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이 된 수학자들 - 오직 수학으로 사건을 해결하라
장우석 지음 / 다른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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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인간이 저지르고, 해결은 수학이 한다!”
위대한 수학자들이 펼치는 본격 수학 미스터리!

아이들이 수학에 재미를 느끼기도 전에, 남들이 달리는 선행, 왜 하는지도 모르고 쫓아가느라 싫어진 뭔가 요즘 애들 말로 ‘억까’당한 과목, 수학이다. 이런 수학의 분위기와 다르게 <탐정이 된 수학자들>은, 옛날 농담으로 ‘꼬매놓은 빤스’(!) 같은 책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수학자들이 탐정이 되어 그들의 추리로 사건을 해결한다. 수학자들의 추리에는 그들만의 논리가 있다. 이 부분이 바로 수학자와 개념이 연결되는 부분이다. 나중에 교과서에서 이 개념을 만났을 때 이 책을 떠올리면 재밌어질 것임에 확실하다.

초6인 아이입장에서는 일번 타자로 등장하는 유클리드와 마지막을 장식하는 칸토어의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었다고 한다. 중간에 있던 갈릴레오는 아는 내용이라 이해하기 쉬웠다고 전한다. 이번 주 영재원 수업을 가서 앞에 앉은 아이가 책장에 수학그림이 그려져 있는 걸 보고 ‘뭐 그런 재미없는 책을 읽냐’라고 했다는데, 슬이는 “아니야, 이거 추리소설이야, 엄청 재밌어”라고 대꾸해주었다고 하는 걸로 봐서 아이 마음에도 쏙 들었나보다. 하지만 슬이 역시 이야기를 따라가며 책을 읽으면 참 재미있는데 수학을 풀면서 읽고 싶진 않아 심각하게 읽진 않았다는 솔직한 후기를 전한다. 유식해보이는 개념단어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이 책의 줄거리를 따라 탐정이 된 이 유명한 수학자들이 사건을 푸는 방식을 재밌어한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고등학생이 되어 머리를 쥐어뜯을 4점짜리 수능문제로 돌아올 이 개념들의 씨앗을 잘 뿌려놓는다고 믿고 싶...)

우리나라 작가라는 점도 눈여겨볼만하다. 오랜시간 숙명여고 수학선생님이셨다고 하고, 추리소설가이기도 한 저자, 장우석씨가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수학을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었구나, 싶다. 유클리드, 아르키메데스, 갈릴레오, 데카르트, 페르마, 가우스, 칸토어라는 유명한 수학자들이 탐정으로 등장하여 수학개념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실제 교과서에 나오는 원리 그대로, 정의와 공리, 무게중심, 낙하운동, 좌표, 확률, 평균과 분산, 무한을 익힐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인 책이다.

“수학을 배워서 어디다 쓰냐고 물었지요? 질문을 한 당신이 그 대답이오.”
남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수학은 도둑을 잡는 데 쓸 수 있을 정도로 삶에 유용한 진리랍니다.”(pp.40-41)

아이는 이 문장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수학이 도둑잡는데도 쓰이다니!”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마치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하고 외치는 모습이 살짝 투사되어 보인건 내 눈에 콩깍지가 씌웠기 때문이겠지?
#탐정이된수학자들#다른출판사#장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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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이 철학을 마주할 때 - 다가올 모든 계절을 끌어안는 22가지 지혜
안광복 지음 / 다산초당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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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이 철학을 마주할 때

최근들어 염세철학자, 쇼펜하우어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을 걱정하는 분이 계신다. 1996년부터 중동고등학교 선생님이시자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안광복 철학자이시다. 철학을 일상 안으로 들여놓으시는 사유와 부지런한 글쓰기가 개인적으로 부러워 롤모델 삼고 싶은 분이다. <오십이 철학을 마주할 때>는 저자 스스로 오십이라는 문을 열고 들어가 느낀 점들을 ‘다가올 모든 계절을 끌어안는 22가지 지혜’(부제)로 담아낸 책이다.

한국인들은 동안을 축복처럼 여기고 젊게 보이려 패션, 미용, 건강용품에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나이듦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노인들에 대한 편견도 심한편이다. 노년기의 사람들은 병마와 싸우느라 몸이 힘들거나 남편과 아내탓으로, 혹은 자주 들여다봐주질 않는 자식들을 원망하며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경우를 왕왕 본다. 꼭 나이든다는 것을 저주처럼 여겨야만 하는 것일까? 이런 나의 질문에 대답이라도 해주듯, 저자는 철학자 스물 두 명의 문장을 통해 우리가 생각하는 오십에 대해, 나이듦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과 선입견에 대항할 수 있는 사유를 던져준다. 개인적으로는 젊었을 때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던 ‘반야심경’이 이번에 내 맘에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기에 프롤로그에 써있는 ‘나이 드는 것만으로도 철학자가 되기에’라는 제목을 다시 새겨본 책이기도 하다. 저자가 소개하는 철학자들 중에는 공자,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이미 유명한 철학자도 있고, 시몬느 베이유와 같은 방향의 철학자나 알랭드 보통같은 요즘사람(!)도 있어 반갑다.

