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수원에 내려오니 일단 출근하고 나면 회사 밖을 벗어날 일이 없네요;;
때문에 식당을 이용하는 것 외에 별다른 할 일이 없어 한시간이 꽤 길게 느껴지는 점심시간에
책을 빌리러 가서 집어온 책은  이곤 실레의 그림과 붉은 표지가 인상적인 김연수씨의 최근작, 『밤은 노래한다』 입니다.
작년 서점가에서 한창 띄워주던 책이라 벌써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을 것 같긴 하네요^^; 

 
그동안 김연수 작가의 평에 낚여서 읽은 좋은 책이 여러권인데, 정작 김연수 씨의 책은 너무너무너무(-_-;;;) 재미가 없어서
서평 한 문장 제목 한 문장은 그렇게 잘 쓰면서, 대체 왜 자기 소설은 그런가요?
하는 불평해왔었는데요, 이번에도 잘못 골라온거 아냐? 하는 불안감과 함께 퇴근 버스가 출발하는 잠깐 동안 펴들었다가
출근 걱정을 잊고 새벽까지 읽었을 정도로 흠뻑 빠져들게 된 책입니다.

 
1930년대말 간도 민생단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이지만,
일제 치하 조선인의 생이 그저 밝지만은 않겠지만, 그 정도의 음영이 이 세계에 드리워진 그늘이라고 믿고 있던 주인공이
사랑했던 여자의 죽음으로 세계의 다양한 모습을 접하게 되면서 겪는 변화를 따라가다보면
사상이라든가 이념, 역사적 사실같은 것보다는 결국 삶과 죽음, 사랑 같은 궁극적인 것들에 닿게됩니다.

 

   
  인도주의는 죽는 그 순간까지 지키고 싶은 아름다운 가치지만,  그래서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변화하는 인간의 힘을 믿겠지만, 잔혹함마저도 진리의 한 부분이라는 것만은 톨스토이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오. 나는 오늘 죽을 수도 있었고 살 수도 있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소. 내가 민생단 간첩으로 오해받아 죽든, 일본군과 싸우다가 죽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소. 중요한 것은 인도주의가 진리라면 인도주의 역시 개개인에게는 잔혹함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이오.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원한도, 분노도 없소. 나는 오직 진리를 위해서만 분노할 뿐이오. 인간은 진리 속에 있을 때만이 인간일 뿐이오. 그리고 진리 속에 있을 때, 인간은 끝없이 변화할 뿐이오. 인간이 변화하는 한, 세계는 바뀌게 되오. 죽는다는 건 더 이상 변화하지 못하는 고정의 존재가 된다는 것. 다만 이 역사 단계에서 더 이상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 죽음은 그 정도로만 아쉬울 뿐이오.

- pp. 232-235, 박도만
 
   


 

   
  정희가 내게 보냈던 처음이자 마지막 서신. 그 한 장의 편지로 인해서 그때까지 아무런 문제도 없이 움직이던 내 삶은 큰소리를 내면서 무너졌다.

그때까지 내가 살고 있었고, 그게 진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세계가 그처럼 간단하게 무너져 내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건 이 세계가 낮과 밤, 빛과 어둠, 진실과 거짓, 고귀함과 하찮음 등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그때까지 나는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게 부끄러워서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 김해연
 
   


 

   
  지금 어디에 있나요? 제 말은 들리나요? 어쩌면 이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겠어요.

...

이젠 그걸 알겠어요. 이미 너무 늦었지만. 그러기에 말했잖아요. 지금까지 내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지금까지. 그러니까 당신과 그렇게 앉아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까지. 그때, 이 세상은 막 태어났고, 송어들처럼 힘이 넘치는 평안 속으로 나는 막 들어가고 있다고. 사랑이라는 게 우리가 함께 봄의 언덕에 나란히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이라면, 죽음이라는 건 이제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뜻이겠네요. 그런 뜻일 뿐이겠네요.

- pp. 324-325 이정희
 
   

  

평소에도 감탄해왔던 작가의 문장력이 잘 씌인 소설안에서 더 빛나고 있어 무척 사랑하게 된 책이라
비오는 화요일에 감히 추천해봅니다. 소설 좋아하시는 분들은 읽어보세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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