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미희답게 잘 살았습니다 1 - 냉장고 너머의 왕국 그리고 미희답게 잘 살았습니다 1
태 켈러 지음, 제랄딘 로드리게스 그림, 송섬별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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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미희답게 잘 살았습니다
1. 냉장고 너머의 왕국

아이를 키우면서 전래동화의 권선징악, 인과응보라는 전형적인 틀에 갇힌 이야기를, 내 아이에게 권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다. 이후 어떤 독서교육 강의 중, 취학 전 아이들에게 전래동화를 읽혀야 아이가 선한 행동과 그렇지 않은 행동을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고 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좋다는 말씀을 듣고 나서야, 그 이후에 읽혔다. 하지만 주인공은 착한 사람이고 그와 척을 지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는 이 이분법적인 도식화의 결과가 마음에 남아있었다. 그러던 중 1/4는 한국인이라고 자신을 설명하는 태 켈러 작가의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오래된 이야기의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고민을 이 분은 이렇게 풀어냈구나 하면서 읽은 기억이 있다. 그 책으로 2021년 뉴베리 상을 받았다. 그리고 다음 해에 바로 이 책을 내셨다.

메사추세츠주 에서 ‘박동물보호소’를 운영하는 박씨 부부의 딸, 미희 완 박이 주인공으로 넓적한 얼굴과 120센티미터라는 작은 키의 한국계 소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공주는 뮬란 뿐이라는 것이 별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희는 공주를 추앙한다. 그래서 어릴 적 친구 제네비브와 함께 공주 놀이를 해왔으나, 요즘 들어 공주 같은 외모를 가진 이 친구조차 더이상 함께 하고 싶어하지 않음을 느낀다. 백설공주 놀이를 하기 위해 가져와야 할 사과를 깜빡한 미희에게 “어차피 넌 공주 같은 아이도 아니잖아.”(p.14)라며 친구는 떠나간다. 미희에게 공주란, 엘사와 라푼젤처럼 “어딘가에 나만을 위한 ‘오래오래 행복한 결말’이 있을 거야. 그걸 찾아내야 해”(p.18)같은 의미였기에 계속해서 “모험을 추구했고, 꿈을 이루고 행복한 결말에 이를 때까지 멈추지 않고 나아”(p.18)가기 위해 교정 안에 있던 사과나무의 사과를 따기 위해 오른다. 백설공주에게는 사과가 필요하니까. 하지만 그러다가 걸려 점심시간에 외부활동을 금지당하고 대신 도서관으로 가게 되는 벌칙을 받는다. 그곳에서 교실 등이 나가 고쳐보려고 의자에 올랐다가 훔치는 것으로 오인받고 벌을 받게 된 흑인 리즈와 노래를 부르다가 트라우마를 갖게 되어 스스로를 꽁꽁 묶은 사바나를 만나게 된다. 그렇게 셋이 ‘냉장고 너머의 왕국’, 공주들이 사는 무지개 왕국으로 발을 내딛는다.

이 왕국은 미희가 꿈꾸던, 공주들이 사는 세계였다. 하지만 공주가 되기 위해서는 이 세계의 인물인 버사가 시키는 대로 공주 훈련을 받아야 했다. 훈련의 결과는 점수로 환산되어 친구들과 경쟁해야 했다. 또 진짜 공주를 만난 다음에는 “공주가 되는 건 미희의 가장 큰 꿈이었지만 정작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아름답지만 새장 속에 갇혀 있다는 점이 꼭 동물보호소에 있는 새들 같았다.”(p.111)와 같이 느낀다. 절대 이야기를 바꾸어서는 안된단 불문율, 그러니까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라는 클리셰에 질문을 갖게 된다. 그렇게 아이들은 정해진 틀을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다.

‘공주답다는 건 누가 정하는 거지?’ 다른 사람 눈에 공주처럼 보일지 아닐지를 걱정하느라 지금까지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pp.208-209)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다양성을 표현하기 위한 색과 맛이다. 냉장고 너머의 왕국에 들어가게 해준 도서관 사서선생님의 사탕 맛은, 먹는 아이들 각자의 고유한 맛이다.