한 십년전부터 경청을 키워드로 한 심리학책들이 많았는데 보통씨는 “귀를 막아라. 하다못해 적게 들어라”라는 조언을 해줘 새롭기도 했다. 우리 귀에 아침부터 들리는 심각한 뉴스와 신문기사는 우리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는 알랭 드 보통의 철학자의 이야기를 제시하며 우리안에 들끓는 불안함을 고요함으로 바꿀 수 있도록 철학적인 중심을 맞춰주는 안광복 저자님의 문장들이 마음에 와 닿는다.

“중년은 끓는 혈기가 식으며 지혜가 영그는 나이다. 식어가는 감정을 다시 덥히려고 자극을 찾기보다는, 오히려 거리를 두고 세상일의 본질을 차분히 되짚게 하는 고요함이 절실하다. 수많은 현자가 경력의 정점을 지난 다음 왜 초야에 묻히려 했는지를 곱씹어 보자.”(p.146)

이 문단을 읽으면서 갱년기라는 핑계로 더욱 화를 발산하던 내 자신(!)을 반성하기도 했다. 고요함은 내면의 감정과 혈기를 덜어내야 비로소 얻어낼 수 있는 것이었음을 철학을 통해 배운다.

‘자신을 내려다볼 줄 아는 능력이 성찰하는 힘, 곧 철학이다’라는 최진석님의 추천서를 읽으며 자신을 성찰하는 힘은 끊임없는 객관화와 비판하는 힘에서 나오는 것임을 생각해본다. 또 오십이라는 나이의 나를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지도 그려본다. 이 책에서는 “혼자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p.63), “모든 불행은 혼자 있지 못하는 데서 생긴다.”(p.64)라고 자주 이야기한다. 나 역시 사람들에 둘러싸여 감정쓰레기통이 되거나 편견과 선입견에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 되기보다 혼자이더라도 예술과 철학을 친구 삼아 나의 내면을 가꾸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오십이철학을마주할때#다산초당#안광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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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충격파 - 성균관대 김장현 교수의 AI 인사이트
김장현 지음 / 원앤원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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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충격파
상상보다 빠르게 진화하는 AI시대를 대비하라
AI와의 공존을 준비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성균관대 김장현 교수의 AI 인사이트

2025년 수시모집 원서접수기간이 시작되었다. 문, 이과 학생 상관없이 학생부종합전형 생기부에 가장 많이 쓰인 단어가 ‘AI’ 이지 않을까, 싶을 만큼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책임질 키워드가 되었다.

AI가 전환시키고 있는 전반적인 산업구조에 익숙해져야 할 중년의 나에게 AI는 절반은 기대감으로 나머지 절반은 도태의 위험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인 ‘충격파’라는 단어에 공감이 간다. 저자는 “파괴의 힘인 동시에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창조의 에너지”(p.7)라고 설명한다. 나는 충격을 받아 파괴될 것인가,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이고 창조의 흐름에 합류할 수 있을 것인가,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기게 된다.

성균관대 인간AI인터랙션융합전공, 글로벌융합학부의 문과출신의 공학 교수인 김장현 교수님의 이 책, <AI 충격파>는 현재 AI가 쓰이고 있는 모습부터 AI가 우리 사회에 들인 특이점, 양날의 검으로서의 명과 암, 인간의 역할 등, AI시대에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향을 5장에 걸쳐 제시한다.

‘편견조차 학습하는 AI’라는 챕터에서는 편향된 데이터에 기반한 AI의 활용과 2014년 페이스북에서 암묵적으로 진행되었던 ‘감정전파연구’ 예시로 제시한다. 사용자들에게 아무런 동의를 구하지 않고 진행한 실험과 같은 윤리적인 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없는 AI의 모습은 필터링없이 받아들이는 사용자들에게 경각심과 지속적인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적하는데 나는 오히려 이런 부분을 읽으며 ‘문송’(문과라 죄송)의 활약이 기대되는 챕터이기도 했다. 이 AI연구는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기에 우리나라 종특인 성질급함이 여기에 투영된다면 많은 연구가 우리나라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하며 읽었다. 하지만 후반부 4장의 ‘인간의 역할’에서 저자의 우리나라의 언론에 대한 언급을 읽으며 함께 개탄했다.

