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축 소멸 사회 - 압축 성장 대한민국은 왜 복합 위기의 길로 들어섰나
이관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압축 소멸 사회
압축 성장 대한민국은 왜 복합 위기의 길로 들어섰나

*표지부터 강렬하다. 압축, 소멸, 사회라는 단어가 사각형안에 빼곡히 갇혀있고, 중심에 가해지는 회오리같은 힘이 글자들을 한데 뭉뚱그린다. 회오리는 ‘압축’이라는 속도로 보이고 뭉뚱그려지는 모습은 각각의 단어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얽히고 설킨 복합적인 문제로 ‘소멸’되어가는 결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한국 ‘사회’의 위기를 잘 보여주는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복합적인 위기를 ‘정치’로 풀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회학자 이관후 저자님의 <압축 소멸 사회>를 소개한다.

* 이 책을 쓴 저자는 “제 16, 17대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일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정책보좌관, 국무총리 메시지비서관을 지냈으며, 2024년 11월에 역대 최연소로 제10대 국회입법조사처 처장으로 임명”되었다. 또 현재 건국대학교 교수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건국대 유투브에서 국가 난제 해결을 다룬 교과목을 소개하는 영상에서 뵌 적이 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서는 경제, 일자리, 에너지, 인구, 환경, 양극화 등 10가지 국가 난제를 제시했는데 이것을 학생들과 함께 토론해보는 수업을 담당한 교수님이셨다. 그래서인지 현재 우리 사회가 당면한 난제들에 대해 이론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잘 알고 계셨기에 그동안 뜬구름처럼 들었던 정치적 이슈들을 크게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나는 왕년에 ‘사회학개론’이라는 제목의 수업을 들었던 것 같은데 요새 대학생들은 좋겠다 싶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 대학생들이 부럽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책 1부 ‘대한민국은 왜 소멸을 선택했나’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맞는 세 번째 국제 질서인 신냉전 패권주의 시대를 맞아 ‘끼인’ 한국이 대내외로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늘 불쌍한 것은 국민들, 특히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이 시대에는 청년과 여성, 지방에 사는 국민들이 상대적으로 더 어렵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청년들은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극심한 경쟁을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겪어내는 중입니다. (...) 가장 심각한 것은 이 경쟁이 공정하지 않고 절대 공정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나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지 않습니다. 나는 지옥에 살지만 내 아이까지 지옥에 살게 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청년들은 이 아귀다툼의 실체를 너무나도 절실하게 체험했고 그것이 얼마나 비인간적인지 잘 알지만 동시에 그것이 절대 바뀌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앞 세대들은 경쟁을 통한 공정을 경험했지만 지금은 그것이 통하지 않습니다.”(p.39)

출발선이 다른 능력주의의 프레임이 깨지지 않는 이상 우리가 사는 곳이 오징어게임의 세상이며 이를 경험한 한국사람들은 암묵적으로 소멸을 선택했음으로 읽힌 장이었다.
2부 ‘절망을 부추기는 사회, 위기를 방치하는 정치’와 3부 ‘3부 정치의 소멸은 어떻게 오는가’에서 이 문제들을 방치한 한국정치에 대해 말한다. 저자의 국회이력이 더해져 쓰여진 부분이라 그런지 한국정치의 현상황을 가까이에서 정확하게 꿰뚫어볼 수 있었다. 4부 ‘다시 희망을 찾아서’에서는 무너진 정치를 복원하는 것만이 희망이라는 사회학자다운결론을 맺고 있다.

