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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기분 - 한문학자가 빚어낸 한 글자 마음사전
최다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평점 :
<한자의 기분>, 한문학자가 빚어낸 한 글자 마음사전
감정과 기분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내가 느끼는 감정은 하나인데 싫다, 짜증난다, 뭔가 불편하다, 꿉꿉하다 등으로 산만하게 나열하기는 더 싫을 때도 있다. 좋다, 신난다, 즐겁다, 재밌다 같은 긍정적인 감정도 마찬가지다.
“기분을 말해줄 정확한 언어를 찾는 것만으로 덜 외로울 수 있다.”(p.10)
“한자문화권에 뿌리내린 우리는 한자를 통해 자신의 오래된 성정과 조우하며 자신이 존재하는 양상을 충분히 이해받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p.11)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처럼 자신을 언어화해줄 수 있는 단어를 찾는 과정을 통해 한문학자로의 삶을 꾸려나가는 저자의 모습이 보이는 대목이다. 또 자신에 대해 “산문같은 사람이 되는 일에 늘 실패”하는 저자는 “운문같은 사람이다”(p.80)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장르는 산문이지만 운문 같은 책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다양한 한문 한글자 한글자만이 지닌 사탕을 하나씩 입에 넣고 굴리며 산책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 사탕의 맛이 한문이 이제 막 만들어지던 옛날에 살던 고대인도 아는 맛이고 이 책을 읽을 독자들도 좋아할 맛이라는 게 느껴진다. 그런 기분을 담은 <한자의 기분>을 소개한다.
이 책은 한문학자만이 쓸 수 있는 글일 것이다. 오랜 시간 한문을 관찰하며 만들어진 생각들을 가지고 12가지 기분으로 빚어냈다. 처음으로 소개하는 ‘이름 명’에 대해 저자는 ‘저녁 석’과 ‘입 구’가 만나 ‘이름’이 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해가 떨어지고 나면 어둠이 얼굴을 지웠기에,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말하여 본인을 증명해야 했다.”(p.15) 내 입으로 내 이름을 말하는 기분, 그것은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는 설명이다. ‘눈 목’ 위에 ‘손 수’가 얹어져 있는 ‘보다 간’에 대해서는 멀리 보기 위해 눈 위에 손을 올리는 행동이라고 설명한다. 고대인들이나 현대인들이나 비슷한 제스처를 취하는 것을 보며 나는 뭔가 인류라는 단어가 공통분모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또 저자가 맥주의 뽀얀 거품 위에 저자의 기분을 맡기기도 하는 ‘거품 포’를 읽으면서는 나도 그 옆에 앉아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무늬 문’에서 발견하는 글쓰는 이들 각자가 지닌 무늬를 의미하는 ‘문’학이라는 단어의 발견도 좋았다. 그 외에도 한자로 나뭇잎, 땅, 서리의 색을 되짚는 ‘색깔의 기분’과 숫자를 하나하나 세어가며 ‘헤아리는 기분’도 인상적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저자의 MBTI를 알 것만 같은 힌트가 담긴 ‘씻다 세’가 있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감정이 쉽게 동굴을 파고 들어가 숨어버리곤 하는 나의 기질”(p.62)을 씻어내고서는 “뽀얗게 씻겨 한동안 나를 잘 운영할 원동력으로 삼”(p.63)고자 한다는 저자. INFP가 엿보인다.
저자의 이름에 쓰인 한자에 대해 생각해본다. ‘많을 다’에 ‘뜻 정’이라면 한자 하나에 많은 뜻을 찾아낼 수 있는 이름 아닐까? 이름에 대해서도 다정함과 부러움을 동시에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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