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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시대 - 독립을 넘어 쇄신을 꿈꾼 식민지 조선 사회주의 유토피아
박노자 지음, 원영수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평점 :
<붉은 시대>
The Red Decades: Communism as Movement and Culture in Korea, 1919-1945
냉전시대에 자라 정치를 청소년기에 읽은 <태백산맥>으로 배운 나는 ‘사회주의’와 ‘민주주의’가 같이 쓰일 수 없는 용어로 익혔다. 그러다 어느 책에선가 독일의 정치인, 빌리 브란트의 당 이름이 ‘사민당’이라는 것을 읽었다. 어느 덧 영국의 노동당, 프랑스의 사회당, 스웨덴의 사회민주노동당 등 유럽에서는 이 두 단어를 함께 쓴 정당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느즈음에는 선진국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우리나라와는 다른 의미로 쓰인다는 것을 어슴푸레 깨달았던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나는 기독교를 받아들인 민족주의자들의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으나 1, 2차 세계대전 사이,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 때의, ‘붉은 시대’라는 당시의 시대정신이 담긴 사회주의를 받아들이며 조선의 좌파운동을 전개하고 6.25 전쟁 이후 북으로 향한 ‘그들’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라는 책을 통해 제 3자의 시선으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던 박노자 저자의 이 책, <붉은 시대>는 올해, 광복 80주년이자 조선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아 그동안 우리가 ‘빨갱이’로 치부하며 연루되려 하지 않았던, ‘그들’의 공산주의 운동을 연구한 책이다. 이 활동에 참가한 조선혁명가들 –지식인들과 학생들, 망명자, 노동자, 농민들과 함께 1920년대의 당내 분파 논쟁과 그들의 강령, 전략, 실천이 이후 어떻게 우리에게 영향을 끼쳤는지 어떤 유산을 남겼는지 살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7장의 ‘조선인 여행자의 눈에 비친 붉은 수도 모스크바’가 인상적이었다. 이 책의 소제 ‘독립을 넘어 쇄신을 꿈꾼 식민지 조선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떠올리는 챕터이기도 했다. 이 조선인 목격자들은 “1920년대 모스크바의 심각한 빈곤과 1930년대 스탈린주의 모스크바의 보수적 선회를 모두 알아차렸다. 그럼에도 ‘붉은 수도’의 진정한 성취, 즉 인종차별을 척결하고 과거에 억압됐던 노동자들에게 고급문화에 더 많이 접근할 수 있게 한 노력은 정당한 평가를 받았”(p.254)다라고 저자는 쓰고 있다. 당시의 러시아를 부러워했을 조선인 목격자들이 상상되면서 동시에 지금의 러시아 상황을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목격자들과 반대의 행보를 걸어오며 푸틴의 나라를 벗어나 우리나라에 귀화한 박노자 저자의 이런 연구가 감사하면서도 그 사회주의의 원조격인 소련의 수많은 사라진 사회주의자들은 누가 연구해줄까라는 생각에 안타깝기도 한 책이다. 그렇기에 더 신랄하게 비판할 수 밖에 없는 저자의 스타일에 공감이 간다.
21세기가 되자,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유럽의 사민당들은 지지율이 바닥을 쳤다. 그러다 2016년 세월호 촛불시위에 나선 시민들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승격시켰다고 외신에서 전하자 우리는 감격스러우면서도 당황스러웠다. 우리는 어떤 모습을 꿈꾸며 나아갈 수 있을까? 전세계적으로 포퓰리즘이 판을 친다. 우리나라 역시 작년 12월 비상계엄 사태를 겪으며 언제든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음을 배웠다. 이런 상황에서 일제강점기로 근대를 맞으며 새로운 시대를 꿈꿨을 ‘그들’을 이 책을 통해 상상해본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는 그 어느때보다도 가난한 나의 모습과 ‘그들’을 비교해보면 내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정신에 대해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