나는 이 책을 덮으며 그동안 선진국들의 사회를 압축하여 빠르게 살아오는 동안 돌아볼 형편이 아니기도 했고, 또 막장극 연속 드라마가 되어 시민의 눈을 가려온 정치라는 영역에 대해 생각해본다. ‘심판만 요구하는 무책임한 정치’(p.36) 부분을 읽으면서는 심판 프레임에만 머물면서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 무능력한 정치가들을 분별할 줄 아는 눈의 필요성과 함께 특히 계엄령 이후 현대통령 탄핵만을 목표로 삼고 만족해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든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희망은 탄핵 이후를 바라볼 수 있는 시민에 있다. “아빠의 모습을 그리고 껴안은 아이처럼, 길가에 쓰러진 누군가를 도우려는 사람들처럼, 인기척이 없는 옆집의 문을 두드리는 이웃처럼”(p.254) 그리고 이 추운 겨울날 국회로 향해 필요한 목소리를 내는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행동하기 시작할” 바로 그때가 소멸의 이야기가 희망의 이야기로 바뀔 것이라고 말하는 이관후 교수님의 책, <압축소멸사회>를 당신에게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쉼과 나아감에 대하여 - 인생의 오아시스를 만나는 예일대 명강의
마릴린 폴 지음, 김태훈 옮김 / 북플레저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쉼과 나아감에 대하여, An OASIS in TIME
인생의 오아시스를 만나는 예일대 명강의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앉아 휴식할 줄 모른다는 데서 온다.”-파스칼

“회사를 컨설팅할 때면 종종 직원이 쉬는 날에도 연락이 닿기를 바라는 대표나 관리자를 만나는데, 나는 직원을 완전히 쉴 수 있게 내버려 두도록 권한다.”(p.5)라는 저자의 마인드가 담긴 책, <쉼과 나아감에 대하여>를 소개한다. 영어 제목, <An OASIS in TIME>도 맘에 든다. 연말이라 크리스마스 연휴가 기대되는 요즘이지만 직장인들에게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업무와 정산으로 바쁜 시기이다. 그래서 직장인들에게 연말 선물용으로 알맞은 책이면서 상사가 휴일에도 업무를 하도록 종용하는 스타일이라면 조용히 선물하기에도 더 없이 좋은 책이다.(응원합니다!!)

이 책은 예일대 의과대학과 이스라엘 최고 명문대 히브리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마릴린 폴이 썼다. 저자에 대해 책날개에는 “면역결핍질환으로 죽음과 마주하게 된 뒤, 진정한 휴식과 재충전을 위한 사고법에 깊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라고 써있다. 프롤로그를 읽어보면 그녀는 “유대인이지만 유대교 관행에 관심이 없었다.”(p.6)라고 말한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고 7일째는 쉬었기에 유대인들도 안식일에는 예배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관습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서 유대교 관행이란 이것을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면역결핍질환이라는 병은 그녀에게 쉼과 나아감에 대한 통찰을 가져왔고 “이후 유대인들의 지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자신만의 성찰을 더해 몸과 마음이 평온해지는 휴식법을 고안했다. 이를 통해 많은 사람이 일과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라고 한다.

이 책은 총 3부로 ‘1부 우리는 도대체 왜 제대로 쉬지 못하는가’에서는 현대사회에서의 우리 모습을 고찰하며 쉼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2부 일하지 않는 시간을 설계하는 연습’에서는 쉬어본적 없는 일중독자들에게 어떻게 쉴 시간을 갖게 할 것인지에 대한 저자의 프로페셔널 분야인 컨설팅이 자세히 나와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3부 멈추고, 쉬고, 나를 찾는 법’이 인상적이었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질문’ 챕터에서 “능동적인 자세를 취하면 삶을 주도하고 다른 사람을 향한 원망을 비울 수 있다. 그런 감정에 낭비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더 깊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세상에 왔는가? 나의 강점은 무엇인가? 나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p.264)

이런 부분은 저자가 우리에게 오아시스타임을 권하는 이유면서 우리가 얻어야 할 중요한 문제다. 갱년기나 은퇴 이후를 맞은 사람들에게도 유효한 질문들이다. 그저 답 없이 흘러가는 시간들은 우울과 번아웃을 가져온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도 많이 목격했기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또 3부의 ‘새로운 생각과 행동 만들기’부분도 좋았다. 생각을 행동으로 바꾸는 8단계를 조언하며 좋은 습관을 들이는 꿀팁을 계획하도록 유도하는데 이것은 오히려 오아시스타임을 갖기 위해 일할 때 몰입을 도와주는 과정으로도 읽혔다.