“엄마가 만든 팥떡 맛이야.” 미희가 말했다. “버터크림 케이크 맛이 나.” 리즈가 말했다. “난 엄청 맛있는 소고기 육포 맛이 나는데.” 사바나가 말했다.(p.31)

오두막집에서 만난 검은 곰이 끓여주는 죽, 역시 종류는 하나지만 아이들은 각자의 고유한 그 맛을 다시 느낀다. 각자가 집을 떠올렸을 때 그리움을 맛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미희라는 이름의 ‘미’는 아마도 아름다울 ‘미’로, 공주가 되기 위한 필수 요건이기도 하지만 맛 ‘미’자를 쓰는 미각의 ‘미’일 수도 있으니 여러가지 맛에서 아이들 각자의 고유한 그리움의 맛이 다양성이라는 주제를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정말 위험 천만한 모험 끝에 다시 돌아온다. 미희가 품었던 질문은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주머니 속 묵직한 나침반도 여전히 미스터리이다. 미희가 ‘미희답게 잘 살았습니다’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 책 속 주인공 미희처럼, 공주가 되고 싶은 아이들이나, 이제는 공주놀이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무엇이 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은 아이들이 읽으면 좋겠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맛처럼 우리가 사는 이 곳이 얼마나 무지개빛으로 빛날 수 있는지를 이 책에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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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바바라 몰리나르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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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엮고 백수린 작가가 번역한, 이라고 쓰지만 그 두 작가가 선택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프랑스 여성작가, 바바라 몰리나르의 책이다. 1921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198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바바라 몰리나르는 글을 쓰고 찢어버렸다고 한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남편이 그녀를 설득해 이 책에 수록된 단편만을 남길 수 있었고 1969년에 발간된 이 책이 그녀가 남긴 단 한 권의 책이다. 열세 개의 단편과 뒤라스와 몰리나르의 대담 한 개를 모아 총 열 네 가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책의 인물들은 혼자라면 누군가를 기다리거나(산타로사에서 오는 비행기),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기도 한다.(머리 없는 남자, 와줘). 약사와 함께 등장하는 엑토르의 경우(잘린 손) 둥근 손을 실용적으로 만들기 위해 잘라내기도 하고, 침대에 묶여 주인이라는 사람의 지시로 입에 바늘을 꽂아두는 고통을 당하기도 한다(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타인과 함께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직접적인 육체적인 고통을 겪기도 하고 사다리 만드는 것을 포기하고 싶지만 설득, 강요를 당하며 정신적으로 괴롭힘을 당하고 결국에는 비극이 기다리기도 한다.(아버지의 집) 이런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렁주렁 단 채 피투성이로 이 도시를 헤매는 인물들이다. 또 어딘가에 올라가기 보다는 주로 축축하고 음침한 지하로 내려간다(잘린 손, 와줘). 자신이 왜 이 곳에 있는지 기억하지 못하기도 하고(택시,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종종 등장하는 구멍들 뒤에는 누군가 숨어서 주인공 또는 무엇인가를 엿본다(침대,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가장 우울한 것은 단 한 순간도 혼자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p.205) 이 점이 이 책 속의 비극을 만들어낸다. 도시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가지만 타인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고통이 있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피투성이로 이 도시를 헤맨다. 친어머니 조차(잘린 손) 주인공을 박대한다. 주인공 역시 다섯명의 경찰에게 둘러싸야 고통받는 동생의 모습을 보지만 모른 척한다. 끊임없이 누군가를 기다리지만 (산타로사에서 오는 비행기, 와줘) 나타나지 않거나 손가락 만이 열쇠를 빼내고 사라진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와줘>라는 단편도 그렇지만 <만날 약속>에서는 “와야 해요”, “만나기로 약속했잖아요 ······ 와줘요.”(p.97)라며 계속해서 기다린다. 이런 기다림은 마지막 편, 뒤라스와 바바라 몰리나르의 대담으로 기록된 <지하납골당>에서야 “받아들여진 느낌”(p.217)을 받는다. 죽어야만 갈 수 있는 납골당에서 “삶 속에서는 붙잡을 수 없는 무언가를 우리는 죽음 속에서 붙잡을지도 모르니까요.”(p.223)라며 그 곳에서 “저는 그저 나 자신이 되고 싶을 뿐이에요.”(p.224)라고 말한다. 그렇게 이야기는 끝이 나고 이 페이지는 단 두 줄을 빼고는 텅 비어있는데 그 만큼 시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옆에 그녀가 직접 그렸다는 그림이 실려있다. 하얀 종이 위에 피를 흘렸는지 그 피를 흘린 누군가가 고통스러워 한 자국이 보인다. 바바라 몰리나르의 이야기에는 모두 고통이 담겨있다. 그 고통이 그녀에게 삶이란 흔적이었고 그것은 글쓰기로, 그리고 그것을 찢어버리는 행위를 통해 고통에 저항한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나 자신이 되어 그 고통과 정면으로 맞닥뜨린 그의 ‘혼자’라는 고통에 저항할 수 있는 독립과 길겠지만 끝이 있는 ‘밤’을 응원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나의 차례임이 느껴진다. 나는 내 자신의 고통을 응시할 용기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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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와 인간, 그 오래된 동행
김서형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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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와 인간, 그 오래된 동행 : 기원과 종말을 잇는 138억 년의 비밀 코드

