을 절약해 드리기 위해
동일한 기도들은 함께 찍어 놨거든요.」
「그럼 또 다른 누군가도 샘이 이 로라라는 여자와
잘 되기를 바란다는 거네요.」
「아마 그 친구들 중 한 명이겠죠.」
일라이자는 찍혀 있던 호치키스를 떼어 내고
첫 장에 있는 기도를 낭독했다.
「<제발 저와 로라가 잘 되게 해주세요. 샘.>」
「다음 장에는 뭐라고 쓰여 있어요?」
갑자기 일라이자의 눈이 흥분으로 휘둥그레졌다.
「뭐예요? 어서 읽어줘요.」
「<제발 저와 샘이 잘 되게 해주세요. 로라.>」
두 천사는 서로 눈을 마주 보고 빙그레 웃었다.

[마이리뷰]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 2015 제39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구병모 작가님의 신작. 알라딘 알림을 듣자마자 바로 질렀다.

오랜만에 읽는 작가님의 책이라 설레면서 책장을 펼쳐드는데 문득 어딘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풍이 살짝 바뀐 것 같은……. 그래봤자 작가님이라 분위기 자체는 딱 구병모 작가님이구나 하는 냄새가 묻어나서 반가움을 느꼈다.

적절한 곳에서 끊지 않고 긴가민가할 정도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필체는 언뜻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떠올리게 만들고 짧은 소설들마다 끝이 모호하게 끝나는 점은 온다 리쿠의 단편 소설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중간 중간 느껴지는 판타지인 듯 판타지가 아닌 느낌과 독특한 등장인물들의 이름 등에서 이 책은 확실히 구병모 작가님의 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표지 때문에 산문집인 줄 알았다.
그래서 이 작가가 산문집도 냈네 하고 호기심이 생겼지만 곧 왼쪽 귀퉁이에 작은 글씨로 구병모 소설집이라고 써져있는 걸 보고 납득했다.

책은 전체적으로 아주 짧은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단편 소설보다는 조금 더 짧은 분량으로 보인다. 짧은데다가 제각각 현실과 환상을 모호하게 만드는 특유의 분위기와 흡입력 있는 표현으로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았다. 단편 소설들을 읽다보면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때 잔뜩 집중해있던 머리가 한순간 흐려지기 마련인데 물론 이 책도 그러지 않았다고는 말 못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 장 이상 넘기지도 않고 바로 새로운 집중력과 흥미가 샘솟았다.

보통 단편보다 장편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 작가님은 단편소설도 장편만큼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작가님이다.

문장도 좋고 다른 사람과 확연히 비교가 되는, 자신만의 색채가 묻어나는 글을 쓰고 그 글 속에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소설들을 볼 때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작가가 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상황도 장소도 알맞지 않은 데다가
맥락도 닿지 않으며
어쩌면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데에 가까웠지만
나도 모르게 녀석의 감은 눈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너 그때 아파트에는 왜 올라간 거냐?
아니 내 말은, 15층을 정복하고 나면 그만둘 생각이었냐고.
친구들은 이 새끼가 지금 정신이 있어 없어,
책망하듯이 눈짓하면서 내 옆구리를 찔렀으나
하이는 눈 감은 그대로 입을 열었다.
그만뒀을지 더 했을지는,
올라가 봤다면 그때 생각했겠지.
결국 못 올라갔으니 소용없는 일이지만.

[마이리뷰] 나쁜 고양이는 없다

나쁜 고양이는 없다 - 어쩌다 고양이를 만나 여기까지 왔다 ㅣ 안녕 고양이 시리즈 3
이용한 글.사진 / 북폴리오 / 2011년 11월

이용한 작가님의 고양이 시리즈 중 마지막 세 번째 이야기.
길고양이의 삶을 현실적으로 적나라하게 그려내서 때로는 아프고 안타깝고 슬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아름답게 다가왔던 책이다.

이웃이나 가족에게는 분명 친절했을 사람들이 유독 길거리 동물들에게만은 혹독하게 대할 때가 있다. 물론 그들에게는 그들이 일구어 놓은 땅을 파헤치는 이 동물들이 무척 미울 테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 땅은 오직 인간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거다.

동물들의 입장에서 보면 잘 살고 있는 그들의 영역에 우리가 무단침입해서 일정한 공간에 선을 그어놓고 여기는 우리 땅이라고 선언한 격이다.

각자에게는 각각의 이유가 있을 테지만 밭을 파헤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을 죽여 버리는 것은 조금 오버가 아닌가 싶다. 차라리 들어오지 못하도록 가시철조망을 치고 큰 소리를 내어 쫓아내는 정도로 족하지 않을까. 꼭 그렇게 극단적인 방법을 써야하는 걸까. 말 그대로 지구는 인간의 것도 아닌데 우리는 언젠가부터 지구 전체가 인간의 영역인 것처럼 모든 것들에 싸움을 걸고 있다.

언젠가는, 꿈같은 이야기지만 정말 언젠가는, 고양이뿐만 아니라 새나 강아지, 하물며 쥐에게도, 길거리를 지나가는 모든 동물들에게 남은 음식을 던져주며 감사하다고 말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기도했다.

나를 보면 언제나 먼저 달려오던 녀석이
이제는 내가 오거나 말거나 시큰둥이다.
혼자서 멀거니 먼 하늘을 보다가
팔을 베고 오지 않는 잠을 청해보기도 한다.
항아리에 올라가 그루밍을 하는
녀석의 모습은 쓸쓸하다 못해 처량하다.
그럴 때면 가까이 다가가서
괜찮다, 괜찮다, 하면서
토닥토닥 해주고 싶지만,
괜찮지 않은 녀석에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굳이 한마디 한다면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
라고 한 어느 시인의 고백을
들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