미국보다 더 기회가 적은 우리나라 역시 번아웃에 자유롭지 않다. 요새는 어린학생들에게까지 이 선행이라는 명목으로 이 개념이 스며든 것 같다. 출발선이 다른 능력주의사회의 이면이다. 저자는 현대사회는 인간을 쉬지 않게 하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휴식을 선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취미가 적은 한국인들에게, 은퇴 연습용으로도 좋은 선물이 될 책이다. 나에게는 휴식을 설계하고 연습, 적용하는 3 단계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디지털 기기를 멀리하는 것이다!!! 들었니? 김아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병, 전쟁, 위기의 세계사 - 위기는 어떻게 역사에 변혁을 가져왔는가
차용구 지음 / 믹스커피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위기는 어떻게 역사에 변혁을 가져왔는가
<역병, 전쟁, 위기의 세계사>

현재 우리가 직면한 미증유의 위기들 –코로나라는 질병, 우크라이나-러시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의 시대다. ‘위기’라는 단어에는 ‘위험’과 ‘기회’라는 의미가 함께있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 인류가 지나온 위험한 역사 속에서 기회가 될 수 있는 역사적 통찰을 ‘변경’, ‘접경’으로 시도한다. 알고보니 차용구저자님은 서양사 전공자로 동서양의 접경을 연구하는 중앙대, 한국외대 HK+ 접경인문학연구단의 단장을 역임했고 현재 중대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나는 이때까지 외국 지역학이란 문화나 역사, 정치적인 외교문제를 위한 현상황정도를 배우는 단순한 학문으로 알았다. 지역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이렇게 다양한 모색과 해결방안을 꾀하고 있었구나를 배웠다. 또 한 나라의 대표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새삼 다시 느꼈다. 메으켈 총리도 그렇고 2022년 헝가리 총리였던 빅토르 오르반 그렇고 블라디미르 푸틴도 그렇고(이 세 명은 이 책을 읽으면 바로 느껴진다!) 현재 우리나라를 발칵 뒤집어놓은 분도 그렇고 말이다.

이 책의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환경 위기 속에서 돌파구를 찾은 역사’에서는 주로 역병, 팬데믹이나 환경오염에 대해 대처하는 나라들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2부 정치 위기 속에서 길을 찾은 역사’는 두 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1장 우크라이나 문제의 기원’에서는 현재 러시아의 불곰, 오래해먹는 이 양반, 푸틴이 전쟁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룬다. ‘2장 평화 공존의 기억’은 그 외의 다양한 나라들의 역사 속에서 공존을 키워드로 한 에피소드들을 다룬다. ‘3부 위기를 기회로 만든 성찰과 이주의 역사’에서는 폴란드와 독일이 화해했던 일이나, 후진할 때 들리던 그 엘리제 말고 파리의 엘리제궁에서 이루어져 ‘엘리제조약’이라고 불리우는 프랑스와 독일의 협력조약을 이야기한다. 이 파트는 용서, 화해, 협력과 환대로 위기를 이겨낸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쓰여있다. 나는 이 부분 중 독일이 분단되어 있던 시절, 동독이 우라늄 섞인 물을 방류하여 근처 유럽의 하천에 심각한 오염을 주었던 일화가 인상적이었다. 이때, 동독과 서독이 함께 협약을 하여 이 환경오염을 대처해냈다. 이 부분을 읽으며 이번 계엄령선언문 중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라는 문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가 북한과 함께 힘을 합쳐 이 한반도에 닥친 위기를 이겨내기는커녕 아직도 ‘북’자만 꺼내도 빨갱이로 몰리는 이분법적인 논리는 죽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는 1차세계대전 당시, 유럽 각국이 같은 진영을 따라 참전하게 되어 판이 커져버렸고 후에 메르켈 총리가 이를 두고 남의 싸움에 ‘몽유병환자’들처럼 끼어들었다며 클라크 저자의 <몽유병환자>를 독일 의원들에게 필독시켰다고 쓰여있다. 이를 읽으며 지금 한반도가 딱 몽유병환자처럼 북한은 러시아와 중국에, 우리는 미국에 편입되어 있는 상황 아닌가? 우리는 지금 우크라이나로 파병보내는 북한을 뜯어말릴 정도로 친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들의 전투경험 학습은 우리에겐 말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위협이고 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해답을 들려준다. 위기의 세계사 속에서 방법은 있었다. 접경과 변경지역에서는 둘로 단절하지 않았다. 함께 공존했다. 이기적이고 독단적인 방법이 아닌, 화해와 공존의 제스처가 양국에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우리나라에서 이 방법이 통할 날이 오기를 기다려본다.

