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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가 끝난 뒤
함정임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평점 :
표지 디자인, 제목, 줄거리.
내가 책을 고르는 거의 대부분의 기준에서 빠지지 않는 요소이다. 이 책 또한 예정에 없던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표지 디자인이 너무 예뻐서, 그리고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충동적으로 구매한 책이다. 결론적으로 사기를 아주 잘 했다고 생각하는 책 중 하나.
단편집이나 소설집은 조금 부담스러워하는 내가 읽기에도 어딘가 편안한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사실 내가 읽은 단편 소설들은 끝이 애매모호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됐다는 거야? 하는 식의 답답함을 불러왔다. 그런 애매모호함도 나쁘지는 않지만 그런 유의 소설은 내게 공허로 다가오는 경우가 허다해서 단편 소설을 읽을 때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읽어야 했다.
나에게 단편소설 = 공허함 그 자체였다. 그것도 약간의 우울함을 동반한.
이 소설은 그러지 않아서 좋았다. 완벽하게 깔끔한 뒷맛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련한 여운을 남기는 책이 아니라서…… 나름 가벼운 기분으로 죽 읽어 내려간 것 같다.
소소하고 편안한 일상을 저녁식탁 앞에서 들려주는 듯해서 읽기가 수월했다. 막히는 데 없이 술술 넘어가기도 하고 이야기들 자체도 불편한 구석이 한 군데도 없고.
나는 죽음을 다룬 글들을 읽을 때면 으레 마음 한 구석이 경직되고는 했다. 죽음을 과도할 정도로 두려워하는 나머지 내가 결국에는 죽는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일깨워주는 소설을 접하면 한없이 불안정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부분인가부터 이 책은 죽는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구나. 하고 깨달았다.
죽는다는 것에 대해,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차분한 어조 때문인지 불안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토록 많은 죽음이 등장하는 소설이 내게 아무렇지도 않다니. 죽음마저 일상으로 끌어들인 탓일까. 누군가 내 어깨를 감싸 안고 가만히 다독이는 것 같았다.
소설 중 내 마음에 가장 와 닿았던 것은 「어떤 여름」이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두 남녀의 이야기. 여자는 스탕달의 「적과 흑」을 읽고 있었고 남자는 그런 여자에게 호의를 갖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무엇도 묻지 않은 채로 함께 여행을 다니는데 그 이야기의 여운이 여전히 내 마음에 남아 있다.
끝이 없어 보이는 어둠이 한없이 두려워 잠 못 이루는 날, 이 책이 많은 위로가 될 것 같다.
그날 이후 박은 날마다 유리문을 밀치고 들어가 같은 자리에 앉았고, 소녀는 눈을 내리깐 채 꼬치를 굽는 모습 그대로 한결같았다. 그리고 스물여섯 살의 그가 서른 살이 되도록 소녀와 그의 풍경은 변하지 않았다. 그사이 소녀는 그녀가 되었고, 그는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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