“한국의 언론보도는 살아있는 권력 비판에 집중한다는 명분으로 인류의 문제, 글로벌의 문제를 방기하는 측면도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 사회의 어젠다는 결코 경제적 국력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언론의 어젠다는 엘리트와 일반 국민의 어젠다로 전이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보다 먹고살기 더 어려운 나라들도 환경문제, 기후변화, 유엔이 정한 인류 문제 등에 관해 아낌없이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 언론들은 대한민국의 국격에 적합한 수준의 의제를 다루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pp. 214-215)

우리나라의 연구를 막고 있는 것 역시 정치적인 문제라는 것에 또 한번 뒷목을 잡는 대목이었다. 언론의 수준이 이런데 연구비를 받아야 할 수 있는 연구 주제를 자유롭게 선정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우리나라의 연구가 뒷북치는 데 멈춰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이 AI 기술이 파괴할 충격은 우리나라의 보수적인 갈라파고스 시야를 부수는 데 쓰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는 우리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관심이 많은 저자 덕분에 디지털교과서에 대한 의견이나 앞으로 우리 아이들의 교육의 방향에 대한 고견도 읽어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AI시대의 창조적 에너지를 펼쳐갈 아이들이 읽어도 좋겠지만, 어른들도 함께 읽으며 도태되지 않고 AI가 가져다주는 윤리적인 문제 해결에 동참하는 시민의식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꼰대가 아니라 이 시대를 함께 사는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새로 만들어나갔으면.

#AI충격파#원앤원북스#믹스커피#김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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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홍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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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들>은 은행에서 여신관련 업무를 맡은 주인공 ‘장’의 서사와 서해안에, 말뚝들이 떠내려왔다는 이야기와 함께 시작한다. 책의 제목이 <말뚝들>인 만큼 그 외형에 대해 발췌문을 옮기지 않을 수 없다.

“말뚝들의 머리는 털 오라기 하나 없이 반지르르했고 얼굴도 방금 세수한 것처럼 매끈했다. 그것들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뻘밭에 거꾸로 파묻혀 있었다.(...) 안색이 어둡고 얼굴이 전체적으로 부어 있는 것을 제외하면 방금 눈 감고 잠든 사람 같기도 했다. 눈을 감은 데다 뚜렷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은 탓에 전부 한 사람의 얼굴처럼 보였다. 혹은 모두의 얼굴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p.84)

분명 시체지만 잠든 얼굴처럼 보이는, 우리 모두의 얼굴로 묘사된다. 나는 지하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얼굴들을 떠올렸다. 이 말뚝만 보면 판타지소설이다. 하지만 장의 서사로 따지자면 직장 암투이면서 스릴러 앤 서스펜스이자 거대권력에 맞서는 히어로물(?)이다. 블랙코미디에 막장 불륜(이 부분은 좀 억울한 감이 없지 않다)까지 오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눈물의 힘을 보여주는 서정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로 끝맺는다. 왜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이 책을 선택했는지 알겠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 다음에 어떻게 진행될지 전혀 짐작할 수 없다. 그래서 재밌다.


이 말뚝들은 처음에는 서해안가에서. 도시 곳곳에 생겨난다. 독자들은 이 말뚝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말뚝이라는 건 본디 한 자리에 고정되고자 박는 것이다. 하지만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바다 속에서 표류하다 후반부에 가서는 장의 베란다에, 그리고 광화문에 생겨난다. 이렇게 작가에 의해 우리 앞에 내던져진 말뚝들은 사회적 약자들의 얼굴을 하고 독자에게 묻는다. 어디 아는 말뚝 없느냐고.

“안녕하세요. 누구세요. 어떻게 죽으셨어요. 입은 열리지 않았다.”(p.171)

이 말뚝들은 내가 그동안 보지 않으려 애쓰던 사람들이자 아픈 손가락이기도 하고 나의 양심을 건드리는 최후의 보루같은 의미로 다가온다.

한편 나에게는 ‘빚’이라는 키워드도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작은 부자를 큰 부자로 만들어주는 게 빚이고, 큰 부자를 계속 부자로 있게 하는 것도 빚이었다. 빚 때문에 망한 사업을 일으켜 세우는 것도 빚이었으니 빚은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며 세계의 핵심이었다. 그렇다면 세상의 가난은 어디서 오는가? 사람들은 빚이 많아서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가난해졌다.”(p.24)

빚으로 부자가 되는 인물은 대민그룹 둘째 아들이다. 그와 반대지점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주인공 ‘장’은 큰 빚을 져야 결혼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두려워했고 그래서 결혼을 준비하던 오래 사귄 해주와 헤어질수 밖에 없었다. 초반에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던 장은 테믈렌과 해후한 후 빚에 대해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게 된다.

