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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무라카미 요코 사진, 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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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고 사고 싶어도 표지가 구려서 살 수가 없다... 들고 다니기 창피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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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의 사생활 - 수술대 위에서 기록한 신경외과 의사의 그림일기
김정욱 지음 / 글항아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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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생활, 이란 단어를 존중해요. 그래서 사생활이라는 단어 때문에 이 책을 보게 된 거 같아요. 중요한 부분이잖아요. 어떤 사적인생활이라는 부분은요.

 

어렸을 적 교통사고를 당해서 크게 다친 것은 아니었지만, 2주일간 입원했던 적이 있어요. 교통사고라는 것은 후유증이 무섭기 때문에 처음엔 아무렇지 않아 보이더라도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어디가 눈에 띄게 다치지 않았지만 먹고 자고 나아지길 기다리면서 아픈 사람들과 함께 한 생활이 2주간 저에겐 있었던 거죠.

 

그때 깨달았던 것 중 하나는 아픈 사람들은 무척 쉽게 화를 낸다는 거였어요. 저는 다리에 충격이 가면 안 되기 때문에 절대 뛰면 안 되는 정도의 지침만 있었고 다른 데는 크게 아프지 않았던 거 같아요. 천천히 걸어야 한다, 아무리 급해도 뛰면 안 된다 정도의 제약 말고는 약 먹고 밥 먹고, 가 일상의 전부였기 때문에 그래서 돌아다니면서 이 사람 저사람 구경했던 거 같아요. 구경한다는 생각도 따로 없었지만요.

 

물론 모든 환자들이 다 그랬던 것은 아니었지만 병원 밖 바깥세상에선 아무래도 화나지 않을 것 같은 일에 아주 평범한 아저씨, 할머니, 아주머니가, 아주, 쉽게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짜증을 냈던 기억이 나요. 거의 다 어떤 일인지 기억도 안 나는데 하나가 기억이 나는 게 평소에 아주 착한 아저씨였는데 침대에서 내려오는데 슬리퍼 한 짝이 없다고 분통을 막 터뜨리던 기억이 나요. 저한테 내는 짜증도 아니고, 그냥 혼자 분통을 터뜨리는 건데도 많이 무서웠어요. 울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장면이 또렷하게 기억이 나요.

 

 

그래서 의사의 눈으로 본 병원이 좀 궁금했던 거 같아요. 의사 생활을 세밀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다만, 그 생활이 아주 아주 빡세다는 걸 아는데, 그 와중에 이 의사는 무엇을 기록하고 남기고 싶은 것일까 하는 생각이요.

 

 

 

 

음..아마 글을 통해 작가님이 남기고 싶었던 것은 직업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였던 거 같아요.

(작가님의 말) 

제 직업은 당연히 의사지만, 저는 글을 계속 쓰려고 합니다. 세상에 보여주기 위한 글을 쓸 생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저와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특수하거나 자극적인, 특별한 이야기에 집착하지는 않아야겠다, 라고 다짐을 했어요.

 

그냥, 제 시선으로 바라본 환자와 보호자 이야기를 더, 계속해서 쓰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루할 수 있겠지만, 지루함을 떨치기 위해 자극을 추구하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다만 글 읽는 분의 시선은 그림으로 붙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은 있습니다.

하지만, 제 그림은 보기에 예쁜 그림이 또 아니긴 합니다.

다만 제가 그리고 싶은 방식의 그림을 그릴 것이고, 제 방식대로 그린 그림들을 통해 그 분들이 인생의 주인공에서 밀려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계속해서요.

 

사실 전 의사라는 직업이 참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3가지가 있어요.

 

첫째, 전 그냥 제 일을 하는 것인데 고맙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직업이에요.

둘째는 글 쓰는 것을 업으로 삼았다면 이런 관심을 못 받았을 거 같고 편하게 글을 풀어내지 못했을 거 같아요. 제 직업이 글은 아니니 문장에 대한 고민 같은 것도 별로 하지 않구요.

셋째는 그림 그리는 일을 업으로 살았대도 이렇게 못 살았을 거 같구요.