우주 탄생부터 현재 인류까지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을 ‘빅히스토리’라고 한다. 데이비드 크리스천 교수가 1989년, ‘빅히스토리’라고 명명한 강좌에서 비롯되었다. 이에 감명받은 빌 게이츠가 미래 세대에게 큰 그림을 이해하도록 돕기 위한 교육의 일환으로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를 ‘빅히스토리 프로젝트’라고 하며 국내 도입 후 이 분야의 교과목, 강연 등을 도맡아온, 현재 인하대, 이화여대 연구원을 지나 국제빅히스토리학회의 임원을 거쳐 현재 러시아 빅히스토리 유라시아 센터 연구교수로 활동중인 김서형 저자의 책이다.

이 책은 총 7장으로 3장까지는 빅히스토리에서 접근하는 방식인 빅뱅 이후, 우주에서 별이 폭발하며 만들어지는 탄소의 시작부터 생명체가 만들어지는 골디락스(이상적인 균형상태를 말한다)의 조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4장에서는 탄소연대기로 보는 문명의 시작을, 5장은 중세시대의 소빙기와 제국주의 시절, 탄소가 어떻게 생산되었고 소비되었는지 서술한다. 6장은 기후 위기와 탄소중립을, 마지막 7장에서는 우주로 향해야 할 인류의 미래에서의 탄소에 대해 “ 탄소는 우주의 언어, 생명의 언어, 존재의 언어”(p.234)임을 밝힌다.

이 책에서는 역사적으로 아메리카가 탄소를 만들어내고 유럽이 탄소를 소비하고, 아프리카 노동자들이 탄소 노동력을 공급해왔다고 전한다. 오늘날에도 별로 달라진 점은 없다. 기업은 탄소를 인위적으로 끝없이 연결하여 만든 폴리에틸렌으로 만든 플라스틱 제품을 탄소와 수소의 화합물인 석탄, 석유를 에너지 삼아 생산하고, 우리는 그것을 일회용으로 쉽게 사용하며 탄소 쓰레기를 만든다. 정부는 쓰레기를 없애기 위해 태우고 이산화탄소가 되어 대기로 날아간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사용한 탄소는 기후위기가 되어 지구의 온도를 높이고 있다. 인류의 문명의 근간이자 동시에 기후 위기의 근본 원인인 ‘탄소 경제’ 시스템이었다는 것, 그리고 대기 중으로 배출된 이산화탄소는 단기간에 사라지지 않아 “지금 배출 되는 탄소는 미래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 “인간의 활동은 자연의 탄소 순환 자체를 교란한다”(p.207)는 것. 며칠 전 본 아바타 ‘불과 재’에서 새롭게 등장한 망콴족은 화산의 폭발로 살 곳을 잃고 유랑과 약탈로 버텨온 파괴적인 불의 힘을 가진 나비족이다. 같은 나비족이지만 불을 내뿜는 인간의 무기에 혹해 그들을 동맹 삼는다. 하지만 그 외의 나비족은 물의 정화하는 힘을 믿는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인간종족과 불이라는 것은 탄소경제를 지향해온 악의 축이고 자연과 균형을 맞추며 조화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나비족이 우리가 지켜야 할 탄소중립의 삶으로 보여졌다. 나비족이 믿는 물의 힘은 지구의 바다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인간이 만들어낸 이산화탄소를 홀로 흡수해온 바다는 이제 한계치에 도달했다. 산성화된 해양은 지구 전체 탄소 순환의 균형을 지키기 버겁다. 따라서 기후위기를 지속으로 바꾸기 위한 골든타임이 바로 지금이며 오늘날 우리가 선택하는 방향이 미래의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환경에 바로 반영된다는 것은, 이 책에는 이렇게 쓰여있지 않지만 이 책을 읽으며 과학자가 아닌 일반인인 나조차 유추할 수 있었다. 자연은 충분히 우리를 도와주었다. 이제는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국가전략과 제도가 필요한 시점이며 이를 따르는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일상에서의 실천”(p.218)이 중요하다.