#역병전쟁위기의세계사#차용구#믹스커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 년 집사 백 년 고양이 래빗홀 YA
추정경 지음 / 래빗홀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인공이 테오와 고덕이겠거니 하며 책을 읽었다. 그런데 다 읽고나니 내가 울고 웃은건 고양이들 때문이었고 고로 주인공은 분홍이, 제일병원이자 누룽지, 티그리스, 줄무늬, 메리였다라는 생각이 든다.

*겨울이 다가왔다. 고양이들에게 겨울은 특히 혹독하다.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당연히 좋아하겠지만,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이 추운 겨울에도 쉬지않고 고양이들에게 물과 사료를 주는 캣맘들의 활동을 응원해주었으면 좋겠다. 아니, 욕이라도 안해주었으면 좋겠다. 작은 생명체를 아끼는 그 마음이 자라 주변의 안타까운 사람들을 걱정할 줄 아는 소중한 마음이 될 것을 믿는다. 이 마음이 커져서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 닿으면 지금처럼 남과여로, 젊은층과 노년층으로, 지역색으로, 정치색으로 조각나버려 자기 잇속만 차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비정하고 팍팍한 사회는 아니지 않을까?

고양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아니 고양이를 한번이라도 쓰다듬어본 사람이라면 액체로 만들어버릴 책이다.(고양이 액체설을 패러디 해보았다) 이 책 속 분홍이가 하는 행동을 읽으며 “아! 우리 알롱이도 그랬었는데!”라며 자꾸 기억을 소환하는 탓에 나는 몇 번을 끊어 읽어야만 했다. “나만없어 고양이”하시는 분에게 적극 추천한다. 내 눈앞에 고영희씨는 없어도 이 책을 읽으면 내가 예뻐했던,(아니 나를 집사로 받아주었던) 냥이들이 내옆에서 가르랑거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p.s 우리집 식구들은 요괴워치 팬인편이다. 슬이가 장난감 중에 가장 오래도록 가지고 논게 요괴워치 시계였고, 내 폰에 유일하게 깔려있는 게임도 한국에서 섭종한 yokaiwatch이며, 만화책도 한 스무권, 책장에 꽃혀있고, 지바냥이 프라모델로도 떡하니 거실에 있었네?으응?(이제 깨달음) 그러고보니 어리버리한 게 민호랑 고덕이도 좀 닮았다. 천년집사 고덕이도 ‘요괴워치’시리즈처럼 장수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목소리의 증명
단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와 <수능 해킹>의 작가, 단요의 장편소설이다.
“아무도 내 안에 시한폭탄이 있다는 것을 믿어주지 않는다 그것을 터뜨리기 전까지는”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무절제기-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이렇게 부른다-가 지고, 앞선 역사 속 문제점들을 통제하려는 ‘문명재건청’의 휘하에 여러 가지 거주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종 사회 실험이 진행 중인 세계이다. 시기는 <1984>를 지나 <멋진 신세계> 전, 그 중간을 지나고 있다. 문명재건청은 빅브라더와, 태서는 존에 가깝다.