 

(솔직히 이 부분은 너무 자연스럽게 훅 이야기가 흘러가서 둘째, 셋째라고는 말은 하셨는데 뭔가 훅 지나감. 포인트를 잡은 건지도 잘 모르겠네요. 제가 느끼는 맥락은 이런 느낌이어서 이렇게 정리했어요. 정확하게 캐치한 분은 댓글로 피드백 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사실 의사의 길과 화가의 길을 심도 있게 고민했어요.

 

내가 아무리 좋은 사유를 가지고 있어도 그 사유가 그림으로 맛있게 표현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일이란 걸 알기 때문에, 과연 그렇게, 내가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싶더라구요.

양방언 씨 보면 서울대 의대도 가기 힘든데 도쿄 의대를 그만두셨더라구요. UN 김정훈 씨도 서울대 치대 갔다가 그만두고. 어떤 전문직을 그만 두고 그렇게 자기 분야를 갖기가 쉽지가 않거든요.

 

사실 한번 전시회를 갖고, ,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림이라는 게, 그림만 딱 그리고 끝이 아니고, 광고도 해야 하고, 또 주변에 알려서 보러 오게 해야 하고, 할 게 많더라고요. 저 두 가지 일도 말하고 보면 같은 이유의 일이고 동일한 맥락 같은데, 하려고 하면 각각의 일이더라구요.이게.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고 화가로서의 일에 대해 좌절을 하고 의사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림 그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그래도 현재 내가 조금이나마 뜨거운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어요.

그리드 노트에 그린 거였는데 그걸 출판하게 되면서 편집자님이 일일이 다 지워주셨어요. 편집자님 감사합니다. 앞으론 절대 몰스킨 그리드 노트는 쓰지 않을 겁니다.

 

의사라는 길을 걷게 되고 변하셨느냐에 대한 질문_

당연히 변했죠. 많이 변했어요. 그리고 의사라는 일은 할수록 쉽지 않은 건 맞는 거 같아요. 일단 저는 무서운 게 변했어요. 처음엔 욕 먹는 게 진짜 겁났는데, 지금은 환자 잘못될까봐 두려워요.

 

그리고 글을 쓰는 일에 대해서는, 제가 이런 글을 통해 다짐을 하고, 저는 의사라면 기본적으로 좋은 의사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이런 설익은 이야기들을 가지고도 풀어나갈 수 있는 것은 제가 의사지, 글 쓰는 것이 본업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편하게 풀어놓을 수 있는 것이고, 사실은 글을 잘 쓰겠다, 에 대한 고민보다, 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는 정도면 되겠다는 게 제 마음이에요.

 

왜냐하면 결국 의사는 잘 낫게 하고 치료를 잘 해야 하는 게 첫번째인 거니까요.

 

수술 기록지를 보니까 4년간 900건 정도 수술을 했더라구요. 그 중에 600명쯤은 살렸겠다 싶으면서 안도를 했습니다. 사실, 어떤 일이라는 것은 하면 할수록 잘해야 하고 자신있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은, 어려운 일이에요, 수술은.

 

그러다가 질문 시간이 좀 길게 이어진 걸 간략히 정리할게요 :)

아마 책에도 이런 부분이 있을 거 같아요. 전 아직 다 읽지를 않아서...

 

훗날의 바람 같은 게 있느냐는 질문_

저는 나중에 희망이 있다면 노인분들을 위한 병원을 차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분들이 웃으면서 돌아가실 수 있게. 돈이 많아야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쉽지는 않을 거 같지만, 소망은 그래요. 또 저는 3년간 군대를 가야 하는데 공중 보건의로 가야 할 거 같아요. 그 전에, 혹은 가서 영상 작업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어르신들에 대해, 좀 세밀하게요.

 

그림을 언제 그리냐는 질문_

사실 30분 정도면 다 그립니다. 그리다 보니까 잘 그린다기보다, 그럴싸하게 보이는 법을 터득하게 되더라구요. 그리고 그림쟁이도 아니고, 글쟁이도 아니기 때문에, 너무 잘 쓰고, 너무 잘 그리려고 하지는 않아요. 원래 목적인 기록을 남긴다는 의미가 퇴색될까봐 그런 부분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글도 그렇구요. 휴대폰에 단상을 적었다가 나중에 시간날때 써요. 많이 고쳐야 하긴 하지만, 바로바로 씁니다. 따로 막 시간을 내서 쓰진 않구요. 그럴 시간도 없긴 합니다. 일주일에 160시간 가까이 일해야 하거든요.