“기술혁신이 초래하는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기는 어렵다”는 김상욱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다. 과학의 힘으로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인간으로서는 최고의 방법이겠지만 그 기술혁신이 이루어지기까지 우리의 지구가 버텨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거시적 관점으로 인류를 바라보아야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빌게이츠의 의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자신의 부를 자녀들에게 증여하기보다 기부하려고 한다는 빌 게이츠가 우리 세대에게 남기는 선물로서 왜 빅히스토리를 선택했는지 이 책을 읽으며 짐작해본다.

#빅히스토리#탄소와인간그오래된동행#김서형#믹스커피#원앤원북스#빌게이츠#탄소중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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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눈물에는 온기가 있다 - 인권의 길, 박래군의 45년
박래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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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의 추천글이 돋보이는 <모든 눈물에는 온기가 있다>에는 박래군 저자의 인권운동 45년이 담겨있다. 인권이란, 인간이라면 가져야 할 권리라고 단편적으로 알고 있어왔다. 김훈 작가는 ”인권은 더이상 분할이 불가능한 개별적 생명의 불가침한 가치이고 사회 구성의 기본인자다.“(p.7)라고 말한다. 더 이상 사회와 타협할 수 없는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최소한의 권리로 읽힌다.
저자는 한국 민주화 투쟁에서 짓밟혀온 학생들뿐 아니라 양지마을 사건, 의문사 진상 규명과 같이 어둠에 묻혀 있던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수면위로 올려왔다. 또 용산 참사와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와 유가족들 곁을 지켜왔다.

“나는 유가족으로 그들과 만났다. 그들에게 오빠로, 형으로 불리면서 40년 가까운 세월을 만나고 있다. 부모님의 눈물과 한숨을 보면서 내 안의 슬픔을 만나지 못한 채 우는 부모님을 위로해야 했던 젊은 시절을 샅이 보낸 형제이고, 누이들이다. 우리끼리 만나면 부모님 흉도 보고, 걱정도 하고, 그러다가 울기도 하고, 그러다가 서로 웃기도 했다.(p.428)”

쉽지 않은 인권의 길이다. 저자가 이 길에 들어설 수 밖에 없게 된 연유에 대해 이 책 초반부에서 담담하게 서술해나간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누군가 이건 소설이라고 말해주길 바랬다. 그 정도로 우리의 현대사는 독재정권에 저항했던, 지금은 잊혀진 젊은 목숨들에게 빚지고 있었다. 저자는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썼을텐데 동생 박래전의 분신을 둘러싼 그와 그의 가족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런 담담한 문체에서 직접 만나보진 못했지만 알 것같은 그의 성격이 느껴졌다. 그는 선하고 뚝심있는 문학을 좋아하는 청년이었다. 그보다 훨씬 늦게 태어난 나는 이미 중년인데 그는 아직도 청년으로 살고 있었다. 존경심이 일었다.

최근 읽은 한겨레출판의 책들이 함께 떠오르기도 했다. 5장 끝 부분의 ‘스스로 낸 새로운 길을 걷고 있는 존재들’에서 저자는 ‘청년유가협’모임, 즉 “민주화운동 과정 중에 형이나 오빠, 동생을 잃은 사람들(p.427)”에 대해 이야기한다. 유가족이라는 단어에서 <말라가의 밤>처럼 살기 위해 잠시 숨을 멈추고 입수하는 ‘프리다이버’ 유가족들이 떠오른다. 서해안에서 떠내려온 말뚝을 보는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울다가 사라지면 눈물을 그치는 <말뚝들>이 생각나기도 한다. “나의 뒷배는 죽은 자들이다”(p.434)라고 말하는 저자를 보며 그 말뚝들이 사라지지 않고 그의 뒤에 서 있음이 보였다.