“큰 빚이 큰 부자를 만드는 진리는 언제나 통한다. 하지만 우리의 빚은 저들의 것과 다르다. 아무에게도 빚지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가난하다. 서로에게 내어준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노트에 눌러쓰고, 그 빚을 기억하며 평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으로 언젠가 세상을 설득할 것이다.”(p.280)

나는 당신의 마음에 빚지고 싶다. 이렇게 아름다운 고백이 있을 수 있다니.

한 가지를 더 하자면 작년 12월의 일을 벌써 소설로 읽어볼 수 있다니, 한겨레문학상이 가진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백종원, 배철수 아저씨 특별출연. 아참, 배철수의 음악캠프 시그널 송을 글로 표현한 부분부터 나는 이 책을 홍홍홍 거리며 읽기 시작했다. 나는 저녁으로 우동을 먹을 예정이고 판교에 가면 꼭 줄서서 먹는다는 마들렌을 사먹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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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시대 - 독립을 넘어 쇄신을 꿈꾼 식민지 조선 사회주의 유토피아
박노자 지음, 원영수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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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시대>
The Red Decades: Communism as Movement and Culture in Korea, 1919-1945

냉전시대에 자라 정치를 청소년기에 읽은 <태백산맥>으로 배운 나는 ‘사회주의’와 ‘민주주의’가 같이 쓰일 수 없는 용어로 익혔다. 그러다 어느 책에선가 독일의 정치인, 빌리 브란트의 당 이름이 ‘사민당’이라는 것을 읽었다. 어느 덧 영국의 노동당, 프랑스의 사회당, 스웨덴의 사회민주노동당 등 유럽에서는 이 두 단어를 함께 쓴 정당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느즈음에는 선진국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우리나라와는 다른 의미로 쓰인다는 것을 어슴푸레 깨달았던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나는 기독교를 받아들인 민족주의자들의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으나 1, 2차 세계대전 사이,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 때의, ‘붉은 시대’라는 당시의 시대정신이 담긴 사회주의를 받아들이며 조선의 좌파운동을 전개하고 6.25 전쟁 이후 북으로 향한 ‘그들’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라는 책을 통해 제 3자의 시선으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던 박노자 저자의 이 책, <붉은 시대>는 올해, 광복 80주년이자 조선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아 그동안 우리가 ‘빨갱이’로 치부하며 연루되려 하지 않았던, ‘그들’의 공산주의 운동을 연구한 책이다. 이 활동에 참가한 조선혁명가들 –지식인들과 학생들, 망명자, 노동자, 농민들과 함께 1920년대의 당내 분파 논쟁과 그들의 강령, 전략, 실천이 이후 어떻게 우리에게 영향을 끼쳤는지 어떤 유산을 남겼는지 살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7장의 ‘조선인 여행자의 눈에 비친 붉은 수도 모스크바’가 인상적이었다. 이 책의 소제 ‘독립을 넘어 쇄신을 꿈꾼 식민지 조선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떠올리는 챕터이기도 했다. 이 조선인 목격자들은 “1920년대 모스크바의 심각한 빈곤과 1930년대 스탈린주의 모스크바의 보수적 선회를 모두 알아차렸다. 그럼에도 ‘붉은 수도’의 진정한 성취, 즉 인종차별을 척결하고 과거에 억압됐던 노동자들에게 고급문화에 더 많이 접근할 수 있게 한 노력은 정당한 평가를 받았”(p.254)다라고 저자는 쓰고 있다. 당시의 러시아를 부러워했을 조선인 목격자들이 상상되면서 동시에 지금의 러시아 상황을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목격자들과 반대의 행보를 걸어오며 푸틴의 나라를 벗어나 우리나라에 귀화한 박노자 저자의 이런 연구가 감사하면서도 그 사회주의의 원조격인 소련의 수많은 사라진 사회주의자들은 누가 연구해줄까라는 생각에 안타깝기도 한 책이다. 그렇기에 더 신랄하게 비판할 수 밖에 없는 저자의 스타일에 공감이 간다.

21세기가 되자,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유럽의 사민당들은 지지율이 바닥을 쳤다. 그러다 2016년 세월호 촛불시위에 나선 시민들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승격시켰다고 외신에서 전하자 우리는 감격스러우면서도 당황스러웠다. 우리는 어떤 모습을 꿈꾸며 나아갈 수 있을까? 전세계적으로 포퓰리즘이 판을 친다. 우리나라 역시 작년 12월 비상계엄 사태를 겪으며 언제든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음을 배웠다. 이런 상황에서 일제강점기로 근대를 맞으며 새로운 시대를 꿈꿨을 ‘그들’을 이 책을 통해 상상해본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는 그 어느때보다도 가난한 나의 모습과 ‘그들’을 비교해보면 내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정신에 대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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