 

DNR에 대한 고민과 생각에 대해_

신경외과의 의사가 DNR(심폐소생술 금지동의서)을 이야기하는 것은 내과와는 완전히 달라요.

 

그 판단을 내리고 그 순간의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도 의사의 의무 중에 하나구요.

코마 상태는 기간이 2주가 넘지 않아요. 그날 돌아가시는 분도 계시고. 한달 넘는 사람도 있긴 해요. 근데 숨은 쉬고 있지만, 그 숨이라는 것이 심장마사지+ 전기충격으로 몸의 숨을 어찌어찌 겨우 연장시키는 것에 불과해요. 그리고 의사들은 그런 부분에 있어 그게 삶으로서 무슨 의미를 갖느냐 대해서까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런 부분은 생각하지 않고 의사로서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사실, 결말을 아는데 매일 같은 상태가 계속 이어진다는 것, 상당히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일이에요.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이 바로 보호자분들인데 병원에 계속 있으시거든요. 그러니까 지나가는데 보호자가 와서 담당의한테 매일 물어보거든요. 오늘은 좀 어떻습니까.

 

차라리 나빠졌습니다,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기도 해요. 뭐라도 다른 조치를 취해볼 이유가 되니까. 그런데, 거의 변화가 없어요, 정말로.

 

처음엔 선생님, 오늘은 좀 어떤가요?’ 라고 묻지만 그 분들, 지칩니다.

장례 준비는 이미 다 되어 있거든요. , 돌아가실 거라는 걸 알아요.

그래서 어떤 날은 보호자가 막 짜증을 내요. 나아지지도 않을 사람한테 왜 무슨 약을 주냐고. 어차피 죽을 사람인데 왜 수혈을 하시는 거냐고.

나아지지 않는 거면, 의사선생님은 무슨 일 하는 사람이냐고.

 

그 화가 결코 저희를 향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요.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사람이니까,

속상한 건 어쩔 수가 없죠. 그분들이나 저나.

 

근데 또 놀라운 게 아예 의식이 없어도 나중에 깨서 그걸 기억하시는 분도 있어요.

그때 니 내 불렀제?’ 하고. 사실, 환자한테 노력하는 이유는 보호자분들이 후회 없이 보내셨으면 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에요. 남은 사람들이 원없이 그분들이 가시게 해주시길 바라요.

 

 

 

굳이 저울의 이미지를 빌려와서 나(의사작가님)의 고통과 환자의 고통을 각각에 저울에 올린 상태로 말하자면, 처음엔 나의 감정, 혼나기 싫은, 인정받고 싶은 마음 이 무거웠다면, 지금은 환자의 고통이 무거워지신 게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욕을 먹는 게 무섭다는 건 내가 내 감정이 고통스럽기를 피하고 싶은 마음인 거고, 환자가 잘못될까봐 두렵다는 것은, 내가 아닌 저 바깥의 인간의 고통이, 나라는 사람의 고통보다 중요하게 다가와졌다는 거잖아요.

 

 

 

같은 맥락으로 제 글이 좀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이라고 말씀도,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이라는 말이 단지 인정받기 위해, 주목받기 위해 자극을 추구하지는 않겠다는 다짐 같았어요.

유머감각을 키우는 대신 친구들과 함께 커피숍 같은 데 가면 서로 냅킨 같은 거 막 챙겨주는, 매너감각을 키웠다는 말도 인상적이었어요.

 

지루하더라도, 점점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는 말처럼 느껴졌거든요.

질문하는 분들 중에 간호사분들이 많이 있으셔서 전 놀랐어요. 미대 나오신 분도 많으셨고.

간호사는 스트레스 많은 직군인데, 작가님이 의사는 그래도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많은 인정을 해주지만, 일선에서 환자들을 더 많이 챙기는 손길은 간호사인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간호사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은 것도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말씀한 것도 그 직업군에 현재 있는 분에겐 큰 감동적이었을 거 같아요.

 

정말 참기 힘든 대우를 받는 경우도 많대요. 그 일의 중요도나 업무 강도에 비해서요.

