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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는 아니지만 - 구병모 소설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읽는 내내 어떤 알 수 없는 일그러짐이 느껴졌다. 마음속을 기괴하게 파고드는 악의가, 열면 안 되는 불편한 진실같은 것들이, 한도 없이 펼쳐졌다. 눈을 돌리고 싶은데도 차마 그럴 수 없는…….
현실 속에 잔혹 동화가 존재한다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현실과 기괴한 환상을 조금의 어색함도 없이 맞물리게 접목시켜 놓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름끼칠 정도로 적나라한 현실의 고통이, 개개인마다 지금도 겪고 있을 지극히 현실적인 그 고통들이 말 그대로 `잔혹 동화`를 연상시킨다.
책 속에 들어 있는 단편들 중 하나의 제목인 「고의는 아니지만」을 표제작으로 선정한 것도 묘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고의는 아니었을 테지만 알게 모르게 저지르는 많은 사건들. 그런 사건들에서 악의가 생기고 그 악의는 또 다른 사건을 불러 오고…….
고의는 아니었을 테지만.
표지에 있는 그림들이 각 단편이 시작하는 장마다 그려져 있는데 몸은 사람인데도 얼굴은 사람이 아닌 그것들이 언뜻 우스워 보이면서도 책의 내용과 뒤섞이면서 문득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다 읽은 지금도 왜 그림이 소름 끼치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바라보게 만드는 중독성이 있는 그림인 것 같다.
어느 하나를 꼽을 수 없을 정도로 전부 다 재미있게 읽은 것 같다. 비유가 사라져 버린 어느 도시의 이야기인 「마치 ……같은 이야기」,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만 유치원 선생님의 이야기 「고의는 아니지만」, 미운 4살의 아이와 엄마의 이야기를 담은 「어떤 자장가」, 현재도 여전히 문제시 되고 있는 성범죄자들의 처벌 문제에 관한 「곤충도감」등.
그래도 굳이 이 중 하나를 꼽으라는 악의가 다분한 부탁을 한다면, 「곤충도감」을 선택할 것 같다. 결말이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성범죄자들에게 주는 처벌이 대리만족이라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들었다. 나는 이 세상에 죽음으로밖에는 용서를 할 수 없는 죄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중 하나가 성범죄를 저지른 작자들이다.
마지막 이야기라는 이점도 있지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이 소설이 가장 기억 깊숙한 곳에 남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나왔던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도 인상 깊게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전에 나온 이 소설이 더 마음에 든다.
남자는 욕실에서 나와 마주 보고 꼭 껴안은 채로 잠든 모자를 내려다본다. 둘 다 곤히 잠든 평화로운 그림이다. 그때 아이가 입술을 오물거리며 돌아눕는 바람에 여자의 팔에서 빠져나온다. 그러더니 이불을 걷어차다가 여자의 목에 다리를 척 얹어놓고 손가락으로 자기 목을 긁는다. 뭔가 거치적거리는 게 있는지 아니면 꿈을 꾸는지, 여자의 가슴과 얼굴을 연속으로 걷어차면서 제자리에서 360도 회전을 하며 자기 잘 자리를 찾아간다. 그걸 바라보다가 남자는, 매번 느끼는 거지만 세상 모든 아이들의 얼굴은 잘 때가 제일 예쁜 법이라고 맘속으로 말하며 여자를 깨우지 않고 욕실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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