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말이야, 아빠를 사랑하기는 하는데 좋아하지는 않는대... 그건 어떻게 다른걸까 내내 생각해봤어. 사랑하면 말이야, 그 사람이 고통스럽기를 바라게 돼. 다른 걸로는 말고 나 때문에, 나 때문에 고통스럽기를. 내가 고통스러운 것보다 조금만 더 고통스럽기를... - 홍-95쪽
더 많이 사랑했던 사람하고, 더 아팠던 사람하고, 정말 처음이었떤 사람들이 이미 불행하기로 되어 있었던 걸 너는 모르겠지. 영영 그렇게 모르겠지. - 홍 -101쪽
나는 정원의 의자에 앉았다. 헤어짐이 슬픈 건 헤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가치를 깨닫기 때문일 것이다. 잃어버리는 것이 아쉬운 이유는 존재했던 모든 것이 그 빈자리 속에서 비로소 빛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받지 못하는 것보다 더 슬픈 건 사랑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너무 늦게야 알게되기 때문에. -109쪽
나는 자신이 있었다. 나는 내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온 우주의 풍요로움이 나를 도와줄거라고 굳게 믿었다. 문제는 사랑이 사랑 자신을 배반하는 일 같은 것을 상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사랑의 속성이었다. 우리는 사랑이 영원할거라고 믿게하는 것 자체가 이미 사랑이 가지고 있는 속임수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사랑의 빛이 내 마음속에서 밝아질수록 외로움이라는 그림자가 그만큼 짙게 드리워진다는 건 세상천지가 다 아는 일이었지만, 나만은 다를거라고. 우리의 사랑만은 다를 거라고 믿었다. 그것자체도 사랑이 우리를 속이는 방식이라고 지희는 분석하곤 했었다.-112쪽
그냥 시간에 널 맡겨봐. 그리고 너 자신을 들여다봐 약간은 구경하는 기분으로 말이야. 네 마음의 강에 물결이 잦아들고 그리고 고요해진 다음 어디로 흘러가고 싶어하는지, 눈이 아프도록 들여다봐. 그건 어쩌면 순응같고 어쩌면 회피같을지 모르지만 실은 우리가 삶에 대해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대응일지도 몰라. 적어도 시간은 우리에게 늘 정직한 치구니까, 네 방에 불을 켜듯 네 마음에 블을 하나 켜고... 이제 너를 믿어봐. 그리고 언제나 네 곁에 있는 이 든든한 친구도. - 지희 -130쪽
그리고 그를 너무나 사랑했다는 것도, 결코 잊을 수 없을 거라는 것도, 하필이면 떠나는 순간에 알게 되었다. -207쪽
너랑 먼저 연애라는 걸 했었다 해도, 아니 너랑 결혼하고 있었다 해도 애가 넷이나 있었다 해도... 그 사람이 왔으면 나는 처음처럼 그렇게 가슴이 철렁했을거야. 누굴 먼저 만나고 누구와 먼저 연애하고 그런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아. - 홍-223쪽
결국 또 내 가슴을 철렁이게 할 단 한사람, 헤어진대도 헤어지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떠나보낸 그 사람, 내 심장의 과녁을 정확히 맞추며 내 인생 속으로 뛰어들었던 그 사람, 처음 만난 순간부터 만년을 함께했던 것 같은 신비한 느낌을 주었던 그 사람, 내 존재 깊은 곳을 떨게 했던 이 지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사람, 그때 내 처지가 어떨지, 혹은 그를 향한 자세가 어떨지 그것은 알 수 없지만 한번 심어진 사랑의 구근은 아무리 많은 세월이 지나도 죽지 않고 다시 일어나 조그만 싹을 내밀 것이다. 그런 구근의 싹을 틔우는 사람이, 먼 하늘 너머 있다는 것이 꼭 나쁜일은 아닌것 같았다. 사랑한다고 해서 꼭 그를 곁에 두고 있어야하는것이 아니라는 것도 느껴졌다. 옷자락을 붙들고 가지 말라고 해서 갈 것들이 그게 설사 내 마음이라고 해도 가지 않는 일이 없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2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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