“한강 작가가 “죽은 자가 산 자를 도울 수 있는가?”라고 물을 때, 나는 현장에서 죽은 자가 산 자를 도울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부단히 애썼다. 죽어간 이들은 ‘같이 죽자’가 아니라 ‘나는 죽지만, 살아남은 당신들은 더 나은 세상에서 살기를 바란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나 역시 그런 마음으로 울고 있는, 살아남은 자들의 곁으로 갔고 지금까지 그들 ‘곁’을 지키며 살아왔다.(pp.435-436)“

본인 역시 연세대 문학회원이면서도 개인의 글쓰기적 열망을 한강작가에게 맡기고 이 말뚝들을 지키는 파수꾼을 자처하는 저자의 모습이 이 문단에 투영되어 있다.
”살아있는 존재가 흘리는 눈물에는 온기가 있기 마련이다. ”모든 눈물에는 온기가 있음을 잊지 말자.“ 그래야 사람으로 살 수 있으니까.(p.439)” 그동안 내가 흘린 눈물의 온도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리고 앞으로 흘릴 눈물의 온기에 대해서도.
#모든눈물에는온기가있다#박래군#하니포터#하니포터11기#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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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기분 - 한문학자가 빚어낸 한 글자 마음사전
최다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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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기분>, 한문학자가 빚어낸 한 글자 마음사전

감정과 기분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내가 느끼는 감정은 하나인데 싫다, 짜증난다, 뭔가 불편하다, 꿉꿉하다 등으로 산만하게 나열하기는 더 싫을 때도 있다. 좋다, 신난다, 즐겁다, 재밌다 같은 긍정적인 감정도 마찬가지다.

“기분을 말해줄 정확한 언어를 찾는 것만으로 덜 외로울 수 있다.”(p.10)
“한자문화권에 뿌리내린 우리는 한자를 통해 자신의 오래된 성정과 조우하며 자신이 존재하는 양상을 충분히 이해받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p.11)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처럼 자신을 언어화해줄 수 있는 단어를 찾는 과정을 통해 한문학자로의 삶을 꾸려나가는 저자의 모습이 보이는 대목이다. 또 자신에 대해 “산문같은 사람이 되는 일에 늘 실패”하는 저자는 “운문같은 사람이다”(p.80)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장르는 산문이지만 운문 같은 책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다양한 한문 한글자 한글자만이 지닌 사탕을 하나씩 입에 넣고 굴리며 산책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 사탕의 맛이 한문이 이제 막 만들어지던 옛날에 살던 고대인도 아는 맛이고 이 책을 읽을 독자들도 좋아할 맛이라는 게 느껴진다. 그런 기분을 담은 <한자의 기분>을 소개한다.

이 책은 한문학자만이 쓸 수 있는 글일 것이다. 오랜 시간 한문을 관찰하며 만들어진 생각들을 가지고 12가지 기분으로 빚어냈다. 처음으로 소개하는 ‘이름 명’에 대해 저자는 ‘저녁 석’과 ‘입 구’가 만나 ‘이름’이 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해가 떨어지고 나면 어둠이 얼굴을 지웠기에,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말하여 본인을 증명해야 했다.”(p.15) 내 입으로 내 이름을 말하는 기분, 그것은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는 설명이다. ‘눈 목’ 위에 ‘손 수’가 얹어져 있는 ‘보다 간’에 대해서는 멀리 보기 위해 눈 위에 손을 올리는 행동이라고 설명한다. 고대인들이나 현대인들이나 비슷한 제스처를 취하는 것을 보며 나는 뭔가 인류라는 단어가 공통분모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또 저자가 맥주의 뽀얀 거품 위에 저자의 기분을 맡기기도 하는 ‘거품 포’를 읽으면서는 나도 그 옆에 앉아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무늬 문’에서 발견하는 글쓰는 이들 각자가 지닌 무늬를 의미하는 ‘문’학이라는 단어의 발견도 좋았다. 그 외에도 한자로 나뭇잎, 땅, 서리의 색을 되짚는 ‘색깔의 기분’과 숫자를 하나하나 세어가며 ‘헤아리는 기분’도 인상적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저자의 MBTI를 알 것만 같은 힌트가 담긴 ‘씻다 세’가 있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감정이 쉽게 동굴을 파고 들어가 숨어버리곤 하는 나의 기질”(p.62)을 씻어내고서는 “뽀얗게 씻겨 한동안 나를 잘 운영할 원동력으로 삼”(p.63)고자 한다는 저자. INFP가 엿보인다.

저자의 이름에 쓰인 한자에 대해 생각해본다. ‘많을 다’에 ‘뜻 정’이라면 한자 하나에 많은 뜻을 찾아낼 수 있는 이름 아닐까? 이름에 대해서도 다정함과 부러움을 동시에 느껴본다.
#한자의기분#하니포터#하니포터11기#한겨레출판#최다정#한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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