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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바바라 몰리나르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평점 :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엮고 백수린 작가가 번역한, 이라고 쓰지만 그 두 작가가 선택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프랑스 여성작가, 바바라 몰리나르의 책이다. 1921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198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바바라 몰리나르는 글을 쓰고 찢어버렸다고 한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남편이 그녀를 설득해 이 책에 수록된 단편만을 남길 수 있었고 1969년에 발간된 이 책이 그녀가 남긴 단 한 권의 책이다. 열세 개의 단편과 뒤라스와 몰리나르의 대담 한 개를 모아 총 열 네 가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책의 인물들은 혼자라면 누군가를 기다리거나(산타로사에서 오는 비행기),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기도 한다.(머리 없는 남자, 와줘). 약사와 함께 등장하는 엑토르의 경우(잘린 손) 둥근 손을 실용적으로 만들기 위해 잘라내기도 하고, 침대에 묶여 주인이라는 사람의 지시로 입에 바늘을 꽂아두는 고통을 당하기도 한다(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타인과 함께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직접적인 육체적인 고통을 겪기도 하고 사다리 만드는 것을 포기하고 싶지만 설득, 강요를 당하며 정신적으로 괴롭힘을 당하고 결국에는 비극이 기다리기도 한다.(아버지의 집) 이런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렁주렁 단 채 피투성이로 이 도시를 헤매는 인물들이다. 또 어딘가에 올라가기 보다는 주로 축축하고 음침한 지하로 내려간다(잘린 손, 와줘). 자신이 왜 이 곳에 있는지 기억하지 못하기도 하고(택시,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종종 등장하는 구멍들 뒤에는 누군가 숨어서 주인공 또는 무엇인가를 엿본다(침대,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가장 우울한 것은 단 한 순간도 혼자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p.205) 이 점이 이 책 속의 비극을 만들어낸다. 도시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가지만 타인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고통이 있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피투성이로 이 도시를 헤맨다. 친어머니 조차(잘린 손) 주인공을 박대한다. 주인공 역시 다섯명의 경찰에게 둘러싸야 고통받는 동생의 모습을 보지만 모른 척한다. 끊임없이 누군가를 기다리지만 (산타로사에서 오는 비행기, 와줘) 나타나지 않거나 손가락 만이 열쇠를 빼내고 사라진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와줘>라는 단편도 그렇지만 <만날 약속>에서는 “와야 해요”, “만나기로 약속했잖아요 ······ 와줘요.”(p.97)라며 계속해서 기다린다. 이런 기다림은 마지막 편, 뒤라스와 바바라 몰리나르의 대담으로 기록된 <지하납골당>에서야 “받아들여진 느낌”(p.217)을 받는다. 죽어야만 갈 수 있는 납골당에서 “삶 속에서는 붙잡을 수 없는 무언가를 우리는 죽음 속에서 붙잡을지도 모르니까요.”(p.223)라며 그 곳에서 “저는 그저 나 자신이 되고 싶을 뿐이에요.”(p.224)라고 말한다. 그렇게 이야기는 끝이 나고 이 페이지는 단 두 줄을 빼고는 텅 비어있는데 그 만큼 시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옆에 그녀가 직접 그렸다는 그림이 실려있다. 하얀 종이 위에 피를 흘렸는지 그 피를 흘린 누군가가 고통스러워 한 자국이 보인다. 바바라 몰리나르의 이야기에는 모두 고통이 담겨있다. 그 고통이 그녀에게 삶이란 흔적이었고 그것은 글쓰기로, 그리고 그것을 찢어버리는 행위를 통해 고통에 저항한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나 자신이 되어 그 고통과 정면으로 맞닥뜨린 그의 ‘혼자’라는 고통에 저항할 수 있는 독립과 길겠지만 끝이 있는 ‘밤’을 응원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나의 차례임이 느껴진다. 나는 내 자신의 고통을 응시할 용기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