책의 시작. 주인공 태서는 삼촌과 함께 살고 있다. 그를 낳아준 부모님은 어릴 때 죽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에 의문을 품은 열일곱 살 태서는 가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곧 문명재건청에 걸리고 ‘해리성 정체감 장애’라는 병명으로 인지과학, 뇌공학 연구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이 곳에서 “내게는 망가져 있을 자유가 있지.”(p.230)라 말하며 일부러 얼굴에 흉터와 신경통을 고치지 않는 40대 연구원이자 심리상담가인 가문비와 만나게 된다.

1호, 2호, 3호의 목소리가 한 몸에 있는 주인공 태서는 특별한 아이다. 1호는 “나는 나 자신을 알고 믿는 거의 유일한 존재고, 가능하다면 한 명이 아니고 싶다.”(p.31)라고 말하면서 타인을 잘 믿지 않고 냉소적이면서 잘 우는 목소리이다. 2호는 세상을 바꿀 정도의 번뜩임을 지닌 천재지만 아홉 살에 4개월 된 동생의 손을 놓아버리는, 반사회성을 가진 목소리다. 3호는 이 둘을 진정시키고 위로하며, 피폐해진 육체에 밥을 챙겨먹어주고 다른 사람들과의 사회성을 유지해주지만 1호와 2호에게 인공지능으로 오해받는 목소리이다.(이건 딴소리인데 키오스크가 있는 곳에서 태서 뒤에 서면 엄청 오래걸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 셋이 뭐 먹을지에 대해 싸운다면...)

“결국 내가 나인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거예요, 그렇죠?”착한 아이로 태어나지 못한 소년과 나쁜 아이를 위한 자리가 없는 세계 -이 책의 뒷표지에 써있는 문구이다. 가출 전 태서는 문명재건청에 추천될 만큼 뛰어난 인재이기도 했다. 하지만 2호의 반사회성이 결격사유였다. 나쁜 아이는 이 세계에 있을 자리가 없다는 저 문장을 보며 능력주의시대인 오늘날을 생각해본다. 범죄만 저지르지 않는다면 사실 2호는 우리 사회에서 누구보다도 잘먹고 잘 살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능력주의 만능 편향 사회가 무절제기의 종말을 가져왔음을 떠올리자면 이 소설의 방향이 보인다.

한편으로는 나의 목소리는 1호, 2호, 3호 중 어떤 목소리에 가까운지도 생각해볼만한 지점이다. 따지고보면 우리는, 이 소설 내내 느낄 수 있던, 태서의 슬픔이 다가오기 전 무언가를 바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있는 그대로도 괜찮다고. 똑똑하지 않아도, 잘나지 않아도 소중하다고. 누군가 나한테 그렇게 말해줬으면 좋겠어. 그냥 칭찬받고 싶어. 내가 아무것도 돕지 못할 때도, 내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어. 반드시 내가 하자는 대로 따를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날 너무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p.211) 2호가 1호에게 하는 이 목소리를 읽으며 1호의 말, “우리가 어떤 점에서는 대등하거니와 서로의 공백을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협력하며 더 나은 방향을 찾아가고 있기 때문이다.”(p.226)를 생각해본다. 2호가 못미더웠던 1호는 3호를 필요로 한다. 2호는 3호를 싫어하지만 1호만 자신에게 귀기울여주면 참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우리 시대에 필요한 것이 바로 이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사회성의 2호를 인정하는 것, 3호라는 가장 적정한 타협,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는 불확실한 시대에 사는 감정적인 인간인 1호, 이것이 바로 ‘우리’이며 태서의 모습이다.

단요작가님의 예리한 사회적시각이 이 소설에 얼마나 많이 녹아있는지 모른다. 나는 흉터를 고칠 수 있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파괴할 권리를 자유로 생각하는 가문비나 나사역할의 청견, 북정, 남정 거주구 등 곱씹어볼만한 소재들이 넘쳐난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을 덮으며 나는 이제 SF 소설을 쓰는 한국작가를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게 되었다.
#목소리의증명#단요#위즈덤하우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