 

사실 사람들 마음이라는 게 편하고 좋은 것에는 금방, 정말 금방 익숙해져서 그 편하고 좋은 것이 당연하다고 인지해버린대요. 그래서 그 좋음, 편함, 깨끗함을 위해 어디선가 누군가가 얼마나 희생하고 노력하는지 인지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쉽지 않고, 보이지 않는 노력을 하시구나 싶었어요.

 

 

다 읽지 못했지만 우선 소장 가치가 충분한 책으로 나온 듯 해요.

아기자기하고 수채화 같고 정말 예쁘게 나온 책이에요.꼭 한 번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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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울차 2017-11-13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공감가네요 화를 자주 낸다는 사실...
그래요 병원이라는 곳이 그런곳인것 같아요
병원에서 알하면서 너무 힘들어요
다들 날카로워져 있어서...
 
라임포토스의 배 - 제140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쓰무라 기쿠코 지음, 김선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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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을 사는 여자들의 모습은 참 많이 비슷한 것 같다.


20대 초반에는 대학을 다니느라 바쁘고, 중반이 되면 취업하느라 정신이 없고,

20대 후반이 되면 한 곳에 일을 꽤 한 상태가 되면서 일 자체가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어찌됐건 학자금을 다 갚고 조금이나마 목돈을 모을 때까진 여기 있도록 하자, 고 마음먹는다.

 

하지만 첫 회사에서 에게 적의를 느끼는 사람 때문에 1년을 채우기 힘든 상황까지 비슷한 걸 보면 이건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그냥 사회에서 찍어내는 '경험의 붕어빵'의 대상이 된 기분이다.

 

이렇게까지 똑같이 다 겪어야 진정한 사회인이 되는 걸까?   

 

 

여행 항로를 보며 파푸아뉴기니에 가서 아우트리거 카누를 탈 생각에 목표가 생긴 것 같아진 나가세.

 

p.14

아마도 나는 지난주, 걷잡을 수 없이 일하기 싫었던 것이리라. 남 일처럼 그렇게 생각했다. 공장 월급날이었다.

도시락을 먹으며 늘 마찬가지인 박봉 명세서를 보고 있자니 어딘가 이상해진 모양이었다.

 ‘시간을 돈에 파는 듯한 기분이라는 생각이 든 순간 몸이 굳었다.


일하는 자신이 아니라, 자신을 계약직으로 고용한 회사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역겨웠다.

시간을 팔아 번 돈으로 음식물과 전기, 가스와 같은 에너지를 고만고만하게 사들여

겨우겨우 살아가는 자신의 불안한 삶이.

앞으로도 그래야만 한다는 사실이.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그런 대사가 나온다.


 

사람 눈 똑바로 보면서 미움 받는 게 얼마나 독인데.

  

     

공장에서 일하며 친구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토요일은 상공회의소에서 노인을 상대로 컴퓨터 강사 일을 하면서 이따금 집에서 데이터 입력 부업도 하는나가세는 아르바이트로 버는 것을 생활비로 쓰고 월급은 통째로 저축을 하기로 한다.

 

작가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소설은 그 배경이 10년 전이다. 2000년대 초반, 우리가 IMF를 힘겹게 넘기고 있는 동안이었다. 일본의 경제상황은 우리와 닮은 점이 많다고 한다. 일본의 경제가 몰락한 게 그렇다면 20년 전쯤이고 그 여파가 계속되고 있으니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당시 젊은이였던 일본사람들은 20년 전부터 느끼며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것이다.

 

 

열심히 일은 하지만, 나 자신의 비루한 삶을 겨우겨우 이어나가는 기분. 한번 사는 삶인데, 미디어속 비슷한 나이대의 여자들은 반짝반짝 빛이 나는데, 우리의 삶은. 이라는 기분이 안 들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죽었다 생각하고 번 돈 모아서 1년 동안은 내 맘대로하고 싶은 소망이 누구에게나 생기는 것 같다.

 

지인 중에 한 명은 올 추석에 여름휴가를 보태 2주간 영국에 셰익스피어 투어를 갈 거라고 했다. 일에 쪼들리지 않는 대신, 떠날 자유는 없는 나는 사진 많이 찍어 와서 보여달라고 했고, 지인은 셰익스피어의 정기를 듬뿍 나누어주겠다고 했다.

