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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늙기를 기다려왔다
안드레아 칼라일 지음, 양소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2월
평점 :
<나는 언제나 늙기를 기다려왔다>
어려보이는 것을 선호하는 한국인들은 유독 피터팬을 향한 열광이 깃든 민족이라 생각된다. ‘백세시대’라는 키워드와 함께 떠오른 <백년을 살아보니>의 저자이자 올해 104세가 된 김형석 교수님에게 그 누구도 윤동주와 함께 공부했을 때나 도산안창호의 설교가 어땠는지, 김일성의 중학교 시절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 오로지 장수의 비결을 묻는 인터뷰만이 흔하다. 그리고 스타상담가의 50대가 되어서 절대 해서는 안되는 세 가지 시리즈들, 삼질-자랑질, 이간질, 지적질, 삼안-전화안하냐, 안오냐, 안고맙냐, 삼소리-죽는 소리, 싫은 소리, 욕하는소리 - 쇼트강의가 조회수 상승중이다. 노년을 준비하는 나이의 나는, 이런 시대적, 사회적 흐름이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나이들수록 어려보여야지, 추잡시러워보이지 말아야지, 더 잘 입고 다녀야지, 말도 가려가며 해야지, 노인이 되기 너무 어려운거 아닌가? 하지만 주변에 노년의 어르신들 중, 나는 저렇게 나이들고 싶지 않다는 분도 있고, 반대로 저렇게 나이들고 싶은 분도 있다. 안드레이 칼라일은 후자의 사람이었다. 심지어 일타강사처럼 옷을 이렇게 입어라, 이런 말은 하지마라 등, 뭐해라 마라 하지 않아 더없이 좋았다.
There Was an Old Woman 이라는 원제를 ‘나는 언제나 늙기를 기다려왔다’라고 제목을 붙인 책이다. 나는 이 원제와 한국책 제목 사이에서 읽으며, ‘옛날 옛날에~’라는 말은 없지만 그 뒤를 이어주는 “어느 지혜로운 할머니가 살았어요”로 읽혔다. 저자는 소설, 에세이 등을 쓴 미국작가이면서, 100세를 산 어머니를 7년간 간병한 이야기를 SNS에 올리며 큰 관심을 받은 분이라고 한다. 나이를 드는 것에 대한 고정관념에 반해, “나는 어린아이였고 지금은 나이 든 여자다. 나는 정말 온전한 인간인가?”(p.69)라는 스스로를 향한 질문이 이 책을 써내려가는 원동력이었구나, 싶다.
‘하지만 나는 젊음을 원하지 않는다.(...) 나름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충분히 흥미진진하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온전히 살아가고 그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증언해달라고 요청할 가치가 있는 심오한 시간이다.“(p.98)라며 우리에게 나이든다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더 이상 불평을 하지 말고 공유하는 대화를 해보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우리는 여러 장벽을 허물고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에 관한 대화를 ’불평‘에서 나이가 든다는 게 어떤 건지 공유하는 대화로 바꾸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p.101)
또, 1970~80년대에 아이들을 가르치던 저자는, 교사들 조차 인종차별과 성차별에 대한 인식은 높아졌지만 “연령 차별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했다”(p.202)라고 이야기하며 우리 사회에 자리잡은 노년에 대한 차별과 소외를 지적한다.
뭐니뭐니해도 이 책은 저자가 사는 하우스보트에서 산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이 책을 집필하면서 창 밖으로 보이는 칠면조 독수리, 백로, 사슴을 보며 자신의 반려견이었던 (심지어 세 마리) 카슨, 분, 브리오를 떠올리는 것으로 마친다. 그렇게 하루하루 다가오는 대로 일상적인 삶을 누리며 마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책 뒷표지에 적혀있듯이 “내 이야기의 마지막 장을 잘 살아내고 싶다. 그 안의 빛과 그림자까지 받아들이며.” 이제 빛이 소멸해가고 그림자가 다가오는 생의 전환점에서 나 역시 나이드는 것에 불안해하지 않고 안드레아처럼 산책하듯, 우아하게 보내고 싶다고 생각해보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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