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뚝들>은 은행에서 여신관련 업무를 맡은 주인공 ‘장’의 서사와 서해안에, 말뚝들이 떠내려왔다는 이야기와 함께 시작한다. 책의 제목이 <말뚝들>인 만큼 그 외형에 대해 발췌문을 옮기지 않을 수 없다. “말뚝들의 머리는 털 오라기 하나 없이 반지르르했고 얼굴도 방금 세수한 것처럼 매끈했다. 그것들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뻘밭에 거꾸로 파묻혀 있었다.(...) 안색이 어둡고 얼굴이 전체적으로 부어 있는 것을 제외하면 방금 눈 감고 잠든 사람 같기도 했다. 눈을 감은 데다 뚜렷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은 탓에 전부 한 사람의 얼굴처럼 보였다. 혹은 모두의 얼굴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p.84)분명 시체지만 잠든 얼굴처럼 보이는, 우리 모두의 얼굴로 묘사된다. 나는 지하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얼굴들을 떠올렸다. 이 말뚝만 보면 판타지소설이다. 하지만 장의 서사로 따지자면 직장 암투이면서 스릴러 앤 서스펜스이자 거대권력에 맞서는 히어로물(?)이다. 블랙코미디에 막장 불륜(이 부분은 좀 억울한 감이 없지 않다)까지 오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눈물의 힘을 보여주는 서정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로 끝맺는다. 왜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이 책을 선택했는지 알겠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 다음에 어떻게 진행될지 전혀 짐작할 수 없다. 그래서 재밌다.이 말뚝들은 처음에는 서해안가에서. 도시 곳곳에 생겨난다. 독자들은 이 말뚝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말뚝이라는 건 본디 한 자리에 고정되고자 박는 것이다. 하지만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바다 속에서 표류하다 후반부에 가서는 장의 베란다에, 그리고 광화문에 생겨난다. 이렇게 작가에 의해 우리 앞에 내던져진 말뚝들은 사회적 약자들의 얼굴을 하고 독자에게 묻는다. 어디 아는 말뚝 없느냐고. “안녕하세요. 누구세요. 어떻게 죽으셨어요. 입은 열리지 않았다.”(p.171) 이 말뚝들은 내가 그동안 보지 않으려 애쓰던 사람들이자 아픈 손가락이기도 하고 나의 양심을 건드리는 최후의 보루같은 의미로 다가온다.한편 나에게는 ‘빚’이라는 키워드도 인상적으로 다가왔다.“작은 부자를 큰 부자로 만들어주는 게 빚이고, 큰 부자를 계속 부자로 있게 하는 것도 빚이었다. 빚 때문에 망한 사업을 일으켜 세우는 것도 빚이었으니 빚은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며 세계의 핵심이었다. 그렇다면 세상의 가난은 어디서 오는가? 사람들은 빚이 많아서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가난해졌다.”(p.24) 빚으로 부자가 되는 인물은 대민그룹 둘째 아들이다. 그와 반대지점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주인공 ‘장’은 큰 빚을 져야 결혼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두려워했고 그래서 결혼을 준비하던 오래 사귄 해주와 헤어질수 밖에 없었다. 초반에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던 장은 테믈렌과 해후한 후 빚에 대해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게 된다. “큰 빚이 큰 부자를 만드는 진리는 언제나 통한다. 하지만 우리의 빚은 저들의 것과 다르다. 아무에게도 빚지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가난하다. 서로에게 내어준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노트에 눌러쓰고, 그 빚을 기억하며 평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으로 언젠가 세상을 설득할 것이다.”(p.280)나는 당신의 마음에 빚지고 싶다. 이렇게 아름다운 고백이 있을 수 있다니. 한 가지를 더 하자면 작년 12월의 일을 벌써 소설로 읽어볼 수 있다니, 한겨레문학상이 가진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백종원, 배철수 아저씨 특별출연. 아참, 배철수의 음악캠프 시그널 송을 글로 표현한 부분부터 나는 이 책을 홍홍홍 거리며 읽기 시작했다. 나는 저녁으로 우동을 먹을 예정이고 판교에 가면 꼭 줄서서 먹는다는 마들렌을 사먹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