 

나가세는 생각지도 못했던 보너스를 받고 163만엔을 채우게 된다. 목표 금액을 모은 그녀의 기분은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직장 동료에게 홍차와 스콘을 대접하고, 에나에게는 딸기 모종을 사줄 생각을 한다. 그리고 떠날 크루즈 여행의 포스터를 보며 인사한다.

또 만나. 하고.

 

 두 번째로 실린 <12월의 창가>는 또 다른 느낌이다.

 

<12월의 창가>를 읽으면서, 그 시기를 겪는 동안 작가는 아마 몸을 떨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첫 직장을 다니면서 스트레스가 폭발 직전에 이르러 집에만 오면 신경질이었다

 

 

학교는 돈을 내고 다니지만, 직장은 돈을 받고 다닌다. 그래서 쉽게 안 나갈 수도 없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도 없다. 실수가 하나 생기면 바들바들 떨며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찾고, 알고 보니 내 잘못이 아니었는데도 함부로 혼낸 것에 대한 사과를 받는 것은 꿈도 못 꾼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첫직장에서 내가 가장 자주 들었던 말은 OO, 이제 애 아니에요

. OO, 애도 아닌데 왜 그렇게 일 제대로 못 해요, 라는 애와 비교하는 말이었다.

 

일의 결과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핀잔을 듣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한 일이라 조기 취업을 하고 학교로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나는 학교를 간다는 핑계로(좀 더 배워야겠다고) 1년을 못 채우고 퇴사를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아르바이트 같은 것을 하며 취업전선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진 않았다. 직장 생활의 무시무시함을 떨쳐 내지 못한 것이랄까. 좀더 사회인이 되는 걸 미루고 싶었던 것 같다.

 

어찌 보면 그 분의 말처럼, 난 애처럼 굴고 있었다. 그럼 뭐 어떠냐 싶었다. 어차피 그만큼 못 번 것은 나중에 오래 일해서 벌든가, 뭘 안 사서 지출을 줄이던가, 내가 알아서 할 몫이었다.

    

 

쓰가와의 상사인 계장은 업무에 관한 트집거리를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는 재능을 보여준다.

거래처에 출고할 봉투를 만드는 게 늦었다느니 하청업체 시간제 직원과 전화로 담소를 나누었다느니

자기가 말을 거는데 바로 일어나지 않았다느니 하는 이유로 V계장은 쓰가와를 질타한다.

 

죄송하다고 하면 단 줄 알아? 하고 따지면

죄송합니다, 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는 대화를 몇 번이나 반복하게 하고

그렇게 일할 거면 그만 두라고 하고 그러곤, 그래도 그만둘 건 아니지?

니가 그만둬봤자 네가 갈 곳은 없어, 라는 말을 하고.


 

견디다 못한 쓰가와가 사표를 내자 계장은 매일 같이 그녀를 붙잡고


 

너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알아? 이제부터 바빠지는데 넌 사람도 아니야, 난파하려는 배를 버리는 망할 년이야,

하고 소리를 질러댄다.

 

매일같이 자신의 고통+ 넋두리를 들어주던 친구 나가토는 상사의 신임을 받는데

어느날 상사가 무차별 폭행범에게 폭행당해 입원을 한다.

 

 

알고 보니 그녀는 근처에 출몰한다던 무차별 폭행범으로 변장해 상사를 폭행했다.

신임도 얻고, 진급도 남들보다 빨리 하게 됐지만 그건 아무런 보상이 되어주지 못했기 때문에.


퇴사를 전하는 쓰가와에게 축하한다며 나가토는 말한다.

고립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일할 수가 없었어.

언젠가 해치울 거라고 스스로에게 증명하지 않고서는.

아마도 나가토에게 그건 숨 쉴 구멍을 만드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만둘 수는 없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으니까.


 


쓰가와는 속으로 사과한다.


-미안해요. 당신은 그래도 나보다 나을 줄 알았어요. 분명 그렇지 않았던 거죠.


 

 

퇴사를 한 쓰가와도,

일을 그만두지 않고 이중적인 모습을 가진 채 일을 계속 하는 나가토도,

크루즈 여행을 계획한 나가세도

다시 서른을 넘기고 일이라는, 친구인 듯 적인 듯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삶 속으로 다시 한 발 내디뎌야 한다.


 

솔직히 읽을 땐 이렇게까지 내가 공감을 하고 있는 줄 몰랐는데

인물들에 대해 쓰다 보니 몰입이 되어있는 걸 발견했다.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작가가 다음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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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26살이 되면서 나는 사회인이 되었다. 바쁘게 살았다. 열심히, 최선을 다 해서 살았느냐고 물어보면 나로서는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말할 것이다. 이제는.

 

한동안은, 그 시기에 더 더 열심히 살 걸, 뭐라도 더 많이 배울 걸, 이라는 후회를 얹어 생각한 적도 있지만, 어쨌든 그 시기 나는 9시 반에 출근해서 8시 혹은 9시까지 일을 하고 일을 마치고 나면 지쳐 잠들 정도로 열심히 일을 했다. 학자금을 갚아야 하기도 했고, 갖고 싶은 걸 부모님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사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27살에 만난 남자친구와는 28살에 헤어졌다. 웬만하면, 이 정도면 결혼해도 괜찮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던 만큼 관대해지려고 했는데, 보수적인 남자였고 그걸 고칠 생각이 없다는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진하게 느꼈다. ‘ 여자는 결혼하면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며 저녁을 준비하고, 자신이 들어오면 기쁜 얼굴로 맞이해주는 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한 가정이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나는 일이 좋았다. 무슨 일이 되었든 사회에서 내 위치를 갖고 일을 하는 것이 좋았고, 그 관계 속에서 인정받는 것이 즐거웠다. 비록 일이 주는 스트레스가 클지라도. 나는 생각했다. 나는 그의 '내 여자'이고 싶지 않다고.

나한테는 남편만을 기다리며 집안에 있는 것이 답답하고 외로운 시간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이제 32, 지금 내 주변에는 28살에 결혼하는 여자 지인들이 꽤 된다. 오래 만나서 이 사람만한 사람이 없어서라는 생각에 결혼을 하는 동생도 있고, 남자친구가 원해서 하는 경우도 있다.

어쩌다 가끔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아직은 결혼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과 혼자라서 드는 안도감이 더 크다.

 

큰 단점이 없어서. 이만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결혼을 쉽게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멀어지는 것도 분명 있었다. 함께 영화 얘기, 책 얘기를 나누던 여자 지인들이 이제 거의 없다.

결혼을 한 친구들에게는 책과 영화 이야기보다는 결혼해서 만들어가는 자신들의 세계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걸 느낀다. 항상 먼저 문득 인사를 건네던 내가 이제 더 이상 친구들에게 연락하지 않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안부 인사나 생일 축하 인사를 건네면 언제부턴가(정확힌 내가 29살이 되면서부터) 넌 결혼 안 해? 라고 묻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 안 하다 보니 점점 더 연락을 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카카오톡에서 그 사람의 일상이 궁금하고 말을 걸고 싶지만 이제는 서로의 관심사가 너무 달라졌다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어지고 만 것이다.

 

결혼이 나쁜 것도 아니고 혼자가 나쁜 것도 아닌데, 어떤 갈림길에서 서로 다른 쪽을 선택한 것 같아진 기분이다. 언젠가 만나질 수도 있고, 다시 만나질 수 없기도 하겠지만, 어쨌거나 그걸 인정해야 하는 순간.

 

그래도, 아직은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혼자 무거운 걸 들고 올 생각을 하면 팔이 아플까 걱정되고, 이러다 결혼 안 할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지만, 친구도 있고 남자친구도 곁에 있는 지금 이대로의 상태도 충분히 행복하다. 그러니까 혹시나 결혼한 사람들은 자신의 결혼생활이 충분히 행복하다고 해도 결혼 안 한 사람들에게 결혼 안 하냐고 너무 묻지 말자. 그냥 지금 사는 거 재밌어? 어때? 정도로만 묻자. 그럼 대부분, , 충분히 괜찮아.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 같아, 라고 대답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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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가난하게 살까봐 글을 쓰는 것을 포기하고 싶었던 때가 있었어요. 23살이었나.24살이었나. 그때 당신의 글을 보고 생각했죠. 평생 가난하게 살다 죽더라도 당신이 내게 주었던 느낌을 제가 다른 이에게 줄 수 있다면 가난해도 작가로 사는 게 행복할 거 같다고 말이에요. 굿바이. 그곳